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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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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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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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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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DUMMY

“그럼 다녀올게.”


엔테는 그렇게 말한 후 영주의 방을 나섰다. 호위병들이 그녀를 집무실까지 안전히 데리고 갈 것이다.


달칵.


닫히는 방문을 보면서 루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드는 그녀가 앞으로 있을 회의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많은 조언을 알려준 직후다.


‘인간치고는 똑똑한 편이군.’


특히 착실한 건 큰 장점이었다. 물론 그녀가 지금 절실한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루드는 일단은 그녀를 계속해서 도울 생각이었다. 조언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여러 가지 모략도 짤 예정이었다.


‘우선은 엔테가 공국 권력의 정점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자신이 뒤편의 흑막으로 자리 매김하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물론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성급할수록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생긴다.

회의에 나서는 엔테에게 조언 정도만 해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거기에 더해 조금 용기가 생기는 마법을 걸어두긴 했지만.’


공포 계열의 마법을 방비하거나, 혹은 전사들이 강대한 적을 만나고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보조적인 역할로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가장 고생한 것은 얼마나 약한 마법을 거느냐의 문제였지만.

하루아침에 갑자기 정복자의 위엄을 뿜어대기라도 하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해지니까.


‘녀석이 돌아오기까진 조금 걸리겠군.’


루드는 옆에 쌓여있던 책들 중 하나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플리온 공국의 역사를 기록해둔 책이었다.

영주의 방 안에 놓인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로, 그가 굳이 영주의 방까지 와서 엔테를 기다리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영주의 방에는 서고 다음으로 많은 책들이 준비되어있는 탓이다.

지금 그가 펼친 것 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전부 어딘가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둔 것들이었다.

대륙 전체, 대륙의 특정 지역, 플리온 공국은 물론 이곳 린드버클 영지에 관한 책도 있었다.

루드가 의도적으로 그런 내용들만 고른 것이다.

하지만 플리온이 건국된 지 약 300년 정도이기 때문일까. 다른 책들도 거의 그 정도 기간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고, 그보다 훨씬 전의 과거는 척 보기에도 확인되지 않은 전설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건 그 3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마왕 루드벨로트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비슷해 보이는 것조차 말이다.

마치 그 긴 시간동안 밤과 어둠의 종족들과는 전혀 분쟁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혹시 기록자들이 빠뜨린 건 아닐까.

인간들은 대단히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종족이지만, 그에 비해 내용이 과장되거나 축소되는 등 왜곡이 일어나는 건 매우 흔한 일이었다.

인간들이 낮과 빛의 종족이라고 분류되는 종족들 중 유난히 정치적이라는 게 우선적인 문제였다. 그들은 타 종족들에 비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거짓을 고한다. 때로는 누가 악마인지 모를 만큼 말이다.

게다가 그들의 수명이 상당히 짧은 것 또한 문제였다. 과거의 일을 실제로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적어서 잘못된 기록이 남아도 고치지 못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


마왕 루드벨로트의 이야기는 도저히 빼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실제로 점령했던 땅은 단순히 영역으로만 놓고 봐도 대륙의 절반에 달했고, 영향력으로 보자면 거의 대부분이라고 봐도 좋았다.

연합의 마지막 보루였던 세피로트의 탑만 무너졌다면 대륙은 분명히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정도였으니까.

그의 이름은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존재에게 알려져 있었다.

다시 말해, 결국 그들이 승리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조금 유리하도록 미화는 할 수 있을지언정, 루드벨로트를 아예 빼놓고서는 이야기 자체가 결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내가 봉인된 지 적어도 300년은 흘렀을지도 모른다는 거겠군.’


그가 봉인된 이후로 단 한 번의 충돌도 없었다면 기록에 아예 남지 않은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너무 오래되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들의 언어와 문자가 그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수명이 짧고 역사가 수시로 바뀌는 탓에 언어와 문자도 타 종족에 비하면 변화를 쉽게 겪는 편인데, 아직 유지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천 년 단위의 시대가 흐르진 않았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많은 확실한 자료가 필요하겠지.

아마도 다음은 린드버클의 서고. 그 다음에는 세토라의 서고. 다른 지역의 서적들. 그런 식으로 차츰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다.

루드는 책을 덮었다.

책을 원래 있던 곳에 가져다 놓기 위해 책장으로 향하려는데 문득 크리스가 소리를 냈다.


