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2.09 06:55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5,535
추천수 :
5
글자수 :
473,268

작성
19.07.18 07:45
조회
119
추천
0
글자
19쪽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DUMMY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설마, 이것이··· 네 마지막 전생이었느냐?’


설화는 아연실색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었다. 누가 보아도 핏빛 구름 위로 떠오른 혼구슬의 기억 속 배경은, 그들이 서 있는 놀이터 그 자체였다.


‘이리도 머나먼 시간을 돌아서, 끔찍했던 기억이 있는 여기로 또 다시 온 거냐?’


설화는 핏빛으로 물들어 후끈거리는 혼구슬을 황급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자리를 벗어날 길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담당 삼신들은, 혼구슬마다 각인된 인끈과 환생부에 명시된 기록만을 철저하게 따라가는 것이 관례였다.


모체의 상태에 따라, 각각의 혼이 깃들어 수태된 아이들을 출생으로 인도하는 시기가 며칠 빠르거나 늦어지는 일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혼을 수태시킬 곳이 바뀌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아이만큼은 뚜렷한 건 아니었겠지만, 더러 자의식이 좀 남은 아이들이 있긴 했다지.’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는 혼구슬들이 예전에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설화는 상급자들에게 들었던 전례와, 훈육 시간에 들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떠올려보았다.


‘그런 것들은, 수태 의식을 거부하거나 엉뚱한 곳으로 탈주하기도 했었고.’


그러나, 그렇게 이탈을 시도한 혼구슬들은 결코 온전하게 살지 못했었다. 그런 혼구슬들 중에서는, 전생에서 좋은 인연이었던 이들과 다시 만나고 싶은 집착 때문에, 자신의 차례도 아닌 이른 시기에 억지로 들어가던 이들도 있었다.


‘억지로 들어가다 보니, 환생관에서 확고하게 정해준 혼과 인위적으로 쌍둥이가 된 아이도 있었지. 그러나, 그런 아이들은 자기들이 만나고 싶었던 인연과 만나는 대신, 부모 자식 사이와 형제 자매 사이는 거의 포기하고 살아야 했었다.’


그렇게 이변을 일으켰던 혼들은, 전생에서 좋았기에 현생에서도 갈망했던 인연과는 호감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저승에서 최대한 인간들의 소망을 절충해서 탄생시킨 이승의 대인관계들이 흐트러질 정도로, 질서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일도 드물게 있었다.


환생관의 지침을 통해 자식으로 점지된 아이는 부모가 본능적으로 사랑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억지로 쌍둥이로 들어온 아이는 모체의 몸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났어도 상대적으로 그만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것은, 부모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억지로 환생을 시도한 인간들은, 그들의 의지로 찾아 나선 인연만을 향해 직진했다. 자신들을 차별하는 부모에 대해서는 애초에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의례적으로 환생하기 위해 지나가는 경로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렇게 인위적인 환생체들의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들이 선택한 부모와 육친들에게는 기본 도리만 하고 잔정을 주고받는 일은 죽을 때까지도 없었을 정도였다. 평범하고 선량한 이들과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 관계가 쌓여가도, 그들에게 속정을 내어주며 진정한 육친으로 녹아드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규칙에 따라 맺어진 이승 인간들은, 그런 아이들이 왜 상대적으로 덜 대우받아도 초연한지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부모나 육친들도 정말 이상히 여겼을 게다. 자기들 기준에서 평범한 관계하고는 거리가 멀었을 테니까.’


게다가, 억지로 끼어드는 환생의 문제는, 환생한 이들의 소원한 가족 관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였지. 상급 삼신님 한 분이 맡았던 아이였다는데.’


억지로 끼어드는 환생을 거친 어떤 남자아이가 있었다고 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남자아이는 전생에서 첫사랑을 느낀 여자아이와, 다음 생에서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했었다. 그러나, 서로가 그 이전의 인생에서 각자 쌓은 업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의 환생을 더 거쳐서 각자의 업보를 청산해야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존재했었다.


다른 기억은 대부분 망각 속에서 지워졌지만,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만은 남자아이에게 뚜렷하게 남아있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갈 곳을 집요하게 알아내었다. 그리고 담당 삼신의 손에 이끌려 그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외동딸을 수태시키려는 집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는 남녀 쌍둥이 중의 남동생으로 태어났었다.


