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캐, 만능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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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키
작품등록일 :
2019.04.1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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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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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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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운도 실력이다(2)

DUMMY

3.

쪼르륵.


찻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따라 은은한 꽃향기가 퍼져나갔다.

전설 퀘스트를 받은 직후, 선비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대청마루를 찾았다.

집 밖을 잘 나서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마시는 시간.

따뜻한 햇볕과 흘러가는 구름을 간식 삼아 차를 음미하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차분해지곤 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땐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시작하렴, 선비야. 건강한 몸에 맑은 정신이 깃들 듯, 마음이 먼저 앞서가면 일을 그르칠 수 있거든.’


오래된 집에는 사람의 향기가 묻어있다.

이곳에 앉아 차를 마실 때면 언제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국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기뻐하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 아들이 대학도 자퇴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걸 아시면 어지간히 속상해하시겠지.

두 분 다 워낙 검소하셨던 탓에 선비가 물려받은 유산은 떵떵거리고 살진 못해도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사망 보험금도 받았고, 나눠 가질 형제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계속 이대로는 안 돼.’

적어도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지 못해 살기를 바라시지는 않았으리라.

좋아하는 일을 하되, 사람답게 살아라.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과연 자신이 그 가르침 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돈을 벌어야겠지.’

부모님의 목숨값으로 삶을 연명하는 불효자가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문득 선비의 머릿속에 아침에 읽었던 인터넷 기사가 떠올랐다.

‘유명 길드가 레이드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한 달에 몇십억이라고 했었지.’

그뿐 아니라 전설 직업을 얻은 플레이어가 개인 방송으로 버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내가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선비가 피식, 하고 실소를 뱉어냈다.


“고작 늑대 열 마리에 쩔쩔매는 주제에 전설 특성 하나 얻었다고 기고만장해진 꼴이라니.”


그가 다 비워버린 찻주전자 뚜껑을 들어 올렸다.

백련.

주전자 바닥에 물기를 머금은 하얀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아무리 예쁜 꽃도 양분이 있어야 살아가는 법.

재능이라는 양분 없이는 전설 특성도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일 뿐이다.

가만히 찻주전자를 바라보던 선비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일단 전설 퀘스트부터 깨고 생각하자.’

지금은 우선 의뢰인의 부탁을 들어줄 때.

또 다른 목걸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4.

-후, 죽겠네. 사냥은 잘 돼가나, 친구?


다시 게임에 접속한 선비를 반긴 건 준원의 메시지였다.


“지금 하는 퀘스트만 끝내고 바로 전직하러 가려고.”

-퀘스트? 그냥 전직부터 하지? 거기 나와서 내가 버스 태워주는 게 더 빠를 텐데.

“그러려고 했는데, 이게 연계 퀘스트라서. 조금 전에 받은 게 마지막인 것 같아.”

-연계 퀘스트라고? 그거 혹시 히든 직업 퀘스트 아니야?


준원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연 왕국에 그런 퀘스트가 있었나? 진짜면 대박인데. 보상은? 뭐라고 적혀 있어?

“그냥 알 수 없음이라고만 쓰여 있는데?”

-음. 그럼 직업은 아니네. 그건 보상에 다 나오거든. 근데 시작 마을에 있을 만한 퀘스트라고 해봤자 직업 말곤 없는데······. 아, 혹시 던전일 수도 있겠다.

“던전?”

-어. 너 이번에 솔루션 길드 레이드 영상 못 봤지? 가끔 그렇게 퀘스트로만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 있어. 뭐, 그래 봤자 시작 마을이니까 그렇게 세진 않겠지만. 그래도 파티 정도는 구해서 가는 게 좋을 거야. 혹시 모르니까 템 좀 보내주랴?


‘준원이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

의뢰 내용에는 단순히 소식을 전해달라는 글귀만 적혀 있었지만, 설명을 들으니 던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 저번처럼 민첩 템으로 부탁 좀 할게.”

-에효. 도대체 뭔 캐릭터를 키우고 있는 건지······. 다음 주에 너 만나면 캡슐방 데려가서 확인 좀 해야겠다. 경매장 확인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준원이 경매장을 뒤지는 동안 선비는 섬의 끝자락을 향해 걸어갔다.

늑대가 있는 숲을 벗어나자 갑자기 나타난 안개 탓에 한 치 앞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간혹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올 뿐.

