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135)
대마왕 밧소뎀.
현 마계의 통일 대마왕인 밧소뎀이 거대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도벨은 과거에 밧소뎀과 여러 차례 싸웠던 적이 있어 잘 알고 있었고 사도 연합 유저들은 방송을 통해 밧소뎀을 많이 봐와서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아는 밧소뎀과 지금 쥴레도르에서 모습을 드러낸 밧소뎀과는 아주 달랐다. 밧소뎀의 크기는 200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수십 미터 크기의 우도벨이 꼬맹이처럼 보일 정도로 신장의 차이가 났다.
밧소뎀의 모습에 놀란 것은 비단 유저들만이 아니었다. 우도벨은 밧소뎀의 모습을 보고 지금 이 앞의 밧소뎀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밧소뎀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꼼수를 부린 거지?’
패자의시대 게임의 특징상 몸집의 크기와 공격력, 렙과 비례했다. 큰 몬스터일수록 렙이 높고 렙이 높은 만큼 공격력과 방어력이 좋았다. 하지만 몸집이 크다고 해서 가장 세다고는 할 수 없었다. 대체로 몸집이 크면 센 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냥터의 몹과 드래곤과 비교할 수 없었고 또한 신들이나 마왕들과 비교 할 수 없었다. 다만, 같은 등급에서는 몸집이 크면 더 세다고 할 수 있었다.
가령 신들이 몸을 키울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마왕들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기존의 크기보다 몸을 더 키울 수 있다면 그건 같은 부류에서 더 센 공격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밧소뎀은 우도벨보다 3배는 더 큰 몸집으로 나타났다. 우도벨은 모르고 있었지만, 대마왕이라고 해서 다 같은 대마왕은 아니었다. 상급 마왕이 대마왕으로 승급하는데 이때 대마왕의 능력치는 한 단계 상승했다. 그래서 상급 마왕들이 여러 명이었지만 대마왕이 위기에 빠지지 않는 한 반란에 성공할 수 없는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대마왕이라고 해도 마계가 3개의 세력으로 나뉘었을 때의 대마왕과 통일된 마계의 대마왕과 큰 차이가 났던 것이다. 밧소뎀이 통일 대마왕이 되면서 밧소뎀은 일반 대마왕에서 한 단계 더 상승한 것인데 이를 우도벨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마계를 최초로 통일한 키개람은 역대 대마왕 중에서 최강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키개람이 특별했던 것이 아니고 통일을 하면서 능력치가 상승해 역대 대마왕 중에 가장 센 능력을 얻은 것이다. 키개람이 최초로 마계를 통일했을 때도 신들이 마계로 쳐들어왔는데 이때 키개람은 혼자서 이를 막아낸 적이 있었다. 통일 대마왕은 그만큼······. 여러 명의 신을 상대할 만큼 강했던 것이다.
우도벨은 과거 키개람이 활동하던 시절 상급 마왕이었던 밧소뎀과 싸우며 밧소뎀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금까지 갖고 있어서 세월이 흐르고 대마왕이 됐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밧소뎀은 상급 마왕에서 대마왕으로 오르며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했고 대마왕에서 통일 대마왕이 되며 또 한 단계 상승해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
밧소뎀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있었다. 마치 즐거운 놀이는 하는 것처럼 밧소뎀은 웃으며 오른발을 들어 다시 바닥에 내렸다.
“쿠쿠쿵.”
밧소뎀 주변 수백 미터의 건물들이 모두 폭발하며 날아가 버렸다. 당연히 그 영향권 안에 있던 사도 연합 유저들 중에 방어력이 약한 유저들 30%가 즉사해버렸고 용케 죽지 않은 유저들 모두 생명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상태 이상에 빠졌다. 우도벨은 밧소뎀이 스킬을 사용할 때 위기를 느끼고 날개를 펴며 날아올랐다. 밧소뎀의 스킬은 대지 위에 직접 닿고 있는 대상들에게 피해를 주는 스킬이었는데 우도벨이 하늘로 떠오르자 그 피해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밧소뎀은 하늘로 떠오르는 우도벨에게 주먹을 뻗었다. 밧소뎀과 우도벨간의 거리가 있어서 주먹질에 직접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우도벨은 충격에 뒤쪽으로 수백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크흐흐흐흐흐흐흐······.”
