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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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쫑이아빠
작품등록일 :
2019.04.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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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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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시대 2 (73)

DUMMY

노인은 나무 위쪽 가지를 타고 이동하며 숲의 아래쪽을 주시했다. 높은 곳에서 보니 곳곳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잡목들의 잎사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기다렸다. 굳이 저들을 다 쫓아가서 죽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면 모를까.


노인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아래쪽에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중으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기도 했다. 그중 한 놈이 노인이 있는 나무 쪽으로 오자 노인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남자 놈을 발로 밟았다. 충격으로 바닥에 나뒹굴던 놈을 쫓아 노인이 팔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가슴에 찔러넣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한쪽을 뾰족하게 만들어 노인은 무기로 사용했다.

이번에 남자 놈을 죽일 때는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충분히 다른 놈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였기에 이쪽으로 다른 놈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자리를 떴다. 이미 나무 위쪽에서 다른 놈들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노인은 자기 쪽으로 오는 다른 놈의 방향으로 마중을 나갔다.


알고 있는 자와 모르고 있는 자의 싸움. 노인은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그 옆을 지나가는 또 다른 놈의 머리를 나뭇가지로 후려쳐 쓰러뜨린 후 뒤에서 찔러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무 위에 올라가 기다렸다. 노인이 사냥하며 소리가 났던 쪽으로 다른 놈들이 몰려들며 난투를 벌였다. 8명이 서로 죽이자고 싸웠다.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남자들은 싸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마치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게 점수를 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 좀 전에 물속에서는 많이 죽였지만, 지금은 기다리며 한둘 죽이는 정도. 싸움이 격렬해지며 주변 숲을 배회하던 다른 놈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어느새 이곳은 전장이 되어 죽고 죽이는 싸움이 이어졌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살육의 현장을 나무 위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천천히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세 놈이 20여 구의 시체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모두 피투성이에 지쳐 있었다. 이들은 오직 맨몸, 맨손으로 싸웠고 살아남은 놈들이었다.


그중 한 놈이 자신의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노인이 휘두른 나무에 머리를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지쳐 있던 놈이라 머리를 맞자 바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런 그를 노인은 가슴에 나뭇가지를 찔러 넣어 숨통을 끊었다. 다른 두 놈의 눈에 후회하는 빛이 어렸다.

이들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생각을 못 했고 지칠 때를 기다려 노인이 나타날 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이들의 눈에 노인이 노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 실험 참가자들은 모두 똑같은 조건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평소의 능력과 경험.


노인이 두 놈 중 한 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나무 단창을 들고.

남자 한 놈이 숲속으로 도망쳤고 노인의 타겟이 된 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무기를 가진 사람과 무기가 없는 사람의 싸움. 무기 가진 사람이 서툴고 무기 없는 사람이 격투 전문가라면 모를까 서로가 비슷하다면 승부는 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노인은 격투 전문가를 능가하는 경험자였다. 패자의시대 게임을 하며 사람은 물론 수많은 몬스터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상대도 그만큼의 경험치가 없다면 같은 조건에서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가상현실 속에서의 그랜드마스터.


남자가 싸우겠다고 덤볐으나 노인의 나무 단창에 팔다리를 두들겨 맞았고 이어 머리 그리고 가슴을 찔렸다. 남자가 숨을 거두고 노인이 남자의 가슴에서 나무 단창을 뽑아내는 순간 주변의 시야가 바뀌었다.


좀 전에 도망치던 놈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놈은 어찌 된 일인지 상황파악을 못 하는 것으로 보였다. 노인의 손에 있던 나무 단창도 사라졌고 맨몸에 두 명의 남자가 모래사장 위에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오른쪽에 푸르고 투명한 바다와 그 바다와 짝을 이루는 파란 하늘. 왼쪽으로 그림 같은 야자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야자수 가지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이곳은 백사장이 크고 넓은 야자수 숲이 있는 작은 섬이었다.


아마, 실험 참가자들이 모두 죽고 둘만 남을 듯했다. 도망치지 말고 승패를 보라고 무인도에 가둬둔 것이고.

노인이 상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상대도 상황을 파악한 듯 팔을 올려 싸울 준비를 했다.

노인이 상대와 일정 거리에 다다랐을 때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상대의 하체 쪽으로 태클을 시도해다. 상대가 이를 뒷걸음질로 피했고 노인은 태클이 실패하자 곧바로 바닥을 구르며 상대의 발을 건드렸다. 상대가 몸의 중심을 잃고 주춤하는 사이 노인이 모래를 한 주먹 상대의 얼굴에 뿌렸다. 상대가 모래를 얼굴에 맞고 ‘어’하는 사이 노인이 상대의 아래 급소를 손등으로 후려쳤다. 상대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노인이 상대의 몸을 뱀처럼 휘감아 몸을 죄며 관절을 꺾었다.


