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91)
샤도임은 유저들과 달리 마계 통일의 공이 커서 지금 유저들이 받은 호칭의 보상을 능가했다. 게다가 마계에서 머문 세월이 많아 지리를 모를 일도 없었고 또한 발이 빨라 굳이 탈것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어디든 빨리 갈 수 있었다. 그런데 20일이 넘게 무쏘의뿔에게 오지 않았다는 건···.
무쏘의뿔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에는 누가 봐도 근심이 가득했다.
“콩코노메.”
무쏘의뿔의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콩코노메가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말씀하십시오.”
“당장 샤도임을 찾아봐.”
두말 없는 콩코노메가 막사를 나갔다.
안절부절못하는 무쏘의뿔 때문에 분위기가 싸했다.
“어르신 저희도 찾아볼까요?”
헤임달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쏘의뿔이 말했다.
“콩코노메가 알아서 잘 할거네. 나는 이만 바람 좀 쐬고 오겠네.”
무쏘의뿔도 막사를 나갔지만, 항상 따르던 암살자 5인방이나 이삐팟은 이번엔 그냥 혼자 있게 놔뒀다. 밖에서 우루,두루가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쫑이. 이거 어르신한테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개쫑이와 최고야는 게임사의 최고 경영자이자 개발자. 절대 권력자이니만큼 샤도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직접 봐서 다 알고 있었다. 최근에 고르키의 함정에 빠져 붙잡힌 것도···.
“아시잖아요? 개임에 직접 개입하면 안 되는걸.”
“샤도임양이 죽기라도 하면 나도 죽을 것 같은데?”
“하하하. 그때는 저도 같이 죽이려 할 것 같은데요?”
무쏘의뿔은 최고야와 개쫑이의 정체를 아는 두 명의 유저중 하나였다. 나머지 한 명은 되는놈 이었고. 샤도임의 위험을 알면서 얘기 안 한 것으로 자신들을 뭐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즈라코드가 샤도임양을 바로 죽이거나 하지는 않군.”
“즈라코드는 머리가 좋은 마왕입니다. 고르키를 믿지 못하고 있죠. 고르키가 얼마 전까지 자신의 적이었으니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때 빨리 샤도임양을 구출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좋죠. 그런데 다들 모르잖아요. 저희 말고는···.”
“크으······.”
알면서 모른 체하고 지켜봐야 하는 최고야의 마음은 괴로웠다.
“그런데 콩코노메가 샤도임양의 흔적을 찾을 수는 있는가?”
“밧소뎀의 영향권 안에서라면 흔적을 찾기 쉬울걸요. 문제는 외곽지역부터입니다. 거기서부터는 정보를 알 수 없으니까요.”
“미치겠구먼.”
무쏘의뿔 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최고야 였다.
무쏘의뿔은 답답한 마음에 우루,두루를 타고 아디베흐 산 일대를 날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리고 다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샤도임의 안전을 위해 엘프 마을에 남겨 뒀는데 자신을 찾아 마계로 넘어올 줄이야. 어떻게 보면 예상이 되는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엔피씨들은 유저들과 달리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굳건한 끈이 이어졌다. 예전에 암살자 5인방을 떼놓으려고 그렇게 도망 다녔어도 결국 못 떼놓고 지금 함께하고 있듯이. 그리고 신뢰 관계가 형성된 엔피씨들은 배신하지 않았다. 전에 무쏘의뿔이 감옥에 갇혔을 때 상대가 안 되면서도 구출하려고 했던 것처럼 엔피씨들은 유저들처럼 계산하지 않았고 하나뿐인 목숨임에도 아끼지 않았다.
다행히 저녁이 되지 않아서 콩코노메가 보고를 하기 위해 무쏘의뿔을 찾아왔다.
“대장군님. 지금 샤도임님은 우루두루 지역에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걔가 왜 우루두루에 있지?”
“흑마법사 하나를 쫓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흑마법사라면···.”
무쏘의뿔의 머릿속에 흑마법사 하면 딱 한 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고르키를 말하는 건가?”
“고르키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고르키가 마왕 우드무스에 의해 리치가 되었고 오랫동안 마계에서 생활했었으니 마계의 지리에 밝을 것입니다.”
