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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2.09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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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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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5. 6월의 열기 (1)

DUMMY

5. 6월의 열기 (1)



설화는 착잡한 시선으로 혼구슬을 내려다보았다.


‘거짓을 감추기 위한 거짓이라.’


혼구슬 표면에서는 말간 진주빛이 영롱하게 감돌고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고, 한 치의 티끌도 없이 순수한 내면의 진실을 소리 냈다는 증거였다.


“뭐가 거짓이라는 게냐?”


설화는 슬쩍 혼구슬을 떠보았다. 그러자, 혼구슬은 파르스름한 빛이 섞인 백색광을 내뿜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냉기를 뿜었다면, 주변의 공기가 그렇게 얼어붙었을 듯했다.


“삼신님께서 인간이었던 신라 시대, 그 때 난 아이는 역사에 왕자로 기록되어 있긴 합니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일반적인 여자애처럼 굴다보니, 원래는 딸이었는데 아들로 바꾼 거라는 괴담이 돈 건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다, 분명 그 때는 내가 봐도 여아의 기운이 - ”


“그렇다고, 다 자란 성인의 몸을 보신 건 아니겠지요. 겨우 애기일 때 모습 하나 보고 살해당하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혼구슬은 설화의 말을 확 자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전 제 네 번째 인생을 제외하면, 세 번 다 유럽에서 살았습니다. 근데 어딜 가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거 같군요.”


“뭐가 말이냐?”


“어느 나라 건 간에 남자를 후계자로 세우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귀한 후계자들이 어릴 때 잘못될까봐 공공연하게 비방을 쓰기도 합니다.”


“비방이라니?”


설화는 어리둥절했다. 무병장수하라는 기원을 드리거나, 보호막을 여러 가지로 치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았었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 기억이 희미해졌을 뿐이었다. 혼구슬은 다시 영롱한 광택을 띠며 말했다.


“여자애한테는 뭐 비방이랄 것까지도 없습니다만··· 남자애한테는 열 서너 살 때까지 여자 옷을 입혀서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좀 커서 남녀 특징이 분명해지면, 그제야 남자 옷을 제대로 입혔습니다.”


“아니, 도대체 뭐하러?”


“삼신님들이라면 탄생을 주관하시기에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


혼구슬은 어딘지 모르게 착잡한 어조로 말하다가, 슬쩍 말끝을 흐렸다. 설화는 다시 그네를 슬금슬금 흔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녀에게 29번째로 할당된 혼구슬을 부모들에게 수태시킬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할 말이 남았거든 빨리 하든지, 아니면 이따가 말해라.”


설화는 그네 흔들던 것을 멈추고 채근했다. 그녀가 가야 할 빨간 지붕의 주택 창문 간유리에서, 오묘하게 불그스름한 불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침실에서 교합할 남녀들이 마치 첫날밤을 보냈을 때처럼 등불을 켤 때 나는 빛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혼구슬은 까슬까슬한 어조로 물었다. 설화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조가비 받침대가 담긴 함을 챙겨들고 그네에서 일어섰다.


“가는 겁니까?”


“그래.”


“알았습니다. 사실, 이승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별의별 꼼수를 쓰는데, 그 중에서 차사님들 눈을 속이려 드는 게 참 많았습니다.”


“어떻게 속인다고? 너도 그 아가씨 몸을 빌려봐서 알겠지만, 끈이 있다고 알지 않느냐?”


“물론 그게 제일 빼도 박도 못할 표식이긴 합니다만.”


혼구슬은 피식 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 말했다.


“조금이라도 차사님들 헷갈리게 하면, 그만큼 더 살 수는 있으니까요. 남자아인데 여자아이로 키우거나, 아니면 머리 깎아 승려로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신분세탁 아닌 세탁을 시킵니다. 그러다 차사님들이 제때 못 찾고 돌아갔다 싶으면, 그제야 원래 모습으로 키웁니다.”


설화는 혼구슬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해보았다. 아마도 사고수를 읽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사들이, 사고를 비껴갔기에 하릴없이 돌아오는 경우도 그런 범주에 들 듯했다.


‘소위, 액운을 그런 식으로 피해간다는 건가.’