‘와, 이런···.’

상대는 자신이 죽었음을 알았다. 화면이 바뀌었고 곧이어 머신에서 일어섰다.

“저놈 대체 누구야?”

방안에 백여 대의 머신들이 세워져 있었고 한쪽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듯 관람하고 있는 건장한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스톤, 운이 좋아 마지막까지 버텨냈구나.”

스톤이 고개를 숙였다.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과 달리 스톤에게 말을 건넨 사람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너희들은 지난 3개월간 가상현실을 통한 훈련을 해왔다. 교관은 충분하다고 판단해 상부에 실전 테스트를 요청했는데 아쉽게도 실패했다. 앞으로 너희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3달간 다시 훈련을 시행할 것이고 다시 테스트를 받게 될 것이다.”

“오렌 교관님, 상대가 혹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아닙니까?”

교관 오렌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프로그램은 아니다. 너희들이 저 사람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때. 우리는 가상현실이 아닌 실전 훈련을 시행할 것이다. 너희의 몸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과 국가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장님, 저 남자가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저희가 실전 훈련을 하게 됐을 때도 저 남자와 같이합니까?”

“저분은 너희를 훈련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이보그 마스터이다.”

“우와와아아아아아······.”

백 명의 남자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노인이 눈을 뜨자 자신의 방 안에 있는 머신과 다른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만큼 넓은 홀 안에 껍데기를 씌우지 않은 머신 한 대와 그 주변으로 수많은 기계장치가 보였다.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그 기계장치들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모니터만 수십 개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김태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노인을 맞았다. 김태호 뒤에는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서 있었는데 이들은 퓨쳐홀릭 사이보그 연구소의 소장과 선임 박사들이었다. 노인이 몇 번 얼굴을 봤지만, 이들과 따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이들 사이엔 항상 김태호가 있었고 김태호의 허락 없이 이들은 노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재밌었네. 패자의시대와는 다른 색다른 게임이었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어르신의 노력으로 저희의 사이보그 분야가 큰 발전을 이루게 됐습니다.”


노인이 있는 곳은 퓨쳐홀릭의 사이보그 연구소였다.

사람의 몸을 뇌를 제외하고 기계 몸으로 대체했을 때. 기계 몸의 능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없었는데,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군사용으로 사용했을 때는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풀사이보그인 노인을 통해 최근에 그 난관을 넘게 된 것이다. 풀사이보그 몸을 움직이는 뇌의 인식률. 동기화율이라고 하는데 이를 높이는 방법으로 가상현실을 통해 인간의 뇌와 기계 몸의 동기화율을 높이는 것이다. 노인이 상대했던 백 명 남자들은 멀쩡한 신체를 풀사이보그로 이식한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었다. 가상현실 게임의 지존인 노인의 경험을 풀사이보그 군인들에게 전수함으로써 그들을 훈련하는 것이 노인이 이 연구소에 온 까닭이었다.


김태호의 뒤에 있는 박사들은 노인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노인을 상대로 각종 실험을 하고 싶었는데 김태호가 허락하지 않아 마치 좋은 먹잇감을 두고 군침만 흘리는 맹수의 모습과 같았다. 지금 이 방도 노인이 군인들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에 참여했을 때 최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마련된 방이라 여러 장비가 많았다. 짧은 시간 최대한 정보를 뽑기 위한 장치들.


김태호와 함께 노인이 방을 나섰다. 이들은 곧바로 연구소 앞의 비공정에 올라탔다.

연구소에 있을 때는 조심스러웠지만, 연구소를 떠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김태호였다. 연구소 박사들의 요청에 노인을 실험에 참여시켰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던 김태호였다.

노인을 집에 모셔다드리기 전에 단둘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도란으로 가실 건데 괜찮으시겠죠?”

“응. 그렇게 하세나.”


‘도란’은 김태호가 운영하는 고급 한정식집으로 예약제로 운영되는 식당이었다. 주로 정부 관청 재계의 모임에 이용되는 곳이었다. 노인은 원래 밥을 많이 먹지 않았는데 풀사이보그가 된 뒤로는 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김태호는 맛있는 음식을 노인에게 접대하는 것을 좋아해서 노인은 김태호와 단둘이 곧잘 식사하곤 했다. 노인이 풀사이보그라고 해서 맛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노인이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따지지 않아 그에게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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