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시대 2 (146)
“이거 대단하군요.”
간부들은 예상하였지만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 결과를 보자 상기된 얼굴로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뻐하는 유저들과 달리 바닥에 쌓여 있는 엘롱가투스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마족병사들과 마족 흑마법사들. 그리고 콩코노메가 움직였다. 엘롱가투스의 시체를 부활시켜야 했기 때문에 전투를 통한 시체의 훼손 없이 잡기 위해 세크메트가 육체에서 영혼만 빼는 기술로 온전한 형태의 시체들을 확보한 것이다. 콩코노메는 120여 마리의 엘롱가투스 시체를 모두 마법으로 보존 처리했다.
게임에서 몬스터들의 시체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마법의 보존처리는 필수였다.
원래 유저들이 잡은 거대 몬스터의 시체는 본드래곤을 통해 노술도아 인근의 부활을 실험하는 연구소로 보내졌는데 중형 몬스터라고 하지만 120여 마리나 되다 보니 한 마리의 본드래곤으로 노술도아까지 이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콩코노메의 지휘 아래 엘롱가투스들이 죽어 있는 그 자리에서 부활 작업을 하기 위해 시설물들을 설치했고 그 사이 유저들은 다음 사냥터로 이동했다.
마계의 사냥터가 넓다고는 하나 다양한 몹들이 사는 곳으로 엘롱가투스의 활동 지역은 전체 사냥터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몹들도 자신의 영역에 다른 몹이 들어오면 싸웠기 때문에 각자 활동 영역이 정해져 있었고 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5개 무리를 확인했습니다. 대략 100여 마리쯤 되는 듯합니다.”
우루두루를 타고 사냥터를 돌며 엘롱가투스 무리를 세고 있는 최고야가 신이 난 듯 말했다.
무쏘의뿔이 우루두루에 최고야를 태워 정찰을 보냈는데 평소에 드래곤을 조련해 타고 다니고 싶어 했던 최고야라 드래곤에 견줄만한 거대 와이번인 우루두루를 조정하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최고야는 메르세비아라는 거대 흑용을 조련해 소환할 수 있었지만, 소환시간이 20분밖에 안 됐고 그 20분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정신력이 소모되는 터라 쉽게 소환해 내질 못했다. 최고야는 메르세비아를 안정적으로 소환하기 위해 게임에 접속한 거의 모든 시간을 조련사의 스킬 숙련도를 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엘롱가투스가 최대 250마리 정도 서식한다고 봐야 하겠군요.”
“엘롱가투스는 재생성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중형 몬스터이니 일주일 정도 되지 않을까요?”
유저들이 또다시 엘롱가투스를 잡기 위해 준비를 했다. 마계 사냥터 중 야생의 엘롱가투스가 사는 곳에 총 개체 수가 220마리 정도 되는 거였다. 잘 숨어 있는 놈들까지 치면 최대 250마리로 본 것이고. 이는 엘롱가투스를 사냥하는 데 중요했다. 보통 게임에서 몹을 사냥했을 때 다시 재생성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제각각이긴 했지만, 게임사에서 정한 일정한 기준이 있었다. 대체로 저렙몹들이 빠른 생성을 보였고 렙이 높은 보스몹들이 생성 속도가 느렸다.
마계 사냥터의 거대 몬스터들 경우 재생성 시간이 한 달 정도 걸렸다. 따라서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몹만 계속 잡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고. 계속 사냥터를 이동하며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이들이 엘롱가투스를 손쉽게 잡았지만 엘롱가투스의 재생성 시간이 길다면 인근 사냥터를 몹들을 순회하며 잡아야 했다. 문제는 8천 명의 유저들이 함께 움직이면 어지간히 몹을 잡지 않는 이상 경험치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엘롱가투스의 서식지 주변으로는 거대 몬스터가 없었다.
또한, 무리를 이루며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엘롱가투스의 특성상 다른 몹들에 비해 굉장히 넓은 지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두고 있어 엘롱가투스를 다 잡고 옆 사냥터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일주일 내 생성되면 다행이지만 에메스처럼 2주 정도 걸린다면 공격대 구성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첫 사냥이니까 지켜봅시다. 정확하게 재생성 기간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제가 볼 때는 우리가 엘롱가투스를 잡는 이유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얘네들을 부활몹으로 활용할 거라면 소수팟으로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간부들 간의 의견이 분분했다.
유저들은 사냥을 통해 렙업과 장비 파밍을 목적으로 하므로 효율을 많이 따졌다. 천계와의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넘어온 유저들이지만 전쟁이 매일 벌어지는 것도 아닌지라 당연히 중간에 사냥해야 했고 이런 사냥 때 효율이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잡아 더 많은 경험치를 얻어야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최고야야 개쫑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이보게, 엘롱가투스들은 리젠되는데 얼마나 걸리나?”