돌아다니는 몬스터 한 마리 없었다.

‘아직 구현이 덜 된 건가?’

선비는 음산한 안개 속에서 목걸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출발할 때는 희미했던 빛이 안개가 짙어질수록 점점 강해졌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고, 동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걸이의 빛은 거기서 끊겼다.


“여긴가?”


마침 타이밍 좋게 준원이 보낸 장비가 도착했다.


-하다가 못 깨겠으면 그냥 버려. 지금은 죽어도 패널티 거의 없으니까.

“고맙다. 아이템 잘 쓸게.”

-고맙긴. 다음 주에 네 지갑 아주 탈탈 털어먹을 테니까 기대해라.

“그래. 다 털어먹어라.”


말은 저렇게 해도 막상 만나면 김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할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선비가 우편함을 열었다.


[‘리자드맨 전사의 투구’를 획득했습니다.]

[‘가벼운 가죽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노련한 사냥꾼의 허리띠’를 획득했습니다.]


<리자드맨 전사의 투구>

늪지에 서식하는 리자드맨의 가죽으로 만든 투구. 바람의 정령의 가호가 깃들어 있다.

-등급: 영웅

-착용 효과: 민첩 +50, 힘 +3, 물리 방어력 +7

-착용 제한: 10레벨 이상 모든 직업

-스킬 ‘헤이스트’ 사용 가능


<가벼운 가죽 장갑>

평범한 가죽 세공사가 만든 장갑이다. 솜씨는 평범하지만 질 좋은 가죽을 사용했다.

-등급: 희귀

-착용 효과: 민첩 +20


<노련한 사냥꾼의 허리띠>

사냥꾼이 직접 잡은 곰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 마감이 매우 거칠지만, 아직 상태는 쓸만하다.

-등급: 희귀

-착용 효과: 민첩 +18, 체력 +1


준원이 보낸 장비를 확인한 선비가 놀란 눈으로 투구를 꺼내 들었다.

‘이래서 등급이 중요하구나.’

희귀 등급과는 차원이 다른 착용 효과.

하나같이 좋은 아이템을 얻으려고 용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건 잘 쓰고 준원이한테 돌려줘야겠다.’

하지만 선비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더세이비어’에서 장비에 붙은 수치는 랜덤으로 정해졌다.

물론 등급과 레벨 제한이 올라갈수록 스탯의 최저치나 그 개수가 달라지지만, 사실상 준원이 보낸 ‘리자드맨 전사의 투구’는 망템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장비를 2개 이상 착용했을 때 나타나는 세트 효과는 전사용인데, 힘 스탯이 너무 낮았던 것.

오히려 반대로 민첩 스탯이 최저치고 힘 스탯이 최대치로 붙었다면 모르겠으나, 스킬을 빼면 영웅 등급 장비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했다.

웬만한 사람은 습득하자마자 게임사에 욕을 하며 던져버렸을지도 모를 물건.

추가 캐릭터 생성이 불가한 ‘더세이비어’인지라 부캐에게 입힐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선비는 황홀한 얼굴로 투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민첩밖에 없었으니까.


“상태창.”


<선비 Lv.2>

특성: 균형의 수호자(전설)

직업: 없음

힘: 208

민첩: 208(0)

지혜: 208

체력: 208

마력: 208

남은 스탯: 0


“이 정도면 던전이 나와도 깰 수 있겠지?”


같은 시각. 미라클게임즈 운영팀 사무실에 정체 모를 남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선비는 알지 못했다.


***

마침내 들어선 동굴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던전이라 부르기엔 너무 조용했고, 무엇보다 시스템 메시지가 달랐다.


[숨겨진 장소에 입장했습니다.]

[게임 종료 시 재입장이 불가합니다.]


“큰일 났네.”


남은 플레이 시간은 30분.

던전이든 아니든, 퀘스트 하나를 끝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선비는 낡은 장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이제 못 쓰겠다.’

힘이 200을 넘어가니 코딱지만큼 붙어있는 공격력은 의미가 없어졌다.

차라리 맨주먹이 더 편할 지경.

‘혹시 함정이 있으면 체력으로 커버하고 일단 뛰자.’


“헤이스트!”


선비는 아예 작정하고 투구에 붙은 스킬까지 사용했다.

