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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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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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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DUMMY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미안.”


앙투안은 총을 늘어뜨리고 사과했다.


“왜 그런 데 숨어있었어?”


델핀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앙투안의 매무새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후작 부인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싸웠거나, 아니면 잘 있으라고 격려 받은 모습은 확실히 아니야. 당신은 정말 그대로군요.’


델핀느는 속마음을 그렇게 곱씹었다가 말했다.


“당신 손님 가시는 것도 보고, 혹시라도··· 정부군이 더 세게 나올지 몰라 미리 봐두고 싶었어요.”


“거짓말.”


“뭐라구요?”


“그게 다는 아니잖아.”


앙투안은 들고 있던 장총을 어깨에 걸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델핀느의 양 팔을 각각 잡고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혹시라도, 내 마음 약해졌을까봐 불안하진 않았어?”


델핀느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앙투안은 그의 어머니인 후작 부인 앞에서, 델핀느임이 분명한 여자를 언급하며 떠보는 말을 듣고도, 그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것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혹은 다른 생각으로 빠져나갈 구실을 찾으려고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은 돌아갈 곳이···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만약 이 싸움이 끝나고, 어디든 여기 아닌 곳으로 단 둘만 있을 수 있다면. 델핀느는 속으로 그런 기원을 살짝 해보았다. 그러나, 태초에 신의 손으로 창조된 지상 유일의 남녀가 아닌 이상, 그런 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은 벅찬 일일 듯도 했다.


“이렇게 돌아왔잖아요. 처음 약속은 무사히 지킬 수 있었으니··· 이제 그 다음 일을 생각해 봐야겠죠.”


델핀느는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느끼고, 얼른 눈가를 쓱 훔쳤다. 그리고는 정찰할 때의 날카로운 눈빛을 띠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신이 이리로 온 걸 봐선, 협상이든 담판이든 곱게 끝나진 않았겠어요.”


“아무래도?”


앙투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응수해 보였다. 델핀느는 정색하며 말했다.


“들어가서 얘기해요. 계속 이러고 있으면 모두한테 곤란하니까.”


두 사람은 다시 지하로 돌아왔다. 시위대 학생들은 일제히 두 사람을 주시했다. 그 중 학생 한 명이, 앙투안에게 찾아왔던 방문객에 대해 물었다.


“왕실에는, 내가 여기로 모두를 이끈 주동자라고 알려진 모양이야.”


학생들은 멈칫했다가, 모두들 수긍하는 빛을 침통하게 띠었다.


“학교 이름도 있다 보니, 군에서 날 뒷조사해가지고 내 가족까지 알아내는 것쯤은 금방이었나봐. 그래서 아까는 어머니를 보내 날 회유하려고 들었지.”


앙투안은 최대한 사실적인 부분을 골라서 말했다.


“하지만, 난 끝까지 싸우러 돌아왔다. 그게 다다.”


“진심인가?”


그 때,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적갈색 머리의 학생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앙투안보다 상급생은 아니었지만, 늦게 입학했던 사람이었다. 앙투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난 진심이다.”


“대단한 초인 나셨군.”


적갈색 머리 학생은 슬쩍 비꼬아 보았다. 그러다가는 씁쓸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대장은 언제나 순수할지 모르겠지만, 대장 주변에선 계속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사실··· 이번 시위를 결정하고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눈치챘다.”


“뭐?”


앙투안은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동시에 델핀느와 서로를 마주보고 눈치를 살폈다. 적갈색 머리 학생은 앙투안 쪽만을 주시하며 말했다.


“작전을 짤 때, 아무리 철저하게 조사를 했어도 왕실 상층부 인사들을 그렇게 잘 알고 있으려면, 최소한 백작 이상은 되는 집안하고 손이 닿아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거든.”


“그렇게 생각했나?”


“뭐, 그래서 처음에는 올리비에 선배가 이끌 때, 좀 의심스러워서 나 혼자서 개인적으로 대장을 며칠 지켜봤었다. 근데, 대장은 아는 걸 우리한테 다 열어 보이기만 하고, 절대 밖으로 뭘 빼돌리진 않아서··· 지금까지 믿고 따라온 거였다.”


적갈색 머리 학생은 말하던 끝에 다른 학생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델핀느를 힐끔 보았다.


