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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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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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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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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3. 두 번째 죽음 (3) : 화형 (上)

DUMMY

3. 두 번째 죽음 (3) : 화형 (上)



클라우디아와 랑탱은 동시에 문 쪽을 돌아보았다. 문을 열어젖힌 사람은, 바로 클라우디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뒤편에는 처음 보는 귀부인 두 명이 발밑까지 내려오는 흑적색 망토를 두르고, 부채로 얼굴의 눈 밑 전체를 가린 채 서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들이십니까?”


클라우디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향해 싸늘하게 물었다. 랑탱은 귀부인들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곧이어 그는 클라우디아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몇 마디 외쳤다.


‘뭐라고들 하는 거지? 일단 프랑스 말인 거 같기는 한데.’


랑탱의 말에, 귀부인들은 클라우디아 쪽을 일제히 쏘아보았다. 클라우디아는 문 쪽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면면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아까 듣기론, 이 아가씨가 살아있었을 때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다고 한 거 같은데.’


응접실 입구에는 아버지와 낯선 귀부인들, 그리고 걱정스러운 기색을 한 중년 보모와 집사가 있었다.


“이번에는 ‘또’ 뭡니까? 용건이 있으면 와서 직접 보시게 아예 사전에 들여보내달라고 한 거 같습니다만.”


클라우디아는 빠른 말투로 재차 말했다. 그리고는 랑탱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 부인들이 왜 저러시는지, 설명해주시죠!”


랑탱은 결의에 찬 기색을 띠며 곧바로 말을 꺼냈다.


“저 사람들은 - ”


그 때, 클라우디아의 아버지가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갑작스럽고도 거센 타격에 그녀는 목과 허리가 돌아가는 충격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몸의 중심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원탁을 한 손으로 쾅 짚어서 몸을 지탱했다.


“독한 년!”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더욱 바짝 다가와서 한 팔을 거세게 낚아챘다. 그 때, 랑탱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말로 하십시오!”


“비키시오! 난 이런 식으로 갑자기 들어온 사람을 인정할 수 없소!”


“불쾌하신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폭력은 안 됩니다!”


“뭐가 됐든 우리 집안 일이니, 참견 마시오!”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랑탱을 밀쳐내려 했다. 랑탱은 더욱 단단히 버티고 서서는, 등 뒤로는 클라우디아의 한 손을 꽉 잡았다.


“아버님께서 저 사람들을 어찌 찾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설명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 ”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이를 부드득 갈며 손을 올리다가 내렸다. 클라우디아는 랑탱이 손을 쥐는 감촉을 느끼고 내심 놀랐다가, 이내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아버지가 아닐 겁니다. 지금은 그냥 저 사람들이 누군지만 간단히 말해주세요!”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랑탱의 어깨 너머로, 낯선 귀부인들을 보며 재촉했다. 랑탱은 당혹감에 외쳤다.


“클라우디아!”


“어서요!”


“제 누이와 - ”


“당신이 재혼할 사람이겠지요!”


문득, 붉은 머리 남자가 응접실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랑탱은 곧바로 부정했다.


“내가 상처하고 지금까지 혼자인 건 맞지만, 저쪽은 나하고 전혀 상관없이, 이 자리에서 처음 보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랑탱은 클라우디아를 보며 끓어오르는 어조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전, 제 누이한테 당신이 제가 오래도록 찾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붉은 머리 남자는, 랑탱과 클라우디아를 각각 보다가, 돌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박수를 여러 번 치며 음산하고도 낮게 웃어젖혔다.


“자네!”


클라우디아의 아버지가 경악해서 굳어 있다가, 간신히 외쳤다. 붉은 머리 남자는 기묘한 미소와 울상이 뒤섞여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광기어린 웃음을 뚝 그쳤다. 클라우디아는 돌변한 상대방의 모습을 넘겨다보며, 속으로 몸서리를 쳤다. 그린 듯이 단정해 보였던 20대 청년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린 듯했다. 아니, 어딘지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부르거나 쓰기에는, 이 나라의 말과, 이 글로 쓰는 라틴어가 모두 아까운. 그저 은둔자.]


