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105)
엘리야가 거대 거미 몬스터 옆에서 자힐을 했다. 이 힐 한방으로 거대 몬스터는 몸을 돌려 엘리야를 보았다. 그리고 거대한 다리. 끝이 뾰족한 다리로 엘리야를 찍었다. 엘리야가 순간이동으로 이 공격을 피한 뒤 다시 한번 자힐을 했다. 거대 몬스터가 엘리야를 상대로 연속 공격을 퍼부었는데 그때마다 엘리야가 요리조리 피하며 자힐을 했다. 보통 힐러들은 사제 직업군이 담당했는데 사제 중 공격형 사제들일 경우 회피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후방에서 힐 스킬을 사용하기는 해도 막상 자신이 공격을 받을 때는 회피기가 없어 난감해지는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정통 힐러들은 강력한 치유와 회복기에 회피기도 갖고 있어 보다 안정적인 힐링이 가능했다.
엘리야는 정통 힐러로서 강력한 마법 보호막에다 회피기를 가지고 있어 거대 몬스터의 공격을 잘 피하면서 확실한 어글을 먹었다. 자고로 어글중에 최고는 힐어글이었다.
거대 거미 몬스터가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화를 내며 더 세차게 엘리야를 몰아붙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도 연합 유저들의 공격으로 거대 거미는 생명력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오직 관심사는 엘리야. 엘리야에게 집중돼 있었다.
“푸우우우 슈우우우우우욱···.”
거대 거미 몬스터가 입에서 사방으로 흰색의 실 같은 것을 뿜었다. 하나로 이어진 게 아닌 짧은 것은 수 미터 긴 것은 수십 미터의 거미줄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얼마나 많은 양을 뿜어대는지 폭설을 연상시킬 만큼 하늘에서 내렸다. 사도 연합 유저들은 잠시 넋 놓고 이것을 보고 있었는데 이 거미줄이 몸에 닿고 나서야 이것이 거대 거미 몬스터의 공격 스킬이란 것을 알았다.
거대 거미한테는 실 같은 거미줄이었는지 몰라도 인간인 유저들한테는 팔뚝 굵기의 두꺼운 밧줄과 같았는데 일부 이 거미줄에 몸이 닿은 유저는 거미줄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데다 모든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독 거미줄이야···.”
일반적인 독과 다르게 거대 거미의 거미줄에 묻어있는 독은 방어력, 공격력까지도 떨어뜨렸다. 게다가 무기력함과 나른함. 그리고 데미지까지···. 안 좋은 모든 것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
사실 사도 연합 유저들은 거대 거미 몬스터가 거미줄을 뿜어댈 때 그것을 그냥 맞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는 잡아야 하는 대상. 적이었으니 좋은 것을 줬을 리가 없는 탓이다. 그러나 워낙 많은 거미줄이 눈처럼 내리자 피하고 피하다 일부 몸에 닿은 것인데 모두 지금껏 게임을 하며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이런 류의 공격에 크게 당황했다. 이미 바닥엔 거미줄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고 지금도 거미줄이 내리고 있었다. 피할 곳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
“휘이이이이이이···.”
마법사 유저들이 바람을 이용한 스킬로 거미줄을 날려버렸다. 그러나 모든 사도 연합 유저들을 바람으로 거미줄을 막아 줄 수 없었는데 이미 수백 명 이상이 거미줄이 몸에 붙은 채 독에 중독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쿵 쿵 쿵 쿵···.”
거대 거미 몬스터가 발을 구르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사도 연합 유저들이 모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거대 거미 몬스터가 갑자기 하늘로 뛰어올랐다.
“끝났군······.”
일부 유저들의 입에서 체념하는 탄식이 터졌다.
“꾸웅.”
하늘 높이 뛰어올랐던 거대 거미 몬스터가 바닥에 착지하자 사방 수 백미터의 지대가 초토화되었다.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모든 게 날아갔다. 땅까지 십여 미터 이상 깊게 팼고 거대 거미 몬스터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사방을 뒤덮은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어떡할까요? 철수해요?”
