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67)
무쏘의뿔이 우루,두루를 불러들이며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공격하라.”
이미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었다. 뿔피리 소리가 파도처럼 대지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백만대군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천천히 발을 맞춰 진격했다. 8천 명의 유저들 중 새로 참가한 유저들은 이런 백만대군이 움직이는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통한 영상으로만 접하다 직접 현장에서 보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솜털 하나하나가 몸을 떠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유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마족 병사들만 앞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화살의 사정거리에 들자 진군을 멈추고 화살을 날렸다. 토통가 족에게 퍼부어지는 화살을 앞쪽의 거대 몬스터들이 막아주며 일반 병사들이 거대 몬스터 뒤쪽으로 피했다.
이들에게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명령을 받은 듯 거대 몬스터 뒤쪽에 숨어서 기다렸다. 그런데 무쏘의뿔의 대군 역시 앞으로 더 나가지 않고 원거리 공격만 퍼부었다. 딱히 목표물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막 쏘았다. 전쟁은 전쟁인데 치열하지 않았고 긴장감도 없었다. 양쪽이 마주 서서 한쪽은 화살을 비롯한 마법 공격으로 퍼붓고 한쪽은 그냥 숨어서 수비만 했다.
한참 동안 이런 상태가 유지되자 토통가 족의 우두머리 프라파라가 껄껄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애들을 앞으로 보내고 뒤를 따라라.”
프라파라는 적들이 단 한 마리의 거대 몬스터를 데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마계의 대규모 전쟁은 거대 몬스터들. 최소한 중급 몬스터들을 앞세운 전면전에서 승부가 났다. 마왕들은 자신의 세력이 위기에 처하거나 상대의 세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나 나섰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거대 몬스터들에 의해 승패가 결정 난다고 할 수 있었다.
프라파라가 보기에 대마왕 밧소뎀의 대장군 무쏘의뿔이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왔지만, 거대 몬스터가 없는 상황에서 거대 몬스터를 보유한 자신의 30만 병력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벽을 등지고 대군을 맞서던 상황에서 이제 공격을 위해 진군 명령을 내린 것이다.
거대 몬스터들은 엄청난 크기만큼이나 맷집이 좋아 백만 대군의 원거리 공격을 다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거대 몬스터들이 전진하는 만큼 백만 대군이 뒤로 물러났고 진형이 붕괴하여 갔다.
일반적인 마족들의 싸움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강한 거대 몬스터라고 해도 죽을 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게 원칙인데 무쏘의뿔이 지휘하는 마족 병사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상대는 기가 살았고 더 세차게 밀어붙였다. 후퇴하는 속도보다 진격하는 속도가 더 빨라 거대 몬스터를 앞세운 토통가 족 병사들이 백만대군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만대군이 이들을 피하다 보니 멀리서 보면 마치 물방울처럼 백만대군 안쪽에 토통가 족의 거대 몬스터를 중심으로 토통가 족 병사들이 뭉치게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싸움이 벌어지지 않아 마치 숨바꼭질처럼 서로가 물결처럼 이동에 이동이 이어졌다. 아무도 죽지 않는 전쟁이었다.
“이제 가자.”
전장의 뒤쪽에서 우루,두루가 날아올랐다. 수직으로 높게 올라간 우루,두루가 아래쪽 전장이 까마득해지자 토통가 족 성 쪽으로 날았다. 해가 지자 빠르게 전장은 어둠에 잠겼다. 그런 어둠 속에서도 전장에선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마계는 전쟁하면 거의 모든 주민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토통가 족 성안은 거의 비어있었다. 대부분 주민이 병사로 성 밖에 있었고 남은 주민들이 병사로서 성벽 위에 있었다.
무쏘의뿔과 헤임달팟, 이삐팟이 우루,두루에서 내렸다. 원래 주민들이 없는 데다 저녁이라 아무도 눈치챈 자가 없었다. 좌표를 콩코노메가 이끄는 흑마법사팟으로 보내자 1분도 안 돼 100명의 유저들이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약속한 대로 조를 나눠 퍼져나갔다. 다시 3분여가 지나자 세 군데에서 각각 100명씩 300명의 유저들이 이동해 왔다. 그리고 다시 5분이 지나자 500명의 유저들이 이동해 왔다. 이때까지 적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고 유저들은 곳곳에 자리를 잡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제일 앞서 넘어온 유저들에 의해 방화가 이뤄졌다. 마법사들이 지른 불길은 아주 크게 솟구쳤다. 멀리서도 확실히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나무가 아닌 돌이나 쇠붙이까지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성안 쪽에서 시작된 불길이 도시를 집어삼켰다.
점령한 도시를 다시 부흥시킬 마음이 없는지라 화끈하게 불을 질렀고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든 토통가족의 성. 도시는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할 판이었다.
