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공모전참가작 데스 나이트였던 아저X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양철통9
그림/삽화
유서분님께서보내주심감사합니다다
작품등록일 :
2019.04.20 23:43
최근연재일 :
2019.07.18 23:53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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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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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6,708

작성
19.06.25 06:48
조회
8,841
추천
446
글자
10쪽

셋 중에 하나쯤은..

DUMMY

*


보미의 볼은 상기되어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발끝에 느껴지는 까끌까끌한 카펫의 감촉이 참 기분 좋았다. 또각또각 어울리지 않는 힐 소리를 내며 보미는 스커트를 내렸다. 너무 올려 입은 것 같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아저씨가 없다.


전화기를 들어, 효린이라는 감찰부 여자에게 전화를 하려다 멈칫했다.

창가 쪽에 낯익은 여자가 앉아있었다.


꾸깃꾸깃한 환자복 차림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반대쪽 손을 들어보였다. 소매사이로 드러난 길고 날렵한 팔목의 선이 날카로웠다.

보미가 다리를 모았다.


저 여자...

첫 만남에서 여덟 마리의 말을 불러냈고, 학원 안에서 내내 의식을 잃고 있었던 그 여자다. 그러고 보니 마법을 발현할 때 스스로를 감찰부 소속이라고 했었지. 보미는 비로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저 여자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여자 이름은 효린이 아니었는데... ... .



또각또각.

보미는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자는 웃었고, 여자의 옆에서 케이크를 먹던 또 다른 여자는 커피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했다. 여자는 탈출과정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었고, 아저씨가 봉고차에서 뛰어내리고 난 뒤의 일을 궁금해 했다.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저희에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여자는 존댓말을 사용하긴 했지만,

어조는 상대를 하대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네. 그럴게요.”


보미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이마에서 콧날로, 콧날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이 참 예뻤다. 입술은 무엇 하나 바르지 않았는데도 피처럼 붉었고,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상하게 여자의 눈을 마주보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보미는 어쩐지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화장 하지 말고 나올걸...’


여자의 길고 고운 손이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을 걷어 올릴 때마다, 언뜻 언뜻 긴 목이 드러났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목선과 이어지는 굴곡진 어깨가 야해보였다. 보미는 맞은편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여자가, 진짜 여성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참 예뻤다.


“아저씨가 넘어져있는 절 일으켜줬고, 우리는 계속 걸었어요. 사방이 잿빛연기로 가득해서 무사할 수 있었어요. 몸을 숨길 장소를 찾아서 계속 걸었어요. 운이 좋았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이어지는 대화 중에, 보미는 본능적으로 이 여자가 아저씨를 보호하려 하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저씨와의 약속이기 전에 둘만의 비밀이었다.

보미는 다리를 모으고, 조그마한 주먹으로 스커트 단을 꼭 쥐었다.

아저씨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아저씨에게 어떤 사람인 걸까?’



아저씨의 푹신한 등에 업혀 ‘섹시&로맨스’에서 나오던 그 날.

보미는 골목길 너머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싸우던 여자를 봤다. 악귀 같은 그녀는 담금질이 덜 된 것 같은, 빨갛게 달아오른 칼을... 미친 사람처럼 휘둘러대고 있었는데, 아저씨를 발견하고는 쩔그렁- 검을 떨어뜨렸다.

사방이 적인데도 여자는 모든 걸 잊어버린 듯 멈춰버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린채 아저씨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두 눈동자.

여자가 그때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보미는 여자의 그 반응이... 꼭 술집에서 자신이, 아저씨를 바라보던 그 눈빛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보미는 아저씨의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실어, 상체를 깊숙이 밀착했다. 아저씨는 의미를 잘못 이해했는지 [“이제 겁먹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알겠어요. 협조 고마워요 보미씨. 그러니까 주변이 어두워서 무사히 그 술집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거군요. 다행이네요. 정말 운이 좋...”


보미가 말을 이어가는 여자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런데 그 쪽 분은, 아저씨의 애인인가요?”


난데없는 질문에 여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헝클어졌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가요.”


친절하지만 싸늘하게 느껴지던 여자의 단단한 목소리에 묘한 균열이 느껴졌다. 보미는 여자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래 나도 저만큼 예뻐.’ 보미가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빨며 생각했다.


“그 쪽이 그 아저씨 애인이냐고 물었어요.”


도도하던 여자의 눈빛이 흔들렸고, 입술이 살짝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보미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읽었다.


곤혹. 당황.


보미가 이별을 통보 했을 때 남자들이 짓고 있던 표정과 비슷했다.

‘이 여자는 연애경험이 적구나. 그리고 어쩌면, 아저씨에게 거절당했구나.’

보미는 기뻤다. 마음이, 마력이 출렁출렁 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짐작일 뿐.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다.


“제가 실수 했어요. 그 아저씨의 애인이 아닌가보네요.”


“네. 아니에요.”


여자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하얀 피부에는 홍조가 올라있었다. 긴 목에도, 쇄골에도 손가락도 분홍빛이 어려 있었다.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고, 더운지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올렸다. 얼음이 떠있는 물 잔을 두어번 들었다 놨다했다.


“아저씨 몸은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많이 다쳐서 걱정했거든요. 연락할 방법이 없었는데, 담당관님 전화 받고 기뻤어요.”


자신감 없던 보미의 목소리에 또렷한 선이 생기고,

은아의 이목구비를 이룬 선들은 굴곡을 만들었다.


“그랬군요.”


“그런데 아저씨 이름이 어떻게 돼요?”


보미는 아저씨의 이름이 알고 싶었지만,

저 여자가 아저씨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기를 바라며 물었다.


“네? 그분 성함이 어떻게 돼요?”

보미가 어조를 조금 올려, 다시 물었다.


