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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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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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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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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DUMMY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두 사람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올리비에는 어느 정도 경시청 건물과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멈춰섰다.


“아까 병원 앞에서.”


“네?”


앙투안은 올리비에를 따라 멈춰서며, 외마디 소리를 냈다. 올리비에는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끓어오르는 듯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왕립 과학원 인간들 봤어?”


“네, 안 그래도 콜레라 때문에 여러 부속 대학에서 입원하는 사람들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럼 아까 말한 시장님 아들이, 그 왕립 과학원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아?”


“그렇습니까?”


올리비에는 다시 몇 발짝 앞으로 나갔다. 최대한 경시청에서도, 병원 건물에서도 멀리 떨어지려는 듯했다. 앙투안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묵묵히 선배인 상대를 따라 나란히 걸어갔다.


“네가 찾는 아가씨에 대해선 별로 나온 게 없는데, 그 아가씨 쫓는 작자들 파고들다 보니 희한한 것만 쏟아져 나오더라.”


“네?”


“그 시장 아들, 왕립 과학원에 있다가 이번에 실려 나왔어. 너도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얼마 전까지 일 한 번 크게 낸 녀석이라.”


“뭔데요?”


“에바리스트··· 갈루아.”


올리비에는 아까와는 달리, 진중하고도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앙투안은 갈루아라는 이름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갈루아는 어린 나이에 왕립 고등학교에 입학한 수학 천재였지만, 수학 이외에는 거의 낙제에 가까운 괴짜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예비학교로 진급한 이후에는, 수학에만 몰두하던 외골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개 석상에서 왕실을 모독한 죄로 6개월 동안 감옥에 가기도 했다.


“가두시위 때도 열정적이라서 인상에 남았거든.”


그 때, 올리비에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아가씨도 혹시 아는지 물어보고, 우리하고도 연합해 보자고 할 겸 찾았더니 콜레라 때문에 여기 와 있다고 해서, 너한테 오자고 했던 거야.”


“그럼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앙투안은 흠칫 했다가 물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가려 했다. 그러자, 올리비에가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턱 붙잡았다.


“선배님?”


“문제는.”


올리비에는 계속 말했다.


“어느 정도 차도를 보여서 오늘 기준으로 모레쯤이면 내보낼까 하는 얘기도 있었다는데.”


“근데요?”


앙투안은 어리둥절했다. 갈루아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두어 살 어리지만 이미 상당한 기행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갈루아가 과연 이번에는 어떤 행보를 보였다는 것인가.


“며칠 전부터 안 보였다고 해. 근데 왕실 모독 혐의까지 받았다가 시덥지 잖은 이유로 폭주했다는 법정 변호 기록을 남기고 일시 사면된 거라, 계속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다고.”


“근데 왜 경찰에 더 말하려는 걸 말린 겁니까?”


어느덧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 때, 숲 속으로 창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여러 사람들이 달려가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밀짚모자를 쓴 농부가 앞장섰고, 정복 경관들 몇 명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 남자와 후드를 쓴 여자가 뒤따르는 옆모습이 빠르게 스쳐갔다.


앙투안은 그들이 한꺼번에 몰려가는 곳의 위치를 확인하고 흠칫했다. 그리고는, 올리비에의 손목을 확 잡아끌었다.


“야, 야!”


올리비에는 몸이 확 끌려가는 바람에 휘청했다가,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앙투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간 쪽으로 내달렸다. 올리비에는 기가 막힌 듯 보다가, 하는 수 없이 뒤따라갔다. 아침 해가 떠서 어느 정도 날이 밝아진 상태였기에, 위치를 찾아 쫓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덤불 안쪽 벌판에 도착했다. 벌판에는 20대 청년 하나가 복부와 허벅지, 그리고 흙바닥을 온통 피로 물들인 채 쓰러져 있었다. 검붉은 피로 범벅된 셔츠 앞에 더욱 시커먼 구멍이 꿀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총을 정통으로 맞은 듯했다. 한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올리비에는 사람들 틈에서 청년의 죽은 사람 같은 얼굴을 확인하고 경악해서 나직하게 내뱉었다.


“갈루아 군!”


앙투안은 깜짝 놀라서 올리비에를 홱 돌아보고는, 다시 쓰러진 청년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화제에 올렸던 낯선 인물이, 바로 눈앞에 처참한 모습으로 있었다. 정복 경관들은 허둥거리는 농부와 몇 마디 은밀하게 주고받다가, 들것에 갈루아의 몸을 옮겼다. 옮기는 서슬에도 피가 흥건하게 떨어졌다.


