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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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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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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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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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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월의 열기 (2)

DUMMY

5. 6월의 열기 (2)



델핀느는 창문 틈에서 스며들어오는 달빛을 받는 남자의 옆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부르주아에 대해서 말했던 그의 어투는, 그저 담담했다. 그리고, 삼부회에 대해 언급할 때는, 입술 한쪽 끝이 살짝 비틀렸었다.


“앙투안.”


델핀느는 남자의 이름을 불쑥 불렀다. 남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살짝 움찔했다.


“그건 서민층이든, 귀족이든 상관없는 문제 같은데요.”


델핀느는 앙투안의 반응을 보고는, 정색하며 그렇게 말했다. 앙투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델핀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문제에요. 한 번 왕을 처단하고 나서는 그 다음부터 예의 주시하게 되니까, 그 전엔 못 봤던 게 더 잘 보이는 거고요. 다만, 그렇게 보이는 문제점을 자기들 편하자고 내버려 두는 것들, 아니면 다시 한 번 바꿔보자고 나서는 자들, 지금 시국은 이 두 가지로 나뉘겠지요.”


“흠.”


앙투안은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잡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는 생각에서 깨어나서 말을 꺼냈다.


“혹시, 아직도 기억해?”


“뭘요?”


“로마 제국 쇠망사.”


델핀느는 온몸에 전율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앙투안의 고혹적인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수백 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기약 없는 연합군의 지원만을 기다리며 끝까지 항전했던 젊은 백작의 눈빛이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백작보다 더욱 젊고 아름다운 모습인 앙투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알죠.”


델핀느는 목이 꽉 메여오는 것을 참고 말을 이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


앙투안은 눈을 약간 가늘게 뜨고 델핀느를 건너다보았다. 그러는 그의 속눈썹들 끝이 살짝 젖어들었다. 델핀느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힘 있는 자들이 모여서.”


“선의로 시민을 자처했고.”


앙투안은 바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녀 또한 그렇게 이어나갔다.


“그들 모두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지도자를··· 갈구하여.”


델핀느는 그 말을 하며, 앙투안을 바라보았다. 앙투안은 델핀느의 시선을 받고 멈칫했다가 말했다.


“어느 하나로 치우침이 없게 하도록.”


“세 명의 지도자를 세웠다.”


“그러나.”


앙투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서로 다른 뜻을 지닌 그들의 뜻은··· 분열되었고.”


“세 명의 지도자가 섰던 시대는 두 번 만에 끝이 났으며.”


“그들 모두를 쳐낸 단 한 명의 독재관은.”


“마침내··· 황제가 되었다.”


델핀느는, 오래 전 기억을 더듬으며, 앙투안이 제시한 대목을 마무리했다. 앙투안은 그런 델핀느를 보다가, 철근의 절반을 들고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다음 말을 꺼냈다.


“오래 전 황제가 되려다가 비명에 갔던, 제 아비의 실책을 따르지 않기 위해.”


“황제는 스스로의 칭호를 제 1시민, 프린켑스(Princeps)라 하였다.”


“그 이후로, 다섯 명의 현명한 이들이 차례로 황제의 양자가 되어 뒤를 이으니.”


“프린켑스를 자처했던 초대 황제부터, 친자가 아닌 현명한 사위를 선택했기에.”


“그 전례를 이어 로마를 다스린 다섯 명의 황제들은, 수백 년간 평화를 유지했었다.”


앙투안은 말을 마치고 델핀느를 바라보았다. 델핀느는, 근 200년 전에 백작이 했던 말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다면, 그건 예전에 누군가 힘껏 싸워서 적을 물리쳐줬기 때문이다.’


델핀느는 나머지 철근을 두 손으로 잡고 힘껏 들어올려 옆구리에 꼈다. 이제는 다시 싸워야 할 때가 온 듯했다.


“그러다 아비의 뒤를 이은 무능한 황제 하나는, 시민들이 제 손으로 끌어내렸고.”


델핀느는 파리 대학에서 배웠던 역사 수업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말했다. 먼 옛날 제노비아였을 때는, 백작에게서 로마의 제정 시대 중 5현제 시대의 유래까지만 전해 들었었다. 전설적인, 그리고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만큼 가장 길었던 평화의 근원을, 백작은 제노비아였던 그녀에게 말해주었었다.


