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을 씹어먹는 지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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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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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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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뚜벅- 뚜벅-


천막을 걷어내며 걸어오는 선우.

이내 그가 앞까지 당도하자, 수지와 브라운이 자동문처럼 길을 비켜섰다. 선우는 당연한 듯이 그들을 지나쳐 데메우드의 앞에 섰다.


“미완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군. 저들은 12인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고.”


데메우드가 탄식했다. 한심한 눈으로 수지와 브라운을 쳐다봤다.


“대화를 하려면 서로 얼굴이 보여야겠지?”


선우가 뒤를 흘낏 바라봤다. 수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창을 꺼내들었다. 창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빛이 데메우드의 얼굴까지 닿았다.


“그런... 얼굴이었군.”


선우의 눈썹이 씰룩였다.

데메우드는 그의 상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훗, 실망스럽나. 미완의 지배술사여.”


데메우드가 말라비틀어진 입술의 끄트머리를 삐쭉 올렸다. 피골이 상접한 볼엔 팔자주름이 세 갈래가 그려졌다. 얼굴과 목에 자글자글한 주름들은 제각기 춤을 췄다. 선우가 그의 모습에서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푸른 안광밖엔 없었다.


“실망보단 놀랍군. 노쇠한 건가. 그럼 일전에 느껴졌던 강대한 기운은 뭐지?”


회부됐을 때 선우는 그의 앞에서 무릎이 달달 떨렸고, 오금이 저렸었다.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지금도 살갗이 아려왔다. 죽기 직전의 노인이 풍길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다.


“글쎄.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무언가를 지녀서일까?”

“...그 구슬.”


선우는 데메우드가 양발 사이에 껴놓은 구슬에 주목했다. 겉보기엔 탁한 빛깔의 쇠구슬에 불과했다. 그래서 선우도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다. 저 구슬이 현재 데메우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의 원천이라는 것을.


쇠구슬을 일별한 선우가 입을 열었다.


“과욕을 부리다가 역으로 당한 기분이 어때? 그것도 실험용으로 쓰던 일개 플레이어들에게 당했는데.”

“썩 좋진 않군.”

“내게 왜 관심을 보였지? 첫 웨이브 때부터 날 1위로 추천했잖아.”

“궁금증이 많군.”


선우도 자신의 질문들이 두서가 없는 것을 안다.

지금 그는 뇌에 피 대신 글자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궁금증들이 마구 샘솟았다. 그는 그저 뇌가 시키는 대로 입 밖에 낼 뿐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얻은 능력들 모두, 그 밑바탕엔 이 구슬이 있다. 정확히는 이 안에 있지. 내가 손수 구슬에 넣어놨던 능력들이거든.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처음 얻은 능력이 너에게 돌아갔고.”


데메우드가 오묘한 눈빛으로 말했다.


“뭐?”

“훗.”


데메우드는 어리둥절해 하는 선우를 보며 중지와 엄지를 맞닿았다.


“뭐, 잠깐-”


불길한 선우가 손을 뻗자마자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우는 뻘쭘해진 팔을 다시 내렸다.


“늙으니 정신지배마저 마음대로 안 되는군.”

“나와 같은 능력이라고?”

“너보다 높았지. 수많은 놈들을 지배하고, 그 많은 능력들을 얻었으니까. ...지금은 힘을 잃고 조급하게 굴다가 모든 걸 망친, 회한에 잠긴 노인네가 됐지만.”


데메우드의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았다.

마치 과거가 기록된 책장들을 훑는 것처럼.


“스킬전수.”


선우는 정신지배의 특혜 중 하나인 ‘스킬전수’를 떠올렸다. 그는 지배를 한 자 중 골라서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필시 데메우드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능력들을 얻었으리라.

순간, 그는 데메우드에게 능력을 몇 가지나 갖고 있는지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오순도순 질의응답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었으므로.


“내 뒤를 이어라. 능력을 넘어, 칼리토를 지배하고 모든 세계를 지배할 총체의 군주인 내 뒤를 이어라.”


데메우드가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역설했다. 그는 태엽이 감긴 인형처럼 갑자기 활력이 감돌았다.


“터무니없는 소리. 나는 당신을 죽이러 왔어. 당신은 없어져야할 사람이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서바이벌프로젝트를 끝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어.”