설화는 나름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모셨던 왕비도 귀하게 얻은 후사가 단명할까봐 두려워, 액운을 피해가기 위해 여자 옷을 입혀서 키운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가 두 번째 인생을 살았던 시대에선, 어떤 프랑스 왕족도 그래서 아기 때부터 열 살 때까지는 여자 옷 입고 컸다 합니다. 같은 시대 국왕 일가가 목 잘려 죽는 일도 있었지만, 그 왕족은 그 사람들보단 꽤 오래 살았고요.”


혼구슬은 무지갯빛을 은은하게 뿜으며 말했다. 설화는 혼구슬이 하는 말을 그저 흘려듣기만 했다. 그녀로서는, 같은 시대에 같은 존재로 있었던 인간 여자들과도 이런 식의 대화를 한 기억이 없었다.


저승에서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였다. 그저 수석 삼신과 상급자들의 지시를 듣고 따랐을 뿐, 서로가 가진 기억을 같은 눈높이에서 공유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근거가 있는 얘기냐?”


설화는 빨간 지붕 저택의 문을 열며 말했다.


“남의 나라 왕실 일을 너무 시시콜콜 알아도, 좋을 건 없어. 그리고 너하고 업연이 있는 사람들 일도 아닌 거 같은데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전 배운 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역사를 배웠으니까요.”


“이승에서?”


“물론입니다. 그리고, 전 딴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제 인생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 이승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기록했는지도 속으로 대조하고 확인할 수가 있지요.”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설화는 엄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침실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2층을 향해 소리없이 올라갔다. 2층 침실에서는, 금발의 남자와 갈색 머리 여자가 엎치락뒤치락 하며 관계에 한껏 취해 있었다.


갈색 머리 여자는 침실에서의 관계가 처음이 아닌 듯했다. 그녀의 몸에 깔린 침대 시트는 땀과 애액으로 젖어 있었을 뿐, 핏자국은 일절 없었다. 설화는 별 표정없이 그들 남녀를 보다가, 29번째로 할당된 혼구슬을 꺼냈다. 그러자, 갈색 머리 여자의 허리에서 분홍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제대로 찾았군.’


설화는 나머지 혼구슬들이 든 함을, 침대 발치에서 한참 떨어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30번째인 혼구슬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 앞에서 환생 기다리는 혼들 나갈 차례마다, 모체 앞을 가로막고 시위했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귀와 머릿속이 동시에 울려서 멍했다. 그 때 이미 그랬던 혼구슬이라면, 이번에도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듯했다. 문득, 혼구슬의 목소리가 조금 멀게 들려왔다.


“방해 안 할 테니까, 쫄은 거나 티 좀 내지 마십시오.”


“뭐시라?”


설화는 29번째 혼구슬을 꺼내서 서서히 띄우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지금도 충분히 방해되는 줄은 아느냐?”


“알았습니다. 계속 하십시오.”


혼구슬은 다소 볼멘 투로 응수했다. 설화는 외마디 신음을 짧게 내뱉었다가, 29번째 혼구슬에 기를 모으고 모체와의 감응 상태를 살폈다. 모체인 갈색 머리 여자의 허리둘레에서는, 붉은 기가 실핏줄처럼 피어오르는 분홍색 빛이 감돌았다.


침대 위의 두 남녀는 일시에 서로의 위치를 바꾸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를 안아 일으키는 듯했다. 그러다가 여자가 몸을 모로 돌리며 남자를 옆으로 쓰러뜨렸다. 여자는 조금 전까지 천장을 보며 누워있었던 것과는 달리, 침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동시에 가슴과 얼굴을 약간 들었다.


남자는 아까와는 달리 침대 위에서 볼록하게 보이는 여자의 엉덩이 쪽으로 다가갔다. 마치 언덕 위에 올라타듯 했다. 남자는 여자의 손과 살짝 파인 등뼈 한가운데를 열정적으로 애무했다. 여자는 베개를 꼭 안은 채 남자의 몸짓을 받아내며 온몸이 불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설화는 한동안 얼떨떨하게 보다가, 한 손으로 얼굴 한 쪽을 황급히 부채질했다. 그리고는 여자의 허리 부분만 주시했다. 남자의 것이 아까보다는 조금 높게 비껴오르는 각도로 여자의 두 다리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엉덩이가 엉덩이 위로 오르내리는 와중에, 모체가 될 여자의 허리둘레에서는 더욱 감응도가 짙은 빛이 감돌았다.