“그건 왜요?”


“찾아 뵙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어서요.”


“제가 전해드리죠. 담당자 신분 노출은 금지되어 있어서...”


“저 그 아저씨 좋아해요.”


“...”


보미는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지는 걸 봤다. 좋아한다고 말한 건 보미인데 여자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보미가 도발하듯 여자의 눈을 똑바로 봤다.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잠깐만. 보미씨.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아저씨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


보미는 여자를 공격했다. 아저씨 곁에서 감찰관 생활을 몇 년이나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으면, 포기하는 게 맞다.


보미는 오랜 시간 아저씨 같은 사람을 찾았고,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의 깊은 곳까지 알고 있다. 그 아저씨는 보미에게 남자가 아니다. 남자 이상의 존재다. 보미는 그날 그 술집에서 느낀 아저씨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을 다시한번 느낀다.

레릴톳도 없는데, 아저씨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알려드릴 수 없어.”


“왜요? 못 가르쳐 줄 이유가 없지 않나요?”


보미가 당돌하게 물었다.

벨에서도 배운다. 공격 대상이 실의하면 가차 없이 물라고. 이제껏 그 아저씨를 가까이 두고도 못 먹었으면 물러서야지. 저 얼굴에, 저 몸매에... ‘아, 그래, 아저씨는 여자의 외모에 혹하는 사람이 아니었지.’


아저씨가 앞 뒤 없이 여자를 탐하는 류의 인간이었다면, 보미는 그날 벌써 범해졌다. 보미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지금껏 수많은 남자를 사귀며 남자를 배웠다. 보미가 알기로 여자의 교성을 견딜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다.


보미는 그때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이 삐뚤빼뚤한... 아이라인 안으로 또렷하게 갈증이 서렸다. 보미는 아저씨의 이름을 알고 싶었고,

제 입술과 혀로 발음하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이봐요 보미 씨.”


“네.”


“그 분 유부남이에요.”


테이블 위에 유리잔이 반절로 깨졌다. 꺅- 옆에서 넋을 놓고 있던 효린이 비명을 질렀다.


“알아요.”


“네?”


“하지만 이제 부인을 사랑하지 않잖아요.”


보미는 악마에게 들은 대로 말했다.

아저씨가 유부남인 건 보미도 안다. 아저씨가 직접 말했으니까.

그러나 악마는 분명히 말했다. 아저씨에게 예전의 그 뜨거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아니요. 홍과장님은 와이프를 사... 사랑해요.”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


“...아이들도 있어요.”


“...”


보미가 주먹을 꼭 쥐고, 입을 다물었다.

주변인들이 슬퍼보인다고 말하던 눈동자가 본래의 빛으로 흐려졌다.

여자가 타이르듯 말했다.


“보미 씨 같이 어리고 예쁜 분이 왜 그 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그 쪽도...”


“네?”


“그 쪽도 아저씨 좋아하잖아요.”


그 말에, 옷에 묻은 유리조각을 털어내던 효린이 뒷걸음치다가 넘어졌다.


“씨발. 보자보자 하니까 너 무, 무슨...”


“저처럼, 그쪽 얼굴에도 티가 나요.”


“....”


보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은아를 내려다보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그 아저씨는 괜찮게 사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지금 행복하다든지...”


“....”


고개를 든 은아와, 눈을 내리깐 보미의 눈이 허공에서 한참을 마주쳤다.

은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짓말. 그쪽은 이름부터 거짓말이었잖아!”


그렇게 말한, 보미가 휙 뒤돌아 테이블 사이를 가로질렀다. 비틀거리지는 않았지만, 입구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쯤, 잠깐 소파에 몸을 기대고 서서 입술을 비볐다.

딸랑.

문이 열리고 닫혔다.






분명히 차를 타고 온 것 같은데, 창 너머로 걸어가는 보미가 보였다. 은아는 엉망이 된 테이블에 두 팔을 얹은 채 보미가 사라지기까지 쳐다봤다.

은아는 홍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왜 거짓말을 한 거지?’


은아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이상하게 효린을 쳐다볼 수 없었다. 흉측하게 깨진 컵에서 흘러나온 물이 은아의 무릎위로 질질 흘렀다.

바지가 젖었고, 얼굴이 뜨거웠다.



1. 홍과장은 행복하지 않고,

2. 희선 언니는 죽었으며,

3. 은아는 홍과장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셋 중에 하나쯤은 틀릴 수도 있다.





*


작가의말

늦었는데, 짧아서 죄송합니다.

아, 출근해야되어서...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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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스마일빗멕 +41 19.06.27 8,380 449 13쪽
» 셋 중에 하나쯤은.. +62 19.06.25 8,842 446 10쪽
53 장례식 + 또 하나의 나이프 +48 19.06.22 9,451 539 22쪽
52 [은아와 보미] + [(죽음의 의사)를 묻는 미래의 X이프)] +70 19.06.20 10,078 451 18쪽
51 죽음의 의사 +38 19.06.19 11,140 444 14쪽
50 자기가 무척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아는 아저씨들 (옛 친구들) +46 19.06.16 12,023 539 16쪽
49 [이곳은 신용인] X [그가 증명했다] +89 19.06.14 12,677 552 19쪽
48 별 것 없는 휴식. +80 19.06.12 13,172 551 17쪽
47 스마일. +142 19.06.10 13,711 646 17쪽
46 +74 19.06.08 14,077 646 13쪽
45 여왕 강림. +137 19.06.06 15,482 739 17쪽
44 비즈니스, businessman. +52 19.06.04 16,553 615 16쪽
43 전위 계열의 클래스 중 하나 :머슬 비스트 +48 19.06.02 18,644 706 19쪽
42 별 일 없겠지. +74 19.05.30 19,732 70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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