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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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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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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DUMMY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델핀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앙투안을 바라보기만 했다. 앙투안은 그녀의 어깨를 짚었던 손에서 힘을 빼다가 멈칫했다. 그녀가 얼른 대답해주지 못하자, 그 또한 떠나기를 망설이는 듯했다.


“젠.”


앙투안은 혼란스러운 기색을 띠며 이를 악물었다가, 델핀느를 간신히 불렀다.


“네가 말해준 사람, 지금 온 사람은 아마도 내 어머니일 거야.”


“그렇겠지요.”


“약속한다. 어떻게든 보내고 다시 여기로, 아니, 반드시 너한테 돌아올 거야.”


“그런 약속까진 함부로 하지 말아요!”


델핀느는 앙투안의 한쪽 손목을 움켜잡으며 외쳤다. 앙투안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젠?”


“당신 마음은 알겠어요. 근데 - ”


“근데?”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건 너무 뻔하지 않아요?”


“젠!”


“누구든 가족이 이런 상황인 줄 안다면, 말리러 오고도 남아요. 그러니, 오늘 한 번 돌려보낸다 해서 끝나진 않겠죠.”


델핀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내내 지켜보았던 앙투안의 지난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3년 전 갈루아 시장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러 온 신부를 피떡이 되도록 돌팔매질 했던 일 이후로, 그녀는 본명 ‘제나이드’ 대신에 지금의 가명 델핀느로 행세하며 신부가 보낸 심복들의 추적을 피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서소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왔다가 앙투안을 처음 보았었다. 그리고, 문과 대학을 맴돌며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지켜보았었다. 어딘가 귀한 집 자제 같은 기품을 은근히 풍기긴 했었지만, 일상 및 학업에서의 앙투안은 귀족이 아닌 대부분의 학생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앙투안이 본가에서 받은 편지가 같은 방 쓰는 학생에게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의 출신에 대한 의혹조차 전혀 없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본가와는 철저하게 분리된 생활을 했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그동안 가문에서 얻은 신뢰가 매우 깊었기에 가능했겠지요. 당신 가문에서도 이젠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오래 지켜보다 직접 찾아왔을 겁니다.’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한편으로는 서로를 미워했다. 그러나, 세 번의 인생을 맞이하는 동안, 그녀는 어느 누구의 사랑 속에도, 어느 누구의 미움 속에도 온전히 들어갈 수 없었던 듯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을 ‘가족의 사랑’ 때문에, 델핀느 자신이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일까.


“자, 그럼 승리의 여신이 가져온 소식을 한 번 들어볼까?”


문득, 첫 번째 인생에서 백작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백작의 몸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게 스페인 언어로 말을 건네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여신이라.’


분명, 백작은 자신의 진영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지켜주려 했었다. 그리고, 전쟁을 논하는 순간이 아닐 때에는, 사적으로도 친했던 금발의 부관 앞에서조차 말주변이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아주 상투적인 수식어 몇 가지만 상황에 따라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만 맞춰 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녀가 백작의 그런 점을 깨닫게 되었던 것은, 제나이드로서 프랑스에서 세 번째 인생을 살면서 10세가 되었을 때부터였다. 첫 번째 인생에서는 제대로 받아들일 틈도 없었던 프랑스 언어를, 세 번째 인생에서는 완전한 모국어로 받아들이게 되었었다. 그리고, 백작과의 기억이 완전히 깨어난 순간, 오래 전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금발의 부관과 남들 모르게 프랑스 언어로 주고받은 말들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뭘?”


“난 네가 애들을 이런 일에 안 쓸 거 같아서 적당히 돌려보내려 했어. 근데 애가 여간내기가 아니라서 너한테 직접 말을 들어야 할 거 같았다고.”


백여 년 전, 금발의 부관은 제노비아였던 그녀를 막사에 남겨두고, 곧장 최고 지휘관이었던 백작의 막사로 건너가서 말했었다. 어째서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바로, 그 여간내기가 아니라서, 라고 하면 대답이 되겠나?”


백작은 금발의 부관이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받아서 응수했었다. 금발의 부관은 버럭 외쳤었다.


“야!”


“이대로 돌려보내면 그게 더 잔인한 짓이야. 차라리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나아.”


백작은 잠시 말을 끊었었다. 당시에는 막사에서 들려왔던 말소리만을 뒤늦게 기억해낸 것이기에, 그가 어떤 기색이었는지, 어떤 몸짓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너 보기에도 그쪽 집시들이 그 애 대하는 게 영 께름칙했다고 했잖아?”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백작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었다.


“솔직히 아주 문제가 없을 거라 단정은 못하겠다. 하지만, 난 내 선택에 끝까지 책임진다.”


