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62)
기사장 바리타가 전투에 참여하게 되자 부하들의 사기가 오르면서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바리타를 내가 묶어 둘 테니까 모두 부하들을 먼저 죽여.”
토르는 탱이 아니었지만 지금 팟원들 중 가장 탱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엘리야를 믿고 토르는 바리타를 도발해 어글을 먹고 홀 한쪽 구석으로 바리타를 끌고 갔다. 바리타의 공격이 매서웠지만, 토르가 방어만 하며 버텼다. 바리타는 토르의 속셈을 알고 부하들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토르의 발을 잡는 공격이 매서워 바리타는 토르를 떨쳐낼 수 없었다. 바리타는 토르를 빨리 죽여야만 부하들과 합세할 수 있음을 깨닫고 토르에게 전력을 기울여 공격을 퍼부었다.
바리타의 검이 토르의 방패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한때는 최강의 유저로 불리었던 토르였지만 보스몹과 일대일로 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쾅 쾅 쾅 쾅······.”
바리타는 토르보다 덩치가 배는 컸다. 그리고 바리타의 검은 토르의 검보다 세배는 더 컸다. 그 큰 검을 회초리 휘두르듯 가볍게 휘두르는데 반격이고 뭐고 방패로 막기도 벅차 계속 뒷걸음질 쳤다. 그나마 엘리야의 치유와 축복으로 버티던 토르는 새삼 힐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자신 혼자 보스몹인 바리타를 붙잡아 두었고 팟원들이 바리타의 부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 힐러인 엘리야 덕이었다.
바리타의 부하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원딜인 마법사 메시아와 궁수 라면왕이 토르를 도왔다.
이 둘의 공격으로 토르를 향한 바리타의 공격이 느슨해지는 순간. 토르가 바리타의 빈틈을 공격했다. 토르의 애검인 ‘아벨의 검’은 전기 속성을 가진 마법검이었다. 토르가 스킬을 사용하자 칼날 전체에 전기 속성을 띠며 상대가 공격하든 방어를 하든 일단 토르의 검에 닿는 순간 전격 데미지를 입었다. 바리타가 토르의 검을 피하며 주춤하는 사이 부하들을 모두 물리친 토르 팟 유저들이 바리타를 사방에서 공격했다. 그동안 수적 우위에서 싸웠던 바리타가 수적 불리함에 놓이면서 본연의 자신감을 잃고 파카누 산맥에 숨어든 때와 같은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분하다. 백성들을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쓴 것이 나의 목숨을 갉아먹을 줄이야. 원통하다.
위민보국에 평생을 바쳤건만 이런 땅속에서 죽게 된다니···.“
바리타가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한 대만 맞아도 죽는 상황. 모두를 대표해 토르가 바리타의 앞으로 다가섰다. 바리타는 싸울 의사가 없는 듯 검과 방패를 든 손을 밑으로 내렸다.
“천하의 바리타가 이렇게 죽게 될 줄 몰랐다.”
바리타와 토르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토르는 바리타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다 같이 죽자.”
바리타가 큰소리로 외치며 내려놓은 검을 다시 들어 바닥에 세차게 내리쳤다. 토르는 바리타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빠르게 바리타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토르의 일격에 바리타는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바리타의 마지막 일검은 바닥을 강타했다.
“콰콰콰콰쾅.”
산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이 있었다. 바리타의 던전은 땅속이었다. 도망칠 수가 없었다.
토르는 그동안 수많은 보스몹을 잡았지만, 자폭으로 다 같이 죽는 보스는 처음 봤다. 토르의 안내창에 기사장 바리타를 죽임으로써 얻는 각종 보상에 관한 내용이 빠르게 올라갔다. 경험치는 확실히 많이 올랐다. 문제는 토르 자신도 죽었다는 거.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팟원들 모두···.
‘이런 젠장.’
토르는 회색창을 보지 않았다.
“응?”
패자의시대 게임을 하며 수없이 죽어봤지만 죽었을 때의 화면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유저가 사망하게 되면 시야갸 회색으로 변하게 되는데 토르의 캐릭터는 죽었지만, 시야가 변하지 않았다.
