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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7.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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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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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00화 숙명의 라이벌

님의 침묵




DUMMY

478.


나타샤는 신분이 노출된 서울 주재 소련영사관의 아나톨리 샤브신 부영사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부영사 동무, 남한 공작사업에서 손을 떼십시오. 미군정청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나도 얼마 전 미행을 당했습니다. 절대 박헌영 쪽 사람과 접촉하지 마십시오.”

그가 눈알을 궁굴리며 비굴하게 답을 구한다.

“그럼 앞으로 저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곧 소미공동위원회가 열릴 겁니다. 서울영사관은 폐지되고 평양영사관으로 업무가 이관될 겁니다. 동무는 소미공동위원회의 소련대표단에서 통역관으로 발령이 날 예정입니다. 과업완수를 위해 성실히 임하시오.”

“스탈린 동지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도한 그가 밝게 웃으며 나타샤를 관사 밖까지 배웅한다.


뒷문으로 영사관을 빠져나온 나타샤는 공작조가 타고 있는 목탄트럭에 올라탄다. 목탄트럭은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눈발을 헤치고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녀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북조선공산당위원회의 당사를 방문한다.


“본국에서 지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조바심을 감추려는 듯 짐짓 태연한 척한다.

“1946년 2월 17일 모스크바 총참모부 최고정치위원회 지령 제7호는 다음과 같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타샤가 지령문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허리춤을 꼿꼿이 세운 김일성도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른다.

“‘북조선소비에트인민위원회’의 구성을 승인하며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임명하도록 한다. 김일성 위원장은 조선인민공화국의 건국 과업을 적극 추진하며, 박헌영과 함께 ‘남북통일공산화구축공작’에 최선을 다하라.”

김일성의 표정이 ‘박헌영’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일그러진다.

“총참모부 최고정치위원회의 뜻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러나 ‘남북통일공산화구축공작’은 북조선 단독으로도 가능한 사업인데, 굳이 박헌영을 도와서 할 이유가 뭡니까?”

나타샤는 실망한 시선으로 탐욕적인 그를 노려본다.

“위원장 동지! 지금 남한의 사정을 알고나 하는 말입니까? 총참모부에서는 박헌영한테 본격적으로 남조선파괴활동을 개시하라고 지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박 동지는 적진에서 사생결단의 자세로 혁명과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도 당에서 내린 지령에 따라 남조선공산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시오. 총참모부는 지령을 내리는 곳이고, 위원장 동지는 따르는 입장입니다. 두 번 다시 총참모부의 지령에 토를 달면 불평분만분자로 간주하겠소.”

김일성은 그녀의 싸늘한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구시렁거린다.

“누가 뭐랍디까. 다만, 박헌영을 믿지 못해서 하는 말이외다.”

“뭐라고요?”

“아닙니다. 총참모부 지령을 따르겠습니다.”

김일성이 끙, 소리를 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나타샤는 불쾌감을 드러낸 채 황급히 자리를 뜬다. 그녀는 곧장 평양 공항으로 달려가 모스크바행 연락기에 탑승한다.

나타샤로부터 지령을 받은 박헌영은 신탁통치는 일제의 점령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민족이 통일하여 5년이라는 신탁통치의 기한을 단축하자며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이는 반탁(反託)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선언한 이승만의 우익세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반탁 일색이던 남한의 정국은 박헌영이 찬탁을 주장하면서 급속도로 냉각된다. 결국 남과 북은 신탁통치의 찬반을 놓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박헌영은 총파업과 폭동을 일으키라는 소련의 지령을 남조선공산당 전국 지부에 하달한다. 좌익세력들은 암암리에 봉기하여 남조선파괴과업을 성실히 수행한다.

신탁통치의 여파로 정국이 혼탁할 즈음 남한의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든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 발생하며 그 배후로 지목된 박헌영이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다.


연일 장맛비가 퍼붓는 1946년 7월에 이른바 ‘조선공산당 위폐사건’의 전모가 만천하에 밝혀진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은 조선은행권의 지폐원판이 소공동 소재의 ‘근택빌딩’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곳을 접수한다. 조선공산당은 ‘조선정판사’란 인쇄소를 차려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찍어낸다. 위조지폐는 공산당의 활동자금으로 쓰이며 시중에 유포된다.

‘조선공산당 위폐사건’은 여러모로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우선 공산당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며 좌익세력은 광복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또한 미군정청은 박헌영을 포함하여 조선공산당의 지도부에게 수배령을 내림과 동시에 좌익계의 3개 신문에 대하여 정간조치를 취하는 등 탄압의 수위를 높인다.