“그래서, 어쩔 거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제부터 네 선에서 그 애 주변을 철저하게 지켜줘.”


“나중에 본국에서 문제 삼으면 어쩌려고?”


한동안 백작과 부관 사이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었다. 이윽고 백작이 반문했었다.


“뭐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


“야!”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보지. 회의 소집해.”


델핀느는 거기까지 떠올렸다가, 회상에서 깨어나 앙투안을 바라보았다. 백작이자 앙투안인 그는, 한 번 결정한 일을 섣불리 번복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처음 그녀를 집시들에게서 불러들였던 본디의 목적도 아주 잊지는 않았던 듯했다.


‘승리의 여신··· 신에 빗대는 것은, 뭔가 목적이 있을 때, 기원하는 대상, 혹은 도구를 달랠 때 쓰는 말이기도 했지요.’


아주 더운 나라에서는, 기원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매개체를 이르는 말로 토템(Totem)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버거운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기적을 바라는 수단 그 자체.


토템으로 각인된 존재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머지, 사람들은 가진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리고, 위험한 순간이 지나가면 토템의 존재는 다시 잊기 마련이었다. 일상 속으로 돌아가게 되면, 남은 사람들에게는 토템으로 간주된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완전한 신도 아니고, 일시적인 우상이라는 이유로··· 평소에 대우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자기들 급해져서 기원했다가, 시원찮다 싶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 했다고 억지를 쓰며 때려 부수기도 했더군요.’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제노비아였던 그녀가 백작의 진지에 머물 명분도 없어질 터였다. 백작은 그 때까지 그녀를 ‘승리의 여신’ 이라고 일시적으로 써먹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템을 처분할 때처럼 그녀를 없앨 것인가. 한때는 그런 불안과 불신에 인간적인 기대를 철저하게 접고 싶기도 했었다.


“베릭 공작께서 친히 오신다는 거야?”


“그렇다는데? 오시면 상황 보고하고 지휘권 넘겨드려야지.”


“어쩔 거야?”


“뭘?”


“제노비아.”


“공을 세운 사람한테는 상을 주고, 아닌 사람한테는 벌을 내리기 마련이지.”


백작은 그렇게 말을 꺼냈었다. 부관은 가만히 듣고만 있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우리 부대가 여길 사수하는데 공이 있는 사람을 책임자인 내가 데려간다고 하면 뭐가 문제 되겠어?”


돌이켜보면, 백작은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받은 뒤, 제노비아였던 그녀를 내보내고 나서 계속 프랑스 언어로 그렇게 말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내 소임도 끝날 거야. 아니···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어.”


“야.”


“그리고, 기다릴 거야. 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대포를 파괴하려는 신성로마제국의 습격이 있기 전까지, 백작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프랑스 언어는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파리의 부르 라 렌 마을에서 세 번째 인생을 맞이하고 나서 동요 하나를 들었을 때는, ‘어른이 될 때까지’ 라는 가사가 유달리 귀에 박혔었다. 그 이후, 알아듣지 못했던 백작의 말들이 모두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한 번으로 끝나진 않겠지, 분명히.”


그 때, 앙투안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델핀느는 그 순간, 백여 년 전에 백작이 직접 말하는 느낌에 사로잡혀 얼어붙었다. 조금 전까지 되새기던 기억들, 제노비아였던 그녀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결심을 밝히던 백작은, 그 과정에서 생길 충돌들도 우려하며 버티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밝혔었다.


“그리고 이제는··· 젠. 당신도 옆에서 같이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앙투안의 검푸른 눈동자가 일렁였다. 그의 눈빛은 매우 간절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여 년 전처럼, 그녀의 본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줄여 부르며, 그는 변함없이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흡!”


앙투안은 델핀느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미안해.”


“기다릴게요.”


델핀느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젖어드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그리고는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휘감았다.


“다녀올게.”


앙투안도 젖어드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포옹을 끌러낸 뒤, 수도원 본관 쪽으로 뛰어갔다. 고해성사실 옆에 작은 방이, 외부 손님을 맞는 임시 면회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면회실 쪽으로 가려다가, 다시 지하 쪽으로 내려갔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고 원장 수녀의 전갈을 받는 것처럼 행동할 요량인 듯했다. 이내 그의 모습은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복도에 혼자 남은 델핀느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들은, 거의 사살되고 없는 실정이었다. 분명 20대의 학생들이 모였고, 그들의 열기와 일반 시민들의 분노는 하나가 되어 끝까지 저항할 수는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겠지. 비록 바위가 한 번에 깨지지 않겠지만, 계란의 얼룩··· 아니, 계란이 몸을 던진 흔적은 바위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듯, 계속되는 침묵의 시간은 사람들의 힘을 서서히 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힘을 잡아줄 버팀목 중 하나였을 앙투안에게 누군가 침투하고 있는 듯했다. 델핀느는 주변을 살폈다가, 콧등에서 턱까지 가려지는 복면을 썼다. 그리고, 면회실로 쓰이는 방이 있는 쪽에서 한 층 더 올라갔다.