“델핀느 얘기로는, 대장 집안을 찾아서 사람을 보낸 게··· 우리 쪽 내분을 노린 것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델핀느 정찰 나간 사이에, 내가 알아듣게 다 말해뒀는데, 괜찮나?”


앙투안은 놀란 기색으로 델핀느를 쳐다보았다. 델핀느는 붉어진 얼굴을 살짝 돌렸다. 적갈색 머리 학생을 제외한 일동은, 여전히 앙투안을 신뢰한다는 듯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앙투안은 시위대 전원을 보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델핀느는 그의 옆얼굴을 보며, 벅찬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읽어내고 묘한 비애를 느꼈다.


그들은 곧장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지하 구역에 자리 잡은 시위대와도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새벽 6시가 넘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무기를 든 시위대 사람들과, 죽창과 농기구 등 각종 잡다한 무기를 주워온 시민들은, 게릴라 전투에 대비해 각각의 기둥과 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앙투안은 다른 시위대의 우두머리들 서너 명과 함께, 2층의 아치형 발코니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통 원수가 이끄는 부대와, 경찰대, 국가 수비대가 세 곳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내 연합하여 수도원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각 시위대의 우두머리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정부군 군인들 전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갑시다.”


앙투안과 시위대 우두머리들은 서로에게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는 각자의 위치로 흩어져서 자리 잡았다. 언덕 입구 쪽에 매복하고 있던 시민들의 총이 이내 불을 뿜었다. 수도원 건물 위쪽에 있던 시민들은 일제히 돌을 던졌다.


세 곳에서 몰려와 북상하던 군인들 일부가 총에 맞고 비틀거렸다. 더러는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통으로 명중해서 죽어 넘어지는 자는 극히 일부였다. 시민들에 비해 월등히 많았던 군인들은, 각 연대 지휘관들의 명을 받아 더욱 물밀 듯이 돌진해 왔다. 수도원 주변의 수풀 속에 있던 시민들이, 죽창과 농기구를 들고 달려들었다.


언덕 동쪽에서 태양이 서서히 더 높아졌다. 시가지로 첩보활동을 나갔던 시위대 정찰조 서너 명이 말을 타고 우회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도원 건물 양쪽에서 돌진하던 정부군들이 일제히 그 쪽으로 총을 쏘았다. 말들이 총을 맞고 넘어지는 바람에, 타고 있던 정찰대원들은 이끼 낀 바위 위로 떨어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두 명의 정찰대원들은, 수도원 뒤편 지하 계단으로 거의 구르다시피 향했다. 뒤편을 엄호하고 있던 시위대 학생들은 황급히 그들을 맞았다.


“어찌된 일인가!”


“라피트 의원이 궁에 들어서 - ”


허벅지에 총을 맞은 정찰대원이 안간힘을 다해 외쳤다.


“국왕이 그쪽에서 군사를 - ”


“군사를!”


시위대 학생은 군사라는 말에 아연실색해서 외쳤다. 이미 시작부터 중과부적이라, 시위대 학생들과 시민들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흙바닥과 베이지색 성벽들도 이미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협상인가? 총공격인가?”


근처에 있던 시위대 대장 하나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리고는 그 정찰대원을 붙들고 물었다. 그러나, 정찰대원은 허벅지에서 콸콸 피를 쏟아낸 끝에, 순식간에 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신을 잃어가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위대 사람들은, 각자의 가슴에 달려 있는 너덜너덜한 동심원 휘장을 아주 잠깐 내려다보았다.


숙연한 기색으로 죽은 정찰대원을 보며 짧게 묵념한 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다시 집어들고 신속하게 흩어졌다. 그들 모두는, 끝까지 저항할 생각이었다.


‘모든 일은 전례가 된다.’


모두의 핏발 선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비록 패배가 명백해진 싸움이라 해도, 물러서거나 비굴하게 항복했다는 전례만큼은 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서 지나친 욕망에 빠질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리고, 프랑스 역사상 그러한 실수를 바로 잡으려고 일어난 두 번째 전쟁이, 바로 지금의 싸움이었다.


‘언젠가 또 다시 같은 오류가 있더라도, 부디 오늘을 기억하고 바로잡을 수 있기를.’


