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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최근연재일 :
2019.1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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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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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DUMMY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순간, 연주가 멈칫했다. 그녀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돌아보았다. 그러는 그녀의 턱 부분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질적이고도 파르스름한 섬광 속에 반투명한 모습을 한 백작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공포에 휩싸여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백작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른다면 나만 괴롭겠지만, 날 알아보면 놀랄 건 오히려··· 당연하겠지.’


연주는 도망칠 힘도 없는 듯, 굳어져 있다가 무너질 듯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백작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앞에 앉아서 일으켜 주려고 두 손을 뻗었다가, 그녀의 팔목을 자신의 손이 그대로 통과해버리는 것을 보고는 곧 거두었다. 연주는 더욱 질겁하여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엉덩이 걸음으로 안간힘을 다해 몇 발짝 몸을 뒤로 물렸다.


“놀라지 마. 내가 도와줄게.”


백작은 연주에게 더 다가가지 못한 채, 그렇게 말해보았다. 연주는 얼어붙은 채 백작을 멍하니 보다가, 흙투성이가 된 손을 들어 눈을 감고는 자신의 눈두덩을 여기저기 눌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서 백작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등 뒤로 아파트의 배경이 파르스름하고도 반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것까지도.


“싫다면··· 가까이 가진 않을게. 근데 너 집에 가야 하잖아?”


백작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나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연주는 두 다리를 세우고 바닥에 앉은 채, 그런 백작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달빛 아래서 반투명한 형상을 띤 유령 기사의 모습은 다소 기괴했지만, 분명한 형체를 띤 살아있는 인간이었다면 묘하게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미남이었을 듯했다.


‘누군가 날 보면서 저렇게 울고, 도와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을까?’


텔레비전에서 가끔 여름에 공포 특집으로 방영하는 드라마에는, 소복을 입은 귀신들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귀신들은 오래 전에 죽어서 매장된 시체가 썩어가는 형상을 그대로 투영하기라도 하듯, 창백하고 눈 주변이 까맣게 죽어가는 분장 또한 짙게 했었다.


그런 귀신들은 생전에 겪었던 안 좋은 일 때문에 한이 맺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 나오던 귀신들은, 살아있는 인간을 돕겠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대개는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연주의 눈앞에 나타난 유령 기사인 백작은 그렇게 부패한 시신이 형상화된 모습도 아니었다.


“집.”


연주는 간신히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자신의 입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사촌 오빠인 우현이 사는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입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에 묻어 있는 흙을 여기저기 털어냈다. 백작은 비틀비틀 일어나는 그녀의 몸짓을 보고 몇 번이고 손을 뻗으려다가 곧 거두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널 안고 데려다주고 싶다! 그런데 난 널 만질 수조차 없어!’


그 때, 연주는 자신이 입고 있는 하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백작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낮에 연주를 시소에 눕히고 고문하던 인진과 그 패거리 10여명의 행동을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백작은 생각 끝에, 검지를 자신의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어깨에서 허리까지 세로로 쓱 내려 그어 보였다. 각각의 어깨에 한 번씩 그런 동작을 하고는, 주먹 쥔 두 손을 어깨 앞에서 움직여, 뭔가를 짊어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책가방?”


연주는 백작의 기이한 몸짓을 유심히 보다가, 그가 형상화하려는 것을 짐작하고 말해보았다. 백작은 눈물에 젖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녀가 메고 있었던 책가방을 가장 먼저 찾아야 했다. 그는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 인진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던 선민이 연주의 책가방을 빼앗아서 버려둔 곳을 떠올려보았다.


백작은 연주에게 다시 한 번 쉿- 하고 신호를 보낸 뒤,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서서 걸어가 보았다. 연주의 발소리가 바로 들리지 않자, 그는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연주는 아직 반신반의하는 듯한 기색으로 그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몇 발짝 내디뎠다. 그는 놀이터를 벗어나서 시내로 나왔다.


이윽고 그들은 건너편에 채연 중학교 건물이 보이는 길목 앞에 도착했다. 연주의 책가방은 인도와 차도 경계 사이, 신호등을 세운 전봇대가 선 지점에서도 한 칸 아래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신호등을 원격 조정하는 기기는, 가로수 두 그루 정도의 간격만큼 떨어진 보도 경계 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빨간불이군.’