가운 입은 남자는 의사인 듯했다. 의사의 옆에 있던 젊은 여자는 빈사 상태가 된 채 들것에 실려 들어 올려진 갈루아의 몸을 시니컬하게 내려다보았다.


“이 근처에 제일 가까운 데가 어디지?”


“코친 병원입니다!”


“일단 그쪽으로 가지!”


경관들 넷이 들것을 들고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남은 경관들은 황급히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이리 저리 비키다가, 제각각 흩어지며 수군거렸다. 앙투안은 아연실색한 채로 보다가, 뒤늦게 자신이 보았던 갈색 단발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혹시.’


자신이 애타게 찾던 흑발의 여자는, 갈루아의 아버지이자 간접 살인당한 전임 시장의 편에서, 그 살인의 원흉인 신부를 앞장서서 응징했던 듯했다. 앙투안으로서는, 그런 점에 묘하게 끌린 나머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신도 모르게 기숙사에 거짓말을 했던 일이 그제야 다시 기억났다.


“뭐해? 가자!”


올리비에가 재촉하며 잡아끌었다. 앙투안은 그의 뒤를 코친 병원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코친 병원에서는 보안이 더욱 철통같아서, 갈루아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는 바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 다음날, 갈루아가 죽었다는 사실은 온 대학 가에 퍼져나갔다.



문과 대학 근처 선술집.


올리비에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앙투안을 비롯한 청년들과 원탁에 둘러앉았다. 그리고는, 침통한 기색을 띠며 술잔을 집어 들었다.


“먼저 간··· 갈루아 군을 위해!”


앙투안과 청년들은 일제히 술잔을 집어 들고 외쳤다.


“갈루아 군을 위해!”


“그가 수호하고 외치던, 자유를 위해!”


“자유를 위해!”


구호를 외친 뒤, 그들 모두는 술잔을 단번에 비웠다. 모두가 분기탱천하여, 저마다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신문의 일부를 오려온 스크랩을 쥐고 있었다. 반 년 전까지, 문화계 인사들과 대귀족들이 참석했던 연회에서, 갈루아가 국왕을 비판했던 것을 기사화한 내용이었다.


“갈루아 군은 나라의 근간이 된 수학에서 심히 아까운 천재였고, 불우하게··· 부친을 잃은 뒤에는, 언제나 이 나라의 모순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올리비에는 감회에 차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절대 왕정이 한 차례 사라졌다 해도, 시민의 믿음을 조금씩 저버리며 제 비위에 맞는 측근 정치를 일삼는 국왕의 썩은 특권 의식이 그대로 있는 한, 여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하루속히 더 바꿔 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 때, 갈색 머리를 한 그림자가 선술집 입구에 나타났다. 그림자는 전날 밤 앙투안이 보았던 그대로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자유.”


앙투안이 말했다. 그러자 다른 청년이 이어서 말했다.


“평등.”


갈색 머리를 한 그림자는, 성큼성큼 그들이 앉은 자리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박애.”


앙투안은 그림자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했다. 맨 처음에는 술집 원탁에 드리워진 낯선 그림자에 놀랐고, 그 그림자가 내는 목소리가 귀에 익어서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날 밤에 들었을 때보다는 확실히 더 맑으면서도, 여자로서는 묘하게 매력적인 저음을 내고 있었다.


‘혹시, 그 날의 그··· 잔 다르크?’


앙투안은 대서소에서 처음 보았던 여자를 다시금 떠올렸다. 올리비에가 외쳤다.


“델핀느!”


델핀느라고 불린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올리비에와 다른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모든 이들과 짧게 악수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앙투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그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앙투안은 그녀의 손가락 세 개를 잡아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매우 뜻밖의 행동을 시작했다.


델핀느는 약간 숙인 상반신을 살짝 돌려서, 망토 끝을 원탁 위에 다소 늘어지게 했다. 매우 순식간의 일이라,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앙투안이 그녀의 손을 의례적으로 잡은 모양새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목례를 하는 척하며 그의 귓가에 은밀하고도 빠르게 속삭였다.


“딴 사람들처럼 잡아줘요. 들키기 전에.”