박헌영은 미군정청의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던 김수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피신한다. 그는 영구차의 관속에 은신하여 미아리고개를 넘어 북으로 탈출한다. 평양에 도착한 그는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의 당원에게 ‘박헌영 선생의 서한’으로 통하는 지령문을 내려 보내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방해한다.

대구 폭동과 제주 4.3폭동, 여수 반란사건 등의 일련의 남한파괴공작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야기한 ‘6·25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된다.


미군정청과 경찰청의 비호를 받는 서북청년단은 이승만의 친위대가 되어 좌익세력을 일망타진하는 데에 앞장선다. 남한이 좌우익의 유혈충돌로 피로 물들 즈음 나타샤는 정보총국 사령관실의 문을 두드린다. 정보총국장 이고르 중장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바노바 동지, 귀국을 환영하네!”

“사령관 동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1차 소미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 스탈린 동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마침 크렘린궁에서 외교 관련 최고회의가 있어. 한반도의 현안이 중차대한 만큼 같이 가서 귀관이 직접 보고하도록 해. 그리고 참······ 축하하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책상으로 다가간 그가 서랍에서 계급장을 꺼낸다.

“인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귀관의 소령 진급을 승인했네.”

그가 소령 계급장을 나타샤의 어깨에 달아준다.

“감사합니다.”

나타샤의 눈가에 잠시 물기가 스친다.


두 사람이 탄 관용차가 트베르스카야 대로를 가로질러 크렘린궁이 우뚝 솟은 붉은 광장으로 진입한다. 회의실은 주무 장관과 최고위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 채 현안에 대하여 숙의 중이다. 이고르와 나타샤는 참석자들에게 목례를 한 뒤 자리를 잡는다.

잠시 후 스탈린이 밭은기침을 하며 회의실로 들어선다. 참석자 전원이 기립하는 바람에 의자다리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낸다. 스탈린은 마맛자국이 유독 또렷한 오른뺨을 실룩거리며 손사래를 친다.


“다들 앉으시오.”

스탈린이 중앙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일변한다.

“요즘 같아서는 UN에서 탈퇴하고 싶은 심정이오. 미국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어오니, 대놓고 주먹다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나? 루즈벨트가 살아만 있었어도 이처럼 대결구도로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존재감도 없던 부통령 나부랭이가 권좌에 앉더니만 대통령병에라도 걸린 듯 마구 칼을 휘두르는 꼴이라니······. 트루먼, 그 작자만 생각하면 자다가고 머리가 주뼛주뼛 선다니까!”

스탈린의 심기를 살피던 외무장관이 슬그머니 발언권을 얻는다.

“서기장 동지! 트루먼은 얕잡아볼 위인이 아닙니다. 그는 벌써부터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최장 5년의 신탁통치안을 거부하고 남북한의 인구비례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안을 UN총회에 회부한다고 합니다. 그 뜻은 곧 우리 쪽이 반대할 것을 알고 미리 선수를 치겠단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강경하게 대처하셔야 합니다.”

“쳇!”

스탈린은 몽니를 앓던 속내를 일부러 콧방귀로 일소한다.

“절대 앉아서 당하지만 않겠어!”

눈동자에 핏기가 서린 그가 이고르 중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반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소?”

불똥이 자신에게 튀기라도 한 듯 지레 겁먹은 이고르가 나타샤에게 부담을 떠넘긴다.

“때마침 남한과 북한에서 공작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귀환한 이바노바 동지가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비딱하게 앉아 있던 스탈린이 고개를 모로 튼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부동자세로 전방을 주시한다.

“참, 이바노바 동지가 한반도의 공작을 주도했지! 그래, 그쪽 상황은 어떤가?”

“먼저 남한 사정을 보고하겠습니다. 이승만이 올 6월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며 공식적으로 남한의 독립정부수립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박헌영을 포함한 좌익세력이 대대적으로 폭동과 총파업으로 대항했지만 미군정청의 탄압으로 남한전복공작은 실패했습니다. 현재 박헌영은 평양으로 피신 중입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위원장이 조만식을 물리치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김일성의 권력욕은 지나치다싶지만 당근과 채찍으로 잘 활용하면 38선 이북에서 공산당 일당체제의 성립은 무난할 것으로 파악됩니다.”

