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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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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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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3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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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3. 두 번째 죽음 (3) : 화형 (下)

DUMMY

3. 두 번째 죽음 (3) : 화형 (下)



“분명, 그 날 구혼자 분들 중 제가 직접 남편을 고르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고, 성당에 마지막으로 가서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온 것도 맞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려다, 차림이 추레한 노인네를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낯선 귀부인 둘 중 한 명이 손에 든 부채 너머로 뭔가 말했다. 말하는 입 모양조차 보이지 않았고, 프랑스어만 계속 하고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그 낯선 귀부인이 랑탱의 누이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 볼 수 있었다. 랑탱은 그 귀부인이 하는 말을 듣다가, 곧장 붉은 머리 남자에게 가서 멱살을 잡아챘다.


“컥!”


“어디서 속임수를 쓰려 들었습니까! 아무리 내 결정이 마음에 안 들어도, 내 누이가 이런 식으로까지 참견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처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만하시오!”


그 때 클라우디아의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딸을 출가시키는 건 엄연히 내 권한이고, 저이는 내가 처음부터 결정한 사위요. 당신이 누구든 나한텐 불청객이며, 어떤 의미도 없으니, 당신을 데리러 온 저 사람들하고 어서 가 주란 말이오!”


랑탱은 그 말을 묵묵히 듣다가, 클라우디아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신분을 간단히 밝혔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 왕실의 서자에게서 난 반쪽짜리 귀족이며, 클라우디아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직접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오래도록 사랑했고, 한 사람의 남자로서 직접 따님 앞에 나타나고자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걸 남자로서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붉은 머리 남자를 제외한 모두가, 잠시 동안 숙연해졌다. 랑탱은 점점 뜨겁게 말했다.


“허락을 하시든 안 하시든, 저에게는 중요치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 게 사실이라면 이곳 정부에서 시비를 가리게 하시고, 혹여 증인이 필요하다면 저도 불러주십사 합니다.”


“필요 없습니다!”


“어찌하여 필요 없다 하십니까? 마녀란, 사람들이 만든 죄명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랑탱의 누이 쪽에서 붉은 머리 남자에게 뭐라고 물었다. 붉은 머리 남자는 같은 언어로 대답했다. 순간, 누이의 눈동자가 잠시 당혹감으로 흔들렸다.


“랑탱!”


누이는 격하게 외쳤다. 그 뒤에 이어진 언어는 클라우디아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랑탱은 클라우디아를 결연한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가, 다시 그녀의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수백 년 전, 제 나라에서는 전쟁 영웅 하나를, 마녀라는 이름으로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나라에서는, 그 사람이 같은 누명으로 희생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경은 그런 말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 있습니까?”


클라우디아는 가만히 듣다가, 목이 꽉 메인 어조로 물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랑탱은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덧붙였다.


“설령, 이런 말이 반역이나, 신성모독으로 판정된다 해도 말입니다. 비록, 당신은 아직 제 마음에 대답해 주지 않으셨으나, 당신 있는 곳이 제 마음의 중심이라 했던 말은 언제나 진심입니다.”


랑탱의 누이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시종일관 그가 클라우디아를 보며 말하는 몸짓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기가 막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음날, 클라우디아는 바티칸에 소환되어 마녀 재판을 받았다. 마녀 여부를 판정하는 일은, 40대 초반 정도의 외모를 지닌 이단 심문관이 시행하게 되었다. 그는 2주 전에 그녀를 대성당 앞에서 시험하려 들었던 사제이기도 했다.


지하 고문실 제단 앞에 버티고 선 심문관은,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앉은 클라우디아를 싸늘하게 굽어보았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더러운 손수건 하나를 그녀의 얼굴 위로 거칠게 집어던졌다.


“콜록! 콜록!”