설화는 두 손으로 모아 들고 있던 29번째 혼구슬을 반허공에 띄웠다. 그 순간, 여자의 허리 위에서 감돌던 빛이 진홍색이 되며 그 이상의 색 변화를 멈추었다. 자궁 안에서 아이의 육체가 완성되었다는 징후였다. 29번째 혼구슬은 서서히 여자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후우.”


설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배인 식은땀을 한쪽 손등으로 쓱 훔쳤다.


“살다 살다 저런 건 처음 봤네.”


설화는 함을 놓아둔 탁자 앞으로 돌아오며 중얼거렸다. 남녀의 교합 장면을 보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어미가 될 여자가 등을 보인 채로 있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그 때, 함 속에 있던 혼구슬이 말했다.


“뭘 보고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셨습니까?”


“됐다! 이제 네 차례니까 얼른 가자.”


“그럼 이번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겁니까?”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도착하면 알게다.”


설화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함을 챙겼다. 그들은 집을 나서서 다시 그네 앞으로 돌아왔다.


“여기선 좀 멀어. 바다도 한참 건너야 되니, 가는 동안 네 얘기나 좀 해 봐라.”



1832년 6월, 파리.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죽음을!”


군중들은 붉은 깃발을 흔들며 일제히 외쳤다. 바스티유 광장까지 라마르크 장군의 관을 운구하며 뒤따랐던 이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보다가, 군중들 속으로 합세했다. 연단에서 연설을 마쳤던 공화주의자들은,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어느 한 곳을 보고 흠칫했다.


“아니, 저기 - ”


도시 경비대가 연단 주변부터 장례행렬까지 일시에 퍼져 나가듯 우르르 나타났다. 그리고는 군중들 전체를 순식간에 에워쌌다.


“착검하라.”


경비대장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군중들 중 한 명이 분노에 찬 시선으로 경비대 군인들을 휙 돌아보다가, 깃발을 더욱 높이 쳐들고 구호를 선창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죽음을!”


군중들이 연이어 깃발을 쳐들며 외쳤다. 그 때, 총소리가 울렸다. 순간, 대열이 일제히 흐트러졌다. 누군가 총에 맞은 것인지 일제히 확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중년 남자 하나가 피로 물든 허벅지를 움켜쥐고 고꾸라져 있었다. 피를 본 군중들의 분노 어린 시선은, 일제히 군인들에게 향했다.


남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서로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급히 붙잡고 뒤로 빠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에 치여서, 총에 맞은 남자와 아이들은 이리저리 밟히며 강제로 떨어지고 말았다.


연단 위에 있던 공화주의자들은 얼결에 두 손을 들었다가, 황급히 거리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빠져 나가려 했다. 경비대장은 다시 한 번 손을 올렸다가 세차게 내렸다. 그것은 단순히 질서유지를 위한 엄호를 벗어나, 대대적으로 발포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장총을 들고 경계 태세를 취하던 경비대 군인들은, 일제히 군중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우왕좌왕하는 군중들 속에서 간헐적으로 여자와 아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깃발을 든 군중들은, 깃대를 더욱 힘주어 움켜잡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죽음을!”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의 소리는, 더욱 처절하게 울렸다. 장총을 들고 있던 경비대 군인들 몇몇의 상반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경비대 군인들과 군중들은 서로 대치하면서 옆으로 대열을 몇 발짝 옮기다가, 총구에 밀려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유지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죽음을!”


연단에 있던 공화주의자들이 일제히 내려와서, 그들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군중들은 이에 힘입은 듯, 깃발을 더욱 힘껏 쳐들며 외쳤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죽음을!”


급기야, 군중들 중에서 각목과 낫을 가지고 있던 농민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추모 연설을 했던 고위 인사들도 그들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라파예트 후작이었다.


“모두들!”


후작은 두 손을 위로 쳐들어 보였다. 그러자, 경비대와 군중들 모두가 그를 일제히 돌아보았다.