필요한 살인은 한다.

선우 나름의 플레이어로서 지침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의 지침은 칼끝이 되어, 데메우드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동시에 데메우드는 태엽이 모두 풀려버렸다.

그는 다시 무기력하게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나를 죽인다고 과연 서바이벌프로젝트가 끝날까?”

“끝...”


데메우드의 한 마디에 선우의 동공이 탁해졌다.

찰나였지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서바이벌프로젝트의 종말이 맞는 건가?

서바이벌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야겠지?

서바이벌프로젝트가 끝나면 나는 어떻게 되지?


선우의 동공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이를 캐치한 데메우드가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너는 서바이벌프로젝트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 평범하던 너에겐 아주 큰일이었을 거야.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많은 관심과 부러움의 눈길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거기에다 네 평생 본 적도 없을 돈까지 수중에 얻었고.”

“...”


선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한때 그는 서바이벌프로젝트에 만족했었고.


데메우드는 마치 준비해놓은 연설문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줄줄이 읊었다.


“너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다. 모든 이들의 지배자가 되느냐, 아니면 예전의 그 초라하고 지루한 생활로 돌아가느냐. 생각해봐. 지배자가 된 너의 삶을. 상상해. 머릿속으로 떠올려.”


데메우드가 주문을 외듯 말했다.

나름의 함정을 넣어두기까지 했다.

그는 선우의 선택지를 두 가지로 제한했다.

인간은 눈앞에 선택지가 있으면 그 안에서 고심하는 경향이 있다. 제 3의 선택지를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의 수작은 실제로 먹혀들고 있었다.

선우는 순간 그의 말대로 상상을 해버렸다.


어려운 자를 구하고 영웅으로 추대 받는 자신.

강자인 자신을 향한 경외의 시선.

많은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

자신은 물론이고, 소중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능력.


‘하나하나가 버리기에는 아깝군. 그러나...’


선우가 결심을 굳힌 얼굴로 데메우드를 바라봤다.


“결정을 내린 모양이로군.”


데메우드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듯 헛헛하게 웃었다.


“그래, 당신을 죽이고 모든 걸 끝내겠어. 나는 좀생이라 위험한 도박은 잘 안하거든. 당신 말대로 뒤를 이었다가 탈이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는데? 그리고 어느 세계든 지배자를 원치 않아. 나는 좀생이에다가 눈칫밥이 생활화된 놈이라, 그 많은 사람들에게 싫은 짓은 하기 싫다.”


선우가 [울프베르트]를 소환하며 데메우드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목덜미에 검을 갖다 댔다. 그의 피가 검을 타고 흘러 선우의 손에까지 닿았다.


“아까 당신을 죽여도 서바이벌프로젝트가 안 끝난다고 했지?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인도적으로 대해줄 때 말해. 지배당해서 억지로 뱉어내기 싫으면. 명색이 총체의 군주인데 그럼 체면이 상하지 않겠어?”


현재 선우의 멘탈 등급은 1.

아까의 전투에서 대량의 정신력을 쓰자, 마지막 남은 등급에 다다랐다.

이제 그가 지배를 못할 자는 없었다.

뒤에서 묵묵히 서있는 브라운과 수지도 그래서 지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데메우드 역시 머리 위에 1이라는, 이제는 선우에겐 소박한 숫자가 떠있었다.


“훗, 나에게는 선택지조차 없군.”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데메우드의 눈동자가 아래 쇠구슬로 향했다. 그는 나라라도 잃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명심해. 이 구슬을 부수면 서바이벌프로젝트 플레이어들에게 뿌려진 모든 능력들이 없어진다. 더불어 네가 지금껏 누려온, 앞으로 누릴 영광도 사라진다는 소리다.”


그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데메우드의 목을 겨누던 칼을 옆으로 그었다. 그의 목에서 피가 힘없이 퍼덕거리며 흘렀다.


선우는 이어서 피가 흥건히 묻은 쇠구슬 내려다봤다. 역수로 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


그간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숱한 순간들 속에서도 함께 한 사람들이 가장 진하게 떠올랐다.


대선, 선영, 명재.

아크로, WS 연구소장 등 조력자들.

한걸음에 달려와 준 이세계 지원군들도 빼놓을 수 없다. 제르비아, 지라이야, 일리시아.

