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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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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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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DUMMY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델핀느는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정부군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이를 악물었다. 새삼 시가지에서의 일이 떠올려서 다시금 분노감이 일었다. 당시 동료들이 가져온 정보에서는, 1만 명 남짓한 병력을 루이 필리프 1세가 친히 사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피에르의 즉흥 연설 이후로 몰려온 군인들은, 언뜻 보기에 2만도 훨씬 넘어보였었다.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신속하게 흩어지는 듯하다가 에워싼 군인들은, 시위대를 포함한 시민들 전부에게 총을 겨누고 일제히 발사했었다. 여관 주인을 포함한 시민들은 절반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그나마 총알이 비껴가서 목숨 건진 이들은 순식간에 우왕좌왕하다 흩어지고 말았다.


“자리를 지켜라! 반격하라!”


앙투안은 장총을 들고 엄호하는 한편, 시위대 학생들을 향해 절규했었다. 그나마 동심원 휘장을 단 학생들은, 그의 외침을 들은 듯, 곳곳에 산개하여 전투태세를 취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계속해서 밀물처럼 밀려왔다. 근접한 이들은, 군인들을 총검 내지는 죽창으로 사살하기도 했다.


‘수가 너무 많다.’


앙투안은 델핀느의 위치를 필사적으로 엄호하며, 속으로 짙은 패색을 읽어냈다.


“내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앙투안은 델핀느에게 바짝 붙어서는, 죽은 동료의 죽창을 주워들고 반대편으로 힘껏 던졌다. 그러자, 그 쪽에서 총을 장전하던 정부군 하나가 가슴을 정통으로 맞고 죽어 넘어졌다. 그는 바닥에 엎어지는 정부군의 복장을 단번에 알아보고 숨을 삼켰다.


‘설마, 무통 원수 각하의 직속 부대까지 동원된 건가?’


그 때, 델핀느가 앙투안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녀는 머리끈을 풀어서 손에 감고는, 주변에 떨어진 큼직한 돌들을 한 움큼 주워들며 앞으로 세차게 내저었다. 한 손에서 순식간에 네 개의 돌이 날아갔다. 그러자, 새로 몰려들던 정부군 네 명이 각각 머리에 정통으로 돌을 맞고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정부 군인들이 우르르 쓰러지는 서슬에, 그들이 들고 있는 장총의 총구가 위로 솟았다. 그리고 오발되는 총소리들이 불규칙하게 서너 번 울려 퍼졌다. 델핀느는 계속해서 손에 감은 끈을 이용해서 군인들에게 돌팔매질을 가했다. 계속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며 돌을 주워들고 돌팔매질을 연사한 끝에, 15명 가까이 되는 군인들이 죽어 넘어졌다.


앙투안은 너덜너덜해진 커다란 삼색기를 높이 쳐들었다. 이미 너무 많은 시민들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겨우 살아남은 시위대 학생들이 건물 주변에 너무 띄엄띄엄 흩어져 있기도 했다.


‘지휘 계통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있었더라면.’


앙투안의 검푸른 눈에, 자책과 절망으로 뒤섞인 빛이 떠올랐다. 델핀느는 그런 앙투안의 핼쑥해진 얼굴을 보다가, 피 범벅이 된 두 손으로 주먹을 각각 쥐었다.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친 돌들과 끈이 수십 번 스쳐간 끝에, 양 손 안쪽이 온통 터져 나간 지도 오래였다.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아요.’


델핀느는, 앙투안의 절망적인 눈빛 속에서, 수백 년 전의 백작과 흡사한 그늘을 발견했다. 새삼, 심장이 다시금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당시의 백작은, 언젠가 서광이 비칠 것이라 믿고 굳건히 버텨왔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연합군의 지원을, 그는 애타게 갈망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의 모두가 하나씩 사라질 뿐, 눈앞은 그저 막막했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때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따로 있었겠지요.’


만약에 지원군이 온다 해도, 그들을 이끌 마지막 한 사람조차 사라지고 없을 만큼 뒤늦게 온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백작은 지원군들의 무기를 끝까지 사수하고 길을 터놓아, 마지막 공방전의 기틀을 충실하게 마련한 끝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때와는 달리, 앙투안은 절대적인 중과부적을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이대로 물러설 것인가, 혹은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인가.