그 일로, 남자아이를 담당했던 상급 삼신은 환생관에서 처벌받았었다. 인위적인 남녀 쌍둥이가 된 남자아이는, 오로지 자신이 전생에서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 여자아이의 위치를 찾는 것에 집착했었다. 인간으로서의 일생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혼에 각인되어 있었기에, 남자아이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 모두를 피상적으로만 대했었다.


이에 따른 반대급부는 더욱 심각한 곳에서 발생했었다. 본디 형제의 연이 없었던 남자아이의 쌍둥이 누이는, 인위적인 현상에 따라 한날한시에 태어난 남동생인 그에게 그만 이성으로 연모하는 감정을 품고 말았었다. 그것은 이름뿐인 남동생으로 살아가는 그가, 누이를 일반적인 누이로 대하지 않았던 탓이 더 컸다고 했다.


‘그 아이는 부모와 손윗형제들에게 대하는 일상적인 어리광조차 한 번도 부린 적 없었다지. 그러니, 지극히 평범한 여인인 그 누이에게는 누구보다도 숙성해 보였을 그 아이가 동생으로 보일 순간조차 없었던 게 아니었겠는가?’


남자아이는, 자신이 인위적인 환생 순간부터 결심했던 목적을 마침내 이루었었다. 꿈에도 그리던 첫사랑의 환생을 찾아 공식적인 연인으로 발전했었다. 남자아이는 이미 한 번의 인생을 겪어본 기억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인이 된 이후의 처신도 능숙하게 해나갔었다.


이승 기준에서는, 사회에서 그가 쌓은 인간관계가 무난해 보였을 법도 했다. 그러나, 그는 첫사랑의 환생 이외에는 어느 여자에게도 진심으로 공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살았기 때문에,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평판이 하늘을 찔렀을 정도로 높았다.


그는 자신에게 근친상간적인 감정을 품은 쌍둥이 누이에 대해, 모든 과정과 업보의 흐름을 다 알면서도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었다. 쌍둥이 누이는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평생 고통 받았다. 급기야, 쌍둥이 누이는 그가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 질투심에 휩싸여 그의 아내 될 사람을 사정없이 괴롭혔었다.


그러자, 그는 쌍둥이 누이의 행적을 알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쌍둥이 누이의 존재는, 이승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잠시 앉는 승객 그 이상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쌍둥이 누이를 냉정하고도 철저하게 감시하고 증거를 모아 사회에서 매장시킨 뒤,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었다.


결국, 그는 바라던 대로 첫사랑 여인의 환생과 결혼까지는 했었다. 그러나, 자식을 아직 두지 않고 한창 신혼을 즐기던 중, 저승에서 사고사를 가장하여 내린 죽음에 말려들어 ‘도중 소환’ 되었었다. 인위적인 환생을 거친 뒤, 이승의 질서와 주변 인간들의 흐름을 너무도 많이 흐트러뜨린 죄목 때문이었다.


환생관에서도 처음에는 그와 그의 아내에게 자식을 점지해주려 했었다. 하지만 그가 쌍둥이 누이에게 했던 냉혹한 행적들이 저승 전체에 알려지자 상황은 달라졌었다. 결국 환생관에서조차도 그의 행적에 기가 질린 나머지, 명부에 있는 수명보다 일찍 데려오는 방침인 ‘도중 소환’ 에 동의했을 정도였다.


‘애초에 그 누이 되는 아이가 모태에 자리를 잡지 않았더라면, 그 사내가 환생으로 끼어들 틈조차 없었을 일. 목적을 달성하려는 집착 하나 때문에, 인의를 아주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그 간절한 일편단심 때문에 이승과 저승 모두에게 정상 참작은 되지 않았겠는가?’


설화는, 그렇게 환생의 질서를 깨뜨렸던 남자아이의 사례를 돌아보며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결국, 자신이 맡은 30번째 혼구슬을 안전하게 지켜주려면, 다른 곳으로 피해서도 안 될 일인 듯했다.


‘이 아이는, 내가 잘 달래서 꼭 세상에 내보내줘야겠다.’