스탈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귀관의 보고를 듣고 있자니, 한반도에서의 공작이 실패한 것만은 아니군. 우리도 애초에 38선 이북을 소비에트공화국으로 만들 계획이 아니었나? 덤으로 남한까지 얻으면 좋으련만, 미국이 버티고 있는 한 쉽지 않겠지. 남한에서도 이승만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면서? 우리 쪽에 승산은 없겠나?”

스탈린이 일말의 기대를 갖고 묻는다. 나타샤는 남한의 사정을 냉정한 자세로 여과 없이 보고한다.

“미군정청도 남한의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자 ‘좌우합작’이란 특단의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좌우합작’이란 의외의 단어가 등장하자 뭇시선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 남한은 북한보다 훨씬 복잡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이승만과 김구가 중심이 된 극우세력과 김규식, 원세훈 등의 중도 우파세력 그리고 여운형의 중도좌파세력과 박헌영의 극좌세력이 친탁과 반탁으로 합종연횡을 하기도 하고,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놓고서는 이합집산을 하는 형국입니다. 미군정청은 한쪽에선 좌익진영을 탄압하고, 다른 쪽에선 우익진영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즉, 좌익진영을 극좌와 중도 좌파로 분류하여 박헌영의 극좌파인 조선공산당을 궤멸시킨 다음 여운형 중심의 중도좌파진영을 들러리로 내세워 우익 주도의 좌우합작정국을 꾸릴 속셈인 겁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경청하던 스탈린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테이블에 양손을 올려놓는다.

“미군정청이 골머리를 앓을 정도라면 아직도 남한에서 소비에트 혁명의 불씨는 살아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다만, 미군정청을 등에 업은 우익진영이 공권력을 장악하여 좌익진영을 탄압하는 탓에 지하활동으로 노선을 바꾼 상태입니다. 그리고 평양에 머무르는 박헌영이 지령을 내려 남조선파괴공작과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끙, 하고 호흡을 가다듬은 스탈린이 외무성 장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오. ‘2차 소미공동위원회’가 열리면 미국 측에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을 고수할 것과 ‘공동위원회’의 안을 지지하는 남한의 조선공산당을 더 이상 탄압하지 말 것을 주문하시오. 북한에서 민족주의자인 조만식이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하는 점을 부각시켜 압박하면 미국도 우리 쪽 제안을 거절하기는 힘들 거요.”

그가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치고 나머지 얘기는 술 한 잔 하면서 합시다. 나타샤 소령의 귀환도 환영할 겸해서······”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긴 스탈린은 나타샤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비공식적으로 묻겠네. 김일성과 박헌영이 뭐라고 하지 않던가?”

“‘북조선소비에트인민위원회’의 구성을 승인하고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임명한다는 것과 박헌영과 함께 ‘남북통일공산화구축공작’에 최선을 다하라’라는 총참모부의 지령을 내렸습니다. 상부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말 밖에는 특별히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따로 추진할 공작은 있는가?”

잠시 머뭇거리던 나타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러곤 머릿속에 부유하던 생각을 단박에 정리한다.

“김구는 이승만과 달리 한반도에서 하나의 독립정부수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구를 평양으로 초청하여 한반도의 분단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우리 쪽의 의사를 국제사회에 천명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스탈린이 카이저수염을 매만진다.

“그거 참 좋은 묘수군. 우리가 김구를 초청하여 한반도의 단독독립정부안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제사회에서도 남한만의 선거를 부추기고 있는 미국을 궁지로 내몰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흡족해하던 스탈린이 등을 돌려 고개를 까딱거린다. 줄곧 스탈린의 주변을 맴돌던 알렉세이가 성큼 다가온다.

“알렉세이 소령에 대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이번에 크렘린 경호대 정보참모로 임명했네.”

알렉세이가 나타샤에게 눈웃음을 친다.

“곧 별장으로 김일성과 박헌영이 올 거야. 한반도에서 소비에트혁명을 완수할 적임자를 가리기 위해서지. 이번 계획은 알렉세이 소령이 제안한 것이네. 내가 김일성과 박헌영을 직접 면담하고 적임자를 찾을 생각이야.”


일순 동공에서 비롯된 마비가 신경체계를 따라 전신으로 전달된다. 나타샤는 목각인형이라도 된 양 사위의 소음과 철저하게 차단된다. 경쟁에서 한수 뒤쳐졌다는 낭패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주고받는 최고 권력자와 권력에 막 눈 뜬 청년장교를 멀거니 바라본다.

알렉세이가 스탈린의 경호대에 발탁되었다는 사실은 그녀로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치욕적인 일이다. 알렉세이가 다가와 귀띔하는 순간 나타샤는 소금기둥이 된 마법으로부터 풀려난다.