“자리를 지키시오!”


“위험합니다!”


옆에 있던 이들이 후작을 붙잡으며 말리려 했다. 후작은 결연하게 이들을 뿌리치고 더욱 앞으로 나섰다. 그는 비록 귀족이었지만, 왕실과 시민들 양쪽 모두에게 신망이 깊은 인물이었다. 그가 나서자, 장총을 쥐고 있던 경비대 군인들 일부의 손이 다소 느슨해졌다. 군중들 또한 걸음을 주춤하다가 잠시 멈췄다.


“부상자는 속히 옮기게 길을 트고, 질서를 유지해주시오!”


후작은 군중들 속에서 총 맞은 남자가 있던 위치를 정확히 가리켰다. 그리고 동시에 경비대 군인들에게도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후작의 손짓에 따라,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후작이 지시한 위치로 군중들 틈을 비집고 가려던 사람들 또한, 서로의 위치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자유를!”


군인들 수십 명이,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이탈한 군인들은 군중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군중들에게 등을 보이고 나머지 경비대를 향해, 장총을 깃발처럼 쳐들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죽음을!”


군중들 쪽으로 위치를 바꾸는 군인들이 점점 늘어갔다. 경비대를 이끌던 대장은, 본격적인 신호를 보내며 명령했다.


“발포! 전원 발포하라! 사살하라!”


“안 돼!”


후작은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악화되고 있었다. 공화주의자들 몇몇도 경비대가 쏜 총에 맞아, 여기저기 쓰러져 즉사했다. 군중들 틈에서, 삼색 동심원 형태의 휘장을 단 이들이 더욱 격분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군중들 중에서는, 맨주먹으로 눈앞의 군인을 때려눕히는 자도 있었다. 장총을 빼앗아서 뒤의 군인들에게 마구잡이로 쏘는 자, 혹은 그 장총의 총신 끝에 달린 단검으로 상대를 찌르는 자, 그리고 총신을 휘둘러 상대를 때려눕히는 자도 있었다. 총격전과 마구잡이 주먹질로, 거리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자.”


후작은 침통한 어조로 뇌까렸다. 그의 시선에 비친 오스테를리츠 다리는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리 난간과 바닥에는 경비대와 군중들, 휘장을 단 조직원들의 시체가 너나할 것 없이 뒤엉켜 널브러져 있었다.


“가자!”


후작은 절규하듯 외쳤다가, 일행들을 이끌고 다리를 건넜다. 이미 왕정은 분노한 시민들 손에 한 차례 무너졌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준비가 미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혁명의 후폭풍은 엄청났었다.


결국, 왕정과 공화정의 중간 형태로써, 국민들의 손으로 왕을 직접 뽑자는 절충안을 제시했었다. 그렇게 선출된 국왕이, 바로 루이 필리프 1세였다. 하지만 옛 왕정과 차츰 흡사한 치세로 흘러가는 조짐이 보이자, 시민들은 다시 일어서기에 이르렀다. 의회에서도 급진적인 공화주의자들이 이러한 열기에 부채질한 것도 한몫했다.


‘더 늦기 전에 알려야 한다! 더 이상 누구도 죽게 할 순 없어!’


후작은 곧장 왕궁으로 달렸다. 그리고는 국왕의 부관인 에이메스 장군을 곧장 찾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다리 위의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시위하던 군중들은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 중에서 살아남은 청년들은 다리 곳곳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경비대의 잔여 병력들을 미행했다. 청년들은 가슴에 삼색 동심원 휘장을 달고 있었다.


“정규군을 더 보낼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열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지금은 한 만 오천?”


청년들은 이를 악물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럼 더 지원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


경비대가 주고받는 말소리는 거기서 끝났다. 청년들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짝을 지어 흩어졌다. 그들은 다시 파리 외곽 지대에 모여들었다. 그곳에서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호리호리한 그림자는 여자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청년 하나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국왕이 돌아오자마자, 우릴 치려고 지원군을 소집해서 보낸다는데.”


“역시 그렇군.”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린 뒤에 물었다.


“어느 정도나 된대?”


청년은 엿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그녀는 끝까지 들은 뒤에 말했다.


“결국 왕정은 왕정이었던가.”


