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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데스 나이트였던 아저X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새글

양철통9
그림/삽화
XXXXXXXXXXXXXXXXXXXX
작품등록일 :
2019.04.20 23:43
최근연재일 :
2019.07.2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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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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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장례식 + 또 하나의 나이프

DUMMY

*






보미와 만나기로 한 시각은 1시간 30분 후.

은아는 햇볕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 카페 내부로 자리를 옮겼다. 답답하긴 했으나 귀찮게 구는 남자들이 없어서, 편했다.

송희에게 보낼 문자를 썼다 지웠다하고 있는데, 백진백에게 전화가 왔다.


“누님 병실 비우고, 또 어디로 사라진거우!”


“요 앞 카페에 바람 좀 쐬러 나왔어.”


“하여간 누님은 잠시도 한자리에 붙어 있질 못하우. 3차 수술은 회복세 봐서 내일 모레나 할 수 있을 거우. 그때까지 나는 강남에 들어갔다 오겠소.”


“거긴 왜.”


“부상자가 많아서 버거운 모양이우. 간만에 정권이 좀 귀여워해주고 오겠수.”


“알았다. 몸조심해라.”


“크핫핫. 별 걱정을 다 하우!”


은아는 팔짱을 끼고, 체크셔츠의 효린이가 케익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얼마나 업무에 시달렸는지 눈 밑이 시커매서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맛있어?”


“네. 엄청이요.”


“효린이 넌 남자친구 있어?”


“네. 있죠.”


“어떤 사람? 아, 너 외모 본다고 그랬지? 그럼 잘 생겼으려나?”


“에? 아니오. 요즘 시대에 누가 얼굴보고 골라요. 그냥 저냥 서울에 집구할 정도 되면... 적당히 연애하면서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남자가 몇 살인데?”


“서른일곱이요.”


“너 25살 아냐?”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요즘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안정감 있는 남자가 끌리더라고요. 겉은 멀쩡한 것 같은데... 다들 뭔가 불안정하니까.”


“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효린이 크림 묻은 포크를 입으로 쪽 빨고는 흐흐..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부터 정신병자 소리 듣는데요 뭐. 저 하루에 케익 두 판씩 먹어요. 단거 못 먹으면 하루 종일 우울해서...”


은아는 크림을 입술에 묻힌 효린이 귀여워서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어주고는, 직접 계산대로 가서 커피와 케익을 몇 조각 더 주문했다. 진동벨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우르르 한 무리의 각성자가 들어오다가 은아를 쳤다.


“아.”


넘어진 은아가 짜증스레 고개를 쳐들었다가, 말을 삼켰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부서진 갑옷차림의 남자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거듭 사과하며, 진동벨을 주워 건넸다. 군용 전투 갑옷. 뺨에는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았고, 몸에서는 지독한 땀 냄새가 풍겼다.

강남 아공간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부상병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됐... 아니에요. 제가 부주의했네요.”


은아가 대충 사과하며 일어섰다.

은아가 막무가내이기는 해도, 제 목숨을 걸고 엉망진창으로 싸우다온 군인들에게까지 함부로 할 정도로 무개념은 아니다. 국군수도병원 옆이다 보니, 다친 녀석들이 제법 돌아다녔다.


“에? 은아 중위님 화 안내요?”


“뭐?”


“아무리 봐도 쌍욕 할 분위기였는데.”


“개고생하는 애들한테 욕은 무슨...”


은아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드는데,

부딪쳤던 남자가 은아에게 다가왔다.


“저, 저기요...”


은아가 한숨을 쉬었다. 저 꼴을 해서도 여자 꾈 정신이 있는 거면, 욕 좀 처박아줘도 괜찮으려나, 생각하는데...

은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뗐다.


“저기 혹시...”


효린이가 재빨리 끼어들어 “저희 둘 다 유부녀니까 그냥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자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김은아 상병님 아니십니까?”


은아가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갸우뚱.

현장을 떠난 뒤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강등되기 전의 계급으로 부른 사람도 없었는데... 누구지? 라고 생각하다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은아 답지 않게 해맑았다.


“어? 내 새끼?”