“그만하시죠.”


앙투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델핀느는 바닥에 엎드려 귀를 기울였다. 후작 부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느냐?”


“거짓말이라니요?”


“네 학교생활에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만, 온갖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위하러 모여 다닌다는 얘길 아주 흘려들을 순 없었다. 근데, 평소에는 거짓말이라곤 할 줄 모르던 네가, 사감 앞에서 외부인한테 거짓말을 했다더구나.”


“역시, 다 알아보고 꿰어 맞추셨습니까?”


앙투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시니컬한 어조로 받아쳤다. 후작 부인은 싸늘하게 말했다.


“긴말할 것 없다. 돌아와라.”


“아뇨, 그럴 순 없습니다!”


“따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앙투안의 어조에 바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자 후작 부인이 추궁했다.


“수배범 하나가 신분을 숨기고 학교에 숨어 들어왔는데, 이번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학교에서도 전혀 몰랐다고 들었다. 그게 다 네가 수사에 혼돈을 주려고 거짓말했기 때문 아니냐?”


델핀느는 한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앙투안이 기숙사 사감 앞에서, 그녀의 머리색을 갈색이라고 했던 일은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끝까지 잡아내지 못했던 예수회 신부는 그 일을 두고 칼을 갈고 있다가, 대학에서 유일하게 여학생의 인상착의를 말했던 앙투안의 풍문을 전해 듣고 넘겨짚은 듯했다.


“네가 그전부터 평민들 사상에 물들어 평민들처럼 하고 다니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왜 안 말렸는지 아느냐?”


버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아마도, 드레스자락을 끌고 후작 부인이 한두 발짝 앞으로 나가섰기 때문인 듯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위에 지도하는 이가 있어야 나라가 돌아간다. 이러한 지도층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활도 공부가 되기에, 지금까지 내버려 뒀던 거다. 하지만 이제 그만 하면 됐다. 돌아가자!”


“그렇게만 생각하셨습니까? 어머님은 우리 가문이 왜 살아남았는지 벌써 잊으신 것 같습니다. 우연히 귀족으로 태어났을 뿐, 왕실의 편에 치우치지 않고 조용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선대 국왕 루이 16세 때는, 크게 죄 지은 바 없으나 귀족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죽은 부인들도 있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지금이라고 그 때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군홧발 소리가 면회실 바닥을 여러 번 스쳤다. 그러다가 멈췄다.


“왕실도, 귀족도, 성직자도··· 그저 시민들에게 세금을 받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금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법을 정하고 중재하고, 일자리를 주고, 마음의 위안을 주고, 각각의 소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자리는 여기이며,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델핀느는 소리 없이 눈물만 지었다. 눈물이 복면과 다락방 바닥을 적셨다.


‘혹시 지금 돌아가도, 지금 당신을 원망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집안의 강제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 테니까요.’


그러나, 백작이자 앙투안인 그는, 그 개인의 시대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인 협상을 통해 공존하고 싶은 건가요?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설화는 구름을 타고 있다가, 인천 앞바다에 내려섰다.


“그 남자 어미가 한 말이 신경 쓰였느냐?”


“솔직히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혼구슬은 함 속에서 대답했다. 그리고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결혼 이야기가 부인 입에서 직접 나오니··· 참기 힘들더군요.”


“그 남자를 혼인시키겠다고 했더냐?”


“그분은··· 그 때도 백작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랬겠지.”


설화는 이해가 간다는 투로 혼구슬의 말을 받아주었다. 첫 번째 인생에서도, 세 번째 인생에서도 마주친 사람을 동일한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는 당사자인 혼구슬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훈 작위는 썩 높지 않아도 나름대로 조용히 뼈대를 굳힌, 유서 깊은 가문. 근데, 나라와 신분을 막론하고 아들을 결혼시켜 집안 대를 이으려는 건 모두 마찬가지인 거 같았습니다. 그동안 조용히 지켜만 보다가, 그런 공감대를 비집고 들어오는 부인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저한테는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 때 뭐라고 했느냐?”


“결혼은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어째서?”


