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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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쫑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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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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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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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시대 2 (107)

DUMMY

41. 암살.



12시간의 휴식이 유저들에게 주어졌다. 일반적으로 난도 높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대규모 인원이 모일 때나, 전쟁 상황에서 모든 유저들에게 똑같이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도 연합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바람에 생긴 여유인데 무쏘의뿔의 우울해 보이자 최고야가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나섰다.

“까치산역에서 번개 모임 갖습니다. 30분 안으로 올 수 있는 사람은 오세요.”

뜬금없는 최고야의 외침에 다들 당황했다. 게임하다 보면 번개 모임이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최고야가 번개 모임을 연다면 일반적인 모임과 달랐다. 최고야가 주도하는 모임에는 먹을 게 많았다. 최고야가 부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을 다 알고 있었다.

“어, 최고야 아저씨 이건 반칙이야. 다들 피곤해 죽겠단 말이야.”

“원래 번개는 그런 맛에 하는 거야.”

“하하, 최고야 형님 아마 이번 번개는 많이 참석 안 할 것 같은데요? 다들 많이 피곤할 겁니다.”

최고야가 지금 번개를 선언한 이유가 바로 이점이었다. 무쏘의뿔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번개를 하려고 한 것인데. 그냥 무쏘의뿔에게 식사나 하자고 하면 무쏘의뿔은 거절할 확률이 높았기에 무쏘의뿔을 끌어내기 위해 번개를 주선한 것이다. 그리고 무쏘의뿔은 사이보그라 잠을 많이 안 자도 됐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잠은 필수였다.


“번개 말고, 약속한 알프스에서 밥이나 사.”

“그건 이번 임무 끝나면 할 생각이고. 번개는 번개야.”

헤임달은 조금 난처했다. 까치산역에서 번개 모임을 한다면 까치산역 인근에서 캡슐방을 하는 자신이 참석 안 할 수가 없었다. 최고야가 무쏘의뿔 어르신 때문에 장소를 까치산역으로 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 가볍게 식사나 할까요?”

“좋지.”

헤임달이 참석을 알리자 사람들이 망설였다. 12시간 잠을 자느냐. 번개 모임에 참석을 하느냐.

까치산역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나은데 거리가 먼 경우 왔다 갔다 이동시간 때문에 12시간을 번개 모임에 다 날릴 수 있었다.


“형님들 번개 모임 잘 하십시오. 저는 이번엔 못갑니다. 하하.”

가고는 싶지만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유저들이 하나둘씩 접속종료를 했다.


“회장님 무슨 속셈입니까? 어르신과 회장님도 잠을 주무시는 게 좋을 텐데요?”

개쫑이로부터 귓속말이 왔다.

“어르신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 풀어 드리려고.”

“두 분 다 괜찮으시겠어요?”

개쫑이는 최고야의 최측근이었지만 무쏘의뿔이 풀사이보그 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최고야와 무쏘의뿔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묻지 않았고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자네도 올 텐가?”

“저는 이참에 팀장급 회의 좀 하고 눈 좀 붙이렵니다.”

“열심히 일하는군.”

“하하하.”


대부분의 유저들이 접속종료를 할 때쯤 최고야가 무쏘의뿔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어르신 곧 뵙겠습니다.”

“내가 참석해야 하나?”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시죠. 준용군도 온다지 않습니까?”

“그러지···.”

무쏘의뿔은 접속종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졸리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태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한두 시간 얼굴이나 보고 집 안 청소나 좀 하다가 다시 게임에 접속할 생각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서너 시간 접속하지 않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


노인이 머신에서 나와 대충 옷을 걸쳐 입었다. 까치산역까지 걸어가도 30분 안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문득 거실에 있는 아로와나 어항에 시선이 쏠렸다. 10년 넘게 키우고 있는 ‘홍미금용’이었는데 노인을 보자 어항 벽 쪽에 머리를 대고 입을 뻐끔거리며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있었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많구나.”

노인이 냉장고에서 슈퍼밀웜 상자를 꺼내 한주먹 쥐고 어항에 넣어 줬다. 평소에 멈춰서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놈인데 슈퍼밀웜을 잡아먹기 위해 빠른 몸동작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로와나는 노인이 패자의시대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키웠던 열대어들을 모두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리였다. 아로와나는 수명이 긴데다 며칠 굶긴다고 죽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폐인인 노인이 키우기 딱이었다. 게임 때문에 애정을 쏟을 수 없지만 젊었을 때부터 취미로 열대어를 키웠기 때문에 습관처럼 아로와나를 관리했다.


노인은 아로와나가 슈퍼밀웜을 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집을 나섰다.

집 밖에는 검은색 대형 세단이 한 대 서 있었다.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였음에도 김태호가 노인을 위해 차를 보낸 것으로 이 차는 노인이 사는 집 근방에 놔두고 김태호가 직접 모시지 못할 때 사용하는 자동차였다.


노인이 차에 오르기에 앞서 앞집 2층 창문을 보았다.

“꼬맹이가 피곤한가 보군.”

다른 때 같았으면 같이 가려고 난리였을 텐데 앞집 꼬맹이 방의 불이 꺼져 있었다.

차는 타고 있는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게 움직였다. 차창 밖을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집 안에 있는 명품 소파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5분여 만에 노인을 태운 자동차는 장준용이 운영하는 캡슐방 앞에 섰다. 김태호와 장준용이 미리 가게 앞에 나와서 노인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오래간만입니다. 어르신.”

“매일 보는데 뭘···.”

게임 속에서는 매일 보지만 현실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기는 했다.


“오늘 번개는 무리였는가?”

“저희끼리 오붓하게 이야기나 하죠.”