설화는 문득 눈가가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30번째 혼구슬의 집념은, 과거에 인위적인 환생을 시도했던 남자아이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남자아이가 첫사랑을 찾아 이른 환생을 시도했던 것처럼, 혼구슬 또한 첫사랑이었을 백작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자아이와 혼구슬이 달랐던 점은,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침해했는가에 있었다. 혼구슬은 저승의 모든 처분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무려 세 번의 인생을 견뎌냈었다. 남자아이보다 긴 생애를 살아가면서도, 큰 죄를 지은 적이 드물다는 것 자체도 새삼 경이로울 정도였다.


‘어쩌면, 네가 세 번째 인생 끝내고 나서는 공백이 유달리 길었던 것도.’


세 번째 인생에서 델핀느였던 혼구슬은, 자신에게 사심을 품고 앙투안을 견제할 뜻을 보였던 청년을 가차없이 살해했었다. 그것은 혼구슬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일어났던 직접 살인이었다.


‘저승에서는 직접 살인을 아주 엄하게 처벌하지.’


혼구슬이 세 번째 인생인 델핀느로서 죽었던 연도는 분명 1832년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20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네 번째 인생이 끝났다는 것은, 저승에서 기나긴 처벌을 받은 공백기가 아주 길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화는 피로 물든 혼구슬을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깃들었던 전생의 영혼들은, 하나같이 젊은 여자들이었다. 첫 번째는 16세의 고아 집시 제노비아였고, 두 번째는 동갑내기 귀족 클라우디아였다. 세 번째 인생인 대학생 델핀느가 그나마 오래 살았던 편이었지만, 그녀마저도 죽었을 때의 나이는 고작 20대 초반에 불과했었다.


게다가, 혼구슬의 가장 최근 인생이며 네 번째 인생이었을 사람의 모습은, 핏빛 장면 속에서도 상당히 어려 보였다.


‘열··· 다섯? 처음 아이하고 거의 똑같다.’



윤인진은 문구용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다중 시소에서 식은땀에 푹 젖어 몸부림치는 강연주의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인진과 함께 시소 주변을 둘러싼 15,6세 정도의 여학생들은, 각각의 시소에 하나씩 걸쳐진 연주의 두 다리를 강하게 내리 눌렀다.


인진은 지퍼와 단추가 풀어진 바지의 중심부를 내리고, 연주의 배꼽 아래서 치골을 덮은 맨살을 확 드러냈다. 살색에서 다갈색으로 점차 짙어지는 연주의 그곳에는, 막 자라기 시작한 털들이 고르지 않게 거뭇거뭇 나타났다. 인진은 연주의 털 한 가닥을 잡고, 문구용 칼을 든 손으로 사타구니 표면을 슬쩍 그었다.


연주의 사타구니 표면이 움찔했다가 굳어졌다. 서늘한 칼날 표면이 스치는 섬뜩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네가 그렇게 혼자 잘난 척하고 얘기한.”


연주의 머리를 내리누르던 권은하가 거칠게 씨부렸다. 다른 학생들은 연주의 팔다리가 각 시소대에 고정되도록 사방에서 하나씩 힘주어 내리눌렀다. 연주는 칼이 스치는 것을 피하려고 허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보았다. 인진은 한쪽 입끝을 밀어 올리며 웃음기 어린 어조로 내뱉었다.


“방연은 사실 존나 불쌍한 놈이더라.”


인진은 시소대에 하나씩 고정시키느라 각각 벌어진 연주의 두 다리 사이에 바짝 들어간 채, 문구용 칼을 연주의 사타구니 표면에 고정하듯 대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연주는 허리를 필사적으로 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몸부림은 처절함에 비해 지극히 부질없었다. 사타구니 살갗 위에 가만히 세우고 있는 인진의 칼날에, 여린 살갗을 덮을 듯 말 듯했던 털들이 서걱거리며 팬티 여기저기로 묻어나며 후두둑 떨어졌다. 몸부림치는 서슬에 피가 점점이 묻어나기도 했다.


“아아주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굴러들어온 새끼 하나가 존나 튀었다더라?”


연주는, 인진이 사나운 투로 씹어뱉는 말에 대꾸하려고 입을 열며 소리쳐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속에 있는 말은 온전히 나오지 않았다.


“고엑 그어 가이오! 웨악! 으안! 과안!”


“닥쳐!”


인진은 연주의 털 하나를 맨손으로 확 잡아 뽑았다. 그리고 동시에 일갈했다.


“굴러들어온 건, 도로 굴러나가야지 어쩌겠어!”


