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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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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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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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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DUMMY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혼구슬 ‘연주’ 에게서 아지랑이가 완전히 꺼져들었다. 두 번째 인생에 대한 기억이 모두 갈무리되고, 그에 빠져 들었던 감정이 한 오라기 한 오라기 모두 걷혀들었다는 신호였다.


“혹여, 마지막까지 있어줬던 그 남자가, 그 때의 너한테··· 진심이었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었느냐?”


설화는 싸늘했던 어조를 다소 누그러뜨리며, 혼구슬에게 물었다. 혼구슬은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저승이든, 이승이든, 때로는 진정한 본질을 이루기 위해 - ”


설화는 28번째로 수태시켰던 집을 나서며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러자, 혼구슬의 목소리가 바로 시니컬하게 흘러나왔다.


“때로는 적절한 거짓말을 한다고만 믿으셨습니까?”


“어찌 아느냐?”


“그런 꼬라지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 정도는 저도 구분할 줄 압니다. 그렇기에··· 그 때 그 랑탱 경께서 진심이었다 해도, 굳이 제 거라 욕심내지 않았던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남자가 실제로 말해 본 아가씨의 마음은, 네가 몸을 빌린 그 아가씨가 아니라 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군요.”


“뭐가?”


“하늘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요.”


설화는 순간적으로 뜨끔했다.


“너 같이 여러 번 살아본 녀석이라면야, 차사나 삼신은 여럿 봤겠지만.”


순간, 혼구슬 표면에서 큭큭거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설화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말했다.


“도대체 그동안 뭘 봤던 거냐?”


“뭘요?”


“여러 인간의 일을 관장하기에 저승 법이 엄할 수는 있어도, 그리 야박하지는 않다.”


“그래요, 야박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모두에게 관대하지는 않더군요.”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 ”


“죄요? 죄를 짓지 않았어도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이들이 한둘인 줄 아십니까?”


문득, 혼구슬의 목소리에서 미묘한 살기가 감돌았다. 설화는 흠칫했다. 혼구슬의 기억을 들여다보려면, 얼마든지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누가 희생당했다는 거냐? 그냥 너 혼자 파란만장하게 겪은 일을 말하는 거라면, 누구나 - ”


“네네. 제 이야기 하나뿐이라면 어쩌다 실수다, 옥의 티다, 네가 유난이다, 그 정도쯤이야, 닥쳐, 그런 걸 전례로 알고 다들 꺼리면 곤란해. 그냥 너 하나만의 문제니까 네가 참고 넘어가, 대를 위해 소는 희생될 수 있어. 이 따위로 나오기도 하겠지요?”


혼구슬의 어조는 낮고 섬뜩했다. 격하게 쏘아붙이는 것도 아닌, 물 흐르듯이 하는 말이었다. 단시간에 빠르게 하는 말인데도, 모든 어절이 분명하게 들려왔다. 설화는, 마치 한빙지옥의 살얼음이 전신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을 받고 굳어졌다.


“허나, 제 개인적인 인생들만 가지고 하는 소린 아닙니다. 아주 가깝게는 백작님, 좀더 나아가선 그 아가씨, 더 멀리 가서는 그 아가씨 부모였다던 사람들, 그리고 애꾸눈 영감탱이까지, 다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전부 봐 버렸거든요.”


혼구슬에서는 아주 잠깐 한숨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의 어조에는 묘한 울분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넌 한 번도 전생들 사이의 윤회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근데 다 다른 인생에서 봤다는 사람들 일을, 네가 어떻게 봤다는 거냐?”


“그 때, 아가씨의 몸으로 마녀 소리 듣게 된 이유가 뭔 줄은 아십니까?”


설화는 어리둥절했다. 혼구슬의 두 번째 인생이었던 클라우디아는, 분명 붉은 머리 남자의 집착 때문에 그 육체가 화형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원래 아가씨한테 집착했다는 놈이 꾸민 짓이라고 하질 않았냐?”


설화는 29번째로 가야 할 곳을 짚어보다가, 물음을 던졌다. 혼구슬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건 맞습니다. 근데 제가 말려들어간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걸 본 것에도 있었습니다.”


“에라이! 지금까지 한 얘길 다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넌 이미 봐선 안 될 걸 봤다는 거 알고는 있는 거냐?”


“하! 위의 기준이란 다 그런 거 같군요.”