곳곳에 비치된 은촛대 불빛들만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고문실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회색 먼지와 잿빛으로 얼룩진 천이 그녀의 얼굴을 확 후려치자, 매캐한 가루와 함께 어둠이 밀어닥쳤다. 텁텁한 가루와 천에서 풍기는 구린내가 섞인 것도 상당히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문득 클라우디아는, 자신이 제노비아였을 때의 고통스러웠던 기억 한 자락을 떠올렸다. 애꾸눈 점술사의 일방적인 성희롱과 마녀 사냥에 내몰렸던 여자 집시 또한, 지금의 클라우디아처럼 심판대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 가혹한 시험들을 겪던 도중, 마지막 시험으로 물에 던져진 끝에 익사하고 말았었다.


‘이것은 처음, 그러니까, 눈물··· 눈물의 시험이구나.’


클라우디아는 눈이 따갑고 매워오는 것을 한 발 뒤늦게 실감했다. 어딘지 모르게, 종아리와 허벅지를 포함하여 근육이 비교적 몽땅하게 붙어있는 부분들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혀끝의 살점 하나를 앞니 끝과 아랫니 끝 사이에 점 크기만큼 맞물리게 들이밀고 꼬집히게 깨물었다. 따끔한 아픔이 혀끝에서부터 저릿하게 광대뼈를 지나 눈시울까지 훅 올라갔다.


그러자, 안 그래도 매캐하고 역겨운 가루들 때문에 매워오던 눈시울에서, 순식간에 눈물이 고름처럼 터져 나왔다.


“으흐흑.”


상대방인 심문관 쪽에서도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눈물을 즉각적으로 짜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혀의 살점 일부를 깨무는 방식을 곧장 선택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서 새로운 공포감이 한편으로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내가 처음 죽었을 때, 그리고 이 아가씨의 영혼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때는 다들 부서지고 썩어 들어가는 육체 그대로의 모습이었지요.’


저승에서 각자의 죄악을 판가름하기 위해,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육체에서부터 영혼까지 각인된 상처는 일부 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라, 육체의 눈이 멀어버린다면, 영혼만 남아서도 보이지 않을까봐 새삼 두려워졌다.


‘죽어서조차, 백작님.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요.’


이제는 둔해진 육체의 고통보다도, 백작을 다시 보지 못할 생각에 눈물이 계속 터져 나왔다. 심문관은 클라우디아 앞에서 앉은 자세를 취하고, 그녀의 턱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우악스럽게 치켜 올렸다. 이미 눈물과 잿가루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 위에, 또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심문관은 자신의 엄지와 손등을 타고 흐르는 클라우디아의 눈물을, 잔뜩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으로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확 뿌리쳐버렸다. 클라우디아의 목은, 앞으로 확 꺾이며 위아래로 달랑거렸다.


“다음!”


금속들이 미세하게 짤짤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고문실을 긁듯이 울렸다. 그 때, 고문실 입구가 시끄러워졌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쟈메(Jamais!)”


창검이 이리저리 부딪치기도 했다. 곧이어, 문에 묵직한 것이 부딪쳐왔다.


“베키오 궁으로, 대공께 먼저 가시지요! 거기다 먼저 말씀하심이!”


“아니!”


누군가, 비척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고문실로 들어왔다. 한 남자가 비틀린 어깨 바로 아래 팔뚝을 움켜쥔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적 문제고 뭐고, 그딴 거 이젠 난 모르네!”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바로 랑탱이었다.


“그러다가, 먼저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클라우디아는 이를 악물었다.


‘난··· 더 이상 이 시대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고, 이 말도 안 되는 고문이 아니어도 이미 죽어가고 있는 몸입니다. 다만, 마녀라는 치욕스러운 오명만을 거부할 뿐. 오로지, 깨끗한 몸으로, 대등한 사람으로,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그 때, 랑탱이 클라우디아의 바로 옆에 꿇어앉았다.


“이번엔,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숨 가쁘게 말하는 와중에도, 뼈가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거친 숨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말할 준비가 되면 오라고 하셨을 때는, 무려 3년이나 걸려서··· 많이 늦었으니까요.”


“그 때는 그런 뜻이 아니라 - ”


“압니다.”


랑탱은 짧게 대답해 주고 나서는, 심문관에게 말했다.


“이쯤에서 그만하십시오! 이 아가씨가 마녀이든 아니든, 이는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에 엄청난 수치를 주는 일이 될 겁니다!”


“당연히 그러라고 하는 일입니다. 그만하고 나가주십시오!”


