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을 씹어먹는 지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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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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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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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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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바이벌 프로젝트 (1)

DUMMY

“헉! 헉, 헉.”


잠에서 깬 선우는 허둥지둥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열차 안이었다.

그는 이내 어머니를 뵈러 가고 있었음이 떠올랐다.


“역시 꿈이었구나...”

“얼씨구. 코도 골드만.”


그의 회사동기인 조민호였다.

선우는 그를 존미노라고 불렀다.

물론 대놓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민호는 이죽거리기와 으스대기만큼은 세계 제일이었다. 그런 탓에 선우가 일기에 써놓은 ‘탈모유발자 랭킹’에서 그는 언제나 1위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민호와 같은 날, 같은 목적지로, 그것도 같은 기차로 휴가를 떠나게 됐다.


‘후... 도착할 때까지만 참자. 내릴 때까지만.’


선우가 분노를 꾹꾹 눌러 담는 동안, 민호는 다시 제 할일로 돌아가 있었다. 얼핏 보니, 같은 부서의 김민지 대리에게 카톡으로 추파를 날리고 있다.

웃긴 건 대화창엔 노란 바탕의 메시지 일색이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 나불대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와의 대화’창인 줄 알 정도였다.

그런데도 희희낙락하고 있는 민호를 보고 있자니, 선우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선우가 속으로 참 병신 같다고 여기던 그 때, 갑자기 형광등의 불빛이 흔들렸다.

꺼지는 듯싶더니 다시 켜졌다.

선우가 관심을 끄려던 찰나, 불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일순 열차 안에 암흑이 흘렀다.


“뭐야, 이거!”

“직원! 승무원! 어디 갔어!”


사람들은 난데없는 정전에 웅성거렸다.

다들 미어캣 마냥 목을 쭉 빼고 좌우를 돌아봤다.

마침내 참다못한 민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 때에야 다시 환해졌다.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민호가 씨불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일개 승객이 할 수 있는 것은 좌석에 풀썩 앉는 것뿐이었다.

그가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사과방송이 흘러나왔다.


<객실 내 전등문제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 지지직.>


어이없는 건 그 방송마저 중간에 끊기며 잡음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 하나가 꺼졌다.

선우의 앞쪽 천장에 위치한 형광등이었다.


“씨발, 깜짝이야!”

“왜, 왜이래, 이거~ 담당자! 어딨어! 기장 나와!”


승객들의 불안감이 증폭됐다.


<합니다. 열차 곧 출발합니다.>


승객의 반발은 전혀 개의치 않는 출발안내가 흘러나왔다. 무례하다고까지 여겨질 방송이 마칠 때쯤에야 철도승무원이 나타났다.

그들은 거듭 사과했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이에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안정을 되찾으려했다.

일단 목적지에는 가야했으니까.

그래도 진정이 안 된 몇몇 승객들은 항의를 계속했다.

민호도 어느새 누구보다 앞장서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역시 존미노답다. 지랄도 기똥차게 잘하네.


덜컹-


그러던 사이, 역에 정차해있던 열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문제가 있어보였던 열차는 뻔뻔스럽게 움직였고, 순조롭게 레일을 미끄러져갔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


어느덧 열차가 다시 출발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승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져 있었다.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선우의 스마트 폰 상단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은 그는 알림창을 눌러봤다.

게임 초대였다.

‘서바이벌 프로젝트’라는 제목이었다.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다.


[VR보다 더 실제 같은 게임. 캐릭터가 아닌 자기 자신을 키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


문구가 참 단출하면서도 단정적인 게 인상적이었다.

발신자는 또 처음 보는 사람이다.

시큰둥한 선우는 화면을 바꿔 뉴스기사를 훑었다.

그러나 이내 하품을 쩍 하며 스마트 폰 화면을 껐다.

기지개를 켜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다.

쥐죽은 듯 조용한 승객들은 스마트 폰을 보거나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제복을 입은 거구의 남자가 눈에 띄었다.

좌석 두 개를 거뜬히 차지하고 있는 그도 핸드폰에 빠져있다.


