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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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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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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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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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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체포된 삼신 [完]

DUMMY

13. 체포된 삼신 [完]



‘한때는 인간의 법으로는 안 된다고 여겼던 순간이 있었지.’


핏빛으로만 보이는 시야 속에서, 문득 죽음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4년 전, 2009년의 그 일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혼구슬 자신은 그 때처럼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다만, 인진의 칼에 맞았던 연주 자신의 피가 아니라, 인진의 몸 속에서 나온 피로 물들어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저 더러운 년을 이제야 내 손으로 처리했지만, 그 때 그랬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한때는 자신의 사촌 오빠였으며, 이제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을 우현을 차지하려던 인진은 자신의 죄를 끝까지 덮기 위해 연주를 회유하려 했었다. 연주로서는 우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손을 떼었기에, 인진의 말 같은 것은 애초에 들을 가치도 없었다.


‘결혼을 보류한 것만으로도 오빠는 진실을 확신했고, 선택은 이미 명확했었다.’


그렇기에, 인진을 더는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던 인진은 연주를 아예 없애고 흔적 자체를 지워버리려고 했던 듯했다. 차에 묶이고 한강대교까지 끌려가는 동안은, 10여년 전 패거리들에게 잡혀서 놀이터로 끌려가던 악몽을 고스란히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던 것은, 차창 너머로 따라오던 백작의 영혼을 보았을 때부터였다. 하늘과의 약속까지 저버리면서 연주의 곁을 수십 년 간 지켰던 백작이, 인간과는 직접 싸울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따라왔었다. 결국 연주는 안간힘을 다해 묶인 두 손으로 창문을 깨고, 문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었다.


도로에 나동그라지면서 결박이 느슨해지자, 필사적으로 끌러냈었다. 적어도, 인진이 신문지에 싼 칼을 들고 달려들기 전까지는, 이대로 경찰서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도 위에서 뒤엉키고 말았었다. 그리고, 연주는 인진의 힘에 밀려 다리 난간까지 몰아붙여지고 말았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느닷없이 팔 위에 팔이 겹쳐졌었다. 그것도, 잔뜩 낡아가는 금속 갑주로 감싼 팔목이. 연주로서는 그 팔목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두 팔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앞에서 그녀를 잡고 난도질하던 상대의 목으로 향했었다.


‘죽일까?’


연주와 팔목의 주인은 아주 짧은 순간 혼연일체가 되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 망할 년!’


연주의 내면에서 치솟는 분노와, 팔목의 주인이 토로하는 분노가 하나가 되었었다. 팔목의 주인은 바로 백작이었다. 그들의 힘이 합쳐진 연주의 두 손은 순식간에 인진의 목을 힘껏 눌렀었다. 그리고 우악스러운 팔뚝의 힘으로 어깨를 각각 내리 눌러 상반신을 다리 난간에 걸치고 거의 뒤로 꺾을 지경까지 이르렀었다.


백작이 멈칫하는 것이, 연주에게도 촉각으로 느껴졌었다. 그리고, 백작이 귀 기울이는 소리가 그녀에게도 들려왔었다. 사방에서 무언가가 또깍거리며 스위치가 꺼지는 소리들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들을 수 없을 만큼, 각종 카메라와 신호등들은 먼 거리 혹은 높은 곳에 있었다. 아마도 인진이 무기를 꺼내들기 전, 억지스러운 사주를 했던 듯했다.


‘그만! 그만해요!’


연주는 뼈가 겹치는 듯한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인진의 목을 놓으려 했었다. 자신만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상관없었다. 그러나, 백작이 함께 힘을 들여 인진의 목숨이 끊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듯했다. 인간인 자신이 델핀느였을 때처럼 사람을 죽이고 기나긴 시간을 지옥에서 기다리는 것과, 영혼인 백작이 죄를 짓는 것은 그 무게부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를 지키고 싶다! 방해하지 마라!’


당시 백작은 사념으로 절규했었다. 그리고는 팔을 연주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손으로는 인진을 더욱 짓누르며 몰아붙이려 했었다. 연주는 더욱 필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었다. 백작은 계속 저항했지만, 본체인 연주의 물리적인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와 영혼을 오래도록 섞어왔기에 잠시나마 빙의할 수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이기에 몸에 맞는 영혼이 아니기도 했었다.


다시 혼자가 된 연주는, 인진을 힘껏 밀치고 정신없이 달렸었다. 그러나, 차를 몰고 추격해 오는 인진을 당해낼 도리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감시망이 꺼진 곳으로 몰이당한 끝에, 칼에 8곳을 찔려 살해당했었다. 피로 물든 영혼이 되어 육체 밖으로 나온 뒤에도, 죽음은 끝나지 않았었다.


충격받고 멍하니 있던 백작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가와 연주의 혼을 감싸 안으려 했었다. 그러나, 백작의 어깨 너머로 보였던 광경은 더욱 끔찍했었다. 바닥에 눕혀놓은 연주의 육체 위로 여러 번 달리는 인진의 차를 보아야만 했었다.


‘저 미친년!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저런 짓을 하는 거냐? 게다가, 제 부모 빽으로 국가 교통 감시망까지 차단하고?’