클라우디아는, 문득 본체의 영혼이 생전에 악보에다가 은밀하게 남겼던 암호 한 구절을 떠올렸다. 본체의 영혼은 집안에서 신랑감으로 들이미는 붉은 머리 남자를, 은둔자(Eremita)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이제야 생각났다.’


제노비아였을 때의 오래된 기억 한 자락이,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집시 제노비아로서 타로 카드로 길흉을 점칠 때, 그런 의미의 패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번도 뽑은 적이 없는 카드였기에, 평소에는 썩 와닿지 않던 패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은둔하지만, 세상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 자. 자기의 일상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주변을 은밀하게 인도하는 자.’


은둔자에 담긴 기본적 의미는, 배후에서 사람들을 어떤 한 가지의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그 방향이 항상 올바른 것만은 아니었다. 그림 속에서 은둔자 자신의 의도나 개인적 욕망은 언제나 가려져 있었다.


‘귀한 아가씨가, 생전에 이런 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클라우디아는 랑탱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육체에 동화된 나머지, 제노비아였을 때의 가장 기본적이던 기억마저 잊고 있었던 듯했다.


‘정면으로 보면 선한 인도자라 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보면 의도적인 유인책, 혹은 변절자.’


제노비아였을 때의 그녀는, 기괴하고도 어두운 느낌의 ‘은둔자’ 그림이 포함된 타로 카드를 소장했었다. ‘죽음’ 카드의 정위치 그림이 강물 속에 살짝 잠긴 여자의 시신이었던 것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은둔자’ 카드의 그림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굳이 떠올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듯했다. 눈앞에서 돌변한 붉은 머리 남자 그 자체가, 자신의 숨은 의도를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낸 은둔자였던 듯했다.


“집안의 약속을 가벼이 여기고, 천벌 받아 죽을 뻔했다가!”


붉은 머리 남자는 클라우디아에게 삿대질을 하며 히죽거렸다.


“기적으로 되살아난 줄만 알았지! 근데, 회개하고 하늘이 정한 남편인 저에게 전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신을 모독하고 함께 사통한 자가 죽어버리자, 딴 놈 찾으려고!”


“당신이 약혼자였습니까? 난 다른 분인 줄 알았습니다!”


랑탱이 딱딱하고 단순한 구조의 이탈리아 언어로 받아쳤다. 붉은 머리 남자는 ‘다른 분’ 이라는 말을 듣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게다가, 죽은 줄 안다고 말하는 건!”


클라우디아는 랑탱이 뒤늦게 진저리치며 말하는 것을 듣다가, 끼어들어서 일갈했다.


“바티칸에 있던 제 약혼자를 죽인 게 저쪽이니, 당연히 알 수밖에요!”


“누가 네 약혼자라는 거냐!”


클라우디아의 아버지가 외쳤다. 그는 랑탱을 밀치고 클라우디아를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랑탱은 그의 힘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클라우디아 또한 자신을 잡으려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아채 힘껏 옆으로 꺾어버렸다.


“아니 이 년이!”


“딸이 좋다는 남자가 살해된 걸 알면서도!”


클라우디아는 손아귀 힘을 총동원해서, 아버지의 손목뼈를 한껏 조이려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른 손 주먹이 날아오기 직전에 그 손목을 거칠게 확 뿌리쳤다. 아버지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몸이 쏠리자,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버지의 턱과 귓방망이 사이를 힘껏 후려갈겼다.


“살인자 보호하려고 증거 감추는 문서 위조에 가담한 걸 끝까지 모를 줄 알았어?”


“너! 너!”


실내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충격에 빠져 아연실색한 채 굳어버렸다. 클라우디아의 아버지 또한, 피할 틈도 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부들부들 떨다가 헐떡이며 소리칠 뿐이었다. 힘만으로 따지자면, 그녀의 주먹질에 맥없이 당할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 또한 그녀의 공격 자체를 예상치 못하고 맞이한 듯했다.