밧소뎀에 우도벨쪽으로 손을 펼치자 이제 막 일어서려던 우도벨이 자력에 당겨지듯 밧소뎀 쪽으로 날아와 밧소뎀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밧소뎀은 우도벨의 가슴팍을 움켜쥐며 마치 터트려 죽이려는 듯 손에 힘을 주었다.
우도벨은 몸부림쳤지만 밧소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의 주변으로 통곡의 문을 열었다. 우도벨의 히든스킬인 이 통곡의 문은 일종의 거울 같은 것으로 이것을 본 대상을 우도벨이 원하는 곳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스킬이었다. 우도벨은 자신에게 이 스킬을 썼고 우도벨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 순간 이동했다.
“으음······?”
밧소뎀이 자신의 빈손을 보며 놀라고 있을 때 우도벨은 쥴레도르의 성벽에 모습을 나타냈다. 성벽 위에서는 젠라츠, 탈로스가 수비대장 격인 마왕들과 싸우고 있었다. 각자 중급 마왕 1명과 하급마왕 2명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는데 백중세였다. 전쟁 때 젠라츠와 탈로스가 싸웠던 마왕들과 다르게 쥴레도르를 지키는 마왕들은 정말 열심히 싸웠다. 그 바람에 당혹해하는 젠라츠와 탈로스였다.
마왕들은 자신의 윗급의 마왕들이 죽으면 아랫급의 마왕들이 승급하는 형태다 보니 확실한 싸움이 아니고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 항상 도망칠 정도의 힘을 남겨두는데 최근 천계와의 전쟁에서도 신들과 일대일로 싸운 경우가 없었고 여러 명의 마왕이 한 명의 신을 상대로 싸우는 방식이라 서로 몸을 사리느라 앞선 전력에도 지루한 싸움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쥴레도르를 지키는 마왕들은 자신의 임무가 쥴레도르를 지키는 것이다 보니 침략자를 상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젠라츠와 탈로스를 난처하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목숨 걸고 덤벼드는 놈들을 만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싸움터에 갑자기 우도벨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탈로스와 싸우던 중급 마왕의 등에 칼을 꽂았다.
“쳇······.”
탈로스와 싸우던 중급 마왕 가밍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할 말은 많았지만 말할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몸만큼 생명의 끈이 떨어져 나갔다.
“오, 우도벨. 이런 기습도 할 줄 안다니 놀라운걸.”
우도벨은 탈로스의 비아냥거림에 대꾸 없이 몸을 이동해 젠라츠와 싸우고 있는 중급 마왕 시마를 상대로 칼을 휘둘렀다. 젠라츠를 상대로 힘겹게 버티고 있던 시마는 갑자기 가세한 우도벨의 협공에 몸을 뒤로 빼다가 한쪽 팔이 날아가 버렸다.
“니들은 신 같지가 않군. 크크······.”
신들은 항상 정의로움을 외치고 정정당당함을 주장했는데 싸움은 그렇지 못하자 시마가 투덜거리듯 혼잣말을 하고 몸을 날려 젠라츠를 끌어안았다. 젠라츠의 칼이 시마의 심장을 꿰뚫고 등 뒤로 솟아 나오며 시마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시마의 두 부하 하급마왕들에겐 기회가 되었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기회를 만든 시마의 노력에 부응하듯 두 하급마왕들이 젠라츠를 덮쳤다.
“퍼어엉······.”
시마의 부하인 두 하급마왕은 현 상황에 자신들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관인 시마가 죽으며 만든 기회. 두 하급마왕은 젠라츠를 덮치며 자폭해버렸다. 적어도 한 명의 신이라도 죽이면 다행이란 생각으로······.
“휘스리힘이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쥴레도르의 성벽 위에는 젠라츠와 탈로스를 상대로 도시를 지키는 두 명의 중급 마왕과 그들의 부하, 하급마왕 4명과 다수의 마족 병사들이 있었다.
하급마왕의 자폭으로 젠라츠는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상태 불능 상황. 탈로스가 중급 마왕 가밍을 죽이고 하급마왕 둘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탈로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우도벨이 빈사 상태인 젠라츠를 지키며 주변의 마족 병사들을 상대로 스킬을 난사했다. 젠라츠의 지금 상태는 일반 마족 병사들의 공격에도 죽을 정도로 약해진 상태. 항상 휘스리힘과 함께하던 것과 달리 지금 이곳엔 휘스리힘이 없었고 이것이 젠라츠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젠라츠의 몸 주변으로 옅은 빛이 휘감았다. 잠시 후 젠라츠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젠 어떻게 된 거야?”