그 때, 귀왕대 두 명이 모습을 드러내며 백작의 양쪽 팔을 붙잡았었다. 백작 또한 붙잡힌 채로 절규했었다.


“젠!”


“백작!”


갑자기 떨어져 나온 연주는, 귀왕대를 붙잡고 외쳤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네? 방금 죽어버린 건 나란 말입니다! 나부터 데려가요!”


“인간 데려가는 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놔라!”


“어디로 데려가나요? 그것만이라도!”


“이승 질서를 해치려 했던 죄를 엄히 물을 것이다! 넌 담당 차사가 와서 인도할 게니, 여서 얌전히 기다려라!”


그러자 백작이 외쳤었다.


“그런 거라면 진즉에 잡아가지 그랬습니까? 왜 이제야?”


“좀전에 살아있는 인간한테 해를 끼치려 들었던 죄, 엄히 물을 것이다!”


그 순간, 백작은 놀란 눈으로 연주를 바라보았었다. 그제야 연주가 한강대교에서 백작을 떨쳐내려 했던 이유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귀왕대들을 뿌리치고 연주를 으스러지도록 세게 끌어안았다. 연주는 그 포옹을 받으며, 온몸으로 그의 몸 안에서 맴도는 말들을 받아들였었다.


‘차마 기다려달라고만 할 수 없는··· 당신의 마음. 다 알아요. 그래도,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이윽고 귀왕대가 백작을 데리고 저승으로 모습을 감추었었다. 그리고, 연주는 자신을 데리러 왔던 담당 차사의 손에 이끌려 저승으로 올라갔었다. 한동안은 정화 과정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담당 삼신으로 설화를 만나게 되면서, 몇 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어째서 할 말을 못하고 살아야 했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중학교 2학년 때 그 일 이후로, 연주 자신은 늘 조용히 살 수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에 교사의 질문에 독보적인 답변을 했던 일이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려지자, 주변에서 자중하라는 압박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혼구슬로서의 몸이 탁 풀리며, 지난 날들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진정한 죽음인가?’


그것은 네 번의 인생을 각각 마치면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영화처럼 펼쳐지는 과거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재주로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어요.”


집시 제노비아였던 시절, 자신의 재주가 평화의 시대였다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라면 적어도 표면적인 전투는 없는 시대였다. 누구든, 범죄만 아니라면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무대에 있어도 되겠지요?”


그녀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가, 졸업 후에는 극단 [나선계단]에 제 5기 단원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혼구슬은 극단 [나선계단]에 들어갔던 시절을 떠올리다가, 그곳에서 보았던 오랜 기억 한 자락을 처음으로 되새겨보았다. 그것은 설화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때는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미련이 전혀 남지 않았으니까.’


2006년부터 있었던 극단 [나선계단]은 단원 15명이 지하소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자유 극단이었다. 그곳에서는 30대 초반의 배상석이 연출을 맡았었고, 혼구슬 ‘연주’ 와 동갑이었던 이서현이 각본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녀보다 2년 연상의 창단 단원이자 빼어난 미남이었던 배우 장세광이 있었다.


‘작가님을 보고는 정말 놀랐었지.’


서현에게는 1780년대에 몸을 빌렸던 클라우디아의 영혼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도록 그녀가 쓴 각본은 연주의 사고 방식과 일치했었다. 서현은 클라우디아의 본체가 그랬던 것처럼, 우아하고도 차가운 인상을 주는 미인이었었다. 모두에게나 공평하게 대했었지만, 연출이었던 상석과는 매우 건조한 사이였다.


오히려 서현은 연출보다도 배우들의 연습 현장을 더 자주 찾았었다. 연주는 그녀가 항상 있어주는 것이 싫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이내 알아차리고 내심 놀랐었다. 바로, 연출인 상석과 일 이외의 시간을 전혀 갖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기 위해서였다. 서현의 눈길은, 리허설 무대에서 열연하는 세광에게 항상 머물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단 근처 주차장에서 서현과 세광이 함께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었다. 서현은 세광을 그윽한 눈길로 올려다보다가, 그의 목 뒤로 두 손을 가져가 깍지를 끼었다. 그러는 순간, 서현의 얼굴에서는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기쁨이 떠올랐다. 세광의 옆얼굴에서도 은은한 미소가 번졌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세광의 옆얼굴에서 겹쳐진 낯선 남자의 모습이었다. 목 바로 아래까지 비친 영혼의 모습은, 옛날 로마 교회의 표식이 달린 갑주가 언뜻 보였었다. 아마도, 클라우디아의 본체가 생전에 진심으로 사랑했던 교황군 군인인 듯했다.


“도와주고 싶으니까요.”


연주는 상석에게서 붉은 머리 남자의 영혼을 이내 발견하고, 그 날 밤에 백작에게 그런 심경을 털어놓았었다. 그러자, 백작은 다음 날의 극단 일정이 끝난 뒤 녹음실에서 말했었다.


“당신이 나서지 않아도 저 둘은 이미 서로를 원하는 거 같은데?”


“서로 바라기만 한다고 해서, 다 되던가요?”


당시, 연주는 자신이 델핀느였던 시절의 일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었다.