“후퇴.”


문득, 앙투안의 입에서, 뭔가 목에 걸린 듯한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내뱉은 말 또한, 지극히 낯선 것이었다. 앙투안은 델핀느의 앞을 막아서고, 삼색기를 다시 한 번 높이 쳐들었다. 백기를 든 것이 아니기에, 항복을 뜻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모두, 이 깃발을 보고 나를 따르라!”


시위대에 끼어든 학생들 모두가, 앙투안 쪽을 주시했다. 앙투안은 깃발 방향을 확 틀어 가리키며 선언했다.


“성 메리 수도원으로 집결한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앙투안이 이끄는 대로 수도원 건물로 향했었다. 퇴각하는 과정에서도 정부군의 총성은 빗발쳤었다. 수도원까지 무사히 도착한 이들은, 실상 3분의 2도 채 되지 않는 인원이었다. 앙투안은 수녀들과 몇 가지 의논을 마치고, 지하에 자리 잡은 난민들에게 직접 빵을 돌렸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빛은 너무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싸우지 않고, 그만 돌아가도 좋습니다. 당신들 몫까지 내가 싸웁니다. 다만, 이 시간이 지나도, 이 싸움을 절대로 잊지는 말아주십시오.’


델핀느는 그를 따라 다니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담요와 물을 나누어주었다. 시가지에 있을 때 모두에게 급히 구운 빵을 나누어 주던 여관 주인의 생전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타들어가는 가슴으로 구운 빵을 묵묵히 돌리던 것은, 함께 싸워달라는 그의 말없는 호소였으리라.


‘허나, 나는··· 차마 싸워 달라고까지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전투에 이긴다 해도, 당신들이 먼저 죽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싸우는 진정한 목적인, 당신들의 생존을 무엇보다도 더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비쩍 마른 여자 하나가 수도원 벽에 기대앉은 채, 퀭한 눈을 들어 델핀느를 올려다보았다. 델핀느는 반쯤 비어가는 보자기 속에서 빵과 물통을 꺼낸 뒤, 여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마지막 담요를 펴서 여자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이윽고 모든 물품을 나누어 준 뒤, 그녀는 앙투안 앞에 돌아왔었다.


앙투안은 델핀느의 손을 잡아주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더욱 경악해서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몇 발짝 나아갔다. 그는 수도원 벽에 붙은 작은 등불의 빛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 걸음 끝에 그는 빛이 비추는 벽 아래에 도착해서 멈춰섰다.


“손 보자.”


앙투안은 전에 없이 울분 가득하고 섬뜩함이 배인 어조로 말했다. 델핀느는 그제야 앙투안이 자신을 갑자기 끌고 온 이유를 알고, 뒤늦게 두 손을 뒤로 감추려 했다. 그러나, 앙투안이 더 빨랐다. 그는 그녀의 두 손목을 각각 우악스러울 정도로 잡아서 낚아챘다. 그러는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젠.”


앙투안은 그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정의로웠던 시절의 본명인 제나이드의 젠, 그리고 어린 나이에 버림받고 헤매다 스스로 죽음을 자청했던 제노비아의 젠, 두 이름이 그녀에게 모두 있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꼭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 델핀느는,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람에 비틀거렸다가, 간신히 힘을 주어 지탱하고 섰다.


델핀느의 열 손가락과 손바닥 전체에는 피딱지가 개미떼처럼 말라붙어 손의 형상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머리끈을 칭칭 감았던 손바닥 부분에 가로로 남은 상처는 단순히 딱지가 앉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가로로 남은 상처 자리는 샛노랗게 곪아가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어?”


“몰라요!”


델핀느는 당황했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총과 돌팔매질로 정부군을 수도 없이 막아낸 끝에 수도원으로 퇴각하면서, 실상 손바닥에 꺼끌하고도 둔한 통증이 있기는 했었다. 아마도 실시간으로 피딱지가 말라붙어가며, 온갖 물건들이 스쳐가며 스며든 세균들이 상처의 틈새로 들어오고 있었던 듯했다.


앙투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복도 주변에서 약을 보관하는 창고를 찾아 여기저기 다녔다. 그는 다진 약초 한 뭉텅이와 약병 하나를 챙겨들고 왔다.