“2주 걸립니다.”
“꽤 기네?”
“에메스와 엘롱가투스를 비롯한 마계의 중형급 몬스터들은 일주일에서 이주 사이로 젠 됩니다.”
‘에메스’는 마계 사냥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수형 중형급 몬스터였는데 엘롱가투스처럼 무리 생활을 하지 않고 단독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유저들이 마계에서 가장 쉽게, 가장 많이 잡는 중형 몹 중 하나였다.
“좀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나?”
“하하하. 회장님, 불가능한 거 아시잖아요?”
“이리해서 어느 세월에 엘롱가투스 군단을 만들겠나?”
“애초에 수백 마리가 한계입니다.”
“그건 왜?”
무쏘의뿔은 엘롱가투스를 최대한, 만들 수 있는 데까지 부활시켜 천계와의 전쟁에 동원할 계획이었다. 지난 몇 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죽은 중, 하급 마왕들도 많고 거대 몬스터들의 경우도 전장에 내보낼 놈들이 몇 없었다. 마계의 전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였고 지금 이때 천계가 천족까지 동원해 대규모 병력으로 쳐들어온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고 엘롱가투스의 부활에 집중했다.
이를 아는 최고야가 걱정되어 개쫑이에게 물은 것이다.
“엘롱가투스를 부활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제한돼 있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각 몹마다 부활시킬 때 들어가는 특수 아이템이 있는데 종류와 수량이 다 제각각입니다. 엘롱가투스의 경우 부활시킬 때 필요한 필수 아이템 중 하나가 ‘케야스의 이빨’이란 아이템인데 이게 일정 수량까지는 구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구하지 못합니다. 뭐 정확히 얘기하자면 다시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거죠.”
“무슨 이빨? 그게 뭔데?”
“케야스라는 일종의 선인장 같은 식물이 있는데 그 식물의 열매를 케야스의 이빨이라고 부릅니다. 송곳니 같은 열매가 맺히거든요. 그런데 이 케야스는 꽃이 피는데 100년.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는데 20년이 지나야 합니다. 그러니 한번 채취하면 120년을 기다려야 해서 사실상 더 구하지 못한다는 거죠.”
“켁. 그런 거지 같은 설정이 어딨어?”
“후후후. 그런 거지 같은 설정이 게임 곳곳에 엄청나게 많은데요?”
최고야는 개쫑이 보고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자신도 패자의시대 개발 초기에 개발자로 참여했었고 그 당시 말도 안 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그런 설정을 곳곳에 장치해뒀기 때문이다.
“그럼 몇 마리나 부활할 수 있겠나?”
“글쎄요···. 케야스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이 아닙니다. 마계 곳곳에 군락지가 산개해 있긴 한데 접근성이 아주 떨어질걸요. 어찌어찌해서 그걸 다 찾아낸다고 해도···. 열매 맺은 것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가? 어렵군······.”
엘롱가투스 사냥은 일단 8천 명의 유저들이 모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원자들을 받아 새롭게 공격대를 꾸렸다. 기존의 안정된 보스몹을 잡는 쪽으로 유저들이 많이 몰렸고 결국, 엘롱가투스는 유저들과 같이 사냥을 잘 하지 않는 그룹이 남게 되었다. 무쏘의뿔과 엔피씨 팟원들, 이삐팟, 그리고 마계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유저들이었다.
어느 게임이든 사냥팟은 대부분 고정팟 개념으로 운영되었다.
지금 이들은 천계와의 전쟁을 위해 지원한 유저들이지만 사실 마계에서 꿀빨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헤임달을 비롯한 간부들이 나눈 공격대는 시간이 지나며 자기들만의 고정팟이 되었고 추가로 모집되어 들어온 유저들은 기존의 무리와 동화되지 못했다. 고인물의 견제라고 할까.
그래서 신입 유저들은 그들끼리 공대를 짜주었는데 마계 사냥 경험의 부족과 렙과 장비의 차이로 인해 기존의 고인물 공격대와 비교해 효율이 떨어졌고 이는 두 부류의 골을 깊게 만들어갔다.
“아주 지랄도 가지가지 하는군.”
무쏘의뿔과의 계약상 항상 붙어 다니긴 했지만 이도저도 아닌 이삐가 한마디 내뱉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혼잣말 같은 소리에 시선이 집중될 때 이삐가 다시 또 말했다.
“지들이 언제부터 주류에 속했다고 벌써 고인물 흉내를 내? 썩은 내가 진동하는군.”