은아가 반가움을 듬뿍 담아 소리쳤다.

“미안, 이름은 까먹었는데... 음... 음... 너 제 2 공격대, 산하 부대원이었던 내 새끼들 중 하나 맞지? 생각났다. 백마 57호! 김준석!”


“맞습니다! 얼굴이 너무 변하셔서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 김은아 상병님. 아니... 김은아 상성님!”


남자가 붉어진 얼굴로 경례했다.

그의 눈에도 반가움이 가득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부대원 문병 온 거야? 아니다. 꼴 보니 치료 받으러 온 거구나. 많이 다쳤니?”


은아의 말투가 듣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워서,

효린이 갸우뚱했다.


“아... 네. 아니오.”


남자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하며 콧잔등을 찡그리고 입술을 오므라뜨렸다. 그 특유의 씁쓸한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은아가, 비슷한 표정으로 물었다.


“장례식이니?”


“네...”


은아가 눈을 내리깔며,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래... 안됐다. 부대 동료였니?”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네.”라고 대답했다.


“그래...”


은아는 57호에게 옆에 앉으라고 한 뒤, 이야기를 들었다.

57호는 아공간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어.. 냄새가 지독할거라며, 한사코 거절했으나 은아가 억지로 끌어다 옆에 앉혔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강남 아공간의 상태가 심각하긴 했다.


뉴스 보도 보다 몇 배는 상황이 안 좋았다. 로즈 발키리즈보다 고블린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공략에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추정이지만 고블린 로드가 셋이나 된다는 말에 은아가 눈을 크게 떴다. 은아는 57호에게 어깨동무 하고, 고생했다며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줬다.

예전같으면 “누나가 싹 다 불태워 줄게.”라고 말하며 손을 붙잡고, 당장에 아공간으로 들어갔을텐데... 이제는 그때만큼 몸이 좋지 못하다.


“기운 내. 57. 너 지금은 어디 공격대 소속이야?”


“얼마 전까지 한 자리 수 공격대 산하부대로 있다가, 최근에 79공격대로 옮겼어요. 분열체 쓰시는 분이 있어서.”


“그렇구나. 근데 너는 왜 치료 안 받고 카페에 온 거야? 너 목 뒤에 보니까 고블린 독 중독 같은데? 상위 갑옷 분리해봐.”


“그...”


남자가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환자가 꽉 차서 조금 밀렸어요.”


“밀려?”


은아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되물었다.

“왜 밀렸지? 병원에 빈 병동 많아서 민간인도 받고 있던데, 나 입원해 있는 층 병실만 해도 무슨 연예인 들어왔다고 의무병들 신났던데.”


은아가 그렇게 말하다 말고, 뭔가 이해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쌍욕을 뱉었다.


“이 씨발 새끼들이... 효린아 병원에 전화 걸어봐.”


효린이가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자, 은아가 낚아챘다.


“1918 공격대.... 아니, ANM 소속 김은아다. 높은 새끼 바꿔. 3초.”


은아는 10초 뒤에 수도병원의 책임자와 통화했다.


“뭐가 여보세요야! 씨발놈아 교환병한테 내 이름 못들었어? 상관이 전화했으면 관등성명부터 대.”


“...”


“너 애들 왜 뱉어?”


“...”


“그걸 말이라고 해? 어떤 대단하신 개새끼들이 전시에 군병원에 장난을 쳐. 다 필요 없으니까, 현 시간부로 민간인 다 쫒아내고, 원래 의무대 시스템대로 환자 받아.”


“...”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 명령이야. 내 명령은 ANM입장이나 다를 거 없는 거 알지? 군관계자고 가족이고 필요 없어. 싸우다 다친 애들이 1순위야. 씨발 애당초 그게 에프엠 아냐? 불만 있는 새끼는 나한테 전화하라고 그래. 치료 같은 거 안 받아도 되게 대갈통을 부숴 줄 테니까. 알아들어!”


1분정도를 더 소리친 은아가 전화를 끊고,

효린이 가져온 냉수를 마셨다.