“우리도 이렇게 다시 만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도 잘 알잖아요?”


백작은 착잡한 기색을 띠었다가 묵묵히 긍정했었다. 그 또한 앙투안이었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격동기가 아니었다면, 학문을 함께 하는 동무이나 연인으로 천천히 발전할 수도 있었으리라. 연주는 그 점을 언급하며 몇 마디 주고받은 끝에 말했었다.


“그러니 여기선 저 사람들 서로 딱 들어맞는 타이밍, 그걸 도와주는 걸로도 충분해요.”


“왜 그래야만 하는데? 그것도 당신이?”


“적어도, 저 여자분한테는··· 그저 미안하니까요.”


클라우디아의 몸을 빌려 백작이 갈 곳을 알아냈었지만, 시신만이라도 보존했던 본체의 기존 죽음 대신, 화형당하는 두 번째 최후를 선사했던 일은 아직도 연주에게 짐으로 남아있었다. 21세기에서 이서현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대방으로서는 알 길이 없는 일이었겠지만, 연주에게는 그렇지 않았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제가 아는 일입니다. 이번 생에서도 끌리는 건 두 분의 영혼일 테니까요. 꼭··· 속죄하고 보답하고 싶습니다.’


연주는 그 날로 백작과 의논을 마친 뒤, 서현과 세광, 그리고 상석의 동향을 유심히 살폈었다. 그 결과, 상석이 억지스러운 일정으로 서현과 세광을 떼어놓으려고 하는 방해 공작을 생각보다 많이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서현의 작법을 단번에 이해했었기에, 매번 서현을 대신하여 상석 앞에서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었다.


‘더 이상은 그 미친놈과 엮이게 두지 않겠습니다. 나를 한 번 죽였던 자를 끊어내는 것이니 영명하신 당신께선 짐작되어도 모른 척 해주십시오. 아니, 정말로 모르셨으면 좋겠습니다.’


반 년이 지나자, 원하는 성과를 어느 정도 얻어낼 수 있었다. 서현과 세광의 사이는 은밀하게 쌓아온 끝에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고, 극단에서 공식 커플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들 두 사람은 결혼을 발표하고 극단을 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까지 지켜본 뒤, 마침내 연주는 극단에 말할 수 있었다.


“어학 연수 때문에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상석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을 때쯤, 연주는 그렇게 조용히 극단 [나선계단]을 빠져 나왔었다. 정말 어학 연수라도 간 것처럼, 극단 [나선계단]에서 알게 된 입단 동기들과는 한 달 동안 연락을 완전히 끊었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극단 [나선계단] 사람들이 알고 있던 연주 자신의 SNS 계정에 주기적으로 영어로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몇 가지 스토리의 흐름을 짜놓고, 1년 동안의 분량으로 주기적 업데이트 예약을 해두면 끝이었다.


‘서현 씨하고 세광 씨는 애초에 이쪽 사정에 관심 없는 거 알아. 무엇보다도 배상석 그 새끼 하나만 믿게 하면 충분하니까.’


그 이후에 상석으로 추정되는 번호가 몇 번 전화 걸려오기는 했지만, 한두 번 신호가 오다가 끊어지긴 했었다.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정말 해외라고 믿고 직접 통화를 망설이다가 유야무야 지나가버린 듯 했었다. 연주는 그 동안, 인터넷으로 극단의 동향을 계속 탐색했었다.


[2008년 6월 30일 – 8기 단원 추가 모집]


극단 [나선계단]에서 추가 모집 공고글이 올라왔었다. 연주는 극단 프로필을 살피고, 직접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서 준비 중인 공연 내용을 살펴보았었다. 단장은 그대로였지만, 연출과 작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당시 극단 [나선계단]에서는 <메모리즈>라는 스릴러를 준비하며 단원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인데?’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던 시절, 각종 과제로 제시받은 대본은 상당했었다. 그 중에는 현역 극작가인 설한비의 작품 <메모리즈>도 있었다.


‘어디 지원 대상 명단에 오르긴 했는데, 리딩만 잠시 있었지 실제 상연된 적은 없었는데. 이걸 무대에서 한다고?’


연주가 보기에도, 내용 구성에는 큰 문제가 없던 것으로 기억했었다. 오히려 명단에 함께 오른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구성 자체는 <메모리즈>가 더욱 탄탄했던 편이었다. 당시 연주는 대학에서 연기 과제로 <메모리즈> 대본을 받아서, 범인인 아라를 추적하는 수련의 신정민 역을 분석하고 연기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의학을 소재로 하면, 일단 소품과 무대 구성부터 단가가 엄청나긴 하지.’


대학에서라면 캐릭터와 스토리를 취사선택하여 단기성 과제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었지만, 무대에서 실제 공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건 정말 들어가서 해보고 싶지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메모리즈>를 준비하면서 무대 감독이 되어 2009년에 공연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그 때 그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며 평생 함께 살고 싶었는데. 다 끝났어.’



설화는 목걸이에 걸린 탄생구슬에 핏빛 오라가 감도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 그것은, 자신이 점지한 인간혼들 중 하나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설화는 구슬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순간이동을 시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우현의 집이었다.


‘여기는!’