“왕실과 먼 자들이 돌아가며 황제가 되다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무능과 부패함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프랑스의 국왕은, 결국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채 시민들의 손에 목이 잘리고 말았었다. 한 인간으로서는 엄격하고 절제된 국왕이며 가정적인 아비였지만, 2대에 걸친 선대의 무능한 결과물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앙투안은 어둠 속에서 잠시 말끝을 흐리던 델핀느를 물끄러미 보다가, 확고한 어조로 끝을 맺어주었다. 델핀느는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은 대학에서 배운 지식입니까? 아니면 나한테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기도 합니까?’


그 어느 쪽도 틀리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마 앙투안에게 직접 물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나 말고는, 인간은 누구도 과거를 다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 당신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길 바라는 건 무리겠지요.’


그 때 앙투안이 한 손을 델핀느의 얼굴 쪽으로 조심스럽게 뻗었다. 뺨에 닿을 듯 말 듯했지만, 바로 갖다 대지는 않았다. 그는 아주 짧게, 그리고 옅은 한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


“삼부회도 마찬가지야, 델핀느.”


“네?”


델핀느는 콧 속에 차오르던 콧물을 들이마시려다가, 울음을 삼키느라 목 메인 어조로 황급히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삼부회’ 라는 말이 그녀의 귓속에 들어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아, 삼부회요.”


델핀느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코를 들이마시려 했다. 그 때, 앙투안이 말했다.


“잠깐만, 델핀느.”


“네?”


“실례 좀 한다.”


“뭐, 뭘요!”


“미안해.”


앙투안은 그 말을 하고나서, 철근을 잡지 않은 한 손으로 델핀느의 뺨을 만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뒤져서 손수건을 건넸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미안하다고. 나 때문에 또 울지 마.”


델핀느는 손수건을 받아들다가, 앙투안의 말을 듣고 얼떨떨해서 멈칫했다.


‘또··· 라고?’


델핀느는 잠시 얼어붙은 채 앙투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앙투안은 뭐라고 더 말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밖에서 스며드는 달빛 때문에, 그의 옆얼굴 실루엣에 언뜻 치켜 올라간 속눈썹 끝에 이슬이 잠깐 반짝했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빛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아니,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지. 울고 싶을 땐 그걸로 다 울라고 해야 하나.”


앙투안은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델핀느는 앙투안이 준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확 문질렀다. 그리고는, 짐짓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됐거든요?”


“뭐가!”


앙투안도 질 수 없다는 듯, 짐짓 버럭 외쳐보였다. 델핀느는 또다시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100여 년 전, 기타를 꺼내들고 홀로 울던 제노비아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던 젊은 백작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그 땐 당신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었는데, 당신은 뭐가 그리 미안한지 목석처럼 버티고 서서 기다리기만 했었죠.’


델핀느는 한 손으로 눈가를 쓱 훔치고, 철근을 더욱 힘주어 들었다.


“대장 때문에 운 거 아니니까, 됐다고요!”


“거짓말.”


앙투안은 돌연 싸늘하게 내뱉었다. 델핀느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일단 가면서 계속하지.”


앙투안은, 다른 학생들 앞에서 하던 것처럼 공식적이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델핀느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폐가 밖으로 나왔다.


“너도 알다시피, 삼부회는 이 나라 사람들 계급을 편의상 크게 세 가지로 묶어서 분류한 다음에, 각각의 대표들을 소집하는 의회 제도였지.”


“네.”


“성직자, 귀족, 그리고 지금의 부르주아. 이렇게 셋이었는데. 지금의 부르봉 왕가가 서고 나서는, 섭정 태후 하나가 제 측근들하고 독재하려고 다른 귀족 세력의 개입을 막기 위해 삼부회 자체를 없애버렸어.”


델핀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흠집 난 와인 오크통들이 쌓여가는 시가지를 흘끔 보았다. 해질녘까지 라마르크 장군을 추모했던 시민들의 피로 물든 광장은, 오크통과 장총으로 쌓여가는 바리케이드에 반쯤 가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첫 혁명 전까지 재위했던 국왕은··· ”


앙투안의 어조가 다소 착잡해졌다. 델핀느는 그가 말하는 국왕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살한 클라우디아의 몸을 빌려서 피렌체에 잠시 살았던 시절, 당시에 재위했던 국왕 루이 16세였다.


“부르주아들조차도 가까이 하지 않다가, 오래 전 잊혔던 삼부회를 겨우 끄집어냈다지.”


“안 그래도 국고가 간당간당했는데, 쓸데없이 남의 나라 식민지 독립 전쟁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지요.”


델핀느는, 클라우디아였던 시절에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 클라우디아의 본체를 짝사랑한 프랑스 귀족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보니 부르주아들하고 서민들한테 계속 돈 걷기도 민망했겠고, 귀족들한테도 돈 걷을 명분을 확보하려면, 일단 모이게 하는 게 우선 아니었을까요?”


