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101)
39. 재회.
무쏘의뿔이 선봉에 서서 모든 유저들들 이끌고 퇴각하는 적들을 쫓았다. 그리고 우다르바의 태양의 표면 밖에 있던 마족 병사들. 살아남은 수십만의 마족 병사들도 뒤를 따랐다. 2백만의 병력이 수십만으로 줄어든 것이다.
신들이 인간 유저들을 피해 도망치는 묘한 상황.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 아래에 도달하자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모두 걸음은 멈추었다.
무쏘의뿔도 다리 밑에 다다르자 잠시 고민을 했다.
‘이 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천계란 얘긴데···.’
백색 거성 주변으로 본드래곤이 맴돌고 있었는데 이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에 브레스를 뿜지는 않았다. 드래곤의 브레스도 소용없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무엇보다 본드래곤들이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에 브레스를 뿜으려 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남고. 우리만 쫓아간다.”
무쏘의뿔은 연결 다리를 오르려고 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멈췄다. 원래 상급 마왕들과 콩코노메까지 백색 거성에 남기고 고르키만 데리고 다리에 오르려고 했다. 고르키나 콩코노메 둘 다 리치였지만 콩코노메는 밧소뎀이 주인이었기 때문에 남겨둔 것이고 고르키는 자신이 주인이라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리치인 고르키는 설사 천계에서 죽더라도 부활이 됐으니까 다른 엔피씨들처럼 아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잠깐.”
뒤를 돌아보던 무쏘의뿔이 콩코노메와 고르키를 보며 말했다.
“너희들 여기 백색 거성을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오염시킬 수 있나?”
“상대가 신들이라면 결국 정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어렵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라도 해봐.”
무쏘의뿔은 백색 거성을 점령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로 인해 이곳은 천계와 끝없이 전쟁의 중심이 될 것인데 이 성을 지키고 있다가는 그 피해가 너무 크다 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을 성이니까 천계 놈들도 갖지 못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흑마법사들은 각종 저주 스킬에 능했고 고르키와 콩코노메, 그리고 마족 흑마법사들이 힘을 합치면 백색 거성을 폐허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백색 거성은 강력한 각종 저주가 중첩되면서 흑색 성으로 바뀌었다. 이제 천계에 소속된 자들은 이 흑색 성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각종 저주와 싸워야 할 판이었다. 환청과 환영, 독과 무기력과 능력 감소. 그리고 전장에 축적된 각종 언데드들···.
무쏘의뿔은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앞에 섰다.
“그럼 갈까?”
일단 신들을 쫓기로 결정한 이상 유저들은 빠르게 연결 다리를 타고 달렸다.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가 워낙 굵어 나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바닥도 마계의 일반적인 황무지에 비교하면 잘 다져진 고속도로 같았다. 경사 때문에 오르기 힘들어서 그렇지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참 앞서 도망친 신들이라 뒷모습이 보이지는 않았고 유저들이 숨을 헐떡이며 다리를 오를 때 없던 구름이. 사방을 가득 메운 안개를 만나게 됐다. 너무 짙은 안개라 다들 바짝 붙어 상대의 등만 봤고 제일 앞에선 유저는 바닥만 내려보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갑자기 안개가 끝나며 들어온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숲과 계곡이었다.
안개를 벗어난 유저들의 안내창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주르륵 올라갔다.
천계······.
누구나 천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광이 상상 그대로 펼쳐졌다.
“여기가 천계구나.”
“역시, 천계군.”
주변의 아름답고 그림 같은 풍경은 그렇다 치고. 적들이 안 보였다.
신들도 신들이지만 천계라면 천족 병사들이나 천사병들이 달려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그냥 숲과 나무, 강과 호수뿐이었다. 그리고 각종 동물과 새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전혀 싸울 분위기도 장소도 아니었다.
“나이스님 추적이 가능하겠습니까?”
“한번 해보죠.”