“대장님···.”
술래잡기 같은 전투를 보며 이긴다고 생각한 프라파라가 기분 좋게 감상하고 있을 때 뒤쪽. 성안 쪽에서 불길이 솟구치자 얼굴을 구겼다.
“이런 비겁한 놈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프라파라가 앞뒤 재지 않고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최초 발화지점까지 뛰었다.
“꾸웅···.”
건물 수십 채가 충격으로 날아가 버리고 주변으로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프라파라는 약 10여 미터의 크기였다. 적이 확실치 않아서인지 수십 미터까지 키우지 않은 상태였다.
“비겁한 놈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대마왕 밧소뎀의 부하들이더냐? 어서 모습을 드러내어 나랑 싸우자.”
프라파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프라파라의 주변으로 프라파라에 의해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뭉치며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다. 총 3놈으로 대충 프라파라의 형태였다. 크기도 같았는데 이 인형들이 주먹을 날려 프라파라를 후려쳤다.
“애송이들.”
프라파라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에 맞서 자신도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과 주먹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건물 잔해의 인형의 오른팔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버렸다.
“껄껄걸.”
프라파라는 자신의 힘이 훨씬 우위에 있음을 크게 웃으며 표현했다. 그리고 춤을 추듯 주변의 거대 건물 인형 3놈을 무차별 폭행으로 부숴버렸다. 하지만 부숴진 건물 인형들이 다시 뭉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부서지고 부서질수록 입자가 고와지며 점점 더 형태를 프라파라를 닮아가고 있었다.
“엇, 젠장···.”
프라파라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때 바닥에서 검은 손들이 프라파라의 다리를 붙잡았다. 검은 손들은 다양한 형태의 입으로 변하며 프라파라의 다리를 깨물었다. 그러나 프라파라는 자신의 다리가 붙들리자 신체를 강화해 무적 상태로 만들었다.
“이것들이···.”
프라파라가 두 주먹을 강하게 바닥에 내리쳤다.
“꽈꽝.”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프라파라를 중심으로 반경 50m의 땅이 날아갔다. 그 위에 있던 건물들. 건물 인형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영향권 안에 생명체가 있었다면 다 죽었으리라.
“대마왕을 앞둔 상급 마왕 수준이군.”
무쏘의뿔이 바닥에 두 주먹을 내리치느라 상체를 구부린 프라파라의 허리 위쪽에 모습을 드러내며 강렬한 일격으로 내리찍었다.
“읔!”
프라파라가 그대로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무쏘의뿔의 일격이 상급 마왕인 프라파라를 눌러 버린 것이다. 그리고 무쏘의뿔이 바닥에 처박은 프라파라의 얼굴 앞쪽에 분신을 만든 후. 독연막탄을 터트렸다. 20초간 상태 불능···. 무적 상태인 프라파라였지만 독에 중독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20초간 무적의 프라파라를 멈춰놓고 무쏘의뿔은 프라파라를 쫓아 달려온 부하들. 중급 마왕 한 놈과 하급 마왕 4놈을 상대했다. 이미 천 명이 넘는 유저들이 성안 쪽으로 넘어온 상황. 이들이 프라파라의 부하 마왕들을 상대했고 헤임달팟과 이삐팟이 프라파라를 상대했다. 무쏘의뿔은 일단 하급 마왕들을 유저들과 함께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마계의 한 지역을 상급 마왕이 다스린다면 그 밑으로 중급 마왕이나 하급마왕도 거느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토통가 족을 상급 마왕인 프라파라가 다스렸고 그 밑으로 중급 마왕 한 놈과 하급 마왕 4놈이 있었다. 상급 마왕이 부하로 거느리는 마왕의 수는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보통 상급 마왕은 중급 마왕 두 놈과 하급 마왕 4놈 이상을 거느릴 수는 없었다. 프라파라는 중급 마왕 한 놈과 하급 마왕 4놈을 거느린 것으로 만약 세가 더 커지면 중급 마왕을 한 놈 더 거느리게 될 터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무쏘의뿔은 일단 프라파라의 손발을 먼저 끊기로 했다. 유저들에 의해 신체가 구속된 하급 마왕을 향해 암살자 5인방과 함께 연합기를 날렸다. 무쏘의뿔이 분신 연합기까지 동원했다면 죽었을 테지만 분신 연합기는 아꼈다. 그 바람에 하급 마왕놈의 피를 70%까지 뺐지만, 더 공격하지 않고 또 다른 하급 마왕에게 달려갔다. 나머지 30%의 피는 유저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두 번째 하급 마왕놈은 독연막탄으로 중독시키고 이동했다. 20초간 상태 이상에 빠진 프라파라에 비해 하급 마왕놈은 약 40여 초간 상태 이상에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 유저들과의 싸움에서 40초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200명의 유저들이 가만히 서 있는 하급 마왕 한 놈을 잡는데 40초 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유저들이 계속해서 성안 쪽으로 넘어오는 상황. 빠르게 하급 마왕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무쏘의뿔과 유저들에의해 3놈의 하급 마왕이 처리됐을 때. 프라파라가 중독에 풀리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는 무적 상태인 자신에게 열심히 칼을 휘두르고 있는 무쏘의뿔 분신이 있었다. 숙련도가 올라 이 분신은 약 55%의 무쏘의뿔의 공격력을 갖고 있었다. 같은 무적 상태에서 프라파라는 무쏘의뿔 분신과 난타전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 무쏘의뿔은 마지막 하급 마왕을 죽음 문턱까지 몰아넣고 300명의 유저들과 피를 튀기며 싸우고 있는 중급 마왕에게 타지큰 씨앗을 던졌다.