“애새끼들 전장에 몰아넣고 뺑이 치게 했으면, 치료라도 제대로 해줘야 할 거 아냐. 개새끼들이... 군기관이 지들 놀이터인 줄 알아. 박격포 터질 때까지 박격포로 뚜드려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


“57호 너 당장 치료 받아. 그리고 지금 강남 아공간에 제 2 공격대 산하에 있던 애들 몇 명이나 있어? 니들 서로 연락은 해?”


“전부는 아니지만 가끔 모입니다. 대충 알기로 15명 정도 있습니다.”


은아가 가슴을 쭉 펴고,

양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묶으며 말했다.


“몸 사리고 있으라고 그래. 5일 후에 들어갈 테니까.”


“네? 하지만 김은아 상성님... 몸 상태 좋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막 개빡쳐서 기적적으로 다 나았어. 잔말 말고 내일 쯤 연락 넣어서, 순정 이상 비스터 모아 두라 그래. 너도 회복되면 들어가 있어. 죽은 친구 복수해야지.”


“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30분후, 카페 창밖으로 중형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단발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소녀가 스커트 차림으로 차에서 내렸다. 화장도 옷차림도 첫 데이트를 나가는 여대생처럼 어설펐지만, 묘하게 시선을 끄는 외모에 사람들이 힐끗거렸다.


보미가 카페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변인들로부터 눈이 참 슬퍼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오늘 그녀의 크고 깊은 눈은 생기로 가득하다.





* *











“당신은 악마惡魔 인가요?”



홍과장이 17명의 수인을 죽이기 10분 전.

중년여성이, 홍과장에게 물었다.

적들과의 싸움은 끝났건만, 그녀의 날개는 여전히... 위협을 가하는 공작새처럼 활짝 펼쳐져 있었다. 죽은 손들이 으르렁 거리듯 홍과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악마?”


홍과장이 되물었다.

그는 그때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풀밭에 앉아, 에로스에 묻은 기름과 피를 닦던 중이었다.


저벅 저벅. 홍과장을 향해 접근해오는 중년여성.

그녀의 새카만 날개가 홍과장의 하늘을 가렸을 때, 홍과장은 비로써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중년여자 특유의 깐깐하고 엄격한 표정.

기억을 더듬어보니... 전생에 털보는 자신의 와이프가 중학교 교사였다고 말했었다.


‘선생님 같은 느낌이 나네.’


하지만 난데없이 악마냐고 묻다니...

그녀의 질문은 뜬금없었지만 홍과장은 그 이유를 알아챘다.


그녀는 원혼과 대화한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감정적 소통이라던가, 혹은 기억의 공유라고.. 표현하는 쪽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든... 현재 그녀의 몸을 뚫고 나온 원혼들은 홍과장이 ‘위험한 존재’라고 감각하고 있을 터였다.

홍과장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죽음의 냄새’가 원혼들을 자극하고 있다.


그녀가 말했다.

“딱히 마족이냐고 묻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은 강하고 두려운 적을... 뭉뚱그려 악마라고 부르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 묻고 있는거에요.”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홍과장은 한때 악마라 불렸으니, 악마가 맞다. 그러나 정답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기에 그저 웃었다.


“외관상으로는 그쪽이 더 악마 같아 보이는데...”


홍과장이 깨끗하게 닦은 에로스를 투구 뒤에 꽂고,

타토를 손에 쥐며 말했다.


타토를 뽑아드는 것만으로, 날개속의 손들이 제각각 몸체를 이리저리 비틀어댔다.

원한의 덩어리들이... 수많은 죽음을 낳은, 죽음의 기사에게 식욕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녀가 말했다.

“그 기분 나쁘게 여유로운 태도... 꼭 악마 같네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으나, 홍과장은 그저 손에 쥔 타토를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을 뿐이다. 조각났지만 손이 베일정도로 날카로운 검 ‘타토’

홍과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저 여자의 날개 따위... 이 칼에 몇 번이고 잘린다.


“다시 한번 묻겠어요 당신은 악...”


“내가 악마라고 인정하면, 감당할 수는 있겠어요?”


