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잡는 검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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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
작품등록일 :
2019.04.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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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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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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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삼보 정도는

DUMMY

쿵쿵쿵쿵쿵쿵!


뭔지 모를 밖의 것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소음.

그것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모두가 아연실색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죽여.”


신검이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안돼요.”


영희가 아기를 품에 안고 벽에 붙어 신검을 노려봤다.


“형님.... 왜 그래.”


재구가 소총을 장전하며 신검을 설득했다.


“죽이자고.”


신검이 낮은 목소리로 비장하게 말했다.


응애- 응애-

쿵쿵쿵쿵쿵쿵쿵.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린다.

저것이 베란다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뜻.

우리의 집으로 들어오겠다는 거냐.


“하지마요.... 아저씨.”


민지가 울면서 다가왔다. 신검이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죽인다고. 저거.”


3층 베란다에 나타난 그림자.

뱀 대가리 같은 그림자가 베란다 커튼에 투영됐다.

저 씹것.

목이 긴 거야, 다리가 긴 거야, 허리가 긴 거야.


“햐아아악.”


그림자가 방울뱀의 꼬리마냥 떨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민지랑 영희는 아기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재구는 저 새끼 대가리 들어오면 갈겨버리고.”


신검이 뽑아든 검을 거꾸로 잡았다.

끼기기기긱.

뱀 대가리 같은 것이 베란다 유리창에 붙어 비벼대자 조금씩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커텐이 벌어졌다.


“시발....”


드디어 그것이 들어왔다.

커텐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 팔척좀비.

긴 목에 머리가 덩그라니 달려 있고 백지장 같은 얼굴에 노란 눈.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

씩 웃으니 피에 물든 뾰족한 이빨이 드러났다.

방금 누군가를 뜯어 먹은 것 같다.


“햐하하학.”


팔척좀비가 먹잇감을 보고 웃어댔다.

신검이 지지 않고 따라 웃었다.


“....으하하하!”


그 순간,

슈욱- 하고 모가지가 거실로 들어왔다.

너무도 빨랐다.

재구가 연신 소총을 갈겼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피가 솟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목이었다.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신검에게 돌진했다.

간발의 차이로 피한 신검. 검을 찔러넣어 양손으로 무자비하게 눌러댔다.


“으아아아 뒤져!”


“키학! 캬하학!”


턱 밑에 검이 꼽힌 팔척좀비가 목을 흔들며 위협한다.

타다다닷.

빠른 걸음으로 뒤로 빠진 신검이 씩 웃었다.


“재구야. 저 새끼 저거 더 못 들어오지 않냐?”

“응?”

“저 새끼 길이면 딱 여기까진 거 같은데.”


예상대로 꼼장어 같은 놈이 제자리에서 목만 흔들어댄다.

재구가 다가가 개머리판으로 놈의 대가리를 후드려 팼다.


“면상에 방구나 한방 먹여줘라.”

“오케이.”


재구가 엉덩이를 까고 놈의 면상으로 다가가는데.


“야 시발 도망쳐!”

“으아아아아아아악!”


재구가 놀래서 내달렸다. 놈의 대가리가 거실 안으로 더 들어와 허공을 물어댔다.

신검과 재구는 계속해서 뒷걸음질 쳤다.


“아래층 베란다 밟고 올라오는 모양인데?”

“형. 이번엔 진짜 맞출게!”

“총알 아껴봐.”


이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화장실 문까지 내몰린 두 남자.

저것을 피한다고 방으로 들어가면 여자들과 아기가 위험하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후우.... 사부님.”


허리춤에 찬 진검 손잡이를 잡은 채 그날 밤 꿈을 떠올렸다.


‘십보필살검법 따윈 없다고.’

철부지 시절을 자책했다.


‘하지만 삼보 정도는....’

이를 악 물고 좀비 머리를 향해 걸어갔다.


“형! 어디가!”


팔척좀비 대가리와 신검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열 보.’

검을 잡은 팔의 이두박근이 팽팽해졌다.

‘다섯 보.’

검날이 검집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넷.’

타다다다 타닷!

뛰고 있는 신검. 발의 박자가 갑자기 빨라졌다.

‘삼 보!’

스르르릉-

좀비 대가리와 세 걸음 정도.

그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며 검날이 자기 집에서 맹렬한 속도로 빠져나왔다.

서걱.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스쳐갔다.


신검이 내달리는 것을 멈추고 검을 뽑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신검을 지나쳐 재구의 코앞에서 멈춘 좀비의 머리.

이마에 빨간 선이 그어진 팔척좀비가 눈을 까뒤집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악! 시발! 시발 피!”


피를 뒤집어쓴 재구가 화장실로 도망갔다.

쿵.

팔척좀비의 머리와 목이 힘없이 땅에 내려앉았다.

긴 목이 들어온 베란다.