설화 자신이 맡았던 30번째 혼구슬 ‘강연주’에게 다섯 번째 인생을 정해주었던 곳이었다. 모체가 될 인진과 전생에서 쌓은 원한 때문에 환생조차 거부했던 혼구슬의 말들은, 아직도 설화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넌 어쩐 일인지 그대로 보내달라고 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


설화는 불안한 눈빛을 띠고 주변을 살폈다. 그 때, 목에 걸린 환생구슬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르다가 확 꺼져들었다. 그 달아오르는 순간에 반응하는 섬광이, 안방 쪽에서 미세하게 번쩍 했다. 안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방에서는 피로 물든 혼구슬이 침대 높이만큼 붕 뜬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모체였을 인진이 몸을 뒤튼 채 의식을 잃고 엎어져 있었다. 허리 아래로 들어간 한 손은 배를 움켜쥔 듯했다. 그러나 그런 몸부림도 소용이 없었던 듯, 파자마로 덮인 두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은 이미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다.


혼구슬은 그 피바다 위에 붕 떠 있다가 천천히 빙그르르 돌았다. 마치, 산 사람이 기척을 느끼고 그 쪽을 돌아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삼신님···?”


혼구슬에서 목이 막힌 듯한 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혼구슬 위로 반투명한 혼의 형체가 가끔씩 겹쳐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 형체는, 제노비아의 얼굴과 흡사한 20대 후반 여성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생전의 강연주의 몸에서 빠져나왔던 유체의 모습 그대로인 듯했다.


“얘야!”


설화는 혼구슬 앞으로 다가왔다가 경악했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생령의 상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혼구슬은 스스로의 때가 아니었지만, 억지로 힘을 써서 모체 안을 스스로 빠져나온 듯했다.


“너, 이렇게 되면··· ”


설화는 그 다음 말을 차마 더 잇지 못하고 삼켜버렸다. 어릴 때 죽은 인간혼들은, 인도하는 차사들 또한 별도로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몸을 벗어난 것은 죽음조차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 그러한 혼은 누구도 인도할 수 없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혼구슬은 조금씩 꺼져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설화 앞에서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힘을 주는 티가 역력했다.


“이제 저 여잔··· 그 어떤 삼신님들이 와도··· ”


혼구슬은 반쯤 빙그르르 옆으로 돌았다가, 아래로 회전했다. 반허공에 떠 있는 그대로 구슬 표면의 핏빛 아지랑이가 움직이는 것이 그 움직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저 여자는.”


아마도, 설화에게서 몸을 돌린 뒤, 바닥에 쓰러진 인진을 향해 말을 꺼내는 듯했다.


“두 번 다시 누구도 품을 수 없을 겁니다.”


혼구슬 표면에서 약간 위쪽에, 하얀 반달과도 같은 빛선이 아른거렸다. 어찌 보면 칼날 같기도 했다. 설화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막기 위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 몸의 형체가 분명해지고, 저 끔찍한 자궁을 물 타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그리고 이렇게 나오면서 죄다··· 긁어버렸으니까요.”


설화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런 혼구슬이 말하는 바는 너무도 분명했다. 아비와 어미가 교합하여 제육화된 수정란이 안착하려면, 모태가 안정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혼구슬은 아예 수정조차 될 수 없도록 온갖 난장판을 벌여놓은 듯했다.


“그 여자가 지은 죄는, 어차피 - ”


“인간이 정해놓은 법은 그럴 겁니다. 허나, 그년이라면!”


혼구슬은 다시 멈춰 있는 그 자리에서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설화 쪽으로 다시 돌아보는 듯했다. 분노와 동시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려는 듯, 인진을 지칭하며 버럭 소리치기도 했다. 그리고는 섬뜩한 금속성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돈으로 세상 입을 얼마간 막고도 남습니다. 최소한··· 그년이 살아있는 동안만은요.”


“허나 이건 네가 - ”


네가 영원히 죽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설화는 그 말을 더는 잇지 못하고 입속으로 삼켜버렸다.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불행한 영혼이 바로, 지금의 혼구슬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몸을 이탈하여 영원한 잠에 빠지려 하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인도될 수 없어 구천을 떠도는 생령이 되어가면서.


“기억하십니까? 그년이 가장 최고의 순간이라 믿을 때를 노리겠다고 한 것을요.”


“알다마다.”


설화는 먹먹한 어조로 응수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창밖을 살펴보았다. 동이 트고 시간이 지나, 해가 점점 중천으로 솟고 있는 듯했다.


“여긴 한동안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


혼구슬 위로, 연주의 반투명한 유체가 잠시 떠올라서 일렁였다. 피로 얼룩진 연주의 유체는 설화의 시선을 따라 창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승 인간들은 이 시간쯤이면 거의 일하러 나가고 없습니다. 집에 남은 사람 일 따윈 대부분 관심 둘 여력이 없거든요. 그러니··· 무슨 말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는 연주의 유체에서는, 눈 부분에 이슬이 잠시 반짝였다. 아버지로 다시 재회할 수도 있었을 우현을, 잠깐이나마 떠올렸던 듯했다. 한순간 부드러워진 눈매가 더욱 그렇게 보였다. 연주의 유체는 상념에 잠겼다가 설화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러다가는 무언가에 홀린 듯 굳어졌다.