마법 보호막으로 전신을 휘감고 있는 엘리야가 사도 연합 챗창으로 말했다. 거대 거미의 단순하지만 가공할 위력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유저들이 꽤 있었다.
“엘리야님이 계속 어글을 유지해 주세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토르가 검을 빼 들고 거대 거미 몬스터를 향해 뛰어들었다.
사도 연합의 유저들 중 2500여 명이 죽고 살아남은 유저는 500여 명. 난다긴다하는 유저들이 천계의 거대 몬스터 필살기 한방에 대부분이 죽어버렸다. 힐러 유저들 역시 상당수가 죽었기 때문에 엘리야가 도움 없이 혼자 어글을 잡고 버티는 상황.
“저 혼자 버텨볼 테니까 다른 분들은 부활에 힘써주세요.”
그나마 살아남은 힐러 유저들이 주변의 유저들을 대상으로 부활작을 했다. 힐러 특유의 능력으로 다른 직업군의 유저들에 비해 죽은 비율은 낮았는데 일부는 죽지 않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유저들을 상대로 치유와 회복을 그리고 일부는 부활에 힘썼다. 힐러가 팟에 있으면 좋은 점이 바로 치유와 회복. 그리고 죽었을 때의 부활. 몰살당하지 않는 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결국 시간은 유저편이었다.
“우돌타를 상대로 과연······.”
“인원이 많으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우돌타가 최대한 인원을 잡아주면 좋겠는데요···.”
거대 거미 몬스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계 추격대 유저들이 ‘우돌타’와 사도 연합이 맞붙는 모습을 지켜봤다. 추격대와 사도 연합의 거리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
천계의 거대 거미 몬스터는 ‘우돌타’라는 놈이었다.
사도 연합과 다르게 추격대에는 최고의 탐험가, 모험가 직업군의 유저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의 직업적 특징 중 하나가 새로운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패자의시대 게임에서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게임사에서 공식 홈페이지의 ‘몬스터 도감’에 올라와 있는 경우 유저들은 그 정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몬스터 도감에 등록돼 있지 않은 신규 몬스터는 유저들이 그 정보를 등록해서 다른 유저들도 알 수 있게 했는데 이 경우 직접 싸워봐야 해당 신규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싸워보지 않고 신규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는 게 일반적인데. 고렙의 탐험가나 모험가들은 싸워보지 않고 해당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이게 신규 지역, 신규 몬스터를 상대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상대의 특징과 장단점을 알고 싸우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이 상태에서의 싸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계 추격대는 사도 연합과 다르게 이미 정찰대를 통해 사도 연합의 진행 방향을 앞질러 어떤 몹들이 포진해 있는지 그 정보를 캐냈다. 사도 연합이 거대 거미 몬스터인 우돌타와 싸우기 전에 이미 그들의 진행 방향으로 봤을 때 우돌타와 맞닥뜨릴 것을 예상하던 터였다.
“다들 전투 준비합시다.”
우돌타와 사도 연합의 싸움을 지켜보던 헤임달이 유저들에게 지시했다. 가만히 놔두면 사도 연합이 우돌타를 잡을 테지만 그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이들에겐 기회다.
마계 추격대원들 중에는 고렙의 암살자들이 많았다. 이들이 먼저 움직였다. 은신한 채 사도 연합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접근해 들어갔다.
우돌타가 뿜어댄 거미줄이 멀리 떨어져 있는 마계 추격대가 머무는 근처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곧 우돌타의 필살기가 터지면 미스트는 암살자 대원들과 힐러들을 잡어. 원딜들은 파티별로 점사 목록 작성해서 점사하도록 하고 광역 스킬은 사용하지 마.”
헤임달이 유저들한테 지시는 내렸지만, 암살자 유저들을 제외하고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추격대가 사도 연합을 주시하고 있듯이 사도 연합 역시 뻔히 보이는 추격대를 주시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후 우돌타가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조심.”