까치산호랭이 길드의 부길마이자 최고의 탐험가 직업을 가진 나이스가 나섰다. 패자의시대 게임의 많은 직업 중 추적술을 사용할 줄 아는 직업군이 많았지만 그중 탐험가는 원래 숨겨진 던전이나 유적을 찾는 게 장기였고 탐험가의 추적술은 바로 숨겨진 던전이나 고대의 유적을 찾는 스킬을 응용해 사용했는데 아주 작은 단서, 미세한 마나의 흐름까지 포착할 수 있는 추적의 달인이었다. 특히 나이스는 최고의 탐험가였기에 그쪽 방면의 숙련도가 높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적자였다.
“3천 명의 유저들인데다 숲을 지나간 거라 흔적을 찾기는 쉽네요. 충분히 거리를 두고 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신들의 저항을 받지 않겠습니까? 여기는 천계인데요.”
“어르신 일단 유저들이 모두 접속하면 함께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헤임달은 토르 패거리를 쫓는 데 있어 지금의 인원으로는 그들을 따라잡는다고 해도 퀘스트 저지를 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아무래도 저쪽이 이쪽과 같은 수라면 훨씬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나이스, 우리하고 저쪽하고 거리는 어느 정도로 보는가?”
“하루 반나절 정도로 생각됩니다. 부지런히 쫓아가면 하루 이내로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면 여기서 유저들이 접속하면 다 함께 쫓도록 하지. 그때까지 모두 쉬도록 하세나.”
마계 쪽 유저는 8천 명. 천계 쪽 유저들은 3천이었다. 동수일 때 천계 쪽 유저들을 상대로 마계 쪽 유저들이 이기기 힘들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죽은 유저들이 접속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데. 패자의시대는 게임 도중 죽게 되면 현실 시간으로 12시간 동안 접속 제한이 되었다. 그 기다리는 시간에 다른 유저들이 잠이라도 자고 오도록 한 것이다.
“어르신도 좀 쉬었다 오시죠.”
유저들이 하나둘씩 접속종료를 할 때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최고야가 조용히 다가와 무쏘의뿔에게 물었다.
“나는 괜찮네.”
“그래도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남아서 뭣 좀 할 일이 있네.”
무쏘의뿔의 얼굴은 피곤함이 전혀 없었을뿐더러 미소가 어려 있었다. 사이보그인 무쏘의뿔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잠과 음식으로도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들 쉬러 갈 때 안 쉰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최고야였다.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또한 잘 알기에 유저들이 쉬러 간 사이 뭔가 다른 일을 할 것으로 믿고 접속종료를 했다. 지금 유저들은 모두 전쟁을 하느라 한동안 잠을 못 자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최고야가 마지막으로 접속종료를 하자 무쏘의뿔이 자리를 벗어나 근처 큰 나무에 손을 대었다.
‘식물의 교감’스킬. 말 그대로 식물들과 교감을 나눠 주변 지역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무쏘의뿔은 ‘엘프의 스승’이자, ‘엘프의 수호자’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식물의 교감 스킬은 그 호칭을 획득하며 생긴 스킬인데 마계는 식물이랄 게 거의 없어서 쓰지 않는 스킬이었지만 숲과 나무로 가득한 천계에선 효자 스킬이었다. 천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무쏘의뿔은 이 식물의 교감 스킬을 통해 주변 지형과 지리는 물론 동물들의 분포, 종류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적들이 있다면 그들의 위치나 수, 무장의 정도까지 알 수 있었겠지만 지금 무쏘의뿔이 식물의 교감을 통해 알아낸 바로는 인근에 적들은 없었다. 식물의 교감은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넓은 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무쏘의뿔은 잠을 안 자는 대신 식물의 교감 스킬로 천계의 지역적 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그리고 무쏘의뿔이 접속종료를 안 한 이유······.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를 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왔다.
“난 약속을 지켰다.”
이삐였다.
물론 무쏘의뿔의 시선을 이삐를 벗어나 그 뒤에 있던 여자 엘프에게 쏠려 있었다. 무쏘의뿔이 샤도임을 보고 미소 지었을 때. 샤도임은 무쏘의뿔을 보자마자 앞으로 달려 나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스승님······.”
무쏘의뿔은 샤도임이 더 말을 하기 전에 두 손을 샤도임의 양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샤도임을 일으켜 세웠다. 샤도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샤도임은 엘프 마을에서 영상으로 무쏘의뿔이 싸우다 죽는 모습을 보았다. 불사신인 걸 알지만 자신이 옆에 없어 스승님이 죽게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쏘의뿔을 보자 제일 먼저 죄책감으로 엎드려 용서를 구하려고 한 샤도임. 무쏘의뿔이 샤도임을 가볍게 안아 등을 토닥였다.