“내가 보이느냐?”


설화는 금방이라도 혼구슬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가물가물한 연주의 유체를 보며 물었다. 연주의 유체는 한참 설화의 얼굴을 빤히 주시하다가, 어딘지 모르게 비애감을 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에 놀랐던 감정, 그리고 한순간의 반가움, 그 다음에는 애써 모른 척해야겠다는 듯이 다시 삭이는 복잡한 상념이 실시간으로 교차되며 스치다가 스러졌다.


“목소리만 듣다가 이렇게 직접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군요. 물론··· 이번 한 번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혼의 일부가 구슬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했다. 긴 세월 동안 묵었던 혼들이 차츰 흩어지며 소멸될 징조였다.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느냐?”


“물론입니다. 전 언제나··· 모든 걸 알고, 각오하고 선택했습니다.”


비장한 어조였지만, 서서히 힘이 빠지려 하고 있었다. 설화는 연주의 유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만져졌다. 유체의 두 손을 각각 잡았다.


“지금 저 때문에··· 우시는 겁니까?”


연주의 유체가 입을 열었다. 설화는 그제야 자신의 두 볼을 타고 뜨거운 것이 각각 한 줄기씩 흘러내리는 감촉을 실감했다.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낼까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연주의 유체와 맞잡은 한 손을 놓아야 했다. 설화는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굳이 내가 아닌 누구라 해도··· 제가 맡은 아이가 이렇게 되면 슬프지 않겠느냐?”


“삼신님의 마음이 제게 짐이 될까 그러시는 겁니까?”


연주의 유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그러는 유체의 눈시울에도 이슬이 살짝 맺혀 있었다.


“그것만큼은 절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있었던 당신이, 이번에도 제가 아플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찾아주셨는데요. 그러니, 제가 이대로 사라지거나 멈추게 된다 해도, 저의··· 백작님과, 당신은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설화는 문득 연주의 유체가 하는 말에서 무엇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연주의 유체가 깃든 혼구슬에게 전생과 이어진 연이 거의 없다고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혼구슬을 투시했을 당시에도, 인간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윤회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당신께 무거운 짐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스러웠습니다.”


“아니다. 난 내 일을 그대로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여기십니까?”


그렇게 말하던 순간, 연주의 유체가 더욱 흐려졌다. 유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혼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속이 피로 물든 혼구슬에서 하얀 아지랑이 네 줄기가 정신없이 맴돌다가 서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엉켰다. 아무렇게나 엉킨 것이 아니라, 저마다 매듭을 지으며 뭉친 듯했다. 혼이 흩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것만 같았다.


“잠깐이나마 당신을 직접 보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만··· 계십니까?”


“그래, 여기 있다.”


설화는 그제야 뺨에 남아있던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혼구슬은 그제야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럼,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하겠습니다. 이승에서 그년은 돈으로 뭐든 피해갈 수 있겠지만.”


혼구슬 속에서 맴돌던 아지랑이가 빙그르르 돌았다. 정확히는 혼구슬이 반허공에 뜬 채로 세로 회전을 한 것이었다.


“그년이 정말 원한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늘 갖고 있고, 당연히 있는 거라 생각하는 거였으니까요. 오히려, 죄 없는 척하고 잘난 남편과 살면서 자기만이 최고의 인생이라 대접받는 삶이었던 겁니다.”


“그런 건 또 어찌 알았느냐?”


“그년 입으로 말하는 게 다 들렸으니까요.”


혼구슬은, 자신이 인진의 뱃속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년은 그 때 그··· 패거리들을 정기적으로 감시하며 표면상으로는 중학교 동문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홍윤정을 자기 대역으로 선택한 것도, 자기 이름을 댄 보복이었던 겁니다.”


“어찌 그런!”


“어쨌든, 그년은 날 자기가 처리했다는 얘기까지 떠벌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습니다만. 공선민 같이 최측근으로 있었던 년들하고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 년들하고는 결혼이 깨질 뻔했다가 했다는 근황 정도는 말하고 다녔습니다.”


“허어.”


“그 과정에서 제가 없어졌으니 시원하다는 말을 전화로 할 때는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습니다.”


설화는 묵묵히 듣다가, 피로 물든 혼구슬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혼구슬 표면에 서리가 끼듯 물기가 올랐다가 이내 맑아졌다. 혼구슬은 그렇게 설화의 손길을 받다가 말했다.


“패거리들은 누가 손을 썼겠거니 짐작은 했어도 증거가 없으니 말하지도 않았을 거고, 굳이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잠잠했더군요. 제가 이렇게 하기 전까지도 말입니다.”


“그럼 넌 왜 이런 짓을 했던 게냐?”


“그년한테만큼은,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진짜 벌을 내리고 싶었습니다. 저 하나만 해를 입은 게 아니라, 백작님까지도··· 아무 기약 없는··· 그런 생이별을 하게 했으니까요.”


“그게 이거였다는 게냐?”


