91화 독수리 작전
님의 침묵

470.
1943년 12월 7일 난징에 본부를 둔 지나파견군(支那派遣軍)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중국의 철도수송망을 이용하여 중국군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이른바 ‘대륙타통작전(大陸打通作戰)’을 수립한다.
1944년 1월 24일 히로히토 천황이 ‘대륙타통작전(大陸打通作戰)’을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광이던 도조 히데키 총리는 작전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며 중국 서남부주둔 연합공군을 궤멸시키는 선에서 조건부로 작전을 허가한다. 그러나 작전을 입안한 하토리 다쿠시로 대좌는 지나파견군 사령관 하타 슌로쿠와 결탁하여 대본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전을 결행한다.
항공모함과 함재기를 대부분 상실한 일본은 미국의 공습에 무방비로 노출됨에 따라 일본열도 침몰설이 나돌 정도로 국민 사이에 불안감이 팽배한다. 따라서 일본은 연합국 정상들의 잇단 회담에서 불거진 전후 처리방안에 대하여 골몰하며 국면을 전환할 협상안 마련에 전전긍긍한다.
일본은 연합군의 총공세가 있기 전에 중국 전선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작전을 펼쳐 중국을 완전히 장악한 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쥐려는 ‘명분(名分)’과 지나파견군의 일부를 복귀시켜 본국을 사수하려는 ‘실리(實利)’를 동시에 얻기 위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전략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지나파견군(支那派遣軍)’은 17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사단, 독립여단 6개 등 총 51만의 병력과 항공기 200대와 전차 800대, 대포 1천 5백문, 차량 1만 6천대 등을 동원하여 ‘대륙타통작전’에 투입한다.
1945년까지 철도망을 따라 총공세를 펼친 끝에 일본군은 중국군 50만 병력을 궤멸시키고 6천만 명이 거주하는 성 5개를 빼앗으며 곡창지대와 동부해안을 점령한다.
외형상으로는 ‘대륙타통작전’은 성공한 작전처럼 여겨질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일본군의 피해가 무려 10만 명에 육박하고 팔로군(八路軍)과 대치하던 국민혁명군이 대패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화베이(華北)’를 공산당이 차지하는 결과를 빚는다. 게릴라전술에 번번이 발목이 잡힌 일본은 공산당의 창궐에 넌더리를 친다. 더욱이 전혀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까지 발생하며 일본은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당초 연합군은 어니스트 킹 제독이 주장한 바에 따라 타이완을 거쳐 중국에 상륙하여 일본군을 섬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이 완강할 것을 우려한 연합군사령부는 ‘타이완 침공 작전’을 전면 백지화하고 오키나와와 필리핀에서 이륙한 육군항공대로 일본 본토를 폭격하자는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을 전격 채택한다. 말하자면 ‘대륙타통작전’은 일본에게 승리를 안겨준 성공적인 작전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연합군의 일본 본토 공습을 앞당긴 최악의 패착으로 기록된다.
1945년 2월 4일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 최고인민위원이 연합국을 대표하여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원탁회의에 둘러앉는다. 이들은 패전이 짙은 독일을 두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이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에 합의한다.
이 외에도 얄타에서 중요하게 다룬 의제는 소련의 대일전(對日戰)의 참전 여부다. 당시 개발 중이던 원자폭탄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던 루즈벨트는 소련의 참전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최후의 통첩이라며 스탈린을 설득한다. 소련은 대일전(對日戰)에 참전하는 대가로 러일전쟁 당시 상실한 쿠릴열도와 사할린섬을 반환받는 굵직한 선물을 챙긴다.
‘얄타회담’ 직후 OSS는 광복군과 연합하여 국내진공을 위한 ‘독수리 작전’에 착수한다. 광복군의 제2지대와 제3지대가 있는 중국의 두취(杜曲)와 리황(立煌)이 ‘독수리작전’의 전초기지로 급부상한다.
훈련생 125명 가운데 정보 수집과 폭파, 통신 등의 훈련과정을 통과한 45명이 교관 써전트 대위와 버치 중위의 인솔 하에 연병장에 도열한다. OSS 극동지부장 빅터 한 중령이 각 대원에게 수료증을 수여한다.
“대원들은 곧 잠수함과 수송기를 이용하여 서울과 부산, 평양, 신의주, 청진의 전략지점에 침투하게 될 것이다. 일본군의 해군기지와 병참선, 비행장, 군사시설 등의 첩보를 연합국에 제공하여 군사작전을 측면 지원하는 것이 대원들의 임무다. 그리고 광복군의 지부와 공동으로 한국에서 봉기를 유도하여 자주적인 독립투쟁을 수행하는 것 또한 대원들의 임무임을 명심하라!”