추격대 본대는 우돌타와 거리가 멀었음에도 그 충격으로 다들 일정 시간 상태 이상에 빠졌다. 사도 연합이 몰살당한 것에 비교하면 피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추격대의 상태 이상이 풀리자마자 헤임달이 외쳤다.
“쳐라.”
멀리서 구경만 하던 8천의 추격대가 함성과 함께 돌격했다. 그와 동시에 먼저 가 있던, 사도 연합 유저들이 있는 곳 곳곳에서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도 연합 힐러들에게 일격을 날렸다.
죽은 자기편 유저들을 부활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힐러들이 암살자의 강력한 공격을 받자 일부 힐러들은 마법 보호막이 깨져버렸다. 이미 우돌타의 필살기를 막아내느라 마법 보호막이 약해져 있었는데 약해진 마법 보호막을 암살자의 공격이 깨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법 보호막이 깨져버린 힐러들은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을 쳤다. 당황한 이들을 향해 먼 거리에서 화살이 쏟아져 날아왔다. 정상적인 전투였다면 고렙의 힐러들을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신체 주변으로 두르고 있는 마법 보호막을 깨기 힘들었고 어떻게 마법 보호막을 깨고 공격을 성공 시켰다고 해도 회피기술로 피하거나 스스로 치유, 회복을 해버리기 때문에 원래 힐러를 암살하는 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런데 사도 연합의 고렙 힐러들은 우돌타와 싸우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정신력을 소모했고 스킬의 쿨타임에 걸려 있는 데다 마법 보호막은 깨지기 직전의 상황. 이 틈을 비집고 추격대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허무하게 사도 연합이 자랑하는 힐러 군단이 쓰러져 나갔다. 그와 함께 방어력이 약한 원딜들이 무너졌다. 이미 만신창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힐러들의 치유, 회복을 받지 못하자 손대면 톡 터질 만큼 너무나 쉽게 죽어 나갔고 힐러들을 믿고 우돌타에게 돌격했던 근딜들은 후방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돌타와 맞싸우게 된 상황. 혼돈의 사도 연합이었다.
“개새끼들···.”
“니들이 병신이지. 적을 코앞에 두고 뭔 지랄이야. 큭큭.”
추격대는 우돌타와 싸우는 사도 연합은 건드리지 않았다. 외곽의 힐러진과 원딜들을 빠르게 정리했고 사도 연합의 근딜들은 우돌타와 추격대 사이에 낀 형태였다.
사도 연합의 외곽 부대. 힐러진과 원딜들을 모두 정리한 추격대가 우돌타를 에워쌌다.
“그냥 죽어라. 병신 새끼들아.”
“하하하하하.”
마계 추격대가 사도 연합이 우돌타에게 맞아 죽는 것을 구경하며 야유를 보냈다.
우돌타의 어글을 먹고 있는 사도 연합은 이번 타임에 전멸할 것을 예상했다.
우돌타는 자신을 공격하는 사도 연합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을 퍼부었고 그 밖으로 또 다른 적인 마계 추격대가 포위하고 있었으니···. 마계 추격대 쪽에서 간간이 화살이 날아와 사도 연합의 유저들의 몸에 박혔다.
“윽···.”
등에 화살을 맞은 토르가 우돌타를 치다 말고 몸을 돌렸다. 너무나 센, 그래서 익숙한 화살이었다.
“너······.”
추격대원들 속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샤도임의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샤도임은 잘 싸우고 있는 사도 연합 유저들을 상대로 화살을 쏘고 있었다. 직접 죽일 정도의 화살이 아닌 공격의 맥을 끊는 화살로 열 받은 우돌타에게 반격의 기회를 준 것이다.
토르의 머리 위로 거대한 우돌타의 다리 하나가 내려 찍혔다.
“쿵···.”
아무리 ‘신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거대 몬스터의 체중이 실린 다리에 밟히면 죽는다.
이미, 승패가 난 싸움. 우돌타가 버티고 있는 사도 연합 유저들을 빠르게 죽였다.
“자, 이제 우돌타는 우리가 접수한다.”
“와아아아.”
“가자.”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