델핀느는, 클라우디아였던 시절의 일들을 떠올리고,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이끌었던 혁명과 겹쳐보며 물음을 던졌다. 앙투안은 묵묵히 듣다가, 들고 있던 철근 기둥 하나를 바닥에 세웠다. 다리 왼편에 바리케이드의 뼈대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럼, 모아서 뭘 어쩌려고 했을까?”


앙투안은 기둥과 철사를 연결하며 물었다. 델핀느는 시가지 밖으로 연결된 다리의 다른쪽 난간에 가서 멈춰섰다. 그곳에 철근을 간격 별로 세우고, 사이사이에 철조망을 쳐서 울타리를 치려는 참이었다.


“어떤 일을 도모하든 간에 말이죠.”


델핀느는, 클라우디아였던 시절에 보았던 붉은 머리 남자를 떠올렸다. 붉은 머리 남자는 생전의 클라우디아를 간절히 원해서 집착했지만, 정작 그의 손으로 직접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랫사람들이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건 흔한 일이거든요.”


델핀느는 철조망 라인을 연결한 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시처럼 철사를 꼬아 붙이며 말했다. 말하던 끝에는, 벌레를 집어서 눌려죽이듯, 가시철사를 두 손가락으로 눌러 고정시켰다.


“성직자 양반들, 귀족 나리들은 항상 세금 안 내는 자기들 입장 밀어붙이려 들었을 거고, 부르주아들은 자기들이 귀족보다 못한 게 있겠는가, 그렇다고 다 죽을 순 없으니 당신네들도 같이 고통 분담하자, 이랬겠지요.”


“그 부르주아들 중엔 정말 순수하게 서민을 생각한 혁명가도 있었다는 건 생각 안 해봤어?”


앙투안은 철근 하나를 더 세우며, 슬쩍 떠보는 어조로 물었다. 델핀느는 철조망 세 줄을 마무리한 뒤, 시니컬하게 응수했다.


“물론,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순수한 분들은, 혁명을 정치적 목적으로 삼고 계획한 작자들의 원동력이 될 뿐, 살아있을 때는··· 진정한 주인공이자 혁명가로 평가받질 못했어요.”


델핀느는, 문득 제노비아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바로, 그 옛날의 당신처럼 말입니다.’


그 당시 왕위 계승 전쟁의 최종 국면을 앞두고 스페인 영토에 입성했던 백작은, 최종 승리를 끌어냈다고 알려진 베릭 공작이 오기 전까지 바르셀로나의 군사 점령권을 끝까지 사수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프랑스와 스페인 모두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혁명 때 부르주아들이 여론을 조성했다면, 그간 지나친 세금과 학대 때문에 힘들었던 시민들은 그런 여론에 의지해서 비로소 뭉칠 수 있었던 거겠지요.”


“그래서?”


“어떤 집단이든,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들은 아래에서 분탕질 치는 걸 보면서 다음 수를 궁리하더라고요. 하물며 국왕이라면, 싸우는 건 귀족과 부르주아들한테 맡겨놓고, 나중에는 아~주 평화롭게 중재자 역할을 하면 깨끗한 군주로 남을 수 있다고··· ”


델핀느는 말하던 끝에, 하나 남은 철근을 두 손으로 힘껏 쳐들었다.


“그렇게 생각했겠죠!”


델핀느는 힘껏 쳐든 철근을 바닥에 깊고도 강하게 내리 꽂았다. 손등 위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어느덧, 바리케이드가 빼곡하게 쌓였다. 그 사이, 시위대를 자처한 청년들은 탈취한 장총들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앙투안은 장총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국왕은 그 세 계급을 제대로 모으지도 못했다는 건가?”


“네.”


델핀느는 상처투성이가 된 손으로 장총을 집어 들었다. 삼색 동심원 휘장을 단 청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총을 집어 들었다. 농민이었던 중년 남자 하나는, 죽창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에 서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남자의 얼굴은 달빛 아래에서도 싯누렇게 떠 있었다.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에서, 눈빛만 슬픔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젊은 법관을 아들로 두었던 여관 주인은, 한쪽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다른 손에 든 죽창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그런 여관 주인의 가슴에는, 삼색 동심원 휘장과 함께, 조그마한 상장(喪章)도 함께 달려 있었다. 아직 덜 자라서, 반달도 되지 못한 이지러진 달빛 아래 비치는 얼굴의 주름은, 한없이 깊어 보일 뿐이었다.