혼구슬은 시니컬한 어조로 응수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 빨간 머리 미친놈이 제가 마법 썼다는 증거를 댄 건, 생판 모르는 영감탱이가 제 집 앞에서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그 노인네가 죽었다는 건 진짜였다는 거냐?”


“사실 그 땐, 딱 봐도 열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산송장 같은 게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뭔가 도울까 싶었는데, 집시였을 때 그··· 아줌마를 죽인 애꾸눈 영감탱이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더는 손 내밀지 않고 그냥 집에 들어가 버렸던 겁니다.”


설화는 혼구슬 두 개를 담은 조가비 받침대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30번째 혼구슬에서는, 회색빛 아지랑이가 감돌고 있었다. 이미 대가를 치른 죄업의 기억이, 꺼져가는 불씨 속의 잿가루처럼 잠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게 진짜 영감탱이 환생이었는지, 그냥 제 기분 탓에 헛것을 본 거였는지, 처음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허나, 또 한 번 죽고 나니 알겠더군요. 제가 제대로 본 거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확인했는데?”


설화는, 속으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입속으로 혀를 몇 번 찼다가 물었다.


“어차피 피렌체에서는 별로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에 또 타도 하나도 아픈 줄 몰랐고, 한이 남은 것도 없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명부를 훔쳐봤습니다. 뭐 가져갈 것까지도 없었고, 명부관하고 환생관 중 어느 한 쪽만 봐도 알겠더군요. 이름만 알면, 누가 죽어서 어디로 갔는지 정도만 봐도 충분했습니다.”


혼구슬은 조소하는 투로 대답했다. 설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여간내기가 아니야. 하늘이 이 혼을 묶어둘 만도 했군. 아예 딴 짓 못하게.’


혼구슬에는, 중죄인의 인간혼이 깃든 구슬을 봉인할 때나 쓰는 붉은 오라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설화는 혼구슬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히 여겼던 오라를 유심히 보다가, 굳어졌다.


‘근데 이 오라는, 그런 것 치고는 최근에 불어넣은 거야.’


인간으로서 하늘의 기록을 훔쳐본다는 것은, 비록 인간문을 지나 환생하는 것을 명령받았어도 도중에 소환될 만큼 중대한 죄목이었다. 혼구슬이 대략 200여년 전에 그런 금기를 어겼다면, 그 때 이미 봉인을 당했어야 했다.


‘그럼 위에서 아예 이 인간이 그걸 보게 일부러 내버려뒀다는 얘긴데. 그리고 세 번째나 네 번째에서 뭔가 크게 탈이 나니, 그제야 뒤늦게 그걸 트집 잡아서 조치했다고···?’


설화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애써 몰아내려고,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썩을, 이 인간 비비 꼬인 소리에 내가 또 말려들어가는 것 같군.’


그 때 혼구슬이 말했다.


“제가 그 아가씨로 더 살려고 욕심낼 가능성조차 밟아버리기 위해, 하늘에서는 그 영감탱이가 깃든 노인네를 그 집 앞으로 보냈더군요. 그리고 재미있는 건 뭔 줄 아십니까?”


“무슨 얘길 또 하고 싶은 거냐?”


“왜요?”


혼구슬은 피식 소리를 내며 반문했다. 설화는 말문이 막혀서 그대로 침묵해버렸다. 그들은 한적한 숲 속에 도착했다. 숲 속에는 3채의 주택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어져 있었다. 설화에게 29번째로 할당된 혼구슬이 가야 할 곳이었다. 설화는 저물어가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승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남아있는 듯했다.


“안 들어가고 뭐하십니까?”


그 때, 혼구슬이 불쑥 물었다. 설화는 3채의 집들 중에서, 가운데에 있는 빨간 지붕의 집 쪽으로 가다가 멈칫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그런다, 왜!”


설화는 버럭 외치고 나서, 빨간 지붕 집 입구 옆의 그네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두 개의 그네가 매달린 것을 보다가, 왼쪽 그네에 앉았다.


“지금 그네라도 탔습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데?”


“혼자서 살살 흔들 만한 게, 그거 말고 또 있겠습니까?”


“에휴, 이따 누구한테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넌 진짜 태중에서부터 인생 끝낼 때까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겠다. 시도 때도 없이 조잘조잘.”


설화는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그러자 혼구슬이 말했다.


“다 알고 보내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설화는 아차 싶었다.


‘하, 이 녀석이 또 뭘 살살 캐 낼려고.’


설화는 얼른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말했다.


“어디로 갈지 정해져 있으니, 그걸 따라 가긴 하지.”