신검이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



“아직도 냄새 나는 것 같아요.”


팔척좀비의 잘린 대가리를 밖으로 던져버리고 거실을 청소했지만, 그 악취를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형.... 고마워.”

“신검 씨. 아까는 죄송했어요. 죽인다길래 우리 유리를....”


신검이 무표정하게 여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이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있어.”

“네?”

“담배 하나 빨게.”


찰싹!

민지의 등짝 스매싱.

어린 게 손이 맵다.


“아이 씨! 아파!”

“애기 있는데 무슨 담배에요.”


신검이 한숨 쉬며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고마워요. 또 구해줘서.”


뒤에서 신검의 손을 붙잡는 이민지. 그러고는 등에 얼굴을 기댔다.


“내일 아침도 수육이냐?”


등도 돌리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말한 신검이 현관문을 나섰다.

조용히 미소 지은채로.

따라 나온 재구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빌라 입구를 막아놓은 탑차.

신검과 재구가 운전석으로 넘어가 담배 타임을 가졌다.


“형. 근데 저런 좀비는 처음 본다. 그치?”

“그러게.... 문제는 말이야.”

“응?”

“더한 놈들도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더한 놈들?”


남영동에서 탑차를 획득했던 그 날.

코너를 도는데 멀리 있는 무언가의 실루엣이 백미러에 잠시 비쳤었다.

커다란 덩치가 승용차에 붙어 차문을 우악스럽게 뜯어내는 것 같은 모습.


“우리.... 잘 살아남을 수 있겠지....?”


재구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신검이 동생을 토닥이며 무심하게 끄덕였다.


“당연하지 임마.”

“근데 형. 아까 쩔더라. 형 검도관장이라고?”

“그래. 너 임마 오검이라고 들어봤어?”

“뭐야 그게.”


검도 역시 점수제 스포츠다.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먼저 닿는지만 겨룬다.

하지만 어느 날 고등부 검도 판에 바람같이 나타난 다섯 소년.

소년들은 검도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렸다.


사람들은 이들을 오검이라고 불렀다.


“형이 임마, 옛날에 오검 중 하나였어.”

“그게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

“너 강검이라고 알지?”

“강검? 음.... 아! 알지.”


강검.

한국 검도 국가대표 선수.

백구십 센티의 장신. 프로레슬러와 맞먹는 거구.

그가 죽도를 휘두르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막았던 죽도를 손에서 놓치기 일쑤였다.


“그 사람 재작년에 감옥 갔잖아. 폭행죄였나?”

“상해죄.”

“그래. 그때 뉴스 크게 나서 기억나. 클럽에서 사람 패고 경찰 조사 받다가 경찰 패고.”

“건국 이래 최초로 수사 검사도 패고.”

“판사는 안 팼다지.”

“못 팼겠지. 수갑 때문에.”


신은 강검에게 재능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저주까지 함께 내렸다.

분노조절장애.

소시오패스성향.

그는 지금 교도소에 있다.


“그럼 형도 그런 싸이코라는 거야? 그런 싸이코가 다섯 명이어서 오검?”

“야.... 우리 나머지 넷은 정상이야.”

“나머지는 누구야?”

“나머지는,”


끼에에에엑-


기괴한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재구가 전방에 보이는 남산타워를 가리켰다.

박쥐 일곱 마리가 남산타워 끝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 거리에서 저 정도 크기라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람보다 작지는 않다는 것을.

신검이 쌍안경을 꺼내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너 게임 좋아하냐.”

“어. 왜 형?”

“시발....”

“왜. 왜.”

“가고일인데.”


박쥐의 얼굴과 날개. 뾰족한 귀에 날카로운 발톱.

그것은 교회에 있는 가고일 석상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쌍안경을 건네받은 재구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좀비는 애교네.”

“그래도 팔척좀비 보다는 나은데.”

“그러게.”


탑차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니 각 층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얼굴들은 감사함이었다.


“콩나물 대가리 때문에 어제부터 잠을 못 잤는데 감사합니다.”

“진짜 저것 때문에 대피소로 이동해야 하나 했는데 진짜 고맙습니다.”


하지만 신검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목례만 까닥였다.

사람이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지금은 고맙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우리 탑차를 탈취하려 할지도.

부엌칼을 들고 빨래 방망이를 들고 달려 들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


“슬슬 떠날 준비를 하자.”

“어디로?”

“일단은 대피소로 가보자.”

“으.... 영화 보면 꼭 대피소부터 탈탈 털리더라.”

“그래도 필요한 건 사람이니까.”


재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검을 따라 올라갔다.



*



여자들이 고기에 소금을 치고 훈제를 하며 저장식량을 준비했다.

재구는 물품재고를 정리했다.


신검이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용검. 성검. 유검.

강검을 제외한 오검 멤버들.