랑탱은 더러운 손수건을 망설임 없이 주워보았다. 그리고는 클라우디아의 옆얼굴을 확인했다.


“이 거짓 없는 눈물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심문관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그러나, 이내 단상 옆에 펼쳐진 두루마리를 흘끔 보고는, 다시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벗겨라. 그리고, 진행하라!”


고문관들이 바늘이 그득하게 담긴 상자를 가지고 왔다. 그들 중 두 명은 클라우디아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형틀에 올리고 옷을 남김없이 벗겨야 했다. 그녀는 아득하게 흐려지는 감각만 둔하게 느끼며, 무기력하게 있었다. 분명 건장한 남자들이 그녀의 팔을 각각 잡고, 우악스럽게 일으켰으나, 그녀는 그저 그들에게 끌려갈 뿐이었다.


“클라우디아!”


“확실하게 봐야, 흠결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문관 하나가 우렁우렁한 소리로 말했다.


“엥간하면 그만하고 좀 빠지시지요!”


그러나, 랑탱에게 자리에 빠지라고 하는 다른 고문관의 눈빛에는 묘한 광기와 찐득한 미소가 스쳐갔다. 클라우디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눈두덩이 쪽에 속눈썹 끝이 닿는 감촉이 살아있었다.


‘두 번째 시험은.’


클라우디아는 붕붕 떴다 가라앉는 흔들림만을 간당간당하게 감지하며, 제노비아였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애꾸눈 점술사 때문에 죽었던 집시 여자는, 생전에 마녀 재판에서 두 번째 시험을 받으며 머리를 삭발 당했고, 겨드랑이와 두 다리 사이의 털까지 모두 면도칼로 잘려나갔었다.


‘미안해요, 대장님.’


백여 년 전 그 날, 페르난도는 보러가지 말라고 극구 말리고 단속했었다. 제노비아였던 그녀는 몰래 천막을 빠져 나갔었다. 집시 여자를 너무도 좋아했었고, 그 여자가 자기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마녀라고 고발한 애꾸눈 점술사를 그만큼 증오했었다.


그렇게 몰래 광장으로 갔을 때 보았던 것들은, 전부 끔찍했었다. 아무렇게나 마구 잘라냈기에, 털과 피, 살점 일부가 엉겨붙은 단검들이 은그릇에 즐비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애꾸눈 점술사가 남몰래 돈주머니를 찔러줄 때마다, 고문관들은 정규식 단검과 침을 거두고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하며 집시 여자의 몸 여기저기를 건드렸었다.


‘핏방울 하나만 나와도 그냥 무죄였다는데.’


뇌물을 받은 고문관들은, 누르면 쑥 들어가는 2단 소품용 바늘 혹은 침을 써서, 아예 집시 여자의 맨살을 찌르지도 않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었다. 혹은 제모를 하고 남은 부분을 정리하는 척 하면서 잉크로 가짜 점을 그린 뒤, 그곳에 가짜 바늘이나 침을 써서 무감각과 출혈이 없는 결과를 조작하기도 했다.


클라우디아는, 문득 자신이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떠올렸다. 이제 시각과 청각 이외에는, 다른 감각은 거의 남지 않은 듯했다. 몸은 마치 발에 쥐가 나거나 저리는 것처럼 붕 떠 있는데, 숨이 억지로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이든, 때가 된 거야.’


찔러도 알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피가 나올지 말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양 손의 손등이 뭔가 묵직한 것을 한 꺼풀 덧댄 것처럼 둔화되고 있었다. 피의 흐름이 멈춰가고 있는 것일까.


“마녀! 마녀!”


고문관들과 심문관의 목소리가 뒤섞여서, 귓가에 굉음처럼 울렸다.


“클라우디아! 안 돼!”


랑탱의 절규가 마지막으로 울렸다. 클라우디아는 거기까지 듣고 의식을 잃었다.



문득 의식이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부터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이내 형틀에서도 세로판의 가장 긴 끝 발치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틀 위에는, 문신이나 낙인의 초안이라도 표시하는 것처럼, 군데군데 까만 점이 찍힌 다리의 맨살이 아무렇게나 내비치고 있었다.