원래 모인 사람끼리 식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이번 번개 모임에 참석한 인원이 적었다. 12시간의 자유가 애매했다. 이미 사도 연합을 상대로 잠을 안 자고 쫓느라 다들 피곤에 쩔어 있었는데 번개 모임에 참석하면 도저히 접속해서 게임하기 힘들기에 다들 참석을 안 한 것이다.

헤임달 장준용이야 자기 가게가 있는 곳에서 번개를 하니 기다렸던 것이고. 만약 무쏘의뿔이 아니었다면 장준용도 번개를 거절했을 테지만 장준용 역시 무쏘의뿔을 존경하고 경외했다.

적어도 패자의시대를 하는 유저들 중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쏘의뿔을 경외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 사무실에서 차나 마시죠.”

장준용의 안내로 캡슐방 안으로 들어갔다. 캡슐방 안은 빈자리 한 개 없는 만석에다가 대기자들이 휴게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장준용이 게임 초창기 때부터 워낙 유명한 유저였고 이번 천마대전을 주도하는 간부진이었다. 일반 유저들이 볼 때 장준용은 연예인 이상 가는 스타였다. 당연히 헤임달 장준용이 운영하는 캡슐방은 소문이 자자했고 늘 만석이었다. 장준용이 만약 나서는 성격이었다면 게임 방송에 출연하는 것으로 돈방석에 앉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어 오랜만이야. 잠 안 자고 나왔나?”

“어르신 오신다고 해서 기다렸죠.”

세크메트 송연화가 사무실에 간단한 먹을거리와 차와 음료수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노인이 사무실 주변을 둘러보자 장준용이 말했다.

“그전보다 많이 바뀌었죠?”

“좋아졌구먼.”

“예. 최근에 손님이 늘어서 확장공사 하면서 사무실도 좀 개조했습니다.”

원래 장준용의 캡슐방은 건물 지하 1층에 있었다. 그것을 장사가 잘 되다 보니 지하 2층까지 인수해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가상현실용 캡슐이 꽤 고가라 개인이 캡슐방을 차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그런 점에서 장준용은 확실히 성공한 유저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다들 오고 싶었을 겁니다. 다음엔 정식 현모를 한번 하도록 하죠.”

“그러잖아도 현모 때는 내가 전에 약속한 것도 있고 하니 알프스에서 하도록 하지.”

“네··· 하하···.”

장준용은 노인 못지않게 현실의 최고야 김태호를 대하기 상당히 껄끄러웠다. 나이도 꽤 있는 편인데 나이에 맞지 않는 화장과 옷차림을 하고 다녔고 돈 많은 티를 너무 내서 거부감도 들었다. 게임 하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개인 신상을 묻지 않는 게 기본이었다. 장준용은 김태호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돈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고 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엘리야님 하고는 가까운 사이이신가 봐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 송연화가 물었다. 김태호 역시 궁금하기는 했지만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는데 송연화가 먼저 말을 꺼내자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호는 패자의시대 개발자이자 기획 총 책임자인 개쫑이 김언도에게 무쏘의뿔과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세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건··· 예전에···. 게임 초기에 내가 엘리야님한테 신세를 많이 졌었네. 그걸 보답하는 차원이야. 사람이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노인에게 엘리야와의 관계를 더 따져 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이들은 한 시간 가까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 노인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끝났다. 노인은 사이보그인 자신과 달리 장준용 송연화 부부는 피곤할 것으로 생각한 배려였다. 사실 김태호를 비롯한 일반 유저들은 수시로 접속종료를 하곤 했는데 추격대의 간부진들은 모두 풀접속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리죠.”

“고맙네.”

노인은 거절한다고 해서 포기할 김태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김태호는 곧 노인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뭔가 아주 아쉬웠다. 노인과 현실에서 얼굴 볼 일이 많지 않았다. 번개를 핑계로 만났고 다른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아 좋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자 이게 아니다 싶었다.


“어르신 집에 가시면 바로 접속할 거죠?”

“아무래도···.”

노인이 풀사이보그라고 해도 적당한 수면과 음식 섭취는 필요했다. 그런데 노인을 이를 잘 지키지 않았다. 김태호가 이를 걱정한다는 것을 알기에 노인은 말끝을 흐렸다.

“오랜만에 저하고 바람 좀 쐴까요?”

“무슨 일 있나?”

“하하, 그런 건 없고요. 주변 사람들 간섭받지 않고 어르신과 함께 있는 게 오랜만이라 일찍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김태호의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노인은 김태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뭐라고···. 지금껏 살아오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은 적이 없고 요즘 큰 사회 문제가 되는 일개 독거노인일 뿐인데···. 나이 들어 다른 일 할 수 없고 평소에 게임을 좋아해 남는 시간 모두 쏟아부어 가상현실 게임을 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게임 속에서 지존이 되었다. 노인은 게임 속 성공에 대해 항상 초연했는데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많은 것을 밖에서 보게 되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노인은 삶에 얽매이지 않았고 쌓아 놓지 않았다.


“그럼 어디 좋은 곳이라도 있나?”

노인의 긍정적인 대답에 김태호가 놀라 버벅거렸다.

“도 도 도란이 어떻겠습니까?”

“도란에서 야경을 보는 게 멋지긴 하지.”


‘도란’은 퓨쳐홀릭 회장인 김태호가 상암동의 스타빌딩에 운영 중인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예약제로 손님을 받았고 주로 정관계 로비에 이용하는 장소였다. 도란은 93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보안을 위해 92층과 94층은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의 대기 장소로 이용했다. 한강변에 위치한 스타빌딩은 현대의 한강 야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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