지난 대양의바람 길드와 정의 연합과의 마지막 전투 때 고르키는 자취를 감추었었다. 소마 대륙에서 드래곤들이 고르키를 잡기 위해 애썼지만, 지금까지 잡지 못하고 있고. 다들 마계로 도망쳤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무쏘의뿔도 혹시 몰라 마계 전역에 고르키에 대한 수배령을 내려놓았었다.
‘샤도임이 마계로 넘어왔다가 고르키를 보고 쫓는 것인가? 말이 되긴 하는데···. 혼자서 무리일 텐데······.’
무쏘의뿔의 걱정이 더 커졌다. 마계에서 샤도임에게 위해가 될 일은 없을 것으로 애써 위로했는데 상대가 고르키고 그런 고르키를 쫓아 외곽지역으로 넘어갔다면 샤도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뒷골이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이대로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당장 우루두루로 가자.”
“전쟁은 어떻게 할 건데?”
무쏘의뿔에게 이삐가 퉁명스런 어투로 말했다. 순간 머뭇거린 무쏘의뿔이 대답했다.
“여긴 헤임달에게 맡겨두고 최대한 빨리 샤도임을 찾아와야지. 당장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지휘부 애들과 상의는 하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당연한데 무쏘의뿔은 마음이 급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고서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귓속말로 따로 얘기하지.”
무쏘의뿔 막사 앞에는 우루,두루가 이미 내려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무쏘의뿔이 우루,두루에 올라타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백색 거성을 보며 생각했다.
‘며칠 안에 별일 없겠지.’
“우루,두루야 최대한 빨리 가자.”
우루두루에 있는 생명의 숲은 우루,두루의 고향이기도 했다. 신이 났는지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루,두루가 날개짓을 했다.
3일 만에 생명의 숲에 도착한 무쏘의뿔이 식물과의 교감 스킬로 샤도임의 흔적을 찾았다. 생명의 숲에 있는 나무들이 모두 일러바치듯 무쏘의뿔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이들은 처음 보는 엘프를 봤다고 그리고 그 엘프가 저쪽으로 갔다고···. 얼마 전 생명의 숲의 주인인 데리디아의 퀘스트를 수행한 탓에 생명의 숲 나무들은 무쏘의뿔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무쏘의뿔이 나무들이 가르쳐준 쪽으로 향했다. 거기는 지금은 멸망한 샨다족이 있던 곳이었다.
무쏘의뿔은 자신이 이곳에 또 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명의 숲을 빠져나가며 다시 우루,두루에 올라탄 무쏘의뿔이 하늘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내려봤다. 우루,두루에 탄 모두의 시선이 지상을 향했는데 샨다족이 없어진 이후 이 일대에 특별한 마족의 흔적은 없었다. 무쏘의뿔은 그전에 샨다족이 사는 지역 너머 작은 나라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패자의시대 게임의 마계의 특징은 대마왕이 지배하는 중앙 쪽과 외곽지역으로 불리는 곳에 상, 중, 하급 마왕들이 지배하는 소규모 종족들이 산재해 있었다. 샨다 족이 하급 마왕이 우두머리였다면 그 옆의 작은 나라 규모의 종족은 상급 마왕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봐야 했다.
무쏘의뿔이 그 작은 나라 쪽으로 우루,두루를 몰고 갈 때였다. 샨다족의 도시였던. 지금은 폐허가 된 곳을 지날 때 생명체의 반응이 일어났다. 우루,두루는 생명의 숲에 살던 쌍두 와이번의 우두머리로 이 쌍두 와이번들은 일반 와이번들에 비해 아주 높이 날았다. 그리고 그 높은 곳에서 지상 위에 있는 먹이를 발견하는 놀라운 시력과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우루,두루가 샨다족의 폐허가 된 도시에서 생명 반응을 느낀 것이다. 이를 정신적으로 연결된 무쏘의뿔이 알아챘고. 아마,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작은 점처럼 보일 정도로 높이 날고 있던 무쏘의뿔 일행들이었다.