“왜? 패륜이라고 하시게요? 자식이 부모한테 대드는 것만 패륜인 줄 알아요? 부모가 자식한테 잘못하는 것도 똑같이 패륜입니다!”


클라우디아는, 그간 쌓아두었던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제노비아였을 때의 그녀는,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버려졌기에, 친부모와 친자식의 관계로 형성되는 가족의 세계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그 대신, 페르난도에게서 보호받으며, 부모라면 이러했을 것이라고 어렴풋하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피를 나눈 클라우디아의 본체와 부모들은, 페르난도만도 못해보였다. 생전에 페르난도는 집시대장이라는 입장으로 다른 집시들을 지나치게 압박한 적이 없었다. 그런 반면, 클라우디아의 부모들은 딸을 소유물이자 복종 도구로만 여긴 듯했다. 그것이 귀족의 질서라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누구인가? 이 자들은 내 부모가 아니야.’


제 3자로서도, 임시로 빌린 몸의 원래 주인인 클라우디아 본체의 영혼을 은인 아닌 은인으로 여기던 입장에서라도, 클라우디아의 생물학적 부모들에게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아비는 독재자였고, 어미는 방관자 그 자체였다.


‘이제 내가 여기서 살아갈 이유는 더 이상 없는 것 같아. 애초에 여기 왔던 목적이라면, 저 랑탱 경을 통해 이루기도 했고.’


클라우디아는 뭔지 모를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애초에 생물학적으로 이어진 적도 없는 사람이었고, 명색이 아비라는 그가 한 짓은 완전히 남이라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문득, 전신에서 묘하게 서늘한 것이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한꺼번에 받았다. 한 달 남짓 전, 중급 삼신의 힘을 빌려서 처음으로 육체와 합치되던 날에는, 뼈와 살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낑기는 느낌을 받은 바 있었다. 육체와 일치하지 않는 영혼을 억지로 우겨넣는 한편, 심리적 공감대를 미미하게 찾아서 합치시킨 것이었다.


이제는 그 때와 반대로, 피부 속 살집과 뼈 사이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실시간으로 엄습해왔다. 혼이 이탈하지는 않았기에, 아직까지 의식은 분명하게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온몸의 뼈가 저릿저릿해지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가, 비명과 분노를 실어서 외쳤다.


“그리고 그 살인자한테서 뭘 따로 받아 먹었길래,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딸한테 또다시 억지로 붙이려 들었던 겁니까?”


“난 아니야! 일 주일도 안 돼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당신들,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붉은 머리 남자는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랑탱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콧김만 살짝 뿜었다가 준엄한 기색으로 붉은 머리 남자를 건너다보았다.


“내 뒷조사를 어디까지 했기에 내 누이도 모자라 처음 보는 여자까지 이리로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시게?”


붉은 머리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흐느낌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일그러진 표정에서 그런 음성이 나오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클라우디아, 당신은 나만 아니면 어느 누구라도 상관없는 여자였어요? 아니면 집 앞에서 태연하게 사람을 죽여 제물로 삼고.”


“사람을 죽여요? 내가?”


클라우디아는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육체를 빌려서 되살아난 지는 이제 두 달이 될까말까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저택에서 요양하며 본체에 익숙해지려고 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몸이 어느 정도 낫자마자, 백작과 다시 한 번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소인 프랑스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한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행적이었다.


‘미안합니다, 랑탱 경.’


클라우디아는 랑탱이 아직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조금이나마 예우하는 뜻에서 자신의 손도 같이 오므려 그의 손가락들을 감쌌다. 랑탱의 몸이 미세하게나마 움찔한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난 그저, 정보를 얻기 위해 당신을 선택해서 끌어들였을 뿐이지만, 당신은 이 몸의 주인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한시라도 빨리 지켜주러 여기까지 왔군요.’


만약, 클라우디아 본체의 영혼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때도 수페리스타의 조카인 연인만을 바라보며,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그리고, 행방을 알 수 없어 거의 죽음이 기정사실화되었을 연인의 일을 알아보려 했을까.