“물론입니다. 그년은, 자기가 원하는 행복을 유지하려면, 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그 나라는, 어린애가 있으면, 혹은 당사자가 죽었으면 그 죄질이 어떻든 간에 모든 게 유야무야 되는 일이 꽤 많은 곳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네 몸을 그 여자한테 정해진 대로 줬다가··· 다시 뺏겠다고 생각했느냐?”


설화는 그제야 혼구슬의 진짜 의도를 알아차렸다. 스스로 모태를 나와서 어미인 인진에게 상실감을 안겨주는 한편, 두 번 다시는 그녀가 원하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분을 잃었으니, 더 잃을 것도 없고··· 남은 것은 이 몸 하나뿐이었으니까요.”


“너무 무모하고 극단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느냐?”


“그리고, 같은 여자의 몸으로 여자에게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시렵니까?”


혼구슬은 곧바로 반문했다. 점점 힘이 빠져가는 것을 쥐어짜는 느낌이 희미하게 있었지만, 어조 자체는 매우 냉철하고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화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접하고 굳어졌다. 인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가치조차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 사람들은 뭔가 일이 벌어지면, 피해를 입은 자보다 피해를 입힌 것을 더 감싸더군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말입니다. 옳고 그른 것이 너무 명백하다 싶어서 그런 구실조차 붙일 게 없으면, 같은 뭐뭐로서 라는 말을 아주 상투적으로 씁디다.”


“얘야, 난 그럴 생각 절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사람이더냐? 어따 그런 기준을 갖다대는 게냐?”


“그래도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의 그런 속성은 아시겠지요?”


“에라이! 이런 때에도 너는.”


설화는 혼구슬 윗부분을 한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쓱 훔쳤다. 혼구슬이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좋은 부모에게 보내주기 전까지 언제든 시덥잖은 농담을 여유로이 받아주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설화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손 떼십시오. 안 그래도 앞에 계신 줄 다 압니다.”


혼구슬이 짐짓 톡 쏘는 투로 말했다. 설화는 손을 떼며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점점 붉게 녹아내리는 혼구슬 표면의 물이 찐득하게 묻어나 있었다.


“그리고 삼신님 손에 쓸데없는 거 묻으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설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는 삼신복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룩진 손을 닦아냈다.


“사실 그년이 가장 원하는 게 다른 거였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쓸까도 생각했습니다. 돈이나 최고의 권력을 지금처럼 유지하길 바란 거라면, 이런 식으로 몸을 빼지 않고 그대로 태어나서 보복을 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무슨 짓을··· 더 하려 했던 게냐?”


“아비를 딸바보로 만들면서, 어미와 사이 벌어지게 하는 건 인간 사회에서 의외로 쉬운 일입니다. 더구나 부부 사이에 의혹이 한 점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입니다. 근데 그 방법은 알아도 솔직히 안 썼을 겁니다.”


“어째서?”


“제 아비가 될 뻔한 사람이, 바로 절 유일하게 생각해 준 사촌 오빠였으니까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주변 사람들을 거짓말에 휘말리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속이거나, 괜한 싸움에 처음부터 말려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혼구슬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혼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꼭 붙들면서, 한편으로는 호흡을 고르는 듯했다. 피로 물든 표면은 자꾸만 김이 솟으며 녹아내리고, 구슬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부디 저에게 ‘영원한 잠’을 주십시오. 백작님,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이제 모든 인연은, 그리고 이 질긴 악연도 완전히 끝내고 싶습니다. 더는··· 그 누구도 만나고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넌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화, 소멸, 그런 것도 환생관에서는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설화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매번 처음 살아가는 것처럼 여러 번의 환생을 반복했고, 이승과 저승을 오간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혼구슬이었다. 새로운 기억이 더해지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만 같았다.


“그년을 죽이려면 죽일 기회도··· 어쩌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제가 정말 그랬다면 제 죄를 더 크게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조차 살인이라 하는 나라에··· 또 다시 태어나라 하는 것은 저주 그 자체였습니다.”


“정당방위, 정상참작이 이승에도 있지는 않느냐?”


“글쎄요. 제가 이대로 이승에 났더라면··· 아빠가 될 뻔한 그 사람은 제 편이 되어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바꿔놓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빠이자, 아빠가 될 뻔했을 그 사람한테는··· 그런 수고를 더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랬구나.”


설화는 받침대를 꺼냈다. 부스럭거리는 기척에 혼구슬의 빛이 살짝 맑아졌다. 핏빛 속에서 죽어가던 와중에, 잠시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설화는 그런 혼구슬을 소중히 다루겠다는 의지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러자 혼구슬은 힘을 빼고 설화의 손 안에서 탁 풀어졌다.


“자거라.”


설화는 빈 조가비 하나에 혼구슬을 넣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삼키며 속삭였다.


“잠시만··· 편히 자거라.”


설화는 눈을 질끈 감으며, 혼구슬 위에 손을 올렸다. 속눈썹 끝에 맺힌 눈물이 일렁이다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녀의 손에서는 붉은 오라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저승에서 혼구슬의 힘을 봉인할 때 썼던 붉은 끈과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것도 아닌 혼이 이대로 사멸하지 않도록, 잠시 동안 봉인해 두는 것이었다.


‘누군가 반드시··· 널 구할 수 있도록.’