“제길.”


청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울분을 애써 삼켰다. 그녀는 주변을 살핀 뒤에 말했다.


“빨리 돌아가자.”


그들은 주변의 눈을 최대한 피해가며, 동쪽 지구 후미진 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들은 폐가가 밀집된 곳에 도착했다. 어느덧 하늘에 이지러진 달이 뜨고 있었다.


“델핀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갈색 머리 남자가 그녀를 나직하게 불렀다. 델핀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얼른 돌아보았다.


“대장한테 빨리 가봐.”


“알았어!”


델핀느는 ‘대장’ 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옆구리에 철근 여러 개를 꼭 낀 채 한달음에 뛰어갔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동쪽 지구 끝에 위치한 폐가였다. 폐가 안에서도 아직 무너지지 않은 안쪽 방에는, 검은 그림자가 기둥에 기댄 채 도사리고 앉아있었다.


“앉아.”


검은 그림자는 단답형으로 말했다. 벽 곳곳에 창문이 트여 있었지만, 그림자는 몸을 살짝 틀어서 빛을 등지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어깨와 밋밋한 가슴이 상당히 넓고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자라는 것만 겨우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델핀느는 철근 한 아름을 더욱 힘주어 잡은 채, 경계심이 순간적으로 탁 풀려버린 표정으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걸 뭘 또 통째로 들고 왔어?”


남자의 어조는 짐짓 퉁명스러웠지만, 묘하게 일말의 정감이 깔렸다. 델핀느는 몸을 굽혀 철근을 내려놓고는, 남자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남아도는 게 힘뿐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리케이드는 최대한 쳐야 하니까요.”


“많이 컸네.”


역광 속에서 내리비치는 남자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번졌다. 델핀느는 뾰로통하게 보다가 말했다.


“아직도 애 취급합니까? 지금 우리가 몇 살 차이인데요?”


남자는 별다른 말도 없이 껄껄 웃어젖히기만 했다. 델핀느는 철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군대가 또 언제 올지 모릅니다, 대장.”


남자의 턱에 힘이 다소 들어갔다.


“확실히 그렇지. 라파예트 후작께서 그리 진정시키려 하셨다지만, 군대에서 먼저 무모하게 발포 - ”


“그 때, 너무 많이··· 죽었어요. 그래서, 다들 우리 편이 되는 것만 같았지만.”


“그런 열기는 오래 가지 못해.”


남자는 고개를 한 번 젓고, 단호하게 말했다. 델핀느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남자의 상반신을 주시했다. 그의 가슴에는 동심원 형태의 휘장이 달려 있었다. 붉은 원, 그 안쪽에는 하얀 원, 한가운데에는 푸른 구심점이 겹쳐진 모양이었다.


“그럴까요?”


델핀느는 자신의 가슴에도 달린 휘장에 손을 잠시 댔다가, 슬쩍 물음을 던졌다.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델핀느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남자의 검푸른 눈동자가 다소 동요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 일은, 중간에 있는 부르주아들만의 잔치가 아닌 것 같은데요.”


델핀느는 힘주어 말했다. 남자는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말했다.


“그건 나를 말하는 건가?”


“아니요.”


델핀느는 휘장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솔직히 이번엔, 삼부회에 들어가지 않던 사람들이 더 먼저 일어났잖아요, 안 그래요?”


남자는 ‘삼부회’ 라는 말을 듣고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300여년 전, 루이 13세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의 어미이자 섭정 태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의 명으로 폐지되었던 신분별 의회 제도였기 때문이었다.


“글쎄, 그 삼부회가 어째서 오랜만에 다시 열렸다 아주 사라졌는지 생각한다면.”


남자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말을 꺼냈다.


“왜 지금은 부르주아들보다 더 많은 서민층들이 열을 올리는지 답이 나오겠지.”


작가의말

* 2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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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1. 거래는 성사되었다 (1) : 피로 물든 밤 19.08.06 93 0 31쪽
40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4 19.08.05 102 0 27쪽
39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3 19.08.05 108 0 26쪽
38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19.07.30 88 0 19쪽
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116 0 16쪽
36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128 0 22쪽
35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19 0 19쪽
3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7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7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8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7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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