사냥을 앞두고 공격대 구성을 하는 자리에서의 이삐 발언에 모두가 인상을 썼다. 일부 유저들이 한마디를 하려고 했지만 이삐는 망토를 옆으로 젖히고 허리에 찬 단검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500렙이 넘는 유저들 중 이삐를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유저들 중 이삐와 팟사냥을 했던 유저들은 별로 없었지만, 소문은 다들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잘못 입을 열면 아군이라고 해도 이삐가 죽인다는 것을 알았다.
“이삐님도 같이 사냥하시겠습니까?”
이삐는 무쏘의뿔과 함께 다니지만, 천계와 전쟁하기 위해 마계로 넘어온 원정대원이 아니었다. 헤임달은 이삐가 무엇 때문에 싫은 소리 했는지 잘 알았기에 넌지시 사냥을 권했다. 애초에 이곳에 온 8천 명의 유저들은 천계와 전쟁하는 마계를 돕기 위해 마계로 넘어온 것인데 지금은 사냥을 통한 렙업과 파밍이 목적이 되다 보니 더욱 좋은 사냥몹을 잡기 위해 사냥터를 선점하고, 더욱더 사냥몹을 쉽게 잡기 위해 공격대원들의 구성에 예민했다. 이를 보는 간부 운영진들의 고민이 컸는데 이를 이삐가 지적한 것이다.
“엘롱가투스를 잡는데 쓸데없는 애들 두지 말고 필요한 인원만 둬. 나머지는 지들 알아서 사냥하게 보내고. 어차피 그게 목적 아냐? 전쟁 때까지는 모두 자유 사냥으로 돌리라고.”
이삐는 헤임달을 포함 주변의 간부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너무 떠먹여 주려고 하지 마. 애들 버릇 나빠진다.”
무쏘의뿔은 유저들의 사냥과 관련해 원래 개입을 하지 않았다. 헤임달과 멘솔러브를 비롯한 간부 운영진들에 의해 공격대가 짜이고 사냥터가 정해진 것인데 고른 분배를 위해 고민이 많았다. 유저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지만 유저들은 늘 공격대 구성과 사냥터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래요. 공격대를 유저들이 알아서 구성하도록 하죠?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소외당하는 유저들이 생길 텐데?”
“소외된 유저들의 공격대는 따로 수준에 맞는 사냥터를 주고 엔피시 병사들 지원을 더 해주면 되죠. 애초에 사냥하기 위해 우리가 온 것은 아니잖아요?”
간부 운영진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었다. 애초에 엘롱가투스 사냥에 8천 명의 유저들을 동원한 것이 무리였던 것이다. 생각보다 잡기는 쉬웠는데 사냥터 간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서 효율이 떨어진다.
이날 간부 유저들에 의해 사냥 공격대가 다시 짜였다. 고인물은 고인물대로 신입은 신입대로 나뉘었고 고렙 공격대와 저렙 공격대로 나뉘었다. 고렙과 저렙을 섞어 짜던 기존이 방식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대신에 마족 엔피씨 병사들의 지원을 고렙 공격대엔 줄이고 저렙 공격대에 늘렸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자유 사냥을 하도록 했고 공격대 단위로 스스로 운영하도록 했다. 부족하고 지원이 필요한 경우만 간부들에게 요청하도록 했다.
8천 명의 유저들 중 약 7천5백여 명의 유저들이 엘롱가투스 서식지를 떠났다. 남은 5백여 명의 유저들은 마계 원정대 조건을 겨우 맞춘 유저들로 마계 사냥 경험이 별로 없는 유저들이었다.
“와 이 인원이면 경험치를 몇 배는 더 먹겠는걸?”
떨어진 분위기를 최고야가 살려 보려고 농담 같은 진담을 했는데 아무도 호응을 하진 않았다.
남아있는 유저들이 크게 실망한 탓이다.
이동 거리가 먼 엘롱가투스 사냥을 유저들이 외면하고 다들 떠나자 간부진 쳇 창에는 이를 성토하는 말들이 오갔다.
“이럴 때는 진짜 소규모 팟으로 사냥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길드가 커질수록 길드원들의 욕심도 커지는 것 같아. 길드에 원하는 것도 많아지고···.”
길드 간부들의 채팅방이라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런데도 이들이 간부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길드를 키우는데 들어간 시간과 열정. 그리고 현실적으로 큰 길드의 경우 간부들이 얻는 물질적 이득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많은 길드원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점.
현실에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게임 속에선 스타나 영웅이 되기도 한다. 규모가 큰 길드의 작은 간부 자리라도 하나 얻게 되면 현실에선 누려볼 수 없는 권력을 갖는다. 그 맛에 길들면 길드원들이 말을 안 듣더라도 길드원을 더 늘려 길드를 키우는데 열을 올리게 되고. 게임 속에선 길드원의 수가 곧 권력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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