“나가자.”


그는 수도원 건물을 나가, 뒤편에 있는 강가 앞으로 델핀느를 이끌었다. 델핀느는 그에게 한쪽 손목이 잡힌 채로 말없이 따라갔다. 그는 강물을 움켜서 그녀의 두 손을 씻겨주었다. 마치, 서툴게 아기를 씻기는 듯한 손짓이었다. 델핀느는 그에게 손을 맡긴 채로, 오래 전 백작과의 마지막 밤을 떠올렸다.


그 때도, 백작은 기타 줄을 수시로 훑어서 잠시 빨갛게 되었던 그녀의 손을 아프지 않도록 다독이려 했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욱 큰 상처를 입은 그녀의 손을 본 앙투안이, 망설임 없이 치료해 주려는 듯했다.


‘그 땐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가 조금만 아파도 놀라던 사람.’


앙투안은 델핀느의 손을 잡고 몇 번 씻겨주다가, 차가운 강물에 직접 넣었다. 순간, 델핀느는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느낌과 동시에 손바닥 살들이 퍽퍽 터지는 것을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참아. 바로··· 약 발라 줄게. 젠.”


앙투안은 끓어오르는 어조로 말했다. 델핀느는 강물 속으로 희뿌연 고름이 줄기처럼 번지다가 스며드는 것을 망연자실해서 내려다보았다.


“더 늦었으면 파상풍 왔을 거라고.”


앙투안은 화가 섞인 투로 내뱉었다. 델핀느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수도원으로 피신하고 자리 잡기 전까지 일찍 눈치채지 못한 자신에게 더욱 화가 날 뿐이었다. 델핀느는 웃음과 동시에 눈물이 왈칵 치미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웃음만 겨우 참느라,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눈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에잇! 왜 다 커서도 울고 그래?”


앙투안은 델핀느의 손을 강물에서 꺼내고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가져온 약초를 손에 꼼꼼하게 붙였다. 잘 붙고 약효가 빨리 퍼지도록, 물약을 덧발랐다. 그 위로는, 붕대를 칭칭 감아주었다.


“근데, 이제는 내가 이렇게 불러도 놀라진 않아?”


“내 이름 정도는,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어요. 시장님 얘기 나왔을 때부터.”


델핀느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친 뒤에 대답했다.


“시장님 얘기를 안다면, 내가 수배대상에 올랐을 때 이름도 당연히 들었을 테니까요.”


“정말 그것뿐이야?”


앙투안은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그의 검푸른 눈동자에는 어딘지 모르게 상처받은 기색과 추궁하는 빛이 겹쳐져 있었다. 델핀느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에요. 근데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가요?”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음에, 더는 말이 필요 없을 듯했다. 두 사람은 강가에서 나란히 일어섰다.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내일은

다시 오지 않으리.

덧없는 불꽃.



수도원 벽 너머에서 얇은 느낌의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델핀느는 난데없는 음악 소리를 듣고 흠칫했다. 앙투안이 그녀의 손에 붕대를 감아준 이후로 두 시간 남짓 지난 새벽, 그녀와 시위대 학생들은 정찰조로 숨어들었던 정부군 스무 명을 간신히 사살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것도 왕실의 계략인가?’


음악 소리는 언뜻 듣기에, 1783년에 클라우디아의 몸을 빌려 처음으로 쳐보았던 하프시코드와도 살짝 비슷하게 들렸다. 그러나, 아득히 먼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남자 연주자의 목소리와 함께 듣는 순간, 하프시코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단선으로 느릿한 3박자 반주를 두 번씩 반복하며 현을 뜯는 소리는, 기타임이 분명했다.


‘정확히는, 8분의 6박자. 연회에서 쓰는 음은 아니야.’


델핀느는 클라우디아였을 때의 기억을 재빨리 정리해보았다. 유럽 궁정이나 귀족 가문에서 연주자들을 고용하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계통의 사람들이 하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매우 잔잔하고 서글픈 느낌이 강했다.


‘기타다!’


