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65)
무쏘의뿔이 이끄는 대군이 티포족의 성을 떠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민트’족의 성 앞에 섰다. 인구 6만의 민트족 역시 티포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티포족이 대마왕 밧소뎀의 왕국과 국경을 맞닿아 잦은 충돌을 빚었다면 민트족은 ‘토통가’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잦은 충돌을 빚었다.
무쏘의뿔이 외곽 침공을 통해 거대 몬스터를 얻기 위해선 토통가 족을 쳐야 했는데 그 가는 길에 티포족과 민트족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민트족을 쓰러뜨리고 지나가야 했다.
“해 질 무렵 성 밖에서 시위하게나. 그 틈을 노려 나와 암살자 유저들로 해서 민트족의 우두머리를 잡겠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쪽에 마법사라도 있다면···.”
까치산호랭이 길드엔 과거 대양의바람 길드의 암살단인 ‘검은바람’이 있었다. 이들이 모두 길탈을 하고 까치산호랭이 길드가 창설될 때 모두 가입했는데 30인의 고렙 암살자들이었다. 이들과 검은바람 단장이었던 ‘미스트’, 무쏘의뿔과 암살자 5인방. 총 37인의 고렙 암살자들이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암살하는 데 문제없다고 본 것이다.
“충분하다고 봅니다.”
헤임달의 걱정을 미스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무쏘의뿔은 외곽지역을 침공하는 데 있어 전투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거대 몬스터를 얻는 게 최우선이었지만 외곽지역의 주민들을 흡수해 병력을 늘리는 것도 원했다. 무엇보다 전투로 인해 엔피씨인 자신의 병력과 외곽지역의 마족들이 죽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유저들로 적의 우두머리만 죽여서 전투를 끝내고자 했다.
“그럼, 저희 쪽 14인 팟이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14명은 우루,두루의 머리에 탈 수 있는 최대 인원이었다.
헤임달은 암살자들로만 적진 한복판에서 중급 마왕 수준의 민트족 우두머리와 싸우는 것에 걱정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도 함께할 테니까.”
다들 이삐를 쳐다봤다. 이삐는 암살자였고 무쏘의뿔과 항상 함께하기로 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그 팟원들은 암살자가 아니었다.
이삐가 유저들의 의문을 푸는 한마디를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고르키가 사용했던 투명망토가 있어.”
“거짓말.”
루가 이삐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 순간 루 뿐만 아니라 모든 유저들이 믿을 수 없는 눈길을 보냈다.
이삐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는 돈 주고 샀고, 일부는 토르팟을 뒤치기해서 뺏었다. 우리가 토르팟과 싸운 것은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랬다.
얼마 전에 이삐팟이 토르팟과 싸워서 토르팟이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떤 이는 이삐팟이라면 가능하다고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아무리 이삐팟이라고 해도 토르팟을 상대로 이기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삐팟은 5명이고 토르팟은 항상 7인 이상을 유지했다. 게다가 이삐팟도 그렇지만. 토르팟도 전원이 랭커였다. 사냥팟인 이삐팟과 달리 토르팟은 쟁으로 다져져 있어 PVP에서 토르팟이 이길 것이란 걸 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토르팟에 뒤치기해서 투명망토를 뺏었다고? 그걸 우리보고 믿으라고?”
“그럼 이건 뭘까?”
이삐의 말에 이삐가족 전원이 투명망토를 착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모습을 감췄다.
패자의시대에서 투명망토는 암살자들의 은신 스킬처럼 몸을 사라지게 해서 숨기는 역할을 하는 망토로 비싸긴 하지만 구하려면 못 구할 아이템은 아니었다. 다만, 고르키가 드래곤을 잡기 위해 사용했던 투명망토는 단순히 모습을 숨기는 역할뿐만 아니라 마법을 피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고르키가 동면 중인 드래곤을 잡을 때 레어 안에 설치된 각종 마법진들을 이 투명망토로 피해서 자는 드래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고르키의 투명망토가 귀했고 비쌌고 서로 구하려고 애쓴 것이다.
“이럴 수가.”
다들 이삐팟이 모두 고르키의 투명망토를 가진 것이 놀라웠고, 정말로 토르팟을 뒤치기해서 투명망토를 뺏었다는 게 놀랍고 믿기지 않았다. 토르를 아는 사람들은 토르가 뒤치기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증거가 있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고르키의 투명망토는 대양의바람 길드의 운영진들. 즉 토르팟원들만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그럼 헤임달 자네 팟은 공중에 대기하고 이삐팟은 우리를 따라 같이 가도록 하지.”