“으응······.”


더웠던 모양인지 덮어놨던 이불을 밀어낸 채다. 루드의 마력이 몸에 퍼진 탓에 열이 좀 오른 모양이었다. 물론 문제는 없으리라.

루드는 이불을 다시 덮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확실하게 욕망을 담은 손길로.

손바닥 가득 전달되는 부드러움을 느끼며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아아, 흣! 하아······.”


그의 손 움직임에 따라 크리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루드의 손을 밀어내려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그 작은 저항으로는 이 강대한 침입자를 막아낼 수 없었다.

단지 그가 스스로 그만뒀을 뿐이다.


“시시하군.”


욕망의 존재답게 루드에게도 성욕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아니, 그 강함을 따지자면 용광로에 비견될 뜨거운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다.

다만 그에겐 그 못지않은 인내심이 있었고, 또한 성욕보다도 훨씬 강한 욕망이 있었다.

정복자의 지배욕 때문에 무저항의 크리스를 건드리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녀가 저항한다고 했어도 이런 방식으로는 욕망을 제대로 채울 수 없다.

정신적으로 굴복시켜 자신을 경배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바치게끔 해야만 진짜 지배인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 또한 그가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였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마왕으로서 다시 이 세상에 정복을 선포한 후, 내 여자로 만들어 줄 테니.

루드는 다시 책장으로 다가가 책을 꽂았다. 그러다 문득 그는 엔테를 떠올렸다.


‘그 녀석은 역시 아직 너무 어리지.’


하지만 몇 년 만 지나면 훌륭하게 자랄 것이다.

그녀의 외모는 실로 특별하다. 아직 다 피지 않은 꽃일 뿐, 만개하면 지금 누워있는 크리스조차 수수하게 느껴질 것이다.

짧으면 2~3년, 길어야 4~5년.

고작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것만 기다리면 엔테는 충분히 그의 눈에 들어올 만큼 성장할 것이다.

잠시 인간의 성장속도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시간은 찰나의 시간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그리고 그때의 엔테는 진정 훌륭한 여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늙은 인간놈에게 보내지 않길 잘했군.’


겨우 그런 녀석에게 주기엔 아깝지.

몇 년 후면 그녀의 이름이 전 대륙에 퍼질 것이다.

그녀를 찬양하는 노래가 수백, 수천 곡씩 만들어질 것이고, 각 나라의 왕자들은 앞 다퉈 청혼하겠지.


‘하지만 내 차지다.’


대륙이 칭송하는 미녀만큼이나 마왕에게 어울리는 게 또 뭐가 있을까.

그렇다면 더욱 이 세상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야했다.


‘그럼 잠시 둘러보고 올까.’


공국의 여러 세력이 모여 있는 지금은 정보를 모아둘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여기저기 감시하는 자들이 퍼져있을 텐데, 모습이 완전히 띄지 않는 것은 괜한 의심을 살 우려도 있었으니까.

그럼 어디로 가볼까.

루드는 미리 풀어둔 하수인들의 감각을 빌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을 찾았다.

적당한 곳이 발견되자 루드는 손을 움직여 마력을 방출했다.

곧 허공에 칠흑의 물체가 등장했다.

공간의 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였다.

그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손쉽게 영주의 방을 드나들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태생적으로 공간의 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악마들이 즐겨 쓰는 방식으로, 마법사들이 흔히 쓰는 순간이동과는 구조가 조금 달랐다.

루드가 도착한 곳은 성 내부에 꾸며진 작은 화원이었다.

공간의 틈을 닫는 순간, 누군가가 그에게 접근했다.


작가의말

음... 조금 전개가 둔해진 걸 스스로도 느끼긴 하네요.

요즘 트렌드는 빠르고 밀도 있는 진행일텐데, 머리로는 알지만 쉽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건지.


사실 반쯤은 취미처럼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는 글이었는데 반대로 쓰다보니 조금 눈치(?)를 보게 되는 군요. 24화도 결국 조금 수정했고 말이죠.

그래도 이런 글과 잘 맞는 독자님들이 두루두루 보실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전개가 빠른 글도 휙휙 써보고 싶긴 하네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한 편 더 올릴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흑흑...

혹시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과 덧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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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99 2 10쪽
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7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6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5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0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2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1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89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69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69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7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8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1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7 3 10쪽
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4 2 10쪽
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4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2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0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6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0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2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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