‘아가씨라면 저 붉은 머리 살인자는 너무도 당연하게 끝까지 거부했겠지만··· 경의 지금 마음을 알았다면, 아가씨도 경을 받아줄 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감사는 했을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클라우디아는 입 모양으로만 기도하듯 달싹였다. 그녀 스스로도 제노비아였던 시절에는, 오로지 루시페로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무작정 금발 지휘관에게 길잡이로 팔려갈 것을 자청했었다.


그렇게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도피해 온 곳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군 진지였었다.


‘백 년 전, 난 일곱 살 많았던 그 추접한 놈을 피해 가려고 별 짓을 다했지요. 헌데, 거기서 더 나이가 많은 백작님이, 순식간에 내 마음속에 들어왔거든요. 물론, 나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의 문제인 것만 같습니다.’


클라우디아 본체와 제노비아, 두 사람 사이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는 듯했다. 클라우디아는, 온몸이 서서히 풀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뼈와 살 사이가 조금씩 저리다 풀리다 반복되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여러 번 죽으려 했고, 마침내는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


문득, 중급 삼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스러운 미련으로, 이 땅의 질서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하겠느냐?”


애초에, 미련 둘 곳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죽음을 선택하고 확정지은 사람이, 남들에게는 오래도록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면.’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한순간을 조금씩 바꿔놓을 수 있었다. 백 년 전에는 백작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제노비아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아가씨와 난··· 같은 몸을 썼지만, 어찌 하여도 결국 다른 존재였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이 시대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나 또한, 신이 아니고 인간이니까요.’


클라우디아는 고통을 참는 동시에 분노로 이를 악무는 한편, 붉은 머리 남자를 쏘아보았다.


“사람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아닙니까!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다 하여, 마냥 결백한 줄만 알았습니까? 날 강제로 갖고 싶어 한 당신한테 아부하는 작자들이 엄연히 저지른 짓입니다!”


붉은 머리 남자는 돌연,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해맑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눈가를 촉촉하게 빛내며 소년 같은 눈웃음을 쳤다. 핏빛 같은 붉은 머리와 짙푸른 두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는 모습은, 한없이 고와서 소름이 돋았다.


“자기들이 마음대로 한 짓을,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클라우디아는 말하려다가 모진 생각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알았지 않느냐고, 안다면 사람으로서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이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붉은 머리 남자에게는 그런 식으로라도 일말의 인간성을 일깨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게 훨씬 나았고, 지금도 후회되지 않는 그 애꾸눈 영감탱이처럼.’


그 때 붉은 머리 남자가 돌연 싸늘한 표정을 띠며 말했다.


“근데, 애초에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게 살아난 마녀가.”


“뭐라구요!”


클라우디아는 침묵했다. 오히려 랑탱이 격앙되어서 먼저 외쳤다. 붉은 머리 남자는 목구멍에서 콧천장까지 히스테릭하게 울리는 피리 소리 섞인 웃음을 치다가 계속 말했다.


“제 집 앞에서 구걸하던 노인네가 거슬린다고 사술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여놓곤, 하늘이 정한 남편을 또 다시 버리려 들었잖아? 모를 줄 알았어?”


클라우디아는, 그제야 붉은 머리 남자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는 얼마 전 그녀가 대성당에서 저택으로 돌아왔던 날, 그를 포함한 13명의 구혼자들을 초청했던 바로 그 날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말로는 구혼자들 중 하나면서, 아예 약혼자 행세를 하려고 들더니. 결국은 처음부터 날 감시하고 있었나요?”


“인정하는 거야? 그럼 당신 부군이 될 사람의 자비로, 그리고 내 뒤에 있는 대주교 예하의 자비로, 다 없던 일로 해줄 거야! 세상에 이런 남편이 또 어디 있겠어?”


클라우디아는 붉은 머리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절합니다.”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의 아버지와 랑탱이 동시에 외쳤다. 클라우디아는 두 귀부인들을 잠시 동안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랑탱의 소식만 듣고 먼 나라에서 서둘러 건너왔을 그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작가의말

* 길어서 상/하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하편은 이따 밤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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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2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5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2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2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7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3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2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8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8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6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5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3 0 13쪽
21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19.06.18 9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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