200을 넘긴 마력 덕분에 MP는 차고 넘쳤다.

그렇게 10분 정도 뛰었을까.

선비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야, 이 동굴은······.”


함정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통로가 계속될 뿐.

혹시 퀘스트가 ‘노인의 마지막 부탁’이 아니라 ‘노인의 마지막 장난’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저 멀리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을 발견한 선비가 반색하며 멈춰 있던 다리에 박차를 가했다.


“헉.”


통로를 빠져나온 선비가 마주친 건 거대한 공동이었다.

높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히 올라간 천장.

그리고, 그 공동 중앙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가 선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


찬란한 금빛을 뿜어내는 존재는 분명 용이었다.

그것도 수천 년은 묵은 듯한, 거대한 골드 드래곤.

대륙 동쪽의 외딴 섬 한구석에 용이 잠들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도 플레이 시간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가 동굴의 주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퀘스트의 내용은 ‘친우인 로시우스에게 현자의 소식을 전할 것’.

지금 보고 있는 이름표가 사실이라면, 그 대상은 눈앞에 있는 용이 확실했다.


<고룡 로시우스>


‘물론 사람이라고 쓰여 있진 않았지만······. 갑자기 용이라니.’

이게 전부 다 가상현실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막상 전설 속에나 나올법한 존재를 마주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던 그때.

돌연 목걸이가 저 스스로 벗겨지더니, 로시우스를 향해 날아가 버렸다.


파앗!


세로로 찢어진 금안(金眼)이 번뜩였고, 거대한 용은 한 명의 미남자로 변해 그의 앞에 내려섰다.


“오랜만에 손님이 왔군.”


걸어가던 모습 그대로 멈춰선 선비를 남자가 매서운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겁먹을 것 없네, 내 친우가 보낸 이여. 내 몸은 이미 영면에 든 지 오래이니. 이리 가까이 오게.”

“······.”


선비가 주저하며 앞으로 나서자 다시금 그가 말했다.


“설마 그의 시험을 통과하는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어. 알다시피 조금 괴짜여야 말이지. 하하하.”

“그······ 현자님께서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죽기 전에 친구분을 만나고 싶다고요.”

“그래. 목걸이를 보고 짐작했네. 인간의 수명은 참으로 짧지. 한데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겠어.”


조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장소를 돌아본 로시우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건 내가 영면에 들기 전 남긴 의식이야. 쉽게 말하면 허상이라 할 수 있지. 이제 곧 그 의식마저 신의 품으로 돌아갈 테니, 친우라면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걸세.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퀘스트 ‘현자 마원의 마지막 부탁’이 완료되었습니다.]


‘아······.’

노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말에 선비의 얼굴에 아쉬움이 번졌다.

‘어쩔 수 없지. 퀘스트는 완료됐으니까.’

이미 죽은 용을 살려낼 수도 없고, 아마 원래부터 이렇게 되도록 의도한 퀘스트인 것 같았다.


[플레이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려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네?”

“아직 보상을 안 받았지 않나. 설마 이대로 그냥 가려는 건 아니겠지? 목걸이를 가져왔을 때부터 예상이야 했지만, 참 보기 드물게 욕심 없는 인간이군. 좋아. 자네라면 받을 자격이 있겠어.”

“뭐를······.”

선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퀘스트 ‘현자 마원의 마지막 부탁’의 보상으로 전직 가능한 직업이 추가되었습니다.]

[‘용언술사(신화)’로 전직하시겠습니까?]


‘······신화 등급?’

출시 1년을 지나 고일 대로 고여버린 ‘더세이비어’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한 재능 없는 플레이어에게서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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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첫 파티 사냥(2) 19.04.21 155 8 13쪽
8 7화. 첫 파티 사냥(1) 19.04.21 208 7 12쪽
7 6화. 운도 실력이다(3) -수정 19.04.18 260 7 12쪽
» 5화. 운도 실력이다(2) 19.04.16 256 10 13쪽
5 4화. 운도 실력이다(1) +2 19.04.16 315 9 12쪽
4 3화. 하나를 버리고 넷을 얻다(2) 19.04.14 328 10 12쪽
3 2화. 하나를 버리고 넷을 얻다(1) 19.04.13 362 12 12쪽
2 1화. 무재능 플레이어 19.04.12 367 9 12쪽
1 0화. prologue. 19.04.12 421 12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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