홍과장은 농담하듯 툭 뱉으며, 그딴 화제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17명의 죽어가는 수인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 철식은 캠핑카에서 꺼낸 어떤 아티팩트를 바닥에 설치하고 있었고, 멸치룡은 고개를 숙인 채 중얼중얼 기도했다. 아영이는 토끼 수인의 손을 잡고 있었고,

준은 울고 있다.

정도석과 털보만이 복잡한 표정으로 홍과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악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홍과장이 원혼과 소통하는 여성에게 물었다.

지금은 미완성이지만, 머지않아 그녀는 원혼들을 배심원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주문을 완성할 것이다. 이 미치광이 세상을 살아갈 방식을 끝끝내 알아내지 못한 그녀는, 죽은자들의 지혜를 나침반으로 세상을 판단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주문의 완성을 위해, 그녀 스스로 ‘판결의 나이프’가 된다.


전생에 홍과장 등판에 한자리를 차지했던 아티팩트 [판결의 ‘융’]은,

홍과장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마다 O, X를 가려줬다. 아티팩트 그 자체에 귀속된 주문이었으나, 현재의 홍과장은 그 주문을 어떤 칼로도 구현할 수 있다.

그것은 독고를 심문할 때 사용했던 주문이며,

인육판매자들을 목매단 주문이기도 했다.

수천의 죽은 배심원들이 재판대에 올려 진 사람을 내려다보며, 진실과 거짓을 구분한다.


홍과장은 아티팩트가 되면서까지 이 세상의 이정표가 되려했던 그녀를, 그녀의 남편인 털보보다 더 이해했다. 그래서 융에 귀속된 고유마법을 제 것으로 가질 수 있었다. 홍과장은 손잡이 없이 끝과 끝이 뾰족한 칼날이었던 융의 감촉을 기억하며, 눈앞에 살아있는 그녀를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뺨과 어깨, 손과 허리...

전생에 홍과장이 휘두르던 융은 지나치게 가냘팠다. 그러나 이제는 만질 수 없다. 현재의 융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부인이니까.


“당신이 악마라고 생각하는 이유? 나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알고 있어. 당신의 몸에 붙어 있는 원혼들이 내게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겠지.”


홍과장의 말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여덟 개의 단검을 허공에 뿌렸다.


촥. 촥. 촥. 촥. 일순간 날개 속에서 뻗어 나온 여덟 개의 손이 칼을 낚아챘다. 칼이 노리는 건 홍과장의 목이지만, 홍과장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검은 손’은 사람의 손과 비슷한 생김새를 띄고 있지만 진짜 손처럼 사용하기란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로리제인이 뛰어왔다.

“희애 언닝! 희애 언니!”


“...”


“그 분 악마... 아니, 마족 아니에요.”


“...”


“그 분 이즈라엘 언니님의 남편이에요!”


“남편? 마담 이즈라엘의?”


그녀가 황당하다는 듯 홍과장을 쳐다보며 반문했다. 가면 속으로 쓴웃음을 띈 홍과장이 로리제인의 말을 정정했다.


“남편이 아니고 친구에요.”


뛰어온 로리제인이 헥헥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이즈라엘 언니님의 풀네임을 정확히 알고 있던걸요. 이즈라엘 님의 이름을 아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어요. 아차, 이제는 아니지만...”


중년여성이 당혹스럽다는 듯, 로리제인과 홍과장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하지만, 서큐버스에게 이성 친구라는 개념이 있니? 너희들에게는 남성이란 먹이 아니면 남편 아니니?”


중년여성은 로리제인에게 물었지만,

그 대답은 홍과장이 했다.


“친구가 별 건가요. 대충 마음 맞으면 어울리는 거죠.”


그러나 중년여성은 쉽사리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녀는 원혼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홍과장을 판별하려 했다.

홍과장이 웃었다.


“원혼들의 말을 듣는 것 같은데,.. 그거 정신 건강에 해로워요.”


“....어떻게 그걸.”


“나도 그쪽이랑 비슷한 계열의 클래스에요. 아마도 원혼들이 공포를 느껴서 날 악마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녀석들이 무서워하는 건 내가 아니에요.”


홍과장이 고개를 살짝 튕기자, 투구에 꽂아둔 타토가 포물선을 그리며, 그녀의 발치에 떨어졌다.


