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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2 04: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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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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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DUMMY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특별할 것도 없었던 날.’


축축한 모래 속 진흙에 얼굴이 너무도 깊이 박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연주의 의식은,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멈추어버렸다.



1994년 4월 1일. 채연 중학교.


2학년 교실들이 배치되어 있는 3층은, 만우절을 맞이하여 평소보다 더욱 시끌벅적했다. 4반 교실에서는 칠판이 가까운 앞문에 각종 풍선과 리본들을 매달았다. 교탁에는 촛불을 즐비하게 꽂은 케이크를 놓기도 했다. 칠판에는 색색깔의 분필로 온갖 낙서와 축하 메시지들을 빽빽하게 써놓았다.


5반 교실과 6반 교실 앞에서는, 학생들이 책상과 의자를 몇 개 옮기기도 했다. 남학생 반이었던 5반은, 여학생 반인 6반 교실보다 인원이 서너 명 정도 많았다. 두 반의 학생들은 각각 교실 바꾸기를 하려고, 인원을 맞추기 위해 5반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분주하게 빼냈다.


이윽고, 5반 교실에는 연주를 포함한 여학생들이 모두 들어와서 인원 수 대로 자리를 잡았다. 정문에 들어온 6반 반장이 5반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 여기 수학인데?”


“뭘로 바꿀까?”


반장은 시간표를 보고, 당일에 없는 과목들 이름을 칠판에 후다닥 적었다. 그리고는 6반 학생들에게 투표를 받아 그 수를 정(正)자로 표시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과목은 국어였다. 연주는 학생들 반응을 보다가, 국어에 투표했다.


‘국어 선생님들이 가끔 수업 시간에, 다른 얘기로 양념 잘 쳐주니까 그러나?’


연주는 칠판에 표시된 투표 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한 달 전에 사촌 오빠인 우현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와 동시에 채연 중학교로 전학 수속을 밟은 지도 얼마 안 되었다.


‘예전 학교에서도 국어나 문법 선생님들이, 진도 나가는 내용 재밌게 해주거나 잠깐 쉬게 해주려고, 영화나 드라마 얘기를 예시로 잘 해주긴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상황 하나하나마다 인과 관계를 철저하게 파악하는 버릇이 생겨버렸었다. 그에 대해서는 우현이 농담삼아 한 마디 한 적도 있었다.


“나하고 있을 땐 해도 괜찮아. 너 얘기하는 건 진짜 재밌거든. 근데 - ”


“응?”


“딴 녀석들하고는, 다 까놓고 지내기 전까진 좀 참아주라.”


“아니, 왜?”


“그게, 시비 정확히 가려주는 건 보통 어른들이 하시는 일이잖아.”


“뭐라고?”


“넌 아직 어른 아니야.”


“어이, 아저씨. 아저씨는 어른이세요?”


“야! 누구보고 아저씨래? 그리고 너보단 내가 - ”


당시 연주는 사람들 앞에서 잘 웃지 않는 웃음을, 우현 앞에서 슬며시 보였었다. 그리고는 농담조로 응수했었다.


“세 살 차이 가지고 무슨 어른이세요. 가짜 아저씨?”


“아 그래! 나 아직 어른 아니다! 됐냐, 이 꼬마야!”


우현은 공연히 성질내는 척 소리쳤었다. 하지만 그러는 우현의 눈에는 웃음기가 있었다. 우현은 그렇게 소리치고 느닷없이 자리를 떠나려 했었다.


“어디 가려고?”


“어른 되러 간다, 왜!”


“뭐래.”


연주는 우현이 가려는 쪽을 유심히 보았었다. 식당 쪽이었다.


“야자 하기 전에 밥 먹으러 간단 얘기 한 번 차암~ 어렵게 한다.”


“내가 너보단 이미 밥 천 그릇 더 먹었거든? 그러니까 밥 더 먹으면 더 빨리 어른 될 거 아냐!”


“오빠야말로 어디 가서 그런 농담 절대 하지 마. 난 참을 수 있지만 다른 녀석들은 절대 못 참을 걸?”


연주는 쿡쿡거리며 받아쳤었다. 조금 전까지 우현이 했던 말에 복수라도 하듯,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었다.


“혼난다, 진짜!”


우현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밉지 않다는 듯 흘겨보며 주먹질 시늉만 했었다. 그러다가는 고등학교 식당으로 후다닥 뛰어갔었다.