형틀에 누워있는 육체의 옷매무새는, 거의 헝클어져 있었다. 그러나, 반항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발치에서 육체를 잇는 은선 및 차원의 문인 소용돌이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클라우디아는, 탁한 빛깔을 띠며 일어난, 미약한 기운의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저 몸과도 완전히··· 헤어지게 되겠군.’


육체의 발치에서부터 영혼까지 임시로 연결된 은선은 허깨비처럼 반투명하고 얇아져 있었다. 그리고, 육체와 영혼의 경계를 열어주는 차원의 소용돌이 또한, 작고 얄팍하며 한없이 미약해진 지 오래였다.


“결국, 진짜로 마녀였다고요?”


그 때 붉은 머리 남자의 목소리가, 기름칠한 것처럼 반지르르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붉은 머리 남자가, 이단 심문관의 안내를 받으며 고문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지시하신 걸 따로 할 것도 없이.”


심문관은 형틀 위에 있는 육체를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그냥 찔러 볼 때부터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 찔러봐야 죽은피만 나오고요.”


그녀는 심문관의 말을 듣고 나서, 육체를 다시 확인했다. 엉망으로 걷어 올려진 치맛자락 아래 드러난 다리에서는, 검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덩어리진 피가 그대로 굳었다. 그 때, 심문관이 육체의 코 밑에 손을 대보고 말했다.


“죽은 것처럼 꼼짝을 못하는데, 희한하게도 숨은 붙어있습니다.”


“제기랄.”


붉은 머리 남자가 쌍소리를 내뱉었다.


“적당히 겁주고, 정말 마녀인 척 해서 주변 떨거지들 다 떼어내려 했더니. 그 때처럼··· 나한테서도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겁니까? 왜!”


심문관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말했다.


“전, 위에 보고하러 갔다 오겠습니다. 마녀로 판정됐으니, 그 다음 절차로 가야 하니까요.”


그녀는 다음 절차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마녀로 판정되고 나서라면, 남은 것은 형을 집행하는 일 뿐이었다. 그러자면, 사람들이 형틀에 있는 육체를 광장으로 끌어내야 할 터였다.


‘끌고 가는 거야 저 인간들 소관일 테니까.’


그러자면, 다시 육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숨이 간신히 붙어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미약한 영혼이라도 들어가야 시체 취급은 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합쳐지는 순간, 광장에서는 클라우디아 로렌치니라는 존재를 완전히 없애려 할 게 분명했다.


‘합쳐지면, 그 다음엔 영영 갈라지고 사라질 운명.’


그녀는 소용돌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형틀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회색 천장의 무늬조차도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는 얼른 눈을 감았다.


“차라리 마녀인 게 나은 줄 아십시오. 그 때처럼 자살이라면, 이번에는 어떤 조건을 제시하시더라도··· 시체 매장은 영원히 허가받지 못할 겁니다.”


심문관은 준엄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여러 마녀와 악마들을 처리했던 그였기에, 그 명단에 클라우디아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어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듯했다.


“아무리 날고 뛰어도, 결국 돌아올 데는 나 하나야! 나 하나라고!”


붉은 머리 남자는 광기에 들뜬 어조로 외쳤다. 그녀는 조용히 듣다가, 속으로 코웃음쳤다. 조만간 완전한 죽음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게 되자, 차라리 담담해졌다.


‘내 간절한 소망대로 이곳에 보내진 것이었다면, 이번에도 저런 자는 털 한 가닥마저도 그 존재 자체를 잊게 하소서.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 하여도, 우연으로라도 만나거나 닿지도 않게 하소서.’



화형은 결정되었다. 클라우디아의 부모는, 재산의 절반이 몰수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 채 피렌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형이 집행되기 전날 밤, 랑탱이 감옥에 찾아왔다.


“당신이지요, 랑탱 경?”


클라우디아는 바닥에 누운 채, 빛을 잃은 눈을 멍하니 뜨고 말했다. 그러자, 뭔가를 울컥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랑탱은 창살 밖에서 간수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다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눈조차 보이지 않게 된 클라우디아가, 소리만으로도 그를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인 줄은 어찌 아셨습니까?”