‘가톨릭 방송이라도 보나?’


하도 손이 큰 탓에 스마트 폰이 비스킷처럼 보였다.


띠링-


선우의 핸드폰에 다시 알림음이 울렸다.

내용을 보니, 또 아까 그 게임초대였다.

그런데 뭔가가 달랐다.

마지막에 문구 하나가 추가돼있다.


[설치 안하시면 열차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겁니다.]


‘......뭐?!’


선우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눈을 마주치는 이도 없다.

민호는 옆에서 침을 흘리며 졸고 있다.

그는 조금 소란해진 심장의 박동감을 느끼며 다시 화면을 봤다.

역시나 열차라고 쓰여 있다.

열차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GPS로 알아낸 걸까.

아니면 어쩌다 보니 게임이 열차에서 진행되는 것일 뿐인,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일까.

선우의 머릿속에 온갖 추리가 오갔다.


어찌됐든 개발자의 유혹은 먹혀들었다.

마지막 문구에 선우는 호기심이 일었다.

혹시 영화에나 나오는 기막힌 모험이 펼쳐지는 건 아닐까하는 망상마저 들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설치가 끝나고, 게임화면이 열렸다.

무섭도록 심플하다.

새까만 배경에 하얀 글자로 [서바이벌 프로젝트]라고 적혀있는 게 다였다.

화면을 터치하자, 카메라로 연동됐다.

더불어 한가운데에 문구가 떠졌다.


『<웨이브> 몬스터의 침공에서 살아남으십시오.

시작 시간 - 15분 뒤

성공 조건 - 보스 제거 또는 생존

실패 조건 - 죽음

보상 - 공헌도별 차등지급』


스크롤을 내리자, 새로운 문구가 이어졌다.


[보스 힌트 - 앞으로, 앞으로]


“뭐야...”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불만이 새어나왔다.

그 와중에도 혹시 민호가 깼나 슬쩍 눈치를 봤다.

침이 무릎에 닿을 듯 늘어져있다.


아무튼 갈수록 미심쩍었다.

보통 게임이었으면 원치 않아도 나왔을 게임가이드조차 없다.

이런 엉성함이 더욱 수상했다.

급기야 그냥 지워버릴까 싶은 찰나, 새로운 문구가 나왔다.


[살아남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1. 식이충사(食耳蟲事)

2. 미완의 지배술사

3. 흑금조(黑金鳥)

4. 특등사수

5. 골렘


“하?”


선우의 입에서 작게 헛웃음이 나왔다.

새 모이 주듯 야금야금 진행하는 것이 감질났다.

그래도 그는 무의식적으로 직업을 고르고 있었다.

선택지가 나오면 마음속으로라도 고르고 보게 마련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할 경우엔 더욱 그랬다.

게다가 정보가 이름뿐이라서 그런지, 없던 탐구심마저 솟아났다.

그는 시간도 남겠다, 어떤 능력일지 예상해보기로 했다.


‘오호, 지배술사. 멋있네. 골렘은 거의 영화나 소설의 단골소재고. 식이충사는 뭐지? ‘식충이’랑 비슷한 건가.’


선우는 갈수록 추리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흑금조면 새네. 새면 날아다닐 수도 있나? 가만 있어봐, 흑금이면... 검은 쇠?’


그가 이런저런 추론을 하고 게임계획을 짜던 그때였다.

돌연 선택지 중 하나가 사라졌다.

[골렘]이었다.

선우는 당황했다.

설마 제한시간이 있나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또 사라지기 전에 골라야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5번인 [골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보통은 1번부터 없어지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볏짚에 불붙은 듯 다른 번호들도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 1번이 사라지고, 그 다음 4번, 또 3번.

무작위로 지워져 갔다.

남은 선택지가 하나 남았을 때에야 선우는 버튼을 눌렀다.


[미완의 지배술사]

그가 마지못해 결정한 직업이었다.

‘지배술사’란 직책에 순간 끌렸다가 ‘미완’이라는 수식어에 마음이 짜게 식었었는데...