‘아주 못 말리는 오빠야지. 숫자 계산도 완전 엉망이고.’


연주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었다. 그녀는 책상 한쪽 걸이에 걸어둔 배낭가방에서 국어책을 꺼냈다. 국어 시간으로 가장하는 것이 확정된 이상, 수업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철저하게 해야 했다. 6반 학생들 모두가 국어책을 책상에 두고 정자세로 앉았다.


복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정시가 된 것이었다. 각 교실의 학생들 또한 만우절 이벤트 준비가 끝나고 다들 들어간 듯했다. 잠시 후, 5반 교실의 정문을 열고 수학 교사가 들어왔다. 수학 교사는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들만 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앉은 책상마다 국어책만 놓인 것을 확인하고는, 굳어져버렸다.


수학 교사는 교탁 위에 놓인 출석부를 내려다보았다. 그것 또한 5반이 아니라 6반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후우.”


수학 교사는 한숨인지 외마디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6반 반장은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국어 선생님께 경례!”


연주를 포함한 6반 학생들은 일제히 목례하며 외쳤다.


“안녕하세요!”


수학 교사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만우절이기에 온갖 장난들이 쏟아질 것은 예상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 듯했다.


“좋다. 오늘은 좀 긴 얘기 하나 하고 시작할까?”


수학 교사는 뭔가를 생각했다가, 3분 정도 지나서야 말을 꺼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6반 학생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손자병법은 많이 들어봤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다 이긴다는 말, 거기서 나왔지.”


연주와 모든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다섯 번째 줄에 앉아서 상황을 보던 연주는 수학 교사의 결연한 눈빛을 읽고 멈칫했다. 어떠한 거짓말과 장난도 용서된다는 만우절을 맞이할 때면, 교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는 편이었다. 다 내려놓고 완전히 속아주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무시하고 수업 진도를 나가는 반응이 그런 것들이었다.


“그 손자병법을 쓴 손무한테 손빈이란 손자가 있었다고 한다. 손빈은 친구 방연하고 같은 스승한테서 배웠지.”


수학 교사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매우 오래 되었을 법한 고대 인물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병법, 친구, 동문수학.’


연주는 수학 교사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키워드를 읽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근데, 방연은 시간이 지나면서 손빈을 싫어하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야.”


수학 교사는 거기까지 말하고 학생들을 잠시 보았다. 연주는 자신의 책상에 얹은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면서 듣다가 생각해 보았다.


‘사람과 사람이 철저하게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면··· 사실 미워할 일은 별로 없어.’


아마도, 손빈이 갖고 있는 배경이나 특정한 물리적 존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연주는 그렇게 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수학 교사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수학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손빈이 그 손무의 몇 대 손자라고 하니, 당연히 그 재주도 대물림해 전략도 금방 익히고 뛰어날 거라는 기대도 있던 거 같다. 실제로도 손빈은 정말 천재였고, 손자병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군사적 지식을 대대손손 물려줄 새로운 전략가로 주목받았다.”


연주는 어느 정도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느낌을 받고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다른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교사의 이야기만을 경청했다. 그들 모두에게는, 만우절 작전이 성공하여 수학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는 것 자체로도 크게 만족할 일이었다.


“방연은··· 손빈보다 먼저 공부를 시작했지만, 손빈이 조상님 배경 때문에 스승한테 더 사랑받는 것도 신경 쓰였다. 근데 손빈은 그런 거 안 따지고도 실력만 봐도 따라갈 수 없는 친구였어. 결국 방연은, 아예 죽이고 싶을 만큼 손빈을 미워하게 됐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반장이 물었다. 수학 교사는 반장을 잠시 본 뒤에, 학생들 모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방연은 위나라에서 손빈보다 먼저 관직에 오르긴 했다. 근데 위나라 조정에서도 손빈을 더 궁금해 했고, 방연에게 데려오라고까지 했어. 방연은 조정의 명령을 따라 손빈을 데려오긴 했지만,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연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에 이 자리에 우현이 있었다면, 그 다음 상황을 그와 같이 추측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우현은 바로 옆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3교시 수업을 받고 있을 터였다. 연주는 아쉬운 생각에 입맛을 한 번 다시고, 수학 교사의 말을 계속 들었다.