“두 번째 시험 때, 당신이 집행을 막으러 와주셨잖아요?”


클라우디아는 어둠 속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며 말했다.


“그리고, 들어서 알고 있어요.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절 찾아줄 만한 분은 이제 당신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한 사람 더 있었습니다.”


랑탱은 침통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물론 그 사람이 아니어도, 전 제 의지로 당신 곁을 끝까지 지키려 합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클라우디아의 머릿속에서,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설마.”


“집안의 오래 된 유모님이시라 들었습니다.”


아니기를 바랐었다. 처음으로 몸을 얻고 저택에 들어갔을 때 문을 열어주었으며, 유일하게 그녀의 귀환을 진심으로 기뻐했던 중년 부인. 그런데 그 부인에 대해서, 랑탱은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판결이 전달됐을 때, 유모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했습니다. 근데, 그··· 구혼자였던 그 사람이 아닌, 저를 유서에 언급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랬··· 군요.”


“이대로, 저에게 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당신만 와준다면, 제가 가진 모든 걸 바칠 자신,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클라우디아는 단호하게 못박았다. 육체와 혼이 일치하는 몸이었다면, 랑탱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듯했다.


“굳이 그 사람들이 아니어도, 전··· 이미 저주받은 몸이고, 형을 피한다 한들, 살아날 수 없습니다.”


“클라우디아!”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랑탱은 바로 말했다. 클라우디아는 내심 놀랐다. 랑탱은 그녀의 반응을 보다가 계속 말했다.


“바티칸에서 당신 처음 봤을 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그가 그녀의 본체를 바티칸에서 처음 보았다고 한 것을 떠올렸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거기에 매번 힘들게 왔는지, 누굴 보고, 그렇게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이 되는지··· 봤으니까요.”


클라우디아는 흠칫했다. 혹시라도, 본체가 사랑했던 군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예전부터 그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랑탱은 창살을 잠시 힘주어 쥐었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당신의 그 사람이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볼 수 없었죠.”


“그래서··· 어찌하셨던 겁니까?”


“당신의 사랑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다. 본체의 연인이었을 수페리스타의 조카를 제거한 이는, 생전의 본체가 느끼고 기억했던 그대로 붉은 머리의 남자 쪽에 있었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저란 사람은··· ”


랑탱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한동안 클라우디아를 바라보다가 말을 삼켰다. 클라우디아는 어느 정도 그의 심정이 읽혀서, 속으로 울컥 했다.


‘혹시 왕실의 주류는 아니고, 나이도 나보다 한참 많다는 얘기라도 하고 싶었나요? 정략 같은 의도로 보는 세상 기준에서라면, 그걸 나쁘게 보기도 하겠지요.’


생전의 본체가 사랑한 수페리스타의 조카는, 이탈리아의 귀족이긴 했지만, 클라우디아의 가문이 지닌 것보다는 서훈 작위가 낮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본체와 얼마나 신분 차이가 났는지, 지금의 클라우디아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기록만으로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 얼굴 관련 자료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진짜 이 아가씨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분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클라우디아는, 고개 숙인 랑탱의 머리를 보며 그렇게 되뇌었다.


“뭘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가고 없는 본체의 영혼 입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랑탱이 피렌체까지 오게 되었을 여정을 짐작해 보았다.


‘당신이 그 몇 년 동안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아니겠지요. 그리고,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 단 한 사람만을 백 년 동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낮으면서도 처절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3년을 노력했던 남자의 울음이었다. 이제는 여러 사람 가운데서 유일하게 선택되어 한 발 나아갔다 믿었지만, 불과 3일 만에 떠나보내야 하는 남자가 홀로 통곡하고 있었다.