앙투안은 흠칫했다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손가락만을 살짝 잡는 것은, 귀족들이 초면이거나 최소한의 예우로 하는 행동들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른 그녀의 손바닥에서 손등까지 다 감싸도록 한껏 잡았다. 악수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자 그녀는 자세를 다시 바꾸며, 인사의 끝을 알리는 목례를 한 번 더 해주고는, 원탁 둘레에서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 되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델핀느에게 집중되었다. 앙투안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식은땀 몇 방울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온몸이 땀에 차면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올리비에와 델핀느를 각각 보았다.


그 때, 델핀느는 망토 속에서 옆구리에 끼고 가져온 상자를 원탁에 올렸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모티브로 만든 동심원 휘장들이 수북하게 들어있었다. 올리비에와 청년들은 하나씩 집어 들고, 저마다 각자의 왼쪽 가슴에 달았다.


“이것으로 서로를 알아볼 것이며 - ”


문득, 소식지 하나를 든 남자 하나가 선술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방금 발행한 소식지라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채 마르지 않은 잉크의 냄새가 희미하게 확 풍겼다.


“라마르크 장군이 돌아가셨다!”


“라마르크 장군이 돌아가셨다고!”


“오, 하느님!”


자리를 잡고 있던 시민들이 각각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더러는 자리 무너지듯 주저앉는 이들도 있었다.


“내일부터 장례 준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럼 그 때 가서 본때를 보여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의하던 청년들이 저마다 외치기 시작했다. 올리비에와 앙투안은, 순식간에 새로운 소식으로 술렁이는 술집 내부를 아연실색해서 둘러보았다. 앙투안은 자신도 모르게 델핀느를 먼저 바라보았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보다 몇 살 더 아래인 갈루아의 생전 고통과, 사회적 불의에 먼저 눈떴을 지도 몰라. 앙투안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런데, 갈루아의 아버지가 겪었을 한을 풀어주려고 노력했을 지도 모를 델핀느의 눈앞에서, 이제는 갈루아의 죽음이 가진 의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선배님.”


앙투안은 올리비에를 돌아보며 말을 꺼내려 했다. 올리비에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쪽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내리깔았다. 다른 한 손에는, 생전 갈루아의 국왕 비판을 담은 기사 조각이 여전히 쥐고 있었다. 올리비에는 이윽고 결연한 표정을 띠며 고개를 들었다.


“제군들.”


“네!”


“우리는 이 날을 끝까지 기억한다.”


“네!”


“다만.”


올리비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사이를 두었다가, 선언했다.


“우리도, 라마르크 장군을 추모하며 시작할 것이다!”


앙투안은 착잡한 시선으로 보다가 말했다.


“국장 여부나 자세한 진행 일정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좋다.”


올리비에는 수락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청년들도 다시 일어났다. 그들은 저마다 술잔을 다시 채우고 결의했다. 델핀느도 묵묵히 한 잔을 받아서 비웠지만,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아무 감정 없는 것처럼 공허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저녁 해가 저물었다. 올리비에와 청년들은 다음 일정을 위해, 학교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앙투안은 그들을 뒤따르는 듯하다가 슬쩍 빠졌다. 그러자, 나무 위에서 델핀느가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착지하는 소리마저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델핀느는 앙투안과 둘만 남은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는, 한 손을 이마 위로 올렸다가 세차게 내렸다. 앙투안은 그 다음 상황을 보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경악해서 소리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은 것이었다. 델핀느는 갈색 가발을 벗고, 그 안에 숨겨놓았던 까만 머리카락을 드러냈다.


초여름에 내내 쓰고 있던 가발에 눌렸던 탓에, 델핀느의 까만 머리카락은 땀에 절어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는, 밤바람에 머리카락을 잠시 흔들어 흩어지게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았어요. 고마워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가 구면은 아니긴 하지만 - ”


“갈루아 시장님을 비겁하게 보낸 그 새끼가 날 찾겠다고 여태 난리치는 꼬라지, 다 보고 있었거든요.”


앙투안은 그제야 기숙사 사무실 앞에서 있었던 일을 완전히 기억해냈다. 그녀를 보고도 못 본 척하려고 얼결에 인상착의를 거짓으로 말했던 일이 확실히 있기는 했다. 델핀느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한동안 숨기고 다니긴 해야 했는데, 마침 당신이 날 감싸면서 말해주는 게 다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대로, 이러고 다녔어요. 시간 지나니까 제풀에 나가 떨어졌는지, 추적도 끊기더라고요.”