중급 마왕과 유저들간의 균형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막타와 마왕템에 연연하지 않는 무쏘의뿔이 중급 마왕이 죽자 타지큰 씨앗을 회수하고 천천히 프라파라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프라파라는 독 안에 든 쥐.
헤임달 팟원들이 프라파라의 무적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를 모르는 프라파라는 참으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상급 마왕은 소마 대륙의 에이션트 드래곤 수준이었다. 에이션트 드래곤 중에서도 센 놈이 있고 상대적으로 약한 놈이 있기는 했는데 상급 마왕은 평균 이하의 에이션트 드래곤 수준. 그런 상급 마왕을 지금 가지고 놀 듯하고 있었다.
무쏘의뿔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지 않아서 유저들끼리 상대하고 있었다.
프라파라가 처음에 혼자서 성안 쪽으로 뛰어들었을 때 암흑사제인 세크메트가 암흑력을 이용해 프라파라가 무너뜨린 건물의 잔해를 이용해 일종의 골렘을 만든 것이었다. 이 골렘들은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적하고만 싸웠다. 즉, 프라파라의 모습으로 골렘을 만들자 이 골렘들이 프라파라만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한 것이다. 상대가 인간형 마왕이 아닌 다른 형태였다면 골렘들의 모습도 그에 따랐을 것이다. 어쨌든 이 골렘들은 보스몹들을 상대로 한 대마왕 헬사곤의 크라르의 주요 스킬중의 하나였다. 만약 세크메트가 숙련도가 높다면 이 골렘들의 능력이 더 올라가고 숫자도 늘어나 상대가 무척 힘들어질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세크메트의 골렘들로 프라파라를 상대하자 상대적으로 시간의 여유가 생간 콩코노메가 얼마 전 쌍두 와이번 아리우루스 떼를 한꺼번에 잡을 때 썼던 역시 헬사곤의 크라르의 스킬로 프라파라의 다리를 묶은 뒤 공격했고 정령사인 갈리 역시 각종 정령들로 프라파라를 붙들어 지치게 하였다.
프라파라의 무적이 풀릴 때쯤 무쏘의뿔의 분신도 사라졌다. 대마왕 컬리큠을 죽이며 획득한 ‘컬리큠의 영혼 반지’에 있는 분신을 만드는 스킬은 10분간 유지 가능한 분신을 만들었다. 프라파라의 무적스킬이 10분의 사용시간인 것이다.
무적이 풀린 프라파라는 콩코노메와 갈리가 스킬로 붙들고 늘어지자 난감해했다. 거기에 더해 세크메트가 프라파라가 있는 지역에 저주를 걸어 프라파라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공속, 이속이 대폭 줄어들고 명중률을 낮춰 프라파라의 공격력을 사실상 낮춰버린 것이다.
“그동안 평화롭게 잘 살았지? 거대 몬스터들을 넘기면 목숨을 살려주지.”
“목적이 그것이었나?”
프라파라의 앞에 선 무쏘의뿔이 대화를 시도했다.
전투에 동원되는 다 자란 거대 몬스터는 마족 병사들과 달리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새로운 우두머리에게 곧바로 충성하지 않았다. 새로운 주인을 각인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게 꽤 어려웠다.
“그럼 뭐하러 이곳 촌까지 왔겠어? 그동안 천계와 싸우느라 우리 쪽 거대 몬스터들의 소모가 컸다. 너도 마족의 일원으로 천계와 싸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들 주는 게 마족으로서 의무 아니겠냐?”
프라파라가 뜻밖에 입을 다물고 생각하는 듯했다. 거대 몬스터를 빼앗더라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콩코노메의 말에 무쏘의뿔이 프라파라에게 그냥 말을 던진 것인데 프라파라가 화를 내지 않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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