노을로 하늘이 불타오를 때 백만 대군이 민트족의 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최전방에는 8천 명의 유저들이 섰다. 민트족은 성문을 굳게 닫고 곧 있을 전투를 대비했다. 백만 대 6만.
일방적일 것 같은 싸움으로 보였으나 백만대군이 자리만 지키고 있자 성을 지키는 민트족 간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민트족들은 성 위에서 둘러싼 백만대군을 보자 압박감만으로도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다. 침 삼키는 것도 죄가 될 듯싶은 정적이 지배할 때 뜻밖에 민트족의 뒤쪽. 성안 쪽에서 폭발 소리와 함께 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터졌다.
무쏘의뿔은 일행들과 함께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민트족의 성안으로 침투했다. 암살자들에게 성을 넘는 건 아주 쉬운 일. 이미 그 전에 우루,두루를 타고 민트족의 성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도시의 지리를 파악해뒀다.
무장한 민트족의 병사들이 가득 메운 방안에 수장인 ‘허요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제들이여, 오늘 밤은 밧소뎀의 따까리로 배를 채워 봅시다. 적의 피로 잔을 채워 다 함께 축배를 듭시다. 민트 전사들의 앞길에 영광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민트족의 우두머리 허요나가 외쳤다.
방 안에 있던 무장한 민트족의 전사들이 그에 따라 함성을 질렀다. 방안이 이들의 함성에 가득 차 폭발할 지경이었다.
무쏘의뿔이 방의 입구 쪽에서 은신을 풀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며 타지큰의 씨앗을 방 안쪽으로 던졌다. 민트족의 전사들이 모두 앞을 보고 있어 뒤쪽에서 걸어오는 무쏘의뿔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제일 앞쪽에서 정면을 보고 있던 허요나와 무쏘의뿔의 눈이 마주쳤다. 허요나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무쏘의뿔이 식물의 친구 스킬은 걷는 도중에 완성되었고 타지큰 씨앗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폭발하듯 터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방안 가득 타지큰들이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민트족 전사들이 놀람과 동시에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타지큰의 수면 가스에 모두가 중독되어 깊은 잠에 빠졌고 타지큰들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주변의 민트족 전사들을 씹어먹었다.
마치 타지큰의 먹방쇼를 보는 것 같았다. 방안 가득 타지큰들이 민트족 전사들을 씹어먹는 소리로 채워졌다. 무쏘의뿔이 선체로 잠에 빠져 있는 민트족의 우두머리 허요나 앞에 섰다.
“시작해볼까?”
무쏘의뿔의 말이 떨어지자 은신 상태에서 암살자 유저가 허요나를 단검으로 찌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옆으로 빠져나갔고 뒤이어 또 다른 암살자 유저가 똑같은 방법으로 허요나를 찔렀다. 30명의 암살자가 가만히 서 있는 허요나를 향해 연합기를 시도한 것이다. 31번째 미스트의 차례가 되었는데 한 대만 더 맞으면 허요나가 죽을 것 같자 미스트가 머뭇거렸다. 순간 연합기가 중단되었다. 미스트는 막타를 무쏘의뿔에게 양보해야 하나를 생각하다가 연합기가 끝난 것이다. 그런데 무쏘의뿔이 미스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스트가 역시 고개를 숙이며 단검을 들었다.
연합기는 중단됐지만 막타를 무쏘의뿔이 미스트에게 넘긴 것이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미스트는 자세를 잡은 뒤 은신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일격을 날렸다.
타지큰의 수면 가스는 대상을 깊은 수면 상태로 만들어 타지큰이 잡아먹는 동안 고통을 느끼지 못했는데 타지큰 외에 다른 존재가 공격하면 곧바로 수면 상태가 풀렸다. 허요나는 타지큰의 수면 가스에 잠을 자다가 암살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수면 상태가 풀렸는데 짧은 시간 31번의 공격을 받았으나 반격도 피하지도 못했다. 수면과 풀림이 31번 연속되다 보니 정신은 깨어있고 몸은 수면 가스로 중독되어 꼼짝하지 못한 채 눈뜨고 죽어야 했다.