“이런, 내가 인간들에게 신세를 지는군.”
젠라츠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이 신세를 절대로 잊지 않으리······.”
말을 끝내자마자 젠라츠의 몸이 수천 개의 링으로 분해되어 사방으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순식간에 성벽 위의 마족 병사들을 토막 내며 다시 합쳐져 모습을 만들었다. 이때는 탈로스도 하급마왕들을 모두 처리하고 성벽 위에 세 명의 신들만이 우뚝 서서 도시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4, 5공대는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고 3공대는 뒤로 돌아가.”
2700명의 사도 연합 유저들이 밧소뎀을 중간에 두고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밧소뎀이 조금 전에 주변을 초토화하며 넓은 공터가 생겼고 사도 연합 유저들 입장에선 건물들로 가려진 것보다 지금처럼 넓은 공터가 싸우기엔 더 편했다. 도시의 건물들이 엄폐물이 되지 않는 이상 있어 봐야 장애가 될 뿐.
밧소뎀이 스킬을 한번 사용할 때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2, 3백 명의 유저들이 죽었다. 하지만 죽은 만큼 유저들은 부활하여 다시 밧소뎀을 공격했다. 밧소뎀의 공격은 광역 스킬 위주라 다수의 사도 연합 유저들이 죽었지만 죽은 수만큼 빠르게 부활하여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밧소뎀을 상대하는 사도 연합 유저들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천계에서 거대 몬스터들과 싸우고 메르세비아와 싸웠던 경험이 밧소뎀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2700명이란 수가 한 명의 대상을 상대로 싸우는 데 있어 아주 많은 수였지만 제대로 운용을 못 하면 장점을 살릴 수 없었다. 토르는 2700명을 5개의 공대로 나눈 뒤 2개의 공격대는 서로 반대 방향에서 공격. 나머지 2개 공격대는 사정권을 벗어난 회복. 그리고 한 개의 공대는 죽은 유저들의 부활이란 임무로 밧소뎀을 괴롭혔다. 사도 연합의 전문 사제들은 200명이 조금 넘었는데 죽은 유저들의 부활은 이들과 함께 일반 유저들과 함께 작업했다. 전문 사제가 아니더라도 죽은 유저들에 대한 부활은 소모성 아이템을 사용해 부활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소모성 부활 아이템인 ‘부활 주문서’가 비쌌지만, 지금과 같은 전투 상황에선 아끼지 않았다. 각자 회복 물약을 물 쓰듯 하고 부활 주문서를 비롯한 일회성 아이템들을 남발하며 밧소뎀을 상대로 버텼다. 사도 연합 누구도 자신들이 밧소뎀을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신들이 밧소뎀과 상대하기까지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다.
밧소뎀에 의해 우도벨이 도망치면서 밧소뎀은 원래 우도벨을 쫓아 성벽 쪽으로 갔었다. 밧소뎀에게 사도 연합 유저들은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안중에 없었다. 세 명의 신들이 밧소뎀에겐 적으로 비쳤던 것인데 유저들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살아남은 사도 연합에 소속된 사제들이 아군을 회복하고 부활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이다. 사도 연합의 분전에 밧소뎀은 성벽 쪽으로 갈 수 없었고 사도 연합 유저들이 밧소뎀을 붙잡아 두는 바람에 세 명의 신들이 성벽 쪽 마왕을 비롯한 마족 병사들을 정리하고 밧소뎀 쪽으로 날아올 수 있었다. 젠라츠는 사도 연합에 소속돼 있는 사제들이 모두 힘을 합쳐 힐링스킬을 사용한 덕에 생명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힐러 사랑 길드에 소속돼 있는 사제들의 대부분은 정통 힐러형 사제들이었는데 이들은 휘스리힘을 모시는 사제들이었다. 따라서 회복력과 관련해 힐러들 중 으뜸이었다.
“네 놈의 숨겨 놓은 능력이 있었구나.”
우도벨의 말에는 약간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숨겨 놓기는······. 이게 원래 내 능력이다.”
밧소뎀은 3명의 신과 2700명의 유저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게임의 특성상 마계의 주민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전장에 참전하는 병사들이었다. 천계와의 전쟁에서 많은 수가 죽어 완전히 인원이 복구되지 않았지만, 마계 최고의 대도시다 보니 엄청난 수의 주민들이 있었고 이들이 한곳으로 몰려들면서 천계 침략자들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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