토르의 주변으로 빛의 파편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치 시체를 들어 올리듯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바리타의 마지막 일격으로 폭발이 있었고 던전이 무너졌다. 그런데 토르는 빛 조각들에 휩싸여 어디론가 이송되었고 주변이 온통 빛이 넘쳐나는. 마치 빛이 피어오르는 듯한 이상한 곳으로 왔다. 토르의 시선이 주변을 살피기도 전에 토르의 눈앞에 빛에 휩싸인 ‘우도벨’이 서 있었다.
황금 갑옷을 입고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전쟁의 신’우도벨을 전사인 토르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토르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우도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보통은 놀라거나 상황파악을 못 해 당황할 텐데 토르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그저 우도벨을 보자 엎드렸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나를 따르겠는가?”
우도벨 역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토르를 보고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음을 안 것이다.
“저의 주님이 시해됐을 때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없었사옵니다. 우도벨 신께 저의 미천한 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토르는 이마를 바닥에 댄체 대답했다.
“시헤로메의 축복을 받은 자가 할 말은 아니구나. 내가 너에게 힘을 줄 터이니 신의 사자로서 싸워라. 너의 주인을 죽인 무리에게 복수하여라. 신의 종으로써 너의 주인과 천상의 모든 신의 이름을 높이거라. 너의 길은 영광의 길. 빛의 길이며 환희와 축복의 길이니라.”
=신의 대리인.
=천계의 5인 이상의 신이 승인한 자에게 부여되는 호칭.
=신의 대리인은 신의 사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지며........................
=...................................................................
=....................................................
=................................................
토르의 안내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퀘스트가 아닌. 우도벨이 토르에게 함께할 것인가를 묻는 것으로 이를 받아들이면 ‘신의 대리인’이 되는 거였다.
엄청난 효과···. 거의 사기 수준의 혜택이 주어졌다. 토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제 영혼을 바쳐 천상의 신들께 충성할 것이며 천상의 주인들의 빛나는 영광의 제국에 그림자가 되어 영원토록 봉사하겠사옵니다.”
우도벨이 토르가 ‘신의 대리인’을 승낙하는 것을 보고 미소 지으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토르 주변으로도 빛이 사라졌고 파카누 산맥의 깊은 숲속에 혼자 남겨졌다. 토르는 조용한 숲속에서 ‘신의 대리인’이 가진 능력을 확인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초대박. 당첨금 수천억의 로또 복권에 맞은 것보다 토르는 ‘신의 대리인’ 호칭이 더 기뻤다.
신의 대리인이란.
천계의 5인 이상의 신이 인정한 대상을 말했다. 그것이 인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이번 건 인간인 토르에게 주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종족이 아니라 신의 대리인으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5인 이상의 신이 승인한 만큼 그 능력이 거의 신급이라 할 수 있었다.
신의 대리인이 가진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신의 사자’를 임명할 수 있는 것인데 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대리인에게 대신 맡긴 것이다. 신의 사자로 임명되면 각종 능력치의 향상은 물론 스텟 포인트와 함께 스킬 포인트까지 주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스킬 포인트 같은 경우는 렙업을 해야 한 개 받을 수 있는데 신의 사자가 되면 1개에서 5개까지 신의 대리인이 임의로 정한 중복되지 않는 스킬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패자의시대 게임 내 아무리 최상급 아이템이라고 해도 스킬 포인트를 올려주는 아이템이나 퀘스트는 아직 없었다. 만약 있다고 하면 값을 측정할 수 없으리라.
게임의 고렙들은 렙업하기 힘들어 능력이 정체되기 마련이었다. 정체된 능력의 고렙들간 차이가 나는 것은 현질로 장비를 업글하거나 열심히 노력해 숙련도를 올리는 일밖에 없는데 고렙들의 장비 업글이라는게 기본 수백만 원을 투자해야 조금 나은 정도. 수천만 원은 투자해야 상대보다 티가 나는 정도였다. 그런데 스킬 포인트를 5개 얻는다고 하면 정말 목숨이라도 걸 사람 많았다.
그리고, 회복량의 증가. 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힐링을 했을 때 약 20%의 추가 회복을 했다.
신의 대리인의 경우 약 50% 추가 회복. 사냥이나 전쟁시 사제의 힐링을 받는다면 거의 무적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제가 신의 사자로 임명되면 사제의 능력이 추가로 증가했는데 힐량도 포함되기 때문에 즉 신의 사자인 사제는 힐량이 증가하고 신의 사자인 전사는 회복량이 증가하니 사실상 무적이 된다 할 수 있다.