“내가 악마라기보다는... 그 아티팩트가 악마 같은 물건이에요.”


타토가 가까이 떨어지자, 날개 속의 손 거의 전부가 도망치듯 뒤로 훽 젖혀졌다. 그녀가 그것을 집어 들려는 순간 홍과장이 말했다.


“아가씨. 그거 집어 들면 겁먹은 원혼들이 한순간에 빠져나가서.. 몸에 무리가 될 테니까. 준비하고 확인해요.”


“아가씨?”

중년여성이 되물었다.


“미안해요. 말실수했네요.”


“...”


홍과장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그녀가 크게 숨을 머금더니... 천천히 몸 안에 원혼들을 땅 밑으로 돌려보냈다.

허리를 굽혀 타토를 집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발밑으로 거대한 괴물을 느꼈다. 하나? 둘? 아니, 수백? 아니 수천?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홍과장을 쳐다봤다.


“저주 받은 물건이에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많은 생명을 죽인 칼인 것 같더군요. 많은 원혼이 그 냄새에 반응하죠.”


“이... 이런 무서운 유물을 어디서...”


“피 묻히지 마요. 아마도 아가씨는 감당 못 할 테니까. 아, 미안해요. 언뜻 보면 아가씨 같아보여서 자꾸 말실수하게 되네요.”


홍과장이 건조한 목소리로 사과했지만,

희애는 단아한 느낌의 중년여성. 수수하고 아름답지만 결코 아가씨로 보이지는 않았다.


“당신은 이 무시무시한 악귀들을...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요?”


“뭐, 적당히. 나는 당신들처럼 자기희생만으로 원혼을 부리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녀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홍과장을 쳐다봤고,

홍과장은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위해 초콜릿담배 한 대를 천천히 피웠다.


“대충 납득 됐으면 해야 할 일을 하죠. 이제 저 친구들... 보내줍시다.”


홍과장이 칭하는 친구들은 당연히 수인들.

타토를 주워든 홍과장은 그녀를 스쳐 지나다가 “아, 미안한데 바나나D를 한 대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나나D를 건네줬다.

홍과장은 침을 꼴깍 삼켰지만, 그것을 피우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 * *




잠시 후, 철식이가 ‘신성의 은촛대’를 전부 설치했다.

7개의 촛대가 17명의 수인을 중심으로 거대한 팔각 도형을 형성했다.


“의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철식이 손에 든 연두빛 스크롤을 찢으며 영창하자, 촛대를 따라 마법진이 그려졌다. 눈부신 녹색의 빛과 함께 완성된, 엘프들의 작별 마법 ‘성스러운 장례식’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땅 밑의 원혼들과 대기 중의 정령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공터를 에워싼 풀과 나무 그 밖의 온갖 식물들이 일제히 생명의 기운을 뿜어냈다. 이제부터 이 마법진의 내부는 청정지역. 부정한 존재가 발을 들이면, 녹색으로 불탄다.


마법진 밖에 모인 모두가 겸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손을 모아 기도한, 중년여성이 로리제인에게 말했다.


“거기 그 상자 내게 가져다 주겠니.”


“네.”


로리제인이 엘프의 심벌이 그려진 나무상자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터져 나오는 은백색의 빛.

정령들의 왕과 드워프 장인이 50일을 금식하며 만들었다는 신성의 검 ‘어머니의 위로’가 자태를 드러냈다.


그것은 악귀가 될 운명의 영혼을..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검.

유물에게 부여된 무거운 사명에 비해,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아티팩트지만...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흔치 않다.


진심으로 죽음을 애도하는 자.

혹은 진심으로 죽음을 슬퍼하는 자만이 검을 손에 쥘 자격을 가진다.


그렇지 않은 존재가 이 검을 쥐면, 도리어 제 영혼을 지우는 꼴이 된다. 아티팩트의 속성상, 빛의 속성자와 치유사들 중에 간혹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있고, 엘프들 중에도 1/10만이 사용가능했다.


당연히 어둠의 각성자는 ‘진심’과 관계없이 타격을 받는다.