백작은 횡단보도 건너편의 신호등 불빛을 확인했다.


‘빨간색은 예전에도 경고 신호로 많이 썼지. 그럼 여기서도··· 아직은 가면 안 된다는 뜻이겠군.’


아마도, 길을 건널 때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길을 건널 필요까지도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신호가 자동으로 바뀌었다. 횡단보도 쪽 신호등에서는 초록색 불이 켜졌다. 차도를 달리던 자동차들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와도 되는 것일까.’


백작은 가방의 위치를 확인하고 연주에게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연주는 한달음에 달려와서 인도 끄트머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몸을 굽혀서 가방을 주워들려고 했다. 그 때, 돌연 횡단보도 신호등의 불빛이 다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전봇대 위쪽에 가로로 걸쳐져 있던 고속도로용 신호등의 불빛은 녹색으로 바뀌어버렸다.


건너편 백화점에서 우회전을 하여 서서히 도로로 접어든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맨 오른쪽 차선으로 질주했다. 그 방향은 바로 백작과 연주가 서 있는 횡단보도 초입이었다. 백작은 연주가 가방을 집어 들려고 몸을 굽힌 찰나에, 바로 승용차가 들이닥치는 것을 보고 외쳤다.


“위험해! 일어나!”


연주는 황급히 가방에서 손을 떼고 상반신을 일으켜서 뒤로 물러섰다. 그 때, 승용차가 그대로 스치고 지나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책가방의 끈은 스키드 마크가 진하게 남은 채 찢어졌다. 그리고, 신호등 조정 기기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뭔가를 조작한 뒤에 황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신호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백작은 그림자가 줄달음질치는 것과, 지나간 승용차의 뒤쪽을 유심히 각각 쏘아보았다.


“빨리, 서둘러.”


연주는 어안이 벙벙했다가, 차가 오지 않는 것을 재삼 확인했다. 그리고는 찢기지 않은 가방 끈만 잡아서 인도로 끌어올렸다. 그러는 연주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약삭빠른 년.”


“우릴 이렇게 하도록 몰아넣고 피할 건 다 피해가네.”


“눈치 챘으면 어떡하지?”


“저 년 말을 누가 믿겠어?”


백작은 각기 다른 네 여자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째서 도로 신호가 순간 조작되었는지, 조작된 신호에 따라 이상 질주한 승용차가 어떤 의미였는지 단박에 깨달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인 연주로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패거리들 일부의 목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연주는 가방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조심조심 마저 주워들었다. 그리고 지퍼를 열어 모두 챙겨넣은 뒤, 가방을 닫았다. 닫은 가방을 다시 등에 메었다. 백작은 착잡한 기색을 띤 채 그런 연주를 건너다보았다.


‘말해줘도 될까?’


연주의 까만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예전에 총명했던 제노비아와 델핀느의 눈빛은 그녀에게 없었다. 일시적이겠지만, 조금 전의 일로 빛을 잃어버린 듯했다. 백작은 연주가 갖고 있었던 나머지 소지품들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그는 이내 한 손으로 자신의 군홧발을 가리켜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고 무언가를 든 것처럼 살살 흔들어보였다.


“신발주머니.”


연주는 백작이 손짓으로 그려내는 형상을 읽어내고 말했다. 그리고는 백작을 쳐다보았다.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아파트 단지 쪽으로 돌아섰다. 연주는 아까와 달리 주저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이내 그네 앞에 도착했다. 쇠사슬로 엮은 그네 줄을 각각 매단 꼭대기 봉에, 신발주머니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백작은 연주가 서 있는 높이와, 그네 전체의 높이에서 오는 차이를 눈대중으로 재빨리 헤아려 보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금 전까지 연주가 도망쳤었던 임시 초소 옆에 있는 플라스틱 물통과 의자를 보았다. 의자라면, 사각으로 된 놀이터 주변에도 기다란 벤치가 여러 개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벤치들은 바닥에 딱 붙박이로 비치되어 있었다.


“저거.”


백작은 물통과 의자를 가리켜보였다. 연주는 의자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의자를 발판 삼아, 그네의 한쪽으로 올라갔다. 그네의 양쪽은 A자 모양의 철봉으로 각각 모래밭에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올라선 채, 그 중에서도 중간 가로대에 한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몸을 솟구쳐 가로대에서 대롱거리는 신발주머니를 꽉 움켜쥐었다.