“손빈과 왕실을 이간질했다. 왕실에서는 방연 말을 믿고, 손빈에게 큰 벌을 내리지. 손빈은 친구로 믿었던 방연이 그런 건 전혀 모르고, 방연한테 도와달라고 했다. 물론, 방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왕실에서 내린 벌을 그대로 받게 내버려뒀다.”


“무슨 벌이었어요?”


“다리를 자르는 벌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 제나라에서는, 그전부터 손빈을 좋게 보다가 이 기회에 구하려고 했어.”


수학 교사는, 제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죄수의 신분인 손빈을 빼낸 과정을 간단히 밝혔다. 무릎 아래가 잘린 손빈의 몸을 작은 상자에 담아 성문을 빠져나갔다는 묘사가 나오자, 연주와 학생들은 모두 숨을 삼켰다.


“그렇게 상자에 숨어 국경을 넘은 손빈은, 제나라를 위해 군사를 키웠다. 자기를 구해준 그 나라에 새로 자리 잡고, 자기를 배신한 방연한테도··· 복수하기 위해서였지.”


수학 교사는 분필을 집어 들고 칠판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간단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가장 먼저, 곡선으로 국경선 언덕의 능선을 그린 뒤, ‘조나라’ 라고 표시했다. 그 다음에는 기와를 씌운 성곽을 매우 간략한 선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동그라미 여러 개가 뭉쳐서 성곽으로 모이도록 빼곡하게 그렸다.


“자, 여기서 문제 나간다! 방연의 위나라 군사를 5만이라고 가정하고, 손빈의 제나라 군사는 2만이라고 가정해 본다. 실제로 얼마인지는 몰라도, 일단 방연 쪽 군사가 많았던 건 확실했거든. 근데, 손빈은 이 싸움에서 완전히 이겼고, 나중에는 방연을 잡아서 처벌했다고 한다. 과연, 손빈은 어떻게 이겼을까? 누가 계산해 볼래?”


학생들은 수학 교사에게 한 방 먹었다는 듯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리고는 각자 외마디 신음 소리를 낸 뒤, 웅성거렸다. 연주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칠판 위에 그려진 낙서를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그 때, 수학 교사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칠판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는 분필로 뭔가를 더 쓰려 했다.


“그건 간단해요, 선생님.”


연주는 불쑥 입을 열었다. 수학 교사는 멈칫 했다가 얼른 돌아섰다. 연주는 수학 교사를 향해 계속 말했다.


“손빈 입장에서는, 방연이 저 성 쪽으로 오게 만들면 충분했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니?”


“평지에서는 부대 천막이나 깃발, 말 숫자로 병사 수를 웬만큼 예상하겠지만, 성벽이라면 얘기가 좀 달랐을 거예요.”


학생들은 연주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연주는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교탁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수학 교사에게 계속 말했다.


“대략··· 손빈은 자기 병사를 약간만 성에 배치해서 방연의 군대가 그 쪽을 공격하는 사이, 자기는 주력 부대를 이끌고 다른 길을 통해, 위나라로 쳐들어 간 게 아닐까요?”


수학 교사는 순간적으로 떨어뜨릴 뻔한 분필을 간신히 다잡았다.


“그래서?”


“보니까, 지금 방연이 치는 곳은 제나라도 아니고 생판 다른 조나라잖아요?”


학생들은 두 사람의 말을 듣다가, 연주를 일제히 쏘아보았다. 연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수학 교사를 향해 말했다.


“그럼 저기 조나라에서 방연이 싸워서 병사가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거나, 아니면 방연이 자리를 비워서 허술해진 위나라를 먼저 치는 방법도 있었겠죠. 밖에서 뭘 하든, 돌아갈 집이 없으면 그게 더 큰일이니까요.”


수학 교사는 한동안 얼어붙은 채 연주만을 주시했다. 모든 학생들은 수학 교사의 시선이 가는 곳을 따라, 연주를 힐끔 돌아보았다. 반 정도는 연주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한 듯 놀란 눈빛을 띠고 있었다. 나머지는 연주의 말참견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듯 흘겨보고 있었다. 이윽고 수학 교사가 입을 열었다.


“너.”


수학 교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연주의 얼굴만 보았다. 그러다가는, 교탁 위에 있는 6반 출석부로 눈을 돌렸다. 출석부에는 각 학생들의 사진과 출석 번호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었다. 수학 교사는 출석부 거의 끝부분에서 연주의 이름과 사진을 찾아내고, 확인하듯 한 마디 던졌다.