중년여성이 검을 집어 들자, 어둠의 속성을 인식한 검이 달아올랐다. 지지직- 지지지직- 달군 쇳덩이로 살점을 지지는 소리와 함께,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러나 중년여성은 손을 떼지 않고, 오히려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단단히 쥔다.


그녀는 그 고통을 인내한다.

중년여성은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생명을 정화해왔다.

학부모 연합 중에 이 검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어둠의 힘을 가진 그녀뿐이다.


“아가씨 그 검 내려놔요.”


“...네?”


“아, 자꾸 말실수해서 미안해요.”


홍과장이 투구를 벗어 바닥에 툭 떨구더니, 미리 뽑아든 에로스를 쥐고 마법진 내부로 들어갔다. 치지직 치지지직-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홍과장의 몸이 녹색의 불덩이로 발화했으나, 그는 신경쓰지 않는다.

홍과장은 아랑곳없이 수인들에게로 다가갔다.


“이봐요 당신... 뭐하는거요. 거기서 나와요. 위험해요.”


“아가씨 많이 지쳤잖아. 오늘은 내가 대신 이 짐을 지죠.”


“하지만 죽어요. 당신...”


“걱정 말아요.”


홍과장이 쓰게 웃으며, 에로스를 뽑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수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제껏 보아온 수인들의 가혹한 삶을 되새기며, 17명의 삶을 상상한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홍과장이 에로스의 무딘 날에 제 눈물을 떨어뜨리자, 에로스가 청명한 녹색의 빛으로 발광했다. 지직- 지지직- 그의 손바닥이 녹색의 불로 타들어가지만,

그는 의연하다.


에로스는 신성의 검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신성한 나이프다.

홍과장의 눈물에 에로스는, 타토와는 또 다른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홍과장이 말했다.


“준 씨.”


“네?”


“고개 돌려요. 아영이랑 도석 씨도...”


홍과장은 수인들을 하나 둘 죽였다.


“편히 쉬 거라. 진심으로 애도한다.”


홍과장은 진심을 다해 울었지만, 이 장례 행위가 아무 쓸모없는 ‘의식’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세계의 원혼은 그저 세상에 머문 어떤 생각의 찌꺼기.

홍과장은 그것이 정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그의 행동은 옛 동료들에게 자신을 증거 할 것이다.

어둠의 힘을 지녔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비틀어진 세상을 부정하는 하나의 X라고 그는 진심을 전한다.

꼭 문양을 세겨야 동료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홍과장은 에로스에 묻은 피를 엉덩이에 쓱쓱 비벼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중년여성에게 받았던 바나나D를 꺼내 불을 붙였다.

긴장된 뇌가 풀어지며 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향정신성 효과에 몸을 맡긴 채, 손에 묻은 살해의 기억을 지운다. 바나나D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취하게 한다. 저 아가씨가... 아니, 아줌마가 바나나D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누군가 녹색의 불이 꺼지지 않는 그의 손에 포션을 부어줬다.

담배 맛이 괜찮았다.




그러나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투구를 썼다.


꼭 매미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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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나이트였던 아저X씨.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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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트롯트 모텔 + 서큐버스 룰. +113 19.06.28 8,611 475 15쪽
55 스마일빗멕 +41 19.06.27 8,609 454 13쪽
54 셋 중에 하나쯤은.. +62 19.06.25 9,066 453 10쪽
» 장례식 + 또 하나의 나이프 +48 19.06.22 9,685 544 22쪽
52 [은아와 보미] + [(죽음의 의사)를 묻는 미래의 X이프)] +70 19.06.20 10,319 458 18쪽
51 죽음의 의사 +38 19.06.19 11,362 451 14쪽
50 자기가 무척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아는 아저씨들 (옛 친구들) +46 19.06.16 12,257 545 16쪽
49 [이곳은 신용인] X [그가 증명했다] +89 19.06.14 12,913 557 19쪽
48 별 것 없는 휴식. +80 19.06.12 13,409 555 17쪽
47 스마일. +142 19.06.10 13,945 652 17쪽
46 +74 19.06.08 14,307 652 13쪽
45 여왕 강림. +137 19.06.06 15,734 74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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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별 일 없겠지. +74 19.05.30 19,969 71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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