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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피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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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2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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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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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원피스1

DUMMY

자정을 다해가는 시각 버려진 폐가에 한 남자가 들어선다.

끼이익, 철컹. 강철로 만들어진 대문이 마른 소리와 함께 닫힌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무성했다. 그래서 걷기조차 어려웠지만, 남자는 마치 그것들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쉽게 집으로 향했다.

바스러질 것 같은 붉은 벽돌의 단층집은 20평 내외로 그리 크지 않았다. 이곳에 살던 할머니는 폐품을 모았는데, 그런 것들이 지저분하게 마당 한 쪽을 점령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 집은 현재 폐가나 다름없었다.

살아생전에 애지중지 키웠을 마당 곳곳에 놓인 화분들은 다 말라 죽거나, 거미줄 집이 된지 오래다.

집 나간 자식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객사했으니까.

사람은 당연히 살고 있지 않았고, 노숙자나 불량 청소년들이 가끔 놀고 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문은 잠기지 않았다.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 온 누구가가 문을 열어뒀다.

집기는 할머니가 살던 그대로였다. 집안에 쓰레기와 집기들이 함께 나뒹굴고 있어서 어떤 게 쓰레기인지, 어떤 게 집기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것만 빼면 그랬다.

한 마디로 훔칠게 없다.

할머니는 아끼고, 아꼈다지만 남에게는 쓰레기일 뿐이다.

남자는 거실 한 가운데로 갔다. 다른 가구들에는 먼지가 내려앉고, 거미줄이 쳐진 게 다반사인데 소파만은 깨끗했다. 이유는 소파 앞 탁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컵라면 용기와 소주병, 맥주병, 편의점 도시락에 삼각 김밥 비닐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남자는 시간을 확인했다. 얼마 안 있으면 소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온다. 시간이 별로 없었으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조급하면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가끔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남자가 집안을 둘러보기도 잠시, 결정했는지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개장에서 할머니의 옷 한 벌을 꺼냈다.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였다. 아마도 젊었을 때 입었던 것 같은 아주 오래된 옷이었다.

오래된 것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했다.

남자는 그것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원피스를 더러운 바닥에 펴서 내려놓는다. 정말 집과 어울리지 않는 원피스였다. 낡았다고 해서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무조건 새것이라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꽃무늬 원피스는 최신 유행상품도 아니고, 비싼 상품도 아니었다. 허나 그 어떤 옷도 이 원피스가 가진 존재감을 따라가지 못한다.

적어도 남자에겐 그랬다.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원피스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읊조리자, 손에서 빛이 나는 가 싶더니 옷이 펄럭 거렸다. 잠시 뒤 옷은 공중에 떠오르기까지 했다.

원피스에선 은은한 빛까지 퍼져 나와 꽃무늬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읊조림이 멈추자, 빛은 사라지고 대신 옷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웅웅웅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집 안에 울려퍼졌다.

“어서 오시죠.”

남자가 말하기 무섭게 그 소리는 삽시간에 사라진다. 정적. 그리고 남자의 구둣발 소리만이 적막한 집안에 울려퍼졌다.

남자는 만족한 듯 옷을 그대로 둔 채 집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꽃무늬 원피스는 종이비행기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쫙 펴진 상태로.


남자가 떠난 후 30분도 안돼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끝내줬다니까!”

“그 새낀 지가 잘났다고 나대다가 큰 코 다친 거지. 크크크···.”

“조용히 좀 해라. 사람들 잔다.”

“지랄을 하세요.”

고등학생 네 명이 폐가로 들어왔다. 그들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담배와 소주 그리고 족발이었다.

“오늘은 지건이 몇 시에 온데?”

상철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들 패거리는 소위 상철 패거리로 불렸다.

“상납은 철저한 녀석이잖아. 12시까지 온다고 했어.”

상철의 오른팔이 석환이 말했다.

“부려먹기 딱 좋은 녀석이야, 안 그래? 하하하···”

“하하하···.”

상철의 말에 아이들이 웃는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쳇말로 빵셔틀이라고 하는 동급생이었다.

“저건 뭐지?”

석환이 거실에 놓여 있는 꽃무늬 원피스를 발견했다.

“옷인데.”

움직인 것은 일행 중 가장 키가 큰 희천이었다. 희천이 누구나 볼 수 있게 원피스를 들어 올렸다.