“그렇습니까? 그럼 전 어느 나라로 가게 될까요?”


설화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가, 엄한 어조로 꾸짖듯 물었다.


“너, 아까는 태이기 싫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그런 걸 굳이 미리 알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지금 알아서 뭣하게?”


혼구슬은 침묵했다. 설화는 혼구슬이 그동안 들려주었던 두 가지의 인생을 떠올리며, 더욱 싸늘하게 일갈했다.


“어디로 갈지 미리 알아서, 지금까지 좋았던 적이 있었느냐?”


“글쎄요. 몰랐다면 더욱 최악이었을 겁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감정낭비해서, 백작님께 가는 길이 더 멀어질 것도 모르고··· 마냥 바보가 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혼구슬은 매우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설화는 질린 기색으로 혼구슬이 담긴 조가비 받침대를 내려다보았다. 혼구슬은 무지갯빛이 어린 백색 광택을 뿜어내며 말했다.


“굳이 전생 후생 사이 따져 볼 것도 없이, 한 인생 안에서도 샛길로 빠졌다 탈출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일은 너무 많습니다. 전 제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활용할 뿐입니다.”


“모르고 당하기는 싫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설화는 문득, 혼구슬이 제노비아였던 시절의 백작만을 바라본다는 것을 떠올렸다.


“야.”


“왜요, 삼신님?”


“거 듣자하니, 네가 계속 찾는 그 남자가, 세상에 당연한 거 없다고 그랬다면서?”


설화는, 혼구슬의 첫 번째 전생 이야기를 떠올리고 언급해보았다. 그러자, 혼구슬 표면에서 감돌던 광택이 다소 흐려졌다. 그리고 빛 속에 있던 무지갯빛도 흑백으로 바뀌어버렸다.


“바로 삐지는 거냐?”


설화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내뱉었다.


‘이럴 때는 좀 귀엽네.’


설화는 슬며시 멋쩍은 웃음을 띠고 혼구슬을 내려다보았다.


‘뭐든지 다 안다고 힘 빡 줘도, 지 좋아하는 거 건드리면 빼액 하는 건 똑같으니까.’


그 때 혼구슬이 말했다.


“백작님은 그런 맥락에서 말씀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안다. 당연히 농담이었지.”


“그리고, 그 다음에도 한 번 더 만났습니다. 바로 제가 예감했던··· 그곳에서요. 그러니 이 다음도 알고 싶은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설화는 문득 한기를 느꼈다. 혼구슬은, 제노비아였던 시절에 처음 만난 백작을 사모했고,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도시인 파리에서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던 듯했다. 적어도, 두 번째 인생을 살았을 때까지는 그랬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의 업연은 몰라도, 자기가 갈 곳만큼은 정확히 짚었다는 건가?’


게다가, 자신의 인생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는 특정 상대가 갈 곳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근데 그걸 왜 이제 와서 나한테 묻는 거지?’


설화는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이미 인간으로서의 경지는 한참 뛰어넘은 듯한 혼구슬이었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런 경지가 더 쌓이면 쌓였을 입장에서 왜 묻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그 아가씨 몸을 빌린 인생이 끝난 다음엔, 파리에서 그 남자를 실제로 봤었냐?”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부족해서 나한테 그런 걸 묻는 거냐?”


설화는 그네에 앉은 채 몸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다가 멈추고, 물음을 던졌다. 혼구슬은 파르스름한 백색광을 은은하게 내뿜으며 소리내어 말했다.


“제가 그 아가씨 몸을 빌린 곳이 피렌체라는 걸 알고 나니, 대략 저승에서 사람을 어찌 돌리는지도 그 패턴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백작님께 다음 인생이 있다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오랜 인연이 있었던 곳에 보내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게 파리라는 거냐?”


“백작님은 프랑스 귀족이셨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중심지인 파리나 베르사유 둘 중 한 곳에서 연이 깊었을 거고, 거기서 남은 업을 풀지 않을까 했습니다. 만약 절 만난 게 첫 인생이 아니라면, 더 오래된 전생에 기초를 두고 환생하셨겠지만요. 저는, 제가 어디 태어나든 간에, 그분이 있을 만한 곳을 꼭 찾아내서 그리로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설화는 혼구슬의 말에서, 거기에 담긴 집념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찾기 위해, 망각 의식조차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자의식을 지켜가며 버텼을 긴 세월이, 켜켜이 쌓여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넌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게다. 진정 쓸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더냐?’


그러나, 차마 그런 속마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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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5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2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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