연주의 털들이 짧고 뾰족하게 잘려서 더 떨어져 나갔다. 시소에서도 오른쪽 위편에서 연주의 왼팔을 강제로 고정한 문지원은, 주머니 속에서 비닐백 하나를 꺼냈다. 비닐백 속에는 톱밥 비슷한 정체모를 회갈색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치, 나무로 된 물체 하나를 칼로 긁어낸 잔해인 듯했다.


지원은 비닐백을 열어 가루를 연주의 머리카락 구석구석에 흩뿌렸다. 그러자, 마치 비듬과 서캐가 잔뜩 앉은 것처럼 연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지저분해졌다.


“지저분한 년.”


“더러운 년.”


너덜너덜 찢어진 연주의 교복 셔츠에 허여멀건한 색을 낀 길쭉한 터럭이 묻어났다. 그 터럭에는 희미하게 푸른색 선이 스쳐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교실의 목재 책상들 중 낙서가 있는 것을 긁어낸 가루인 듯했다. 지원의 반대편인 시소 왼쪽 위편에 있던 홍윤정이 연주의 머리 이곳저곳을 세게 내리쳤다. 조금 전까지 뿌린 가루가 흩날렸다.


“우억! 겍!”


연주는 윤정에게 맞으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계속해서 고문 받은 여파인지 혀가 반쯤 굳어져서 막힌 소리만 새어나왔다. 연주는 몸부림치다가 시소대 사이의 모래밭에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인진은 다시 잡아 올리려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대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연주는 자신의 치마를 잡아당기는 느낌만으로도 진저리를 치며 뒹굴었다.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는 한 가닥 의식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희뿌연 목재가루를 뒤집어쓴 머리카락 때문에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어서, 그냥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비틀거리며 필사적으로 달리던 끝에, 그녀는 놀이터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담벼락에 세워진 철제 임시 건물에 머리를 박았다.


녹갈색 페인트칠을 한 철판으로 조립한 그 건물은, 공용 화장실로 세워둔 초소였다. 간유리로 문에 창을 내었기 때문에, 내부 또한 제대로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연주는 그저 인진과 10여명의 학생들을 피할 생각에,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살려달라고 계속 외쳤지만, 입이 막힌 듯한 소리만 화장실 안에서 웅웅 울릴 뿐이었다.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쫓아가다가 멈춰섰다. 그들 중에서 세 번째에 멈춰선 학생이 말했다.


“더 두면 시끄러워지겠는데.”


인진은 눈을 다소 가늘게 뜨며 그 학생을 째려보았다. 그 학생은 수학경시대회에서 차석을 차지했던 공선민이었다. 그러자 윤정이 선민에게 말했다.


“정신 나간 게 지 혼자 처박혀서 제풀에 지랄하는데 무슨? 그냥 냅두고 가자.”


선민은 뭐라고 항변하려 했다. 그 때, 인진이 착 깔린 어조로 내뱉었다.


“아니, 잡아와.”


“잡아오라고? 이러다가 국민학생이나 유치원생들 같은 애들 이쪽으로 오면 어떡해?”


“생각난 게 있어. 일단 누가 봐도 꺼내주는 것처럼, 둘만 가.”


선민과 윤정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가, 짐짓 다급하게 달리는 몸짓으로 임시 화장실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문을 거칠게 열었다. 문이 열리자, 연주는 철판으로 된 막다른 구석까지 물러나며 오들오들 떨었다. 들어온 상대가 누구인지도 식별할 수 없었기에, 침입자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는 공포였다.


선민과 윤정은 잔뜩 찌푸린 기색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윤정은 입구에서 망을 보고, 선민은 벽에 몸을 찰싹 붙인 채로 공포에 질린 연주의 두 팔을 강제로 잡아당겼다. 필사적으로 뿌리치던 연주의 손이, 그만 선민의 뺨 한쪽을 할퀴고 말았다. 선민은 바깥을 망보는 윤정의 움직임을 곁눈질로 확인했다가, 연주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세게 걷어찼다.


연주는 느닷없이 두 대 맞고 나서는, 몸을 더 이상 가누지 못하고 좌변기 위로 엎어졌다. 선민은 좌변기 머리 부분 앞 바닥에 설치된 누름쇠를 발로 찍어 누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할퀸 자국이 남은 뺨에 손을 얹은 채, 살기 어린 시선으로 연주를 내려다보았다. 윤정은 섬뜩한 금속성 어조로 말했다.