거리에서 자비를 구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잡아끌기 위해 온갖 재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서커스나 악기 연주는 흔했다. 델핀느는 그제야 자신이 아주 오래 전 집시 제노비아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집시 대장이었던 페르난도가 커다란 기타를 들고 나가서 거리 공연을 했던 이들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누굴까.’


델핀느는 이미 죽은 정부군의 시신 두 팔을 붙든 채, 의문을 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시신들을 모두 암매장해야 했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이 시신 한 구씩 맡아서 옮기는 것을 보다가, 자신도 시신의 두 팔을 잡아당겼다. 정부군의 시신은 엎어진 자세 그대로 바닥에 질질 끌려왔다.



짧은 순간 마주침

기억해낸 영혼들

스쳐가는 한순간

잠시 멈추어.



델핀느는 시신 하나를 질질 끌고 수도원 뒤편 구덩이 앞에 도착했다. 앙투안은 피곤에 찌든 기색으로 울퉁불퉁한 이끼바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옆에 두었던 삽을 들어, 이미 던져놓은 시신들을 더욱 깊이 들어가게 눌렀다. 시위대 학생들은, 구덩이 속에 정부군의 시신들을 각각 던져 넣었다.


앙투안은 델핀느가 끌고 온 시신을 어깨에 번쩍 둘러맸다. 그리고는 힘껏 구덩이 안으로 내다꽂았다. 앙투안과 남학생들은 일제히 흙을 뿌리고 덮어서 평지처럼 다독였다. 서글픈 노래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델핀느는 앙투안의 어깨를 털어주었다. 앙투안은 푹 들어간 눈에 일말의 웃음기를 띠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적군들의 시신 암매장을 끝낸 뒤, 그들은 다시 수도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복도에서 짝을 지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앙투안과 둘이서 서 있다가, 기타와 노래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하늘의 시간, 시대의 바람.

다시 떨어질 순 없어.

이 손을 절대로 놓지 않아.



곡조가 문득 바뀌었다. 일정한 6박자는 그대로였지만, 음이 위에서 아래로 꺾이는 것으로 달라진 것이었다. 델핀느와 앙투안이 도착한 곳에서는,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기타를 안고 연주하고 있었다. 앙투안은 조용히 델핀느를 따라왔다가, 그녀의 붕대 감은 한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앙투안에게 화답하듯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아 보였다.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델핀느는 기타 연주하는 남자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행여나, 그녀가 짊어진 과거에서 누군가의 영혼이 따라온 것일까. 하지만 연주하는 남자의 모습에서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이 시대에서 처음 스쳐가는 사람인 듯했다.


‘나 혼자만의 삶이라면, 내가 끝내고 지나가겠지만.’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었다. 델핀느는 새삼 뒷맛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이렇게 버거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작이자 앙투안인 그가 옆에 있어준다면 다를 듯했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나에게 당신이 있다면 세상 모두를 믿겠습니다.’


그 어떠한 영혼도 비추어지지 않는 줄 알게 되자, 델핀느의 눈에는 기타 연주자가 그저 떠돌이 거지인 것이 명확하게 들여다보였다.



이 시간이 지나도

우리 서로 기억해.

불꽃 속에 스러진

시대의 아픔.



기타 연주자는 다시 도입부 선율을 8분의 6박자로 잔잔하게 반주하며 노래했다. 음은 확실히 재현부에 해당했지만, 가사는 살짝 달랐다. 델핀느는 앙투안을 가만히 보다가, 자신의 마음과도 일부 겹쳐지는 가사를 듣고 뭉클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연주자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연주자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고, 다른 쪽 눈도 감은 채 반주하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서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연주자의 모습은 한없이 남루했다. 그저, 잠시 걸친 복장이 아니라, 오래도록 몸에 배인 듯한 체취가 스치는 바람 속에서 훅 끼쳐왔다. 앙투안은 순간적으로 손가락 하나를 코 밑에 대었다가 얼른 내렸다. 그러는 앙투안의 얼굴에는 불쾌한 체취 때문에 잠깐 일그러졌던 표정을 펴는 동시에, 일말의 안도하는 빛도 스쳐갔다.


‘의심해야만 하는 세상도, 언젠간 반드시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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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4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6 0 12쪽
»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4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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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4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4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9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8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4 0 13쪽
21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19.06.18 9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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