태양이 높이 떴을 무렵에는, 일반 시민들의 시체가 수백 명에 가깝게 쌓였다. 그나마 장총을 들고 있던 학생들은 나무와 건물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극소수가 대치하고 있었다. 앙투안은 너덜너덜해진 삼색기를 들고 독려하다가, 깃발을 적갈색 머리 학생에게 넘겨주었다.


“부탁이 있다.”


“무슨?”


“델핀느를.”


“델핀느를?”


“뒤로 빼줘.”


앙투안은 그렇게 말하며, 수도원 벽 아래로 몸을 잠시 숙였다. 잠시 소강 상태가 되기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도 모를 총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품 속에서 차곡차곡 접은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사보이에 가는 지도야. 거기서 기다려 달라고 전해줘.”


“직접 하지?”


“아니.”


앙투안은 장총을 잠시 살펴보았다. 이제 그가 쓸 수 있는 것은, 총신 그 자체와 총 끝에 달린 단검뿐인 듯했다.


“내가 직접 말했다간··· 여기 계속 남겠다고 떼를 쓸 거야.”


“그냥, 둘이 같이 가라. 뒤는 내가 알아서 처리 - ”


그 때, 총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그리고, 정부군의 각 지휘관들이 항복을 촉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앙투안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리고는 주변 동료들에게 외쳤다.


“후퇴하라!”


그를 따르던 시위대 학생들은 무기를 든 채 퇴각하기 시작했다. 앙투안은 전방을 엄호하며, 한편으로는 델핀느를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널 여전히 사랑하고, 끝까지 살리고 싶었다.’


델핀느는 후방에서 붕대 감은 손에 돌팔매 실을 장착하고 있다가, 퇴각하는 이들을 보고 동작을 멈추었다.


“어서 피해, 델핀느! 국왕의 최종 결정이 있기 전까지, 끝까지 살아서 버텨야 한다!”


앙투안은 절규하다시피 외쳤다. 적갈색 머리 학생은 앙투안에게서 받은 손수건을 들고 한 발 앞질러 델핀느에게 달려갔다. 델핀느는 손수건을 받아들고 흠칫했다. 거기에 검은 잉크로 조잡하게 그려진 지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당신도요!”


델핀느는 처절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최대한 뒤로 피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수도원에 피신했을 때 물자를 나누어주었던 시민들은, 이미 조금 전에 정부군에게 사살 당했다. 발에 가끔씩 물컹하게 밟히는 시체들의 팔다리와, 강물과 이어지는 수도원 건물의 좁은 배수구에 일부 처박힌 시체 두어 구의 머리통이, 낡은 창고 쪽으로 달리는 그녀의 시야에 수시로 지나갔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철저하게 처단하겠다는 듯, 정부군의 총소리는 계속 간헐적으로 울렸다. 그리고, 시가지 먼 곳에서 군대의 규칙적인 나팔 소리와 군홧발 소리가 기괴하게 섞여서 간간이 들려오기도 했다. 하수도를 통해 격전지를 빠져 나가던 시위대 몇몇도, 그 소리에 움찔했다.


델핀느는 적갈색 머리 학생을 한 발 앞세우고 낡은 창고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손에 감긴 너덜너덜한 붕대를 내려다보았다. 앙투안이 감겨주었던 붕대는 그동안 수많은 돌팔매 실이 스쳐서, 거의 상처 보호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적갈색 머리의 학생은 뒤처진 델핀느를 보다가 확 잡아끌었다.


“헛!”


“빨리 안 오고 뭐하는 거야!”


“대장이 아직이잖아! 어차피 다 왔는데 대장 오고 있나 보자고 - ”


델핀느는 적갈색 머리의 학생을 뿌리치고 뒤를 살피려 했다.


“대장은 되고, 나는 안 되나?”


“뭐야?”


델핀느는 옷 속에서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녀의 마음에 시비를 걸어오는 일은, 세 번의 인생을 살아도 새삼 반복되는 듯했다. 그것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매번 그러고 있었다.


‘루시페로, 그 붉은 머리 미친 새끼, 그 다음엔 이 자식인가? 그나저나 이 자식, 전날 새벽에 어쩐지 딴 사람들한테 얘기를 쉽게 해주더라니.’