주머니를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가로대 봉에 묶인 끈이 그대로 딸려왔다. 이윽고 A자 라인의 꼭짓점까지 주머니가 완전히 딸려왔다. 백작은 손으로 눈물을 쓱 훔치며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직접 끌어내려 주고 싶었지만, 그의 손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 새삼 가슴이 저려올 뿐이었다.


연주는 A라인 철봉에 몸을 의지해서, 가로대에 묶인 신발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두 개의 고리로 각각 풀어진 신발주머니의 끈을 잡고 의자로 내려왔다.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놓고는, 그 사이에 묻은 모래가루와 철봉에서 묻은 부스러기를 툭툭 털어냈다.


백작은 그녀를 보고는, 한 손을 폈다가 둥글게 움킨 뒤, 다른 손으로 그 손바닥 위의 허공을 푹푹 뜨며 숟가락질 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를 보던 연주의 눈이 약간 커졌다.


‘밥 먹자는 건가?’


백작은 어리둥절해 하는 연주의 반응을 보다가, 둥글게 움킨 손바닥 위에, 다른 한 손을 올려서 빙글빙글 돌려보였다. 뭔가 뚜껑을 닫는 시늉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뚜껑을 닫은 물체를 옆구리로 가져가는 시늉을 하며, 동시에 손으로 끈을 잡아 어깨에 메는 몸짓을 해보였다.


“도시락.”


연주는 그제야 백작이 형상화한 소지품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말했다.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주차장 쪽이었다. 하얀 선과 까만 차도로 구성된 주차장에는, 아파트 각 입구와 연결된 보도도 여러 방향으로 가늘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둥근 보도의 끄트머리에는 불그죽죽한 소화기가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마개를 딸 일이 없었지만, 화재가 발생할 시에는 바로 마개를 따서 물을 뿜도록 장치된 것이었다. 그 소화기 옆에는, 거의 흡사한 붉은색 바탕에 검고 굵직한 줄이 그어진 듯한 보온 도시락통이 하나 있었다. 그 검고 굵직한 줄은 벨트 형식으로 더 나와 있었다.


연주는 소화기 옆에서 어릿어릿하게 있었다. 마치 곤충들의 보호색 마냥, 색깔이 너무 겹쳐서 어둠 속에서는 도시락통을 식별하는 것이 다소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백작은 검을 뽑아 들었다. 달빛과 주변 가로등 불빛에 각각 반사된 검날의 빛이, 어느 정도 그녀에게는 등불이 되는 듯했다. 이내 그녀는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백작은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집이 어디야? 내가 같이 가줄게.”


연주는 잠시 멍해졌다. 새로 이사 온 집의 위치가, 순간적으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의 여러 목소리들만 귓가를 두서없이 스쳐갔다.


“그 정도도 각오 안 했어?”


“좋게 좋게 넘어가자. 지금 참으면 언젠가는··· ”


“다들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네가 아니면 돼.”


“그럼 어떡하란 말이니?”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연주는 이를 악물었다.


‘더 큰 일이 터지기 전에는, 다들 별 거 아닌 일로 생각하는 건가.’


지우자, 지우자, 지워버리자. 문득, 연주의 눈동자에 빛이 살짝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유일하게 연고가 있는 사촌인 우현의 집이 떠올랐다. 채연 중학교에 전학 수속을 하기 이전에도, 최근 3년 동안은 가족 모임 없이도 계속 드나들었기에 가장 익숙한 곳이기도 했다.


연주는 아직 멍한 기색이 남은 얼굴을 들어,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상하리만큼, 채연 중학교 건물이 있는 위치는 먹구름이 낀 것처럼 까만 화면으로만 보였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학교가 있는 곳이라는 것만 알면, 지금으로서는 충분할 듯했다. 연주는 놀이터에 설치된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계에 나타난 시각은 7시 5분 전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시간이 맞겠네.’


우현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채연 중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할당된 야간 자율학습 시간 중에서, 중간 휴식 시간은 7시 15분부터 30분까지였다. 연주는 말없이 횡단보도 건너편을 보며 신호를 기다렸다. 이윽고 신호등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그녀가 건너가려고 하자, 백작이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백작은 신호등 조절기 쪽을 다시 확인한 뒤에 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연주는 그가 바라보는 쪽을 확인하고 잠시 굳어졌다. 조금 전까지 일어났던 아슬아슬한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 발 뒤늦게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반장, 윤인진, 그 성가신 인간··· 평소에도 10년 인맥 자랑 오지게 하더니. 그렇게까지 내가 거슬렸나?’