“어려운 길을 오느라 고생했구나.”
“앞으로 항상 곁에서 모시겠습니다.”
무쏘의뿔은 반대하지 않았다. 원래 천마대전을 치르기 위해 마계로 넘어올 때 엔피씨인 샤도임이 죽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일부러 샤도임을 참전시키지 않은 것인데 샤도임 없이 게임을 하다 보니 없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터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하고 계산은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이삐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무쏘의뿔이 이삐를 한번 째려보고 가방 안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이삐에게 던져 주었다.
“내 사냥 기록이다. 이 속에서 네가 찾는 비법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삐가 무쏘의뿔의 사냥 기록 책을 손에 쥐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패자의시대 게임의 모든 유저들은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기본으로 자동 설정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냥의 기록이었다. 유저가 이 기록을 설정 창을 통해 안 남길 수도 있지만 원래 기본은 기록이 저장되게 돼 있어서 그냥 그렇게 내버려 뒀다. 이 사냥 기록은 영상이 아닌 문자와 그림으로 저장된 방대한 양의 기록이라 보통 유저들은 이 기록을 읽어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있어도 별 쓸데도 없고 그렇다고 굳이 기록을 안 남길 이유도 없는 그런 게임 내 설정이었다. 이 사냥 기록을 무쏘의뿔이 복사해서 이삐에게 준 것인데. 겉보기엔 한 권의 책이었지만 패자의시대 오베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인 사냥에 대한 기록으로 책의 형태를 한 메모리의 일종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무쏘팟의 완전체가 모였다. 이삐팟과 함께 암살자 5인방도 왔고 콩코노메는 일부러 백색 거성에 남겨 뒀는데 고르키가 걸어놓은 마법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샤도임을 콩코노메가 풀면서 이그드라실 연결 다리를 타고 같이 올라와 버렸다. 그래서 지금 무쏘팟의 완전체가 이뤄진 것이다. 무쏘의뿔은 콩코노메나 샤도임이나 엔피씨라 아끼는 마음에 그들을 떼 놓지만 그들의 무쏘의뿔에 대한 친밀도, 존경심이 과해 알아서 찾아오니 이젠······. 무쏘의뿔은 이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더 강해져 서로가 안전해지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이젠 다 함께 같이 가자.’
무쏘의뿔이 오래전부터 함께했던 엔피씨 팟원들을 둘러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 샤도임님.”
“결국,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하하하”
유저들이 접속하면서 이들이 샤도임을 보자 모두 반겼다. 초기 까치산호랭이 길드원들이라면 샤도임과 같이 전쟁을 했었기 때문에 샤도임의 강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샤도임과 같은 편으로 싸우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고 샤도임을 적으로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한 이들이 많았다. 반대로 토르쪽 패거리들은 샤도임이 떴다 하면 다들 피하기 바빴고 뒤에서 이를 간 공포의 대상이었다.
샤도임은 미소로 유저들과 악수를 했지만,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샤도임도 반가워한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8천의 유저들중 샤도임과 같이 사냥을 하거나 싸운 이들은 사실 매우 적었고 워낙 유명한 엔피씨 궁수였던 탓에 유저들은 모두 샤도임을 우러러보았다. 이 점에서 무쏘의뿔을 보는 것과 샤도임을 보는 시선이 달랐다. 무쏘의뿔은 자타공인 최강의 유저라고 다들 인정했고 대단한 유저라고 생각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무쏘의뿔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샤도임에 대해서는 늘 감탄하고, 우러러보고, 경외 시 했다. 무엇을 하고 안 하고의 차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이끌림이 무쏘의뿔에겐 없었고 샤도임에게는 있었다. 무쏘의뿔은 높은 게임 내 공적치로 인해 엔피씨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되지만, 사람인 유저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무쏘의뿔은 흐뭇한 표정으로 샤도임이 유저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 끝났을 때 토르 패거리를 쫓기 위해 발을 떼었다. 3천의 원정대를 8천의 추격대가 쫓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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