델핀느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워! 일단 다들 살아야 뭘 더 해볼 거 아니야?”


“혁명은 연애놀음이 아니라고, 아가씨.”


“그럼, 지금 지껄이는 건 수작 걸려는 거 아니냐고?”


“이제 혁명은 끝났어.”


“근데 어쩌지? 난 당신 안 좋아하는데!”


델핀느는 학생의 중심부를 세게 걷어찼다. 그리고는 쓸모가 없어진 손의 붕대를 모조리 풀어서 단단히 꼬았다. 회갈색 노끈에 가까울 정도로 길고 가늘게 꼬인 붕대 천을, 그녀는 힘있게 잡았다. 그리고, 중심부를 맞아 균형을 잃은 학생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붕대 천으로 목을 졸라 버렸다.


‘그 때 이후로 정말 절실하게 깨달았지. 후환은 곧바로 깨끗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거.’


델핀느는 두 번의 전생에서 각각 두 남자를 처단하지 못했던 통한의 괴로움을, 질기도록 곱씹었다. 그녀는 엎어진 학생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 누르고, 거의 말고삐를 잡아채듯 단단한 붕대 천을 양 손으로 힘껏 당겼다.


이윽고, 손쓸 틈도 없이 목이 졸린 학생의 몸부림이 둔해지고 신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엎어진 학생의 혓바닥이 길게 뻗어나와 뺨 옆으로 새어나온 게 바닥에 드리워졌지만, 델핀느는 한참 동안 더 학생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확실하게 죽었군.’


델핀느는 창고의 문 손잡이 일부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죽은 학생의 손 안에 쑤셔 넣었다. 외진 곳에 위치한 하수구 쪽으로 학생의 시체를 끌고 가서 늘어놓았다. 마치 창고로 피신했다가 사살당한 것처럼 꾸며놓았다. 그녀는 현장 연출을 끝낸 뒤 다시 창고 앞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동안 앙투안이 따라왔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앙투안!”


델핀느는 수도원 뒤편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정부군에 합류한 경찰대 일부가 창고 쪽으로 돌격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창고 뒤쪽에 숨어서, 덤불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언덕 바위 위에 앙투안이 삼색기와 장총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젠.”


앙투안은 목쉰 소리로 내뱉었다.


“널 향한 내 사랑이··· 흔들릴까봐, 너무도 두려웠다.”


델핀느는 숨을 삼켰다. 앙투안은 삼색기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몸을 지탱하다가, 무너지듯 스르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계속 보다 보면, 보내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앙투안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자세히 올려다보니, 어깨와 목 쪽에서 피가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이젠 내가 기억하고, 반드시 - ”


앙투안의 몸은 완전히 엎어졌다. 그리고, 손에서 놓친 삼색기도 기울어졌다. 델핀느는 창고 벽에 기대서 소리죽여 흐느꼈다.


‘처음으로 내 손에 엄청난 업보를 짊어졌습니다.’


그동안 저승에서 재판받았던 일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 때와는 달리, 이제는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을 직접 죽이고 말았다. 또다시 오랜 시간을 지옥 속에서 멈춰 있어야 하고, 그의 영혼을 찾으러 방황해야 할 터였다.


‘이런 나라도 기억하고 찾아오겠다는 겁니까? 이번 생에서 나를 기억하고 같은 마음으로 함께였던 당신을··· 내가 어찌 잊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내가 여기서 당신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요?’


델핀느는 경관들이 사격 자세를 취하고 포위하고 있는 것을 슬쩍 내다보았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곳이면, 모두 다 수색하고 확인 사살하려는 듯했다. 그녀는 조용히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 때도, 부러 거칠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려 했다. 곧이어, 총소리가 빗발치듯 들려왔다. 주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녀는 조용히 짚단 위에 누웠다. 곧이어 천장의 판자들과 지붕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국왕 폐하 만세!”


아득하게 시민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언덕 너머 시가지에서, 국왕이 나타났던 듯했다. 그리고 시위에 끼지 않았던 이들의 함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공화파들을 처단하자!”


“샤를 왕당파를 타도하자!”


“국왕 폐하 만세!”


영원한 암흑이 델핀느의 앞에 펼쳐졌다.


‘어디든, 여기 아닌 곳에서··· 반드시 당신을 찾겠습니다.’