혼구슬의 표면에 무지갯빛이 잠시 번지다가, 하얗게 되었다. 그리고는 속이 텅 빈 것처럼 투명하게 되었다. 표면을 감돌던 유백색 광택도 완전히 사그라졌다. 마치, 이승에서 인간들이 점칠 때 쓰는 수정이나 유리구슬처럼 평범한 구슬이 된 듯했다. 그 안에서 사념체가 하얗게 별똥별 꼬리처럼 빙그르르 도는 듯하다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문득, 주변에 결계가 쳐졌다. 그것은 저승에서 내려온 이들이 특별 행동을 개시했다는 신호였다. 설화는 깜짝 놀라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석 삼신과 환생관 관리들, 그리고 그 관할로 소속된 귀왕대 수십 명이 그녀 주변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봉인의 기운이 심상치 않아서 왔다니! 이 무슨!”


“수석 삼신님!”


“환생관으로 빨리 데려가라!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중급 삼신 하나가 봉인된 혼구슬을 거두어 수습하려 했다. 한편, 귀왕대 두 명은 설화에게 달려들어 붙잡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객사한 자들을 담당하는 저승 차사들이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하나가 갑자기 잘못될 기미를 보여서 왔는데 어찌 - ”


설화는 차사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그 차사는, 혼구슬의 기억 속에서도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혼구슬의 첫 번째 인생이었던 제노비아의 혼을 처음 인도했던 차사였다.


‘이것도 운명인가?’


차사의 시선은 다른 중급 삼신이 데리고 있는 혼구슬 쪽으로 향했다. 중급 삼신은 당황해서 한 발 물러섰다.


“이게 무슨 짓이오?”


“삼신이야말로 그 아이를 왜 빼돌리려는 겁니까?”


“우리 소관입니다!”


“아니요. 이미 유산된 아이로 명부에 올라 데리러 온 것을 어찌 막으려 드십니까?”


차사가 따졌다. 설화는 그러는 차사를 향해 말했다.


“지금도 명부에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우리가 어찌 왔겠습니까?”


차사는 다소 당황한 어조로 반문했다가, 명부를 꺼내들어 반박하려 했다. 그러다가 명부를 확인하고는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차사의 시선이 갔던 자리에는 공란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사는 이내 냉정을 되찾고 설화를 추궁했다.


“지금, 환생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당신은 저 아이가 명부에서 사라진 걸 어찌 알았습니까?”


“설화! 너! 도대체 무슨 짓을!”


수석 삼신이 외쳤다. 설화는 오히려 담담하게 응수했다.


“제가 저 아이를 맡았던 삼신입니다. 그러니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자세한 건 저승에서 고하겠습니다.”



“그래, 막판에 그런 술수를 썼으니, 명부에서 다시 사라질 수밖에 없었겠군.”


대별왕은 싸늘한 어조로 뇌까렸다. 염라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설화를 쏘아보았다. 혼구슬이 처음에는 인진의 몸에서 유산된 아이로 흘러나오면서 명부에 올랐다가, 설화의 손에서 삼신의 권한으로 봉인되면서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닌 생령이 되었기에, 명부에서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일이 나한테까지 넘어왔던 거고.”


대별왕은 착잡한 어조로 내뱉었다. 실상, 혼구슬의 어중간한 상태를 두고 누구의 소관인지도 논쟁이 상당했었다. 이미 죽은 자로서 기록에 남은 전력 때문에 각각의 지옥에서 죄를 가려 환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환생 자체가 비활성 상태로 봉인되었기에 환생관에 권한을 인도하고 담당 삼신인 설화의 처분도 그쪽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서로 팽팽했었다.


그러나, 설화의 선택이 저승 전체의 질서를 흔들어놓았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 보아도 명백했다. 결국, 환생관과 저승 시왕들 어느 한쪽에 일임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저승 최고의 통치자인 대별왕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었다.


“송구합니다.”


설화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 아이를 그대로 죽은 자로 불러들여 죄를 가리셨다면, 이번 생애도 분명 청정하게 나왔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오히려, 처음 그 아일 해했던 자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것을 모두가 더욱 가여운 일로 여기었겠지요.”


“그런데, 왜 그랬느냐?”


“모두가 그 아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지금으로선··· 새로운 삶을 줄지 논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형벌일 듯 했습니다.”


“뭐라!”


“폐하, 이승에서는 이런 말도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승에 무슨 말이 있다는 게냐?”


“이승에서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말···이 지금도 심심찮게 쓰입니다.”


설화는 그동안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았던 시대와, 삼신이 된 후 보았던 혼구슬의 이야기를 각각 떠올리며 말했다.


“그 아이한테는, 군사의 일을 알고 예측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설화는 처음 연주가 폭력에 휘말렸던 계기를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이승에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그 아이는 전투에 참전했고 전쟁의 이치를 스스로 익혔지요. 그 기억은 몇백 년이 지나 잠들어 있다가, 꼭 그 때와 같은 나이가 되면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전부터 총명하여 새로 가르침을 받았어도 금방 익혔겠지만, 기억해 내는 것도 시간 문제였던 것입니다.”