“그냥 끌어내도 되겠어.”


“좋아.”


두 사람은 연주의 팔목을 잡아서 질질 끌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 때,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풍이 끝나고 일제히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로 돌아오는 듯했다. 시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진이 말했다.


“이거, 저거한테 입히자.”


인진은 말하던 끝에 들고 있는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비닐 우비였다.


“사람들 눈치까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거 정신 완전히 나가게 굴리고 해산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연주의 몸에 비닐 우비를 강제로 입혔다. 그들은 미끄럼틀로 향했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는 경사틀 위에는, 마치 유원지처럼 노란색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그들 모두는 우비를 입은 채 기진맥진한 연주를 앞세우고 밀었다. 계단으로 거의 밀어 올렸다가, 아래로 미끄러지게 밀었다.


“좋지, 좋지?”


마치 아기에게 미끄럼틀 놀이를 처음 시켜보고 어르는 양, 연주를 미끄럼틀에서 밀던 인진이 꿀 바른 것처럼 미끈한 어조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는 인진의 얼굴은 더없이 예쁘장했지만, 한편으로는 광기 어린 미소가 입가에 스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가던 학부모들은, 놀이터를 지나가다 뭔가 이상한 듯 멈춰서서 보았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10여명의 학생들 움직임을 보고는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인진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의혹을 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연주의 몸을 15번째로 힘껏 미끄럼틀에서 내려가게 밀었다.


아래로 떨어진 연주의 몸에서, 나머지 학생들은 흙투성이가 된 비닐 우비를 다시 벗겨냈다. 그리고, 그녀의 교복 마이와 책가방을 포함한 소지품들을 각지에 흩어놓기 시작했다. 인진은 연주의 책가방을 보다가,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통지서는 물론이고, 현금을 모조리 빼냈다. 빼낼 것은 빼낸 뒤, 가방을 다시 닫았다.


그렇게 손댄 가방을, 인진은 놀이터 앞 횡단보도의 신호등 전봇대 앞에 놓았다. 차도와 불과 한 뼘 정도 벌어진 아슬아슬한 턱이었다. 미끄럼틀에서 떨어진 연주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엎어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체포된 삼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체포된 삼신] 완결 후기입니다. 19.09.02 78 0 -
공지 [체포된 삼신] 완결 일정 최종 공지입니다. 19.08.05 93 0 -
공지 [체포된 삼신] 연재 일정 관련 공지입니다. 19.07.17 86 0 -
57 외전 [아스트라이아] 6 - (2) 19.12.09 24 0 16쪽
56 외전 [아스트라이아] 6 - (1) 19.12.09 24 0 16쪽
55 외전 [아스트라이아] 5 - (2) 19.12.03 23 0 14쪽
54 외전 [아스트라이아] 5 - (1) 19.12.03 28 0 14쪽
53 외전 [아스트라이아] 4 - (2) 19.11.29 23 0 14쪽
52 외전 [아스트라이아] 4 - (1) 19.11.29 18 0 14쪽
51 외전 [아스트라이아] 3 - (2) 19.11.23 29 0 13쪽
50 외전 [아스트라이아] 3 - (1) 19.11.23 29 0 15쪽
49 외전 [아스트라이아] 2 - (2) 19.11.18 25 0 13쪽
48 외전 [아스트라이아] 2 - (1) 19.11.18 25 0 14쪽
47 외전 [아스트라이아] 1 - (2) 19.11.12 27 0 12쪽
46 외전 [아스트라이아] 1 - (1) 19.11.12 35 0 14쪽
45 외전 [아스트라이아] - 프롤로그 19.11.06 44 0 13쪽
44 에필로그 : 영원한 잠 19.08.07 85 1 25쪽
43 13. 체포된 삼신 [完] 19.08.07 101 0 48쪽
42 12. 거래는 성사되었다 (2) : 사라진 혼구슬 19.08.06 99 0 39쪽
41 11. 거래는 성사되었다 (1) : 피로 물든 밤 19.08.06 93 0 31쪽
40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4 19.08.05 102 0 27쪽
39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3 19.08.05 108 0 26쪽
38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19.07.30 88 0 19쪽
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116 0 16쪽
36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128 0 22쪽
»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20 0 19쪽
3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7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7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8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7 0 1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제니아.'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