뜨거운 불길이 델핀느의 가슴에 팍 안기듯 떨어졌다.


‘내가 받을 모든 벌, 다 받고 나서, 언제까지나 당신만을 기다리겠어요. 당신도 꼭 날 알아봐주세요. 그 때는, 지금처럼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6월 21일 밤 9시. 대한민국.


“다 왔다.”


설화는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서서 말했다. 문득, 혼구슬을 담은 조가비 속에서 백색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백색광은 무지갯빛으로 물드는가 싶다가, 진홍색 핏빛이 번지듯 올라왔다.


“왜 이러느냐?”


설화는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조가비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아이 정도의 영력이라면, 제 죽음을 기억하고 말하는 것 정도로는 이렇게 타격받을 일이 없을 텐데!’


이미 파란만장한 인생들을 세 가지나 스스로 각인했던 혼구슬은, 그것을 다시 각성하여 풀어놓는 과정 또한 매끄러웠었다. 한편으로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인생을 말하면서도, 평생을 사랑한 한 남자의 영혼을 찾는 의지만큼은 확고했다. 수백 년 동안 묵은 혼의 힘과 의지로는, 단순히 전생의 기억 때문에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도 희박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혼구슬에 깃든 인간혼은, 주변의 공기나 어떤 것을 감지하고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동요하는 감정을 수습하거나, 괴로움에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주화입마는 아닌데. 도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폭주하고 난리난 거지? 거의 혼이 찢어지겠는데!’


설화는 아파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가로등 세 개가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곳 모래밭 바로 앞에 놓인 벤치에 황급히 걸터앉았다. 일단 무릎에 혼구슬을 올려두고 무슨 말이든 건네 볼 참이었다.


“여긴, 여긴 도대체 어딥니까?”


그 때, 피범벅이 된 오라를 내뿜던 혼구슬이 전에 없이 격한 어조로 내뱉었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피를 토하며 절규하기라도 하듯, 처절한 소리였다. 설화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은 그저, 혼구슬에 각인된 인끈을 따라 바다를 건너고, 한반도에 들어와서 환생 예정지까지 순간이동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혼구슬은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다 왔다고 하질 않았느냐? 네가 다음 인생 살 곳이지 어디이겠느냐?”


설화는 대답하고 나서, 혼구슬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무릎 위에 놓은 함 속의 30번째 조가비를 열었다. 그리고 조가비 받침대에 놓인 혼구슬을 손에 올려서 들여다보았다. 혼구슬의 빛깔은 표면과 속까지 진홍색 불꽃처럼 불그스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닿는 감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얘야!”


설화는 의자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혼구슬 안에서는 피로 물든 것 같은 배경 속에서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광경은 하나의 구름이 되어 혼구슬 표면 위로 솟아올랐다. 인간 어른의 머리통 크기로 부풀어 오른 구름 속에서는 설화가 서 있는 놀이터 단지의 모습이 축소되어 나타났다.


놀이터의 시야는 마치 위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훅 돌아갔다. 네 개의 시소 막대가 하나의 기둥 위에 겹쳐지고, 중앙에는 둥근 원이 고정심처럼 박혀 있는 기구가 나타났다. 그 다중 시소 주변에는 열 명이 넘는 여학생들이 떼로 몰려 있었다. 시소 위에는 한 여자아이가 강제로 눕혀져 있었다.


설화는 다수에게 위협받으며 새파랗게 굳어진 여자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굳어졌다. 그 여자아이의 이목구비는 바로, 혼구슬의 첫 번째 인생에서 나타났던 제노비아의 모습과 흡사했다. 다만, 전형적인 유럽인의 특징을 지녔던 제노비아와는 달리, 아이의 피부는 약간 노란빛이 더 섞인 살구색을 띠고 있었다.


작가의말

* 다음에는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챕터에서 뵙겠습니다.
9편부터 11편까지는, 1990년대 초반~2012년까지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할 예정입니다.
(혹시 유럽 역사 따라오느라 허덕이신 분들 계시다면··· 이제는 좀더 편히 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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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94 0 16쪽
36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99 0 22쪽
35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13 0 19쪽
»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3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4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6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3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5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8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4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4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9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8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4 0 13쪽
21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19.06.18 9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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