혀요나가 미스트까지 연합기가 이어져도 죽지 않았다면 다음 차례는 암살자 5인방을 거쳐 무쏘의뿔로 마무리가 되었을 텐데 그때까지 가지 않고 중급 마왕 수준의 허요나가 죽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쉽게 잡았지만 유저들의 긴장은 격렬한 전투를 치른 것 같았다. 방의 입구 쪽에서 이삐팟원들이 놀라운 눈으로 구경하는 가운데 무쏘의뿔이 타지큰 씨앗을 회수했다. 방 안은 타지큰에게 먹힌 민트족 전사들의 피와 그들이 죽으며 떨군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갇혀 지냈던 것 같다.”
가장 연장자인 칼제비가 이삐가족 길드창으로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지요. 우리만의 세상에서 우리가 최고인 줄로만 알고 있었네요.”
“어찌 되었건 저는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 신이 나는데요?”
이삐가족 길드원들의 만족감과 다르게 이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질투··· 부러움······.
30명의 암살자가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수거한 뒤 다 같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임무를 완성했고 최상의 결과를 얻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혔다. 노술도아의 마족 상점에서 구매한 이 신호탄은 마치 축제 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멋있자 암살자 유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늘로 신호탄을 날렸다.
성 밖의 8천 유저들이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민트족의 성안으로 들어왔다. 민트족의 수뇌부가 모두 죽자 일반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무쏘의뿔에게 흡수된 것이다.
그리고 이날 밤새도록 민트족의 하늘은 8천 명의 유저들이 쏘아 올린 불꽃으로 수를 놓았다.
마족 상점에서 산 폭죽은 소마 대륙의 상점에서 파는 폭죽에 비해 훨씬 크고, 예쁘고, 화려하고 멋있었다. 이날 이후로 유저들은 대규모 보스레이드나 전투의 승리 시 폭죽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게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24. 거대 몬스터 쟁탈전.
“파파파파팟 파파팟······.”
“젠장···.”
저쪽 끝에 사람의 형상이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고르키는 한숨을 토하며 얼른 자리를 떴다. 텔레포트로 기존에 있던 곳과 백여 미터나 이동했는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파파파팟.”
엘프 샤도임은 텔레포트를 사용할 줄 모르지만, 그녀의 속도는 텔레포트에 버금갔다. 연속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한다면 샤도임이 쫓아오지 못하겠지만, 정신력을 소모하는 스킬과 다르게 그냥 빨리 뛰는 샤도임은 정신력을 소모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텔레포트를 연속으로 사용했어도 떨쳐내지 못하면 그때는 목숨을 내놔야 한다. 흑마법사인 고르키는 도망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대마왕 밧소뎀이 지배하는 곳은 고르키에게 수배령이 내려져 있기에 들키면 안 됐다. 혹시라도 정체가 탄로 나서 무쏘의뿔이 직접 오면 그때는 답이 없다.
고르키는 샤도임에 쫓기며 마계 외곽지역으로 도망치는 중으로 샤도임은 떨쳐내지 못해도 밧소뎀의 지배지역은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샤도임이 달라붙자 일단 살고 봐야 했기에 외곽지역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있었다.
샤도임이 가지고 있는 화살은 이미 모두 사용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샤도임이 착용한 장비의 기능 중에 실제 화살이 아닌 마법 화살을 사용하는 것도 있었고, 나뭇가지든 풀이든 길쭉하다면 다 잡아서 화살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위력은 화살보다 떨어져도 워낙 렙이 높고 장비가 좋고 숙련도가 높아 결국 화살과 다르지 않았다.
‘이대로는 곤란해.’
벌써 열흘이 넘게 추격전을 벌이고 있어 고르키는 피곤했다. 상대도 힘들 거란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지만, 추격전이 길어지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고르키는 텔레포트를 연속으로 세 번이나 사용해 샤도임과의 거리를 벌렸다. 정신력의 회복 속도보다 스킬의 사용이 커서 지금 정신력이 바닥이었다. 텔레포트뿐만 아니라 샤도임의 화살 공격을 막기 위해 마법 보호막을 유지하는데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고 있었다. 지금은 거리를 벌렸으니 마법 보호막을 거두고 빠르게 이동 마법진을 그렸다. 고르키는 남은 정신력을 모두 이 이동 마법진에 쏟아부은 것으로 샤도임과 결판을 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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