대원들이 모자를 허공에 던지며 환호성을 터트린다.
“지부장님, 언제 출동합니까? 당장이라도 날아가서 총독부를 날려버리겠습니다.”
대원 한 명이 불쑥 손을 들고 목청을 높인다.
“귀관들의 충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OSS의 작전은 연합군사령부의 제가를 받아서 움직이는 만큼 나 또한 아는 바가 없다. 아마 여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귀관들의 어깨에 대한민국의 독립이 달렸다. 부디 작전 개시 일까지 훈련에 전념하기 바란다. 이상!”
‘독수리작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1945년 7월 필리핀을 탈환하고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작전에 착수한다. 극동지역의 전문가로 발탁된 빅터 한 중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남서태평양사령관의 부름을 받고 시안 비행장에 대기하고 있던 C-47 연락기에 오른다. 공군비행장에 도착한 빅터는 곧장 마닐라 연합군사령부로 향한다.
맥아더 사령관은 예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레이벤 선글라스에 옥수수 속대로 만든 콘콥 파이프를 비딱하게 문 채 야자수 그늘에서 빅터를 맞이한다.
“도노반 국장이 극동전문가로 자네를 추천하더군.”
맥아더가 콘콥 파이프를 뻐끔거린 뒤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선글라스 너머의 움푹한 눈동자가 얼마간 빅터를 응시한다.
“귀관은 장제스 정부와도 선이 닿고 한국의 임시정부와도 친분이 깊다고 들었네.”
빅터는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린 듯 덤덤하게 대한다.
“업무상 관련이 있을 뿐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한국이 모국이 아니던가?”
“맞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임시정부에 대하여 사적인 감정이 없을 수가 있나?”
“정보국에 들어올 때 이미 어떤 정보도 국가에 반하는 일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기밀준수서약서에 서명했습니다.”
허를 찔린 맥아더가 선글라스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배시시 웃는다.
“선글라스를 꼈는데도 눈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게야. 내가 보자고 한 것은 귀관의 국가관이 투철하고 신념이 굳기 때문일세.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임시정부 내 김구의 민족주의계와 김원봉의 사회주의계가 사상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돌더군. 귀관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네.”
“김구 주석은 장제스의 비호를 받으며 일본의 암살을 피한 인물입니다. 김원봉 또한 황푸군관학교 출신으로 장제스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용군을 만들었습니다. 김구와 김원봉은 공히 장제스 정부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비록 사상적으로는 대척점에 있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독립하자는 데에는 뜻을 합친 지도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독일 포츠담에서 미국과 영국, 중국, 소련의 지도자가 모여 일본에 대해서 항복을 권고하고 종전 후의 일본의 처리방침을 의논 중에 있네. 각국의 참모들이 지도자들의 회담 내용을 총 13개 항목으로 조율을 하는 모양인데, 제1항부터 5항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세계 인류에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즉각 연합국의 항복 요구를 수락할 것을 다룬다더군. 그러나 유독 제8항이 내 시선을 끈단 말이야.”
맥아더는 얼음이 녹은 레몬에이드를 마시다 말고는 콘콥 파이프를 재떨이에 턴다. 그러곤 엽초를 채워놓고 입에 문다. 불을 붙인 뒤 양 볼이 움푹해질 때까지 빡빡 들이마시곤 연기를 허공에 날려 보낸다.
“제8항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와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섬들에 국한된다’고 하더군. 카이로 선언의 내용을 아나?”
“특별조항에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하기로 결의했더군요.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잘 숙지하고 있군. 연합국이 결의한 ‘자유독립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임시정부 소속의 광복군에 대하여 성향을 알아두는 것도 연합군사령관인 내 책무라고 생각하네.”
맥아더가 보고서를 빅터 앞으로 내민다. 서류 상단에는 붉은 잉크로 ‘독수리 작전’이라고 찍힌 양각체가 선명하다.
“그동안 OSS에서 훈련시킨 광복군을 한국에 침투시킨다고 들었네. 물론 자네가 OSS 극동지부장이니 모를 리 없겠지. 광복군을 한국에 침투시켜도 사상적으로 문제가 없겠나?”
빅터가 양미간에 굳어졌던 주름을 펴며 생각을 정리한다.