그리고 연이 닿았던 수많은 이세계 사람들.


선우는 그들이 다치는 것은 보기 싫었다.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단 하나다.


“그래, 역시 이래야 마음이 편하지.”


선우는 씩 웃으며 검을 내리꽂았다.


콱!


후련한 마음으로 여러 번에 걸쳐 쇠구슬을 찌르고 또 찔렀다.


콱! 콱! 콱!


쉼 없이 쇠구슬을 쪼개던 선우는 일순 동작이 멎었다.

쇠구슬의 적나라한 흠집에서 암흑을 머금은 빛이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이윽고는 불안한 소리를 내며 맹렬히 회전을 시작했다.


콰과과과-


선우의 동공에, 팽창하는 검은 빛이 비췄다.


“이런...”


이내 흑광(黑光)이 선우를 비롯해 수지, 브라운, 그리고 동굴과 인근 숲까지 집어삼켰다.


/


<그로부터 1년 후>


“누나, 기일인데 옷이 그게 뭐예요.”


명재가 자신의 교복차림을 보다가 선영을 힐끗 째려봤다. 그녀의 옷차림은 반팔에 반바지였다.


“난 여기사람 아니라 괜찮아.”


선영은 그의 핀잔을 가볍게 넘겼다.

그녀 나름대로 예의를 차린 옷차림이었다.

상하의부터 신발까지, 모두 검은 색으로 통일했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그럼 원래 살던 칼리토 가서 살지.”

“너도 오늘이 기일되고 싶냐?”

“그게 이 자리에서 할 소리예요?”


그녀의 으름장에, 명재는 맞받아치면서도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그 날’ 이후로 모든 플레이어는 스킬을 잃었다. 그러나 선영은 다르다. 비록 골렘은 잃었지만 태생적으로 강한 힘이 남아있었다. 명재는 그녀에게 이길 방도가 없었다.


“큼, 큼!”


그들의 옆에서 기도하던 대선이 헛기침을 했다. 둘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정숙.’


그의 눈짓에, 선영과 명재는 합죽이가 됐다.

그들은 눈길을 돌려, 수많은 묘비들을 응시했다.


오늘은 1년 전, 서바이벌프로젝트 마지막 전투 때 전사한 자들의 기일이었다. WS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전사자 모두 터가 훌륭한 이 곳에 묻힐 수 있었다.


선영은 그 중 맨 앞 열에 있는 한 묘비를 응시했다.


[김 선 우]


그녀는 묘비석에 적힌 이름을 보자, 예전 생각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졌다. 더불어 고향인 칼리토 생각까지 났다. 그녀는 아직도 믿겨지지 않았다. 서바이벌프로젝트가 끝났고, 데메우드가 죽었으며, 칼리토가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이.


‘쓸데없는 생각.’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괜히 만만한 명재의 뒤통수를 갈겼다.


“왜 때려요!”

“가자. 오늘은 내가 고기 쏜다.”


호기롭게 말하던 그녀는 아차 싶었다. 또 눈치를 받지 않을까 슬며시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대선과 눈이 딱 마주쳤다.


“저도 사주는 겁니까?”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니, 기일행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호탕하게 외쳤다.


“당연하지! 오늘 ‘개발자 개새끼’끼리 모이자고.”

“아, 선우 형님도 같이 가시면 좋았을 텐데...”


명재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야, 새꺄. 넌 어떻게 된 게 서바이벌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선우 아저씨를 더 아끼는 것 같다?”

“저기, 선우 형님이랑 같은 이름이 새겨진 묘비명을 보니까 생각나서요.”

“그럼 전화해서 불러. 그럼 되잖아.”

“선우 형님, 오늘 일 있어서 지방 간다고 했잖아요. 벌써 까먹었어요?”


선영과 명재가 투닥거리는 사이, 사람들과 인사를 끝낸 대선이 다가왔다.


“또 싸워요?”

“얘가 아직도 애새끼마냥 선우 형니임~ 선우 형니임~ 하면서 징징거리잖아.”


선영이 입술을 내리까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하 웃던 대선은, 일순 눈길이 그들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반가운 얼굴로 그곳을 향해 가리켰다.


“저기, 오네요. 선우 씨.”


멀끔한 정장차림의 선우가 빙긋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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