“42번, 강연주?”


연주는 단정하게 대답했다.


“네.”


“혹시 이 얘기, 책으로 읽어봤니?”


수학 교사의 어조는 묘하게 불안정하면서도,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요.”


연주는 단번에 대답했다. 그러자, 주변 모두가 저마다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뭐야 쟤?”


“진짜일까.”


“아냐, 생긴 거 봐봐.”


“생긴 게 뭐?”


“외국서 온 애들이 우리랑 같은 학년이면, 실제 나이는 더 많을 걸?”


“만 나이가 있으니 그건 그럴 수도. 그나저나, 그게 뭐?”


“그래서 우리보다 좀더 아는 거 아냐?”


“에이 말도 안 돼. 전학 서류 보니 쟤 어디 나가 본 적도 없다던데.”


“어후, 몰라, 몰라! 완전 재수 없어.”


연주는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분명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었지만, 어딜 가도 그런 동갑내기들의 행동은 그저 가소롭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몇 년이 지나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굳이 말해봐야 괜히 감정만 상하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지.’


연주는 평소처럼 별 표정 없이 학생들을 쓱 돌아보았다가, 다시 수학 교사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수학 교사는 교탁을 몇 번 두드리며 말했다.


“다들 조용, 조용!”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잦아들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수학 교사는 다시 연주를 향해 말했다.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손빈의 일대기와 병법을 담은 자료에 나온 거야.”


“네.”


“근데 이건 말이다··· 한문에 주석을 약간 단 책은 좀 있어도, 아직 청소년용으로는 시중에 공개 된 게 별로 없는 걸로 안다. 혹시 너 주변에 이쪽으로 공부하는 분이 계시니?”


“아니요.”


연주는 곧바로 대답했다. 수학 교사는 잠시 생각했다가 말했다.


“알았다. 일단 다음 얘기 계속 한다.”


곧이어 수학 교사는, 방연이 패배한 이후의 일들을 짤막하게 요약해서 풀어나갔다.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자못 흥미롭다는 듯 끝까지 귀를 기울였다. 연주는 자신의 자리에서, 수학 교사의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경청했다. 수학 교사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연주의 반응을 힐끔힐끔 살폈다. 그러는 수학 교사의 눈빛에는 연주에 대한 흥미와 감탄이 내내 어려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러자,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은 반장을 따라 수학 교사에게 목례를 했다. 그 날의 수업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 전학생이 그랬다고요?”


“안 그래도, 중간고사 때는 어떨지 한 번 볼까 했습니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똑똑하다는 평가가 대세였다네요?”


“그렇다 해도, 이건 좀 믿기 힘들군요.”


“뭐가요?”


“전쟁 쪽 얘기는, 게임 좀 하는 애들이 그런 전략 쪽으로 정말 간단하게 잘 맞추는 경우도 꽤 있긴 하거든요. 근데, 그 전학생은 아예 그 쪽으로 뭣도 없었다면서요?”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글쎄요. 기록부 넘어온 걸 보면 수리 쪽은 정말 취약한데 역사하고 자연 과학은 또래보다 거의 넘칠 정도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하지만 중국사 쪽을 우리 교육 과정에서 그렇게 깊이 들어가진 않잖아요?”


“좌우지간, 이 강연주란 녀석. 물건은 물건인 거 같습니다. 쓸데없는 추측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계속 지켜보지요.”


그 날 이후로, 연주에게는 조금 특별한 일들이 계속되었었다. 가끔 교무실에 용무가 있어서 갈 때면, 국사를 담당하는 교사가 연주에게 삼국지와 손자병법의 여러 판본들을 내주며 개인 과제를 내주기도 했었다.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6반 담임을 통해서 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6반 반장이었던 인진은,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성적이 나온 이후로 연주와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연주는 그런 인진의 행동을 그럭저럭 받아주었었다. 그녀로서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말동무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급우들의 요청에··· 그저 성실하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더하고, 덜할 것도 없었다. 내가 먼저 뭘 나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인진은, 학교에서의 시간과 연주와의 개인 시간이 아닐 때에도, 연주의 주변을 몰래 맴돌았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어쨌다는 거냐, 도대체.’