무쏘의뿔은 지상의 생체 반응에 대해 의심을 했다. 사람의 생체 반응이었는데 이곳에 사람이 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냥하러 온 유저들은 이곳의 지리를 몰랐고 너무 멀어 이곳에 올 수도 없다. 전쟁하러 온 유저들 역시 모두 아디베흐 산이 있고. 샤도임은 엘프였으니 인간의 반응과 다를 테고. 우루,두루는 샨다족의 폐허와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렸다. 그리고 이들은 빠르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폐허 쪽으로 향했다. 고르키가 맞는다면 조심한 필요는 있었다. 소마 대륙에서도 무쏘의뿔 혼자서도 고르키를 죽이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조심했다.
샨다족의 폐허와 가까워지자 무쏘의뿔이 가방에서 일명 ‘진실의 창’이라 불리는 그린 드래곤 하브로서스의 손거울을 꺼냈다. 이 손거울을 통해 보면 숨겨진 결계나 환술 마법진들을 볼 수 있었다. 무쏘의뿔이 도시 여러 곳을 비춰봤으나 숨겨진 마법 함정들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상대는 이쪽 인원이 이곳에 온 것을 모른다는 것이기도 했다.
무쏘의뿔이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을 깨고 빠르게 텔레포트를 연속으로 사용하며 생체 반응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이런···.”
이삐가 혼자서 대책 없이 달려가는 무쏘의뿔을 향해 혀를 찼다.
“우리도 빨리 가자.”
무쏘의뿔이 몇 차례의 텔레포트를 사용하며 모습을 드러낸 짧은 순간 시야에 사람의 모습.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고르키가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고르키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얼굴이 마주쳤다. 이미 그 순간에 무쏘의뿔은 단검을 앞세워 고르키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고르키가 빠르게 짧은 주문과 함께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저었다. 고르키의 주변에 수 미터에 이르는 두꺼운 옅은 흰색의 벽 같은 보호막이 생겨났고 무쏘의뿔의 단검이 보호막에 닿았다. 무쏘의뿔이 단검이 보호막에 닿았음에도 있는 힘껏 최대의 힘을 쥐어 짜내며 계속 단검을 찔러 들어갔다. 놀랍게도 고르키의 보호막을 무쏘의뿔의 단검이 뚫고 들어갔다.
‘이건 드래곤의 브래스를 막기 위한 보호막인데···.’
“즈라코드. 어서 저년을 죽이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샤도임을 즈라코드의 정예 병사들이 커다란 쇠사슬로 목과 사지를 묶었다. 그리고 그 끝을 키가 5m는 됨직한 거한이 붙잡고 샤도임을 가슴 앞쪽으로 들어 올렸다. 샤도임이 마치 헝겊 인형 같아 보였다. 거한이 손을 쓴다면 여린 샤도임은 순식간에 뭉개지거나 찢겨 나갈 것으로 보였다.
“후후후. 뭐가 급하지? 대장군은 이 년이 붙잡힌 것을 모르는데. 좀 더 데리고 정보를 캐내면 어떨까 싶은데···. 난 중앙 쪽의 정세가 궁금하거든.”
고르키가 인상을 썼다.
‘오래 있으면 안 되겠군.’
“알아서 하시오. 하지만 이년은 당신보다 더 셀 수도 있어. 병신을 만들어 놓고 심문을 해도 해야 할 걸.”
“인간이 그렇게 센가?”
“이년은 인간이 아니야. 엘프라고 하지. 물론 밧소뎀의 대장군은 인간이지만 대마왕하고도 맞싸울 정도니···.”
“흐흐흐흐. 재밌는 얘기군. 밖의 일들이 무척 궁금해지는걸.”
“그럼 난 이만 쉬러 가지.”
고르키가 주문을 외우자 홀 안의 곳곳에서 검은 기운들이 고르키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법진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흩어지고 있었다. 홀 안에는 사방 가득 다양한 마법진들로 수놓아 져 있었다. 한동안 고르키는 마법진과 결계를 해체하고 이곳을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숙소에서 분신을 하나 만들어 침대에 눕혀놓고 고르키 본체는 유체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숙소를 나와 성을 넘어 빠져나왔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