순간 선우는 게임 회사에 전화를 걸어 따지고픈 충동이 일었다.


‘아냐, 일단 해보자. 의외로 쓸 만할 지도 모르고. 지금도 옆에서 처자고 있는 놈이 항상 말했었지. 말단주제에 속단하지 말라고. 개새끼.’


선우가 지배술사라는 수식어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하던 그때, 상태창이 떴다.


『미완의 지배술사』

<스킬>

1. 정신지배

2.

3.

4.

5.

멘탈 등급 - 8(8/9)

정신력 - 11

설명 - 미완.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본인의 분수에 맞는 지배만 가능하다.


-


‘끝?’


요리보고 조리 봐도 이게 다였다.


‘게임 만들다가 말았나, 왜 이래. 무슨 사용법도 없어.’


그나마 유추할만한 점은 기본 스킬 외에도 4개의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정도다. 빈 슬롯을 그냥 만들어 놓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투덜대던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1차 웨이브가 다가왔다. 우측 상단에 떠있던 시간 아이콘이 10초 남았음을 알렸다.

선우는 전투가 시작되면 뭔가 더 나오겠지, 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드디어 숫자가 0이 되며 사라졌다.

그러나 화면은 여전히 카메라 화면 그대로였다.

특이점이랄 것은, 천장에 불 꺼진 형광등과 앞 사람의 뒤통수가 다였다. 그녀는 정수리가 앞뒤좌우로 정처 없이 움직였다.

더불어 점차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이윽고 앞사람이 완전히 일어서고 나서야 심상치 않다는 것을, 선우는 깨달았다.


홀연히 일어난 여성은 삐걱대며 온몸을 꺾어댔다.

관절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방향으로 꺾였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점점 세고 있다.

세다 못해 후두둑 떨어졌다.

결국 여성의 두피에 붙은 머리는 몇 가닥 안 남았다.

선우는 경악했다. 동시에 감탄했다.

정말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싶었다.

IT강국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국뽕이 차올랐다.


그가 탄복하는 동안 여성의 경련에 가까운 움직임이 멎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얼굴의 옆모습과 핏빛으로 물든 눈에 소름이 끼쳤다.

실제로 봤다면 오금이 저릴 비주얼의 그녀는, 잠시 몸을 흔들거리더니 오른쪽으로 튀어나갔다.

순식간이었다.

깜짝 놀란 선우는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다행히 허벅지에 떨어져 액정이 깨지진 않았다.


‘지, 지릴 뻔 했네.’


그가 놀랜 심장을 달래며 폰을 줍던 그 순간.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측에서 묵직한 타격음과 비명소리가 들렸다.


퍽, 퍽, 퍽


“윽, 뭐, 컥!”


고개를 돌리자 여성이 오른편 라인의 대각선 앞쪽 좌석 위에 올라타 있다.

등받이에 가려, 머리카락이 몇 가닥 안 남은 뒤통수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 양옆으로 팔꿈치가 올라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뼈와 살이 부딪치며 나는 둔탁한 소리와 남성의 신음이 말해주고 있었다.

선우는 눈앞의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조금씩 다가갔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이 상황이 믿겨질 것 같았다.

선우가 가늘게 떨리는 다리로 몇 발짝 다가갈 때쯤엔 여성의 뒤통수마저 아래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있는 좌석 옆에 다다르자, 실체가 제대로 보였다.

여성의 얼굴이 남자의 목 부근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살을 뜯고, 뼈를 으득 씹는 그 끔찍한 소음이 선우가 현실을 직시하게끔 만들었다.

선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신나게 물어뜯던 그녀가 갑자기 멈칫했다.

돌연 상체만 뒤로 홱 돌렸다.

그녀의 눈 밑으로 와인 빛 피와 희끄무레한 건더기들이 찐득하게 묻어있었다.

선우는 어젯밤에 본 공포영화가 떠올라, 다시 한 번 바지를 적실 뻔 했다.

이윽고 그녀의 새빨간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분명히 몬스터화가 된, 게임 속에 있어야할 여자였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재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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