여관 주인은 바구니에서 작은 빵을 꺼내, 시위대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저, 빠르게, 적당히 씹어 넘길 수 있을 만큼만 구웠다가 황급히 꺼낸 빵이었다. 빵을 받아서 입에 무는 사람들 손도 미세하게 떨리고, 더러는 눈물짓는 이들도 있었다. 델핀느는 빵을 받아서 입에 물고, 뜨겁게 익은 빵과 익지 않은 가루의 텁텁함을 동시에 느끼며 흠칫했다.


‘이것이 모두, 살아서 맛보는 마지막 순간이 아니기를.’


어쩌면, 루이 16세와 그 일가를 단두대로 보내던 최초의 혁명은, 덜 익은 빵처럼 섣불리 달아오른 열기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혁명에 참여했던 몇몇의 귀족들과 부르주아들, 그리고 부르주아들의 여론에 한 차례 깨어났던 시민들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부르주아들의 이익에 도구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먼저 일어난 사람들.’


델핀느는 눈물 젖은 빵을 더욱 꼭꼭 씹었다. 앙투안은 빵 하나를 받아든 채 그대로 있다가, 델핀느가 빵을 우걱우걱 씹는 것을 착잡하게 주시했다. 그는 여관 주인과 다른 시위대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


“물 떠다 줄까?”


델핀느는 멈칫했다. 입 속에서 딱딱한 빵 조각이 입안 조직을 잠시 긁었지만, 잠깐이었다. 그녀는 입 속 빵 조각을 얼른 어금니로 잘라서 넘긴 뒤, 혀를 움직일 여유 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는 우물거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델핀느는 입 속 침으로 재빨리 남은 빵 조각들을 무르게 만든 뒤 목 뒤로 물컹물컹 넘겨서 삼켰다. 그리고는 계속 말했다.


“나 물 한 모금 먹겠다고, 다른 사람 다치는 건 안 되죠. 더구나, 그게 대장님이면.”


델핀느는 바리케이드 너머를 충혈된 눈으로 넘겨다보며 말했다. 앙투안은 그녀가 ‘대장님’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미간을 약간 좁혔다. 그는 파리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시위대로 주도하여 이끌고 온 상급생이었다. 그렇기에, 델핀느를 포함하여 그를 따라온 학생들은, 그를 대장이라고 불렀었다.


“앙투안.”


앙투안은 나직하고도 쫙 깔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델핀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앙투안도 먹고 힘내야죠.”


델핀느는 아주 잠깐 미소를 띠었다가, 정색하고 말했다. 앙투안은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의 몫으로 받은 빵을 베어 물었다. 그 때, 정찰을 나갔던 시위대들이 붉은 깃발을 올렸다.


“군대가 온다!”


바리케이드 외곽 쪽에서 일시에 흙먼지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다리에서 시민들을 쏘았던 경비대만 집결한 것이 아니었다. 앙투안과 시위대들은 생 드니 거리 외곽에 쌓은 바리케이드 앞에 간격을 두고 엎드려서 장총을 겨누어 경계 태세를 취했다. 델핀느도 앙투안 옆에 나란히 엎드리고 총신을 어깨에 걸쳐 자세를 잡았다.


“왕정은 반드시 끝난다.”


“앙투안.”


“끝나야만··· 한다!”


앙투안의 검푸른 눈이 이글거렸다. 그 때, 근위대 서너 명을 대동한 일행이 거리에 나타났다. 앙투안은 일행 중에서 한 명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저 사람은!’


앙투안은 상대를 알아보고 굳어졌다. 델핀느는 앙투안의 굳어진 기색을 확인하고 물었다.


“왜 그래요?”


“일이 심상치 않게 됐어, 델핀느.”


“무슨 말이에요?”


“정규군이 이쪽을 염탐하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지만.”


앙투안은 이를 악물었다. 언뜻, 입가에서 크윽-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국왕의 최측근이 직접 이쪽을 살피고 가는 건 예삿일이 아니잖아?”


“저게 누군데요?”


델핀느는 앙투안이 잠깐 보던 방향을 흘끔 확인했다가,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왕실 수석 부관, 에이메스 장군.”


앙투안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국왕의 부관들 중에서, 제일 선임인 작자야. 저런 사람이 곧바로 움직인 게 아니고서야, 궁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리가 없지.”


“후작께서 먼저 왕실에 알려서 그런 건 아니고요? 역시, 끼리끼리인 건가요.”


“제길.”


앙투안은 이를 갈았다. 그 사이, 근위대 일행은 수도원 주변을 살펴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작가의말

 * 다음에는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챕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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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4 0 15쪽
» 5. 6월의 열기 (2) 19.07.02 90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8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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