그 순간, 인진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은, 그녀가 반장이라는 것과, 이 지역에 오래 산 유지의 딸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중간고사에서 처음으로 연주에게 성적 순위가 밀린 뒤, 인진은 연주에게 치근덕거렸었다. 연주로서는, 처음으로 패배했다고 느낀 상대가 어떻게든 승자의 비결을 알아내려고 회유하는 움직임이 확 들여다보였었다.


그러나, 연주에게는 인진의 의도가 뭐였든 간에 크게 상관없었다. 어떠한 교재와 지식을 얻는다 해도, 그것을 기억하고 쓰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연주는 길을 건너면서, 인진에 대한 환멸감으로 얼굴 표정을 싹 굳혔다. 백작은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서, 수시로 주변을 살폈다.



연주는 고등학교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남학생 반인 4반 교실로 향했다. 복도에 있는 감독 교사 책상은 비어있었다. 쉬는 시간이라 교무실로 돌아간 듯했다.


“야, 쟤 오랜만에 왔다.”


남학생 하나가, 2분단에 앉아있던 우현을 툭 치며 말했다. 우현은 고개를 들고 창가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연주를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집에 안 간 거야?”


우현은 한달음에 복도로 뛰쳐나와서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연주의 모습을 위아래로 꼼꼼히 살피며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가방 곳곳이 찢어지고, 옷매무새와 머리가 헝클어진 것이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을··· 잃어버렸어.”


연주는 바로 옆에서 반투명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백작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가, 얼른 우현을 다시 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그렇다 쳐도 어디서 어떻게 헤매면 이렇게 되냐?”


우현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그러는 그의 어조에는 분노도 살짝 어려 있었다.


“같이 가자.”


우현은 곧바로 연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교무실에 가서 조퇴를 신청했다. 두 사람은 그 길로 고등학교를 나와, 우현의 집으로 갔다.


“혹시 전화 온 거 없어요?”


우현은 그의 어머니에게 곧바로 물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리둥절했다가 대답했다.


“없는데?”


우현은 멈칫했다가 말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연주 여기서 자고 간다고, 삼촌한테 전화 좀 부탁해요.”


“알았다.”


우현은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는, 굳어 있던 표정을 다소 폈다. 그리고는 손님방으로 항상 비워두었던 방으로 연주를 안내했다. 연주는 방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수습한 뒤, 방에 돌아와서 교복을 벗으려 했다. 그러다가는, 침대 발치에서 반투명한 모습으로 묵묵히 서 있던 백작을 흘끔 보았다.


백작은 연주와 눈이 마주치자, 계속 하라는 듯 손을 내저어보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 볼 테니까 하던 거 계속 해.”


연주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찢어진 교복을 벗고는, 착착 개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민소매 티와 속바지만 입은 몸이 드러났다. 그녀는 바지 곳곳에 긴 털들이 붙은 것을 의아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다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기색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 매트리스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소리를 듣고, 백작은 비로소 연주 쪽으로 돌아섰다. 연주는 생각 끝에, 책가방 속에서 필통과 노트를 찾아서 꺼냈다. 그리고는 노트에 몇 자 적어서 백작에게 보여 주었다.


[왜 나를 도와주는 거죠? 당신은 누구였어요?]


백작은 한글로 적힌 글씨를 들여다보며, 어떻게든 그 의미를 알아내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꼬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사념을 통한 소리로 소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21세기 대한민국의 글자까지 해독할 수는 없었다. 연주는 백작의 반응을 보다가, 그의 인상착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썼던 말을 영어로 추가했다.


백작은 몸을 낮추고 영어로 적힌 글씨를 들여다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꺼냈다.


“대답은 하지 말고 잘 들어라. 난 네가 무슨 글을 써도, 읽을 수는 없다.”


연주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하고 더 얘기하고 싶다면, 일단 자라. 그렇다면 내가 네 꿈으로 반드시 찾아가겠다.”


작가의말

 * 이번 챕터는 총 네 편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3~4편은 다음에 가져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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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5. 6월의 열기 (2) 19.07.02 90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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