“서기장 동지께서 별실에서 보기를 원해. 지금 당장!”

정신을 되찾은 그녀는 알렉세이의 뒤를 쫓는다. 알렉세이는 시끌벅적한 만찬장을 벗어나 휑한 홀을 가로질러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잰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려는 듯 그는 회랑을 따라 저만치 앞서가더니 획 돌아선다. 나타샤가 숨을 고를 즈음 그가 우뚝 나타난다.

“오늘 보고 들은 건 일체 극비사항이니만큼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 돼.”

그는 턱짓으로 별실을 가리킨다. 나타샤는 치뜬 눈으로 그와 5초가량 눈싸움을 벌인다. 그러곤 일부러 그의 어깨를 밀치며 별실로 다가간다. 그녀가 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에서 시내를 바라보던 스탈린이 등을 돌린다.

“외로운 밤이군.”

그가 테이블로 다가가서 잔에 보드카를 따라 그녀에게 건네준다.

“외로울 땐 술이 친구가 되어주곤 하지.”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딱히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조차도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생각이 나더군.”

“예?”


그녀가 어깨를 들먹이며 반문을 재기하려는 찰나 스탈린이 달려들어 버럭 끌어안는다. 그러곤 굶주린 늑대가 되어 키스를 퍼붓는다. 일순 두 사람의 손에서 차례로 떨어진 술잔이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외로운 늑대는 침실의 문을 발로 걷어차곤 가녀린 양을 침대에 눕힌다. 스탈린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단박에 웃옷을 벗긴다. 그러곤 봉긋한 젖무덤에 얼굴을 묻는다. 거친 숨결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나타샤는 천장이 빙빙 도는 현기증 속에서도 아랫도리에 힘을 주고 양쪽 무릎을 바싹 붙인다. 관능적인 그의 손길은 이미 달아오른 다리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녀는 연신 머리채를 흔들며 거부한다. 하지만 새하얘진 머릿속에서 유독 알렉세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그만 오금을 풀고 만다.


그녀가 스탈린을 받아들인 것은 완력에 백기를 든 것이 아니라 호승심이 동한 측면이 강하다. 동기 가운데 1인자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던 그녀에게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알렉세이의 존재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만년 2인자의 복수는 단 한 명, 1인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2인자는 1인자를 꺾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스탈린이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때마다 나타샤는 별실 너머 회랑까지 들릴 정도로 일부러 농염하게 교성을 발산한다. 발정 난 지도자가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시점에 그녀의 합음은 거침이 없다. 이는 갈기가 성긴 젊은 사자에게 우두머리 사자의 곁을 섣불리 넘보지 말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경고인 셈이다.

한바탕 격랑이 잦아든 뒤 스탈린은 그녀의 팔을 베고 널브러진다. 절대 고독은 독재자도 철부지로 만드는 성싶다. 그는 코흘리개처럼 쌔근거리며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그는 비에 접은 날갯죽지를 퍼덕이는 새처럼 이따금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뒤챈다.

나타샤는 희미한 조명 아래 도드라진 마맛자국을 살며시 매만진다. 외로운 지도자에 대한 연민과 여자로서 보듬어주고 싶은 모성애가 잠시 기수역(氣水域)에서 혼재되는가 싶더니 이내 유유히 바다로 합류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흐느끼던 그녀도 어느새 독재자 곁에서 잠이 든다.


회랑을 서성거리건 알렉세이는 주먹을 깨물고 분루를 삼킨다. 핏물이 입가에 흥건히 밴다. 경호원이 순찰을 돌며 다가오자 그는 마지못해 별실을 떠난다. 그는 트베르스카야 대로의 술집으로 차를 몬다. 동료들이 반갑게 맞이하는데도 거칠게 뿌리친다. 그러곤 구석자리에 앉아 보드카를 병째로 시켜 단숨에 비운다. 그의 성마른 성격을 잘 아는 동료들은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술집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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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68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86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102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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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94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95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94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91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100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12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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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9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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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화 김일성 +1 19.05.09 98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95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95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88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93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90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91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87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94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06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87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88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92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87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86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84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91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95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89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85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84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84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84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88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88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88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89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89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90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90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00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91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89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94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90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92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91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90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89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90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94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93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91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90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95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90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90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87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88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90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93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92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90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92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98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07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03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02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01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02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03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15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06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10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07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08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12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24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12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12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14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15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19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28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30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31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31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39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46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21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00 6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22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241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262 7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274 8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321 11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322 12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365 13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454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557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813 13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561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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