‘부디, 내가 아닌, 그 아가씨의 혼이 담긴 분을 다음에 꼭 만나서··· 다시는 이렇게 슬퍼하지 않기를.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서서히 걷혀가며 아예 사라진 것이, 차라리 더한 고통이었다. 장작에 붙은 불이 급격하게 그녀의 발치로 번져 올라왔다. 수북하게 쌓인 장작에서 타닥거리는 소리가 나며, 허리를 결박한 새끼줄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백작님. 당신을 다시 만날 그 날만을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습니다. 내 몸과 내 영혼 모두··· 그 때까지는, 언제 어디서든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클라우디아는 어둠 속에서, 제노비아였던 시절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그저, 백작에게 가는 길의 한모퉁이, 아주 잠깐이었을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은 그런 징검다리에 불과하다고 되뇌었다. 100년 전 마지막 순간에 느꼈던, 등에 무수히 박혔던 불화살이 몸을 태우던 고통. 그런데 지금은 불이 전신을 휩싸도 있어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과거나 미래를 점친다 해도··· 결국 나 또한 신이 아니고, 당신과 같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어둠 속에서, 지휘관 막사의 광경이 스쳐갔다. 작전을 세워놓고도 확신이 덜했던 순간이 있으면, 백작은 짐짓 가벼운 어조로 제노비아에게 카드점을 쳐달라고 했었다. 작전을 수행하는 순간이 아니면, 제노비아에게는 그 때가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제노비아의 영혼은, 생판 다른 귀족 여인인 클라우디아의 몸을 임시 거처로 삼았었다.


‘신은 영혼마다 알아보고 인생을 주시겠지만, 사람인 나는 영혼만으로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다음 생이 있게 된다면, 이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기억하고 갈, 아름다운 당신 모습 그대로, 백 년이든, 천 년이든 태어나주세요.’


만약에, 같은 시대에서 백작과 마주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피렌체의 사람들은, 클라우디아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였을 때도, 영혼이 다른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었다. 오히려, 진짜 클라우디아가 살아있었을 때 달성할 수 없었던 목표를 다시 들이댔다가,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두 번 죽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마다, 내 몸과 내 영혼은 오직 당신만을 찾고,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택한 중도의 인생에서도 모든 것을 기억했듯이, 이제는 랑탱에게서 선물받은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태어날 백작을 기다리겠노라고,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이윽고, 육체에서 완전히 제노비아의 영혼은 광장 기둥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던 클라우디아의 육체는 밧줄을 무려 여섯 단으로 휘감아서야 기둥에 고정시켰었다. 허리 위까지 새까맣게 타서 재가 되었고, 두개골은 타다 남은 장작더미 위로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지켜보던 랑탱은, 두개골을 소중하게 안았다.



2013년 6월 21일.


설화는 묵묵히 28번째 혼구슬의 수태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는, 나머지 혼구슬들을 포개놓은 조가비 받침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에게 할당된 두 개의 혼구슬이 그 안에 덩그라니 있었다. 그 중에서도, 30번째로 할당된 혼구슬 ‘강연주’ 의 것에서는, 잿빛 아지랑이가 가늘게 몇 가닥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다 타고 재가 된 불씨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같았다.


“그래서, 그 아가씨를 거쳐 갔던 인생은, 너한텐 그저 징검다리였을 뿐이더냐?”


설화는 30번째 혼구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잠재우며, 싸늘하게 물음을 던졌다.


작가의말

* [체포된 삼신]은 총 2권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은 여기까지가 완결입니다.
2권 내용은 6월 14일~7월 13일 사이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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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외전 [아스트라이아] 1 - (2) 19.11.12 14 0 12쪽
46 외전 [아스트라이아] 1 - (1) 19.11.12 20 0 14쪽
45 외전 [아스트라이아] - 프롤로그 19.11.06 28 0 13쪽
44 에필로그 : 영원한 잠 19.08.07 72 1 25쪽
43 13. 체포된 삼신 [完] 19.08.07 88 0 48쪽
42 12. 거래는 성사되었다 (2) : 사라진 혼구슬 19.08.06 89 0 39쪽
41 11. 거래는 성사되었다 (1) : 피로 물든 밤 19.08.06 88 0 31쪽
40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4 19.08.05 93 0 27쪽
39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3 19.08.05 99 0 26쪽
38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19.07.30 82 0 19쪽
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101 0 16쪽
36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99 0 22쪽
35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13 0 19쪽
3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4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5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7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5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9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8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4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4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90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8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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