설화는 어리둥절했다. 몇 년을 벼르고 벼르다가 터뜨리는, 제법 연륜 있었을 어머니뻘 여인의 행보였다면, 그 정도에서 쉽게 끝나지 않을 법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백작님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그건 됐고, 긴말할 것 없고 하는 식으로··· 이미 모든 답을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백작님 또한 더 이상의 소통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당신의 어머니인 부인을 문 밖으로 단호하게 내치더군요.”


설화는 혼구슬의 대답을 듣고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300여년을 기억하는 여자의 혼이 깃든 혼구슬 못지않게, 사랑의 상대인 백작 또한 주관이 뚜렷하다 못해 고집이 상당해서 골치 아팠을 것이라는 느낌이 저절로 밀려왔다.


“전··· 그 때까지 생물학적 부모와 평생을 함께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낳은 자식을 버리지 않고 직접 기르는 가족이란 세계는, 주변에서 여러 번 보고 머리로는 알았어도, 제 스스로는 한 번도 가슴으로 느끼며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작님의 매서운 말을 듣고도,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화가 났는지, 아니면 슬퍼하고 있는지는··· 그저, 위에서 엿들었던 저로선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허나, 그런 말을 듣고도 차마 어찌하지 못하고 물러가는 마음이 어떤 건지··· 어쩐지 그건 차마 헤아리기 송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 네 번째 인생에서는 그 마음을 좀 알았더냐?”


설화는 혼구슬의 가장 최근 전생이, 처음으로 피로 이어진 가족과 인척을 만난 인생이었다는 말을 떠올리며 물음을 던졌다. 혼구슬은 무지개를 떠올리듯 색색깔의 줄기 아지랑이를 안에서 일으켰다.


“아주 조금은요? 다만, 그것도 피로 이어져 있다는 걸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조금씩 달랐습니다. 내 피를 물려줬으니 너는 내 것이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 거나, 내 살과 내 피로 만든 분신이라 아끼고 잘해주는 쪽으로 많이들 나뉘더군요.”


“그래? 이제 갈 곳에서는, 아마도··· 네 아비가 될 사람한테 많이 사랑받을 것 같구나. 그동안 받지 못했던 것까지 합해서 말이다.”


설화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혼구슬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해안가의 모래를 서걱서걱 디뎌 몇 발짝 나아갔다. 혼구슬은 함 속에서 조용히 듣다가 물었다.


“그거, 천기누설 아닙니까?”


“이 정도는 말해도 상관없다.”


설화는 염전을 지나서 보도길로 접어들며 계속 말했다.


“네가 대기실에서 날 보고 말했다시피, 난 환생 업무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까지 해도 안 짤리는지는 당연히 알지. 처음 시작할 때는 규칙부터 달달 외우지 않나?”


“이승이나 저승이나.”


혼구슬은 씁쓸하면서도 약간 웃음기 어린 어조로 되뇌었다. 혼잣말인 듯 했지만 그 뒤의 말은 상당 부분 생략된 듯했다. 설화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말을 꺼냈다.


“근데, 그 남자도 널 많이 아꼈다는 걸 그 때 확실히 알았으면서··· 왜 그렇게 되었던 거냐?”



1832년 6월 6일, 새벽 4시. 생 메리 수도원.


앙투안은 아지트로 쓰는 지하 창고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시위대 학생들의 면면을 각각 살피다가 멈칫했다. 그는 뭐라고 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델핀느···?”


그러자, 학생 하나가 대답했다.


“나 대신 정찰 나간다고 했어.”


앙투안은 멈칫했다. 그는 들고 있는 장총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알았어, 고마워.”


앙투안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복도로 뛰쳐나갔다. 어머니인 후작 부인을 매몰차게 돌려보냈기에, 조만간 왕실 군대가 이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총공격을 가할 듯했다. 문과 대학 이외에도, 각 단과 대학에서 결성했던 소규모의 시위대 사람들은, 이미 생 드니 거리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치했을 때부터 절반 이상이 몰살되고 없는 상황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이끌 만한 사람은, 사실상 극소수만 남아있었다. 앙투안은 부리나케 뛰어서 수도원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델핀느가 언제 어떤 식으로 나갔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이름을 차마 크게 부를 수도 없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부르고 싶은데, 누가 들을까봐 무섭구나! 그저, 네가 위험해질까봐!’


앙투안은 뒤편 언덕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서문 앞에 이르렀다. 그 때, 서문 옆 창가까지 웃자란 죽은 나무 위에서 그림자 하나가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앙투안은 장총을 앞으로 겨누며 한 발 물러서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림자는 바닥에 착지하며 몸을 숙였다가, 고개를 들었다. 델핀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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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93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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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3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5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2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2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7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3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2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8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8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6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5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3 0 13쪽
21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19.06.18 9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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