“여기 아직 사람 사는 거 아니지?”

사람 패는 건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귀신은 무서워하는 일중이 말했다.

“사람이 살 리가 있냐?”

석환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 할머니의 원혼 같은···.”

“얌마! 귀신이 어디 있냐?”

석환이 일중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악! 왜 때려, 씨! 이 집 할머니 유명했단 말이야. 혼잣말 하고, 항상 품에 이상한 걸 가지고 다닌다고.”

“아, 그러셨어요. 겁쟁이 씨.”

석환이 과장된 얼굴로 놀린다.

“말을 말자.”

일중이 소파 끝에 앉아 고개를 돌려 버렸다.

“삐쳤냐? 들어는 줄게 해봐.”

“싫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못 했다. 됐냐?”

“그래, 나도 듣고 싶다. 어디 한 번 해봐.”

상철이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일중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상철의 말이니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이 집 할머니는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를 들고 다녔대, 사람들 말로는 이름까지 있었다고 해.”

“대단한 것도 아니네.”

희천이 원피스를 든 채로 소파로 왔다.

“야, 그 더러운 걸 왜 가지고와?”

상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힐난했다.

“더럽지 않아. 깨끗하다고.”

희천이 원피스를 상철의 눈앞에 들어 보이며 반박했다.

“으이구,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럼 무슨 뜻인데?”

“말을 말자.”

“왜, 뭣 때문에 그러는데?”

둘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일중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뭔지 모를 공포. 이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해 왔다.

감이 좋은 녀석이다.

“저 새끼들 또 저런다.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데 얘기가 계속 되는 걸 보면 신기하다니까. 그래서 그 돌이 어떻다는 건데?”

석환이 일중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야, 너 떨고 있냐?”

석환이 일중의 미세한 떨림을 확인하고 놀릴 준비를 한다.

“놔!”

하지만 일중이 석환의 손을 거칠게 쳐내는 바람에 물거품이 된다.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도 일중에게 집중했다.

“여기 정말 이상해! 내 말이 웃긴 거 아는데··· 저 옷도 그렇고, 이 할머니 물건 만지지 않는 게 좋단 말이야. 그 돌멩이,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돌멩이를 누군가 숨겼었어! 그런데 죽었단 말이야. 할머니는 그 죽은 사람 집에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고 돌멩이를 찾아왔대! 그걸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야, 재미없다. 그만해. 술 맛 떨어지니까.”

상철이 듣기 싫다는 듯이 경고했다.

“상철아, 내말 들어봐. 저 옷이 왜 갑자기 밖에 나왔겠어? 누군가 빼놨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 여기 오는 사람은 우리들 밖에···.”

쾅! 상철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친다.

“이게 오냐, 오냐 해줬더니 기어오르네. 너 내가 만만하냐? 헛소리 하지 말랬지!”

“왜 그래, 상철아. 일중이가 오늘 예민해서 그런 거야.”

일중과 가장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석환이 상철을 말린다.

석환은 일중과 소꿉친구였다. 가끔 일중은 사고현장 같은 곳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곤 했었다. 석환에게 보이지 않는 것과 대화하는 일중이 섬뜩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해 왔다.

“야, 빨리 사과 해!”

석환이 상철을 말리며 일중에게 소리쳤다.

“미안해.”

일중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썅, 술맛 떨어지게. 앞으로 조심해!”

상철은 씩씩 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하지만 일중이 말이 없다.

“대답 안 하냐?”

“···미안.”

“말이 짧다!”

“미, 미안하게 생각해.”

“알았으면 됐어! 야, 빨리 술이나 한 잔 하자. 씨!”

상철은 의외로 사과하면 폭력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물쭈물 거리면 생각할 것도 없이 주먹이 날아든다.

그런 것을 잘 아는 아이들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희천이 재빨리 소주병을 딴다. 그리고 석환이 종이 잔을 상철에게 건네주었다. 일중은 떨떠름하게 족발포장을 뜯었다.

“새끼, 삐친 거 아니지?”

상철이 잔을 들며 일중에게 물었다.

“삐치기는··· 그냥 기분이 안 좋을 뿐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임마. 마셔. 사랑한다.”

“개지랄.”

넷은 그렇게 술잔을 비워 나갔다. 한 잔이 두 잔 어느새 네 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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