왕검 사부님 밑에서 동문수학한 친구들인데, 나이 먹고 결혼에다가 삶에 치이다보니 연락이 뜸한지 꽤 오래됐다.


먼저 제일 친했던 용검, 용득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한하게 통신이 아직 안 끊겼다.


-마! 신검이 아이가?

-오랜만이다.

-이 노무 시키. 마! 아직 살아있나!

-아직은 살아있네. 넌 어디야.

-내는 붓싼이지! 서울도 좀비 천지가?

-말도 마. 부산? 오랜만에 오검 뭉쳐볼까 했는데.

-오검은 무신 놈의 오검이고. 강검 금마는 안 된데이.

-뭐....

-친구야! 붓싼 온 나. 여긴 그나마 괘안타.

-부산은 안전해?

-여기는 그래도 살아남은 군인들이 모여서 땅 넓히고 있다 아이가.

-그래. 다른 애들도 모아서 부산 내려갈게.

-언능 온나!


부산이라....

용득성이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네.


유일한 여자 멤버 유검 유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성검 성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이냐.

-그래 준식아.

-무사하지?

-그래. 넌 어디야.

-나는 지금 고속터미널 대피소.

-거기 괜찮아?

-아직까지는. 너는?

-우리도 이제 슬슬 대피소로 가려고 하지.

-조심해라. 고터 오면 연락하고.

-그래. 조만간 보자.


성검 성준식.

무엇이든 막는 방패란 칭호를 가졌던 녀석.

검도계의 최강수비. 철벽수비. 절대수비.

물론 강검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뭐, 용검이처럼 검도를 접긴 했는데.

뭐한다고 했었더라.

그래, 경기도에서 동물농장 차렸다고 했었지.


“아저씨.”


민지가 뒷짐 지고 신검에게 다가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초코렛이였다.


“밤에 초코렛 먹으면 이 썩어.”


무뚝뚝하게 대답했지만 호쾌하게 초코렛을 받아 한 입 베어 먹었다.

민지가 베시시 웃었다.

얼굴이 붉어진 신검이 재구에게 말을 걸었다.


“야, 근데 너 군대 어디 나왔어? 아까 보니까 꼼장어 대가리에 한 발이 안 맞던데.”

“나 의무소방 나왔는데.”

“나는 의무경찰 나왔는데.”

“총질 잼병인 두 남자가 만나버렸네. 하하.”


“지금 웃음이 나와요....”


김영희가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모습은 마치 바위와 같았고,

태산과 같았다.

그녀의 손에는 오백 원 동전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가져와요 K2....”


엎드려 쏴 자세를 한 신검과 재구.

소총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동전.


“피가 나고....”

“알이 베기고....”

“이가 갈리는....”


민지가 유리를 안고 이 모습을 재밌게 바라봤다.


“민지는 왜 서있어?”


신검과 재구, 민지가 전직 장교의 손에 이끌려 PRI 훈련을 시작했다.

빈총을 격발시킬 때 올려놓은 동전이 떨어지면, 영희가 무자비하게 엉덩이를 걷어차버렸다.

끔찍한 사격 훈련을 받은지 한 시간이 지났다.

부우우우우우웅-

우렁찬 비행기 소리가 창 밖에서 났다.


“형?”


모두가 기대에 찬 눈으로 베란다를 향해 달려갔다.

군인이길!

어서 이 엉망진창인 세상을 바로 잡아 주기를!


베란다 밖으로 전단지 몇 개가 눈앞을 지나갔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뿌려댄 엄청난 전단지들이 까마득히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를 잡아 펼쳐보니,


[UN평화유지군에서 알립니다]

한반도 정화 작전 일정을 안내해드립니다.

해당지역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대피 바랍니다.


라는 내용이었고.


신검과 사람들이 속한 용산구는,

이틀 뒤,

치명적인 살처분 가스에 뒤덮일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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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D-8 수성준비 19.04.28 133 2 11쪽
17 D-8 풀어야 할 것들 19.04.27 17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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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D-4 블러핑과 베팅 19.04.22 311 6 12쪽
11 D-4 긴급뉴스를 알립니다 19.04.21 337 9 13쪽
10 D-4 세 얼간이들 19.04.20 351 7 12쪽
9 D-4 얼마나 강한데 19.04.19 362 4 11쪽
8 D-3 어머니는 강하다 +1 19.04.18 389 8 13쪽
7 D-3 한강은 민물이라고 19.04.17 413 10 13쪽
6 D-3 여보.... 19.04.16 441 8 12쪽
» D-2 삼보 정도는 +1 19.04.15 498 8 12쪽
4 D-2 작지만 알흠다운 19.04.14 518 10 12쪽
3 D-1 첫날밤 19.04.14 537 10 11쪽
2 D-1 신선한 고기 +2 19.04.13 596 13 12쪽
1 D-1 신검 19.04.13 77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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