“사상의 문제는 독립국가가 수립된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OSS에서 훈련받은 대원들은 이념과 사상을 떠나 조국이 해방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각오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맥아더가 턱을 끌어당긴 채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사상이든 이념이든 나라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좋아, 독수리 작전을 허락하지. 낭보를 기대하겠네. 그리고 앞으로 한국이 해방되면 자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걸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중국으로 복귀한 빅터는 OSS 본부에 모인 지휘관들과 ‘독수리 작전’의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협의한다. 대원 45명은 2개 조로 나눠 잠수함과 수송기로 각각 인천과 남포로 침투하여 경성과 평양으로 잠입한 뒤 현장 요원과 접선하도록 작전을 수립한다.
머지않아 조국으로 침투한다는 소식을 접한 대원들은 잠수와 낙하 훈련에 열중하며 의지를 불태운다.
471.
파도가 출렁거릴 때마다 어선들은 검푸른 수평선을 위태롭게 떠다닌다. 나트랑 외항에 닻을 내린 상선 쪽으로 어선으로 위장한 운반선들이 접근을 시도한다. 파도가 잠잠해지자 화물이 크레인에 매달려 운반선으로 이동된다.
소총과 수류탄, 박격포 등 각종 화기를 실은 운반선들은 경비가 허술한 어촌에 접안한다. 대기하던 트럭들은 화물을 싣고 쏜살같이 어촌을 빠져나간다. 트럭들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게릴라부대가 은거한 정글에 도착한다.
기대감에 부푼 대원들이 횃불을 들고 트럭 주위에 올망졸망 달라붙어 화물을 내린다. 그러곤 노루발장도리로 널빤지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궤짝 안에는 지푸라기가 가득 차있다. 적이 실망한 청년이 궤짝 안으로 팔을 넣고 지푸라기를 헤집는다. 연거푸 허방을 짚던 청년은 퉁방울눈을 끔적거리며 뭔가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가 밖으로 끄집어낸 것은 무기창에서 출고될 당시의 유막(油膜)이 온전한 ‘데그챠레프 경기관총’이다. 혁명가라면 한번쯤 꿈에서 품어봄직한 무기가 횃불에 거무스름한 살기를 내뿜는다. 사위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뒤미처 다른 궤짝들도 박 터지듯 쩍 갈라지며 정글 속 혁명가들이 염원하던 신무기들을 쏟아낸다.
신무기로 무장한 게릴라들은 베트남 최대의 명절인 음력설을 맞이하기라도 한 양 허공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창졸간에 고요하던 정글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폭죽이 터지는 축제의 장으로 뒤바뀐다.
츄반탄은 단원들과 어깨를 두르고 춤을 추며 불을 전해준 신을 기린다. 신명나게 춤을 추던 츄반탄이 나타샤를 발견하곤 까무러치듯 놀란다.
“아니, 여길 어떻게······”
그는 채 말을 잇지 못한다. 나타샤가 대수롭지 않은 듯 응수한다.
“원조물자가 잘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제 임무입니다.”
나타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츄반탄은 그녀를 막사로 이끈다.
“일단 귀국이 보내준 값진 선물에 대하여 감사함을 전하겠소.”
츄반탄이 인사말을 건네며 그녀에게 의자를 권한다.
“여기까지 온 건 특별한 일이 있다는 뜻인데······”
탁자 앞에 놓인 호롱불이 두 사람의 눈동자에 투영되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장군님, 곧 중화민국군이 진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봉기를 일으켜 일본군을 몰아내고 사이공을 선점하십시오. 그래야만 외세의 침략을 막을 뿐만 아니라 협상에서도 장군님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오. 낫과 곡괭이로 외세에 맞선 투사들이오. 절대 이 땅이 침략당하는 일은 없을 거외다. 그리고 단연컨대 그 어떤 외세와도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이오.”
츄반탄이 어금니를 앙다물고 결의를 다진다.
“모스크바에서는 베트남에 평화가 안착될 때까지 장군님에게 필요한 군수물자를 전량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진정한 민중봉기가 무산계급을 위한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모스크바는 장군님이 베트남의 진정한 지도자가 되길 원합니다. 또한 장군님의 노선에 어떤 정치적 개입도, 간섭도 할 의사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베트남의 독립과 장군님의 장도를 응원하는 뜻에서 스탈린 동지께서 친서를 보내셨습니다.”
봉투를 건네받은 츄반탄이 봉인된 밀랍을 뜯고 친서를 꺼내 읽는다. 친서를 다 읽은 그가 손을 내민다.
“스탈린 동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시오. 베트남이 독립하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이오.”
나타샤는 츄반탄과 굳은 악수를 나눈 뒤 동이 틀 무렵 정글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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