델핀느는 손에 든 가발을 내보이며 말을 끝맺었다. 앙투안은 한동안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망설였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가득 떠다니고 있었다. 언뜻 들었던 그녀의 진짜 이름을 불러야 할까, 아니면 그 날 기이한 인상을 남겼던 이유라도 물어도 될까. 그는 한참 뒤에 간신히 말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순간, 델핀느의 눈이 살짝 젖어들었다. 델핀느는 얼른 눈가를 쓱 훔치고 말했다.


“고마워요.”


“혹시, 이번 일정이 갑자기 바뀐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 생각이 중요할까요?”


델핀느는 짐짓 시니컬하게 반문했다. 앙투안은 그녀의 말투에서,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싸늘함과 가시를 읽어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기가 있어요. 행동하는 사람들은, 특히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은.”


델핀느는 목이 메이는 듯, 잠시 말을 삼켰다. 그러다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딱히 누군가에게 기억될 거라고 생각할 틈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저, 내가 아니면 다른 누가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자기 대에서 끝내고, 평화가 오길 바라며 모든 걸 다 내던지고 싸운다고요.”


앙투안은, 문득 미간이 묘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 한 손으로 짚었다.


“갈루아 시장님은, 제 은인이었습니다. 20년 동안 부르 라 렌을 다스렸지만, 그분은 한 번도 뭔가 보답을 바라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재미있는 시로 사람들 속내를 유쾌하게 풀어주시고, 사람들이 웃어주거나 그 시를 보고 얼른 깨달아 고치면 그걸로 만족하셨거든요.”


“그럼 당신은 거기서 왔습니까?”


델핀느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생전에 시장님이 개그 풍자시에 마음을 붙이고 산 것처럼, 그 아드님 되는 사람이 수학 하나를 아주 정신없이 파고드는 것도··· 아주 가까이서 봤었어요. 근데, 감히 시장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뻔뻔하게 자기 손으로 신에게 보내드린다고 나대기까지 하는 놈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앙투안은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건, 나라도 그랬을 겁니다. 다 같이, 사람들 속에서.”


델핀느는 잠시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 갖다 댔다. 앙투안은 술집에서 고쳐 잡았던 것처럼, 그녀의 손 전체를 감싸듯 잡았다.


“편한 대로 하세요. 이젠 우리 둘뿐입니다.”


델핀느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앙투안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젠 제 자의로 이러고 싶었습니다.”


“네?”


“아까 당신은 제가 귀족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혹시라도 그것 때문에 동지들한테 반감을 살까봐 걱정했던 겁니까?”


“네. 솔직히 그런 의도도 있었어요. 그런 편견을 깨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요.”


델핀느는 속으로 울컥해지려는 것을 애써 참고, 말을 끝맺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본모습으로 앙투안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며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그녀의 시간 속에서, 시간은 그녀를 한 번도 기다리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가 스스로 알고 앞질러 나아가야만 했었다.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당신이 어떤 시대에서 살아간다 해도··· 나에겐 당신과 함께 있을 기회가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처음에 대서소에서 앙투안을 마주쳤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돋았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던 젊은 백작의 모습과 목소리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30대 초반이었던 백작의 모습보다는 조금 앳되었지만, 이목구비와 체격,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였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내게 와줄 수 있다면.’


그리고, 이제는 정의가 살아있는 곳을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앙투안은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갈루아 군을 모두에게 각인시키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도··· 어찌 보면 그렇겠지요.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 주고, 같이 싸워 나갑시다.”



6월 6일 자정. 생 메리 수도원.


피에르의 연설은 실패로 끝났다.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가서 연설하던 피에르는 경비대의 총에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델핀느는 나머지 학생들을 이끌고 장총으로 엄호하며 앙투안의 앞에 돌아왔다. 장례식장 행렬에서 올리비에가 선봉에 섰다가 총살당한 뒤로, 문과 대학 시위대는 줄곧 앙투안이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앙투안과 델핀느는, 살아남은 동지들을 이끌고 생 메리 수도원으로 피신했다. 두 사람은 불침번을 교대로 맡으며, 수도원 꼭대기의 창문에서 총을 들고 바깥 동정을 살폈다.


‘국왕이 보낸 군의 전력이, 예상을 너무도 뛰어넘었어.’


작가의말

* 다음에는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챕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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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8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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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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