인진은 동네에서 10년 넘게 살았다고 했었다. 그렇기에, 국민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녀를 아는 이들이 많다고도 했다. 그러나, 연주가 수학 시간에 두각을 드러낸 이후부터는, 인진의 고운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었다.


“다 알아서 좋겠다?”


“너만 없다면.”


필통에 매일 들어가는 문구용 칼의 조각칼날들, 실내화에 매번 들어가는 압정들, 책상 속에 들어간 의문의 담배갑들, 지난 두 달간 그 모든 것들이 연주 한 사람을 겨누고 있었다. 인진을 여신처럼 따르던 10여명의 학생들은, 청소 당번일 때 위험한 쓰레기들을 골라 연주의 자리에 배치하고 나머지 쓰레기들을 처리하곤 했었다.


다른 학생들이 연주의 자리에 놓인 쓰레기를 아무 것도 모르고 치우려 할 때면, 10여명의 패거리들이 다시 칼날과 압정 등을 가져다 놓기도 했었다.


“싫으면 니가 나가.”


스승의 날 행사가 끝난 어느 날, 인진과 고정으로 나란히 앉던 선민이 씹어뱉었다. 선민은 청소당번으로서 대걸레를 빨러 화장실에 왔다가, 느닷없이 대걸레를 휘둘러 연주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대걸레에 눌린 연주의 머리는, 순식간에 수도꼭지 앞 대리석 물통에 처박혀버렸었다.


“넌 어딜 가도 상관없겠지만, 우리가 너 때문에 본 피해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리고, 암흑과 함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연주는 모래밭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뭔가 한바탕 지나간 느낌만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땅거미가 지고 있는 모래바닥 때문에 콧속이 매캐해졌다.


“크흑.”


무릎을 꿇고 허리를 들려고 해보았다. 데님 재질의 교복 치마에서 지퍼와 단추가 이미 풀려서, 허리띠 부분이 척추 아래를 거칠게 스쳐 내렸다. 아주 잠시였지만, 치마가 내려가는 이질적인 느낌이 유달리 차갑고 쓰라렸다.


18세기 유럽 양식의 갑옷을 입은 흑발 남자가 반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흑발 남자는 검푸른 눈에 슬픈 빛을 띠고 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연주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절도 있게 무릎을 꿇고, 그녀의 눈높이에 맞게 앉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연주는 남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그게 내가 여기서 기억하는 세상··· 전부에요. 백작님. 이제 당신 말고, 내 세상은 없어요.”


설화는 망연자실한 채로, 여자의 저음이 들려오는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부터 갑작스레 떠올랐던 핏빛 장면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무릎에는 ‘강연주’ 로서 네 번째 전생을 마감했던 30번째 혼구슬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 영롱한 유백색 광택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구슬 속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혼구슬 안에서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흑발 여자가 회전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에는, 첫 번째 인생에서 제노비아였던 소녀의 크고 검은 눈동자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마도 완전히 어른이 된 강연주인 듯했다. 어릴 때보다도 더욱 피어나면서, 약간 노르끼리했던 얼굴도 완연히 연분홍빛 섞인 백옥 빛깔을 띠었다.


연주는 극단 [나선계단] 이름이 적힌 나무패가 조잡하게 붙은 지하실에 앉아있었다. 여는 고리가 없는 큼직한 칸막이 유리창이 커다랗게 트여 있었고, 그 유리창이 붙은 벽에는 녹음 장비가 붙어 있었다. 네 개의 벽 모서리마다 CCTV가 붙어 있었지만, 전원은 모두 꺼져 있었다.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연주는 물기가 다소 섞인 어조로, 어느 한 쪽을 보며 물었다. 설화는 혼구슬 속에 비친 연주의 시선이 가는 곳을 보다가 숨을 삼켰다. 그곳은, 칸막이 유리창에서 아무 것도 비추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혼구슬을 통해서는 18세기 양식의 갑옷을 입고 망토를 두른 흑발 남자의 모습이 반투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흑발 남자는 바로, 1714년에 제노비아를 사랑한 젊은 백작의 혼이었다.


작가의말

 * 다음에는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챕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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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4 19.08.05 91 0 27쪽
39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3 19.08.05 97 0 26쪽
38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19.07.30 79 0 19쪽
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93 0 16쪽
»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97 0 22쪽
35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11 0 19쪽
3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1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3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5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2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3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7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3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2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8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8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6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5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3 0 13쪽
21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19.06.18 9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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