또한, 신의 대리인은 신의 대리인이 승인한 신들의 종파에 소속 사제들이나 성기사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엔피씨 사제나 성기사는 일반 유저들보다 약했지만, 이들이 뭉쳐서 스킬을 사용하면 전혀 다른 위력을 보였다. 토르는 예전에 범죄 도시 칼리티아를 점령할 때 이미 수많은 엔피씨 사제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의 대리인은 정예 천사병 300명을 소환해 부릴 수 있었다. 원래는 천사장도 소환할 수 있는데 우도벨의 4명의 천사장중 3명이 마계와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 바람에 천사장의 소환은 불가했다. 하지만 정예 천사병 300인의 소환은 규모가 작은 전투에서라면 승리를 보증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신의 대리인은 높은 신성력으로 인한 각종 보너스가 많았다.
토르는 밤새 숲속에서 신의 대리인에 대한 설명을 읽고 또 읽었다. 동틀 녘이 되어 토르는 동료들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토르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실제 몸이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신의 대리인이 된 지금 그의 기분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던 것이다.
토르 팟원들은 바리타에 의해 죽자 모두 접속 종료를 하고 토르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토르와 연락이 안 되자 기다리다가 다들 잠을 잤다. 지금 마을 안에는 깨어있는 팟원들이 없었다. 토르는 식당 겸 주점에 앉아 신의 대리인이 된 기쁨을 만끽했다. 잠을 안 자도 안 피곤했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엇, 토르 형님 어떻게 된 겁니까?”
접속 가능 시간이 되자 제일 먼저 접속한 도나토가 토르를 보고 말했다.
“다들 접속하려면 멀었나?”
“비상연락망을 가동했으니 곧 접속할 겁니다.”
“그럼 다들 모이면 얘기하자.”
도나토는 분위기가 바뀐 토르를 보며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약 30여 분 후.
바리타에게 죽은 모든 팟원들이 접속했다. 여기엔 사제인 엘리야까지 있었다. 엘리야 역시 죽었다가 부활했는데 혼자 파카누 산맥 남쪽 면의 대도시에 갈 수 없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엘리야를 토르가 양해를 구하며 잠시 더 머무르게 했다. 토르는 자신의 팟원 외에도 지금의 사냥엔 함께 하지 못한 다른 부하들까지 접속시켜 같은 팟은 아니더라도 외부통신으로 연결해두었다. 지금 이 자리는 한마디로 토르의 패거리들, 전부 수배령에 숨어 지내는 범죄자가 된 최측근들은 죄다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내가 아까 바리타에게 죽은 뒤 우도벨에게 불려가 신들을 돕는 조건으로 신의 대리인이란 호칭을 받았다.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야.”
토르는 무척 상기돼 있었다. 토르 패거리들은 아무 말 없이 토르의 말을 듣기만 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일 것으로 다들 생각하고 기다린 것이다.
“나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너희들의 수배령을 모두 풀 거야. 그리고 너희들 모두를 신의 사자로 임명한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와 함께할 유저들을 모아 새로운 길드를 만들어 다시 시작할 생각이야.”
“.....................”
“................”
다들 아무 말도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정리가 안 됐다.
그때 침묵을 깬 것은 엘리야였다.
“우도벨이 신의 대리인이란 호칭을 주었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토르님에게 요구하는 것이 뭐였던가요?”
“우도벨이 구체적인 얘기는 안 했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인간 유저들을 모아 천계의 신들을 도와 마계의 유저들과 싸우기를 바란 겁니다.”
그제야, 토르 패거리들이 웅성거리며 입을 뗐다.
“정말입니까?”
“무쏘의뿔하고 다시 싸운다고요?”
천마대전 중계를 보며 마계로 넘어간 수천의 고렙 유저들. 그리고 무쏘의뿔의 위력을 질리도록 봤는데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물었다.
“수적으로 우리보다 까치산, 퍼펙트 애들이 앞서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질적으로 우리가 불리하다고 난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우리도 천명 이상의 고렙을 모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뒷배는 천계의 신들이란 것이지.”
“정말로, 천명 이상 고렙을 모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플루마가 이끄는 동해의별만 해도 300명이야. 게다가 정의연합과의 전쟁에서 막판에 우리에게 붙었던 배신자들. 그들을 활용하면 1,000명은 충분히 모을 것으로 보는데?”
패거리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