대별왕은 설화의 마지막 말에 멈칫했다. 염라는 그런 대별왕의 기색을 흘끔 보았다가, 착잡한 기색을 띠고 설화를 보며 다음 말을 묵묵히 기다렸다. 그 또한, 혼구슬의 첫 번째 인생이었던 어린 제노비아의 영혼을 처음으로 직접 심판했던 기억을 되새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네 번째로 살았던··· 그 나라에선 그 나이에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아였다면 신동이라 하는 이도 간혹 있었겠지만, 여아였기에 더 일찍 질시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 또한, 그 나라에 녹아들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째서인가?”


“폐하.”


설화는 매무새를 다시 한 번 가다듬고 정자세로 대별왕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대별왕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알았기에,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고 드린 말씀을 기억하시나이까?”


대별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화는 혼구슬의 세 번째 인생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아이는 흠모하는 이의 나라에서, 그 사내를 처음으로 대등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 아이가 지닌 정의감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며 치열하게 싸웠던 것도 한몫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내하고는, 함께 이승 세상에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대별왕은 염라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마도 자세한 것은 업경을 사용할 수 있는 염라가 알 것이라 여긴 듯했다. 염라는 잠시 생각했다가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조아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다시 들어 설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당하다 여긴 것에 끝까지 맞서고, 불의한 자는 스스로 벌하기도 했던 기억이 온몸에 새겨져 있을진대··· 그 다음에 네 번째로 살았던 곳에서는, 그랬던 그 아이가 전혀 필요치 않았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어째서인가?”


“그 아이는 자기의 모든 걸 알기 이전까지, 그래도 10년 동안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처음 시작하듯 살았을 것이옵니다. 허나, 알고 난 이후에, 새로이 기뻐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였사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한때 자기의 나라고, 사모하는 이의 나라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역사를 알았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이 어쨌다는 건가?”


“자유, 평등, 박애. 이 세 가지 주의를 내세우며 많은 이들과 맞서 싸웠던 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 아이는 역사 기록으로 확인하고, 주변 소식을 들으며 알 수 있었다 합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아는 기쁨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흠.”


“허나, 네 번째로 그 아이가 살아갔던 시대는 전혀 달랐습니다.”


“무엇이 그리 달라보였는가?”


설화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혼구슬이 ‘강연주’ 로서 살았던 시대를 각각 떠올려보았다. 새삼 두 시대 사이에서 흐른 세월이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아이가 했듯이, 많은 이들이 의롭게 뭉쳐 불의와 적에 맞서 싸우려 하는 것은, 언뜻 보기에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다 마찬가지라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느냐?”


“의로운 이들은 물론 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허나, 그 아이의 예전 인생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타고난 재능을 치하하고 의무를 주긴 하여도, 그에 맞는 힘과 지지를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주지 않는 나라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별왕의 눈동자가 다소 흔들렸다. 설화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은 단 한 번도 자국의 힘만으로 이룬 적이 거의 없는 나라였던 겁니다.”


이어서, 설화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통일 신라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두 나라 – 백제, 고구려 –를 복속시켰었는지, 혼구슬이 살았던 시대의 대한민국이 어떤 경로로 해방을 맞이하여 지금의 민주 국가가 되었는지 간단히 말했다.


“··· 그러하오니, 수백 년 동안 혼자 모든 걸 헤쳐 나가면서, 개인이 있어 다수가 있고, 다수가 있어 국가가 된다고 믿었을 그 아이 눈에, 옆에 있다한들 자기 하나도 지켜주지 못하던 그 나라 어른들이 어찌 보였겠습니까?”


염라는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가, 그다지 탐탁찮은 기색으로 고개만 약간 끄덕이다 말았다.


“한 번 잘못 끼워진 단추는 하루 빨리 바로잡았어야 했으나, 그 아이가 살았던 시대에서만큼은 그 주변이 이 문제에 너무도 안일하고, 그랬던 만큼 더 가혹했습니다. 생각이 있는 자들도 물론 있긴 했으나, 그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갈 권한은 오히려 아주 적거나 없었던 겁니다.”


설화는 수석 삼신과 염라를 각각 돌아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 이전에는 오직 사모하는 사내 하나만을 영혼의 짝으로 두었고, 전생의 모든 연을 거부하며 수백 년간 고독하길 자처했던 아이를··· 어떠한 연고도 없이 낯선 그 땅으로 보낸 연유를, 저로선 알 수 없었나이다. 따지고 보면 그 아이가 굳이 그 땅으로 가야 할 인연도 전혀 없었기에, 이는 뭔가 일방적인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엄하다!”


수석 삼신이 외쳤다. 설화는 이를 악물었다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또 다시 육체의 죽음을 맞은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나, 죽는다고 끝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저의 손으로, 그 끔찍한 나라에 또 보낼 일이 남아있었던 것이옵니다.”


어전은 한동안 긴 침묵이 흘렀다. 설화는 대별왕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모든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폐하, 그리고 수석 삼신님, 모든 시왕님들께서는 부디 알아주시길 간청하나이다.”


설화는 다시 대별왕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전생 인간들과의 연이 단 한 가지도 없던 채로 살다가, 남에게 살해되는 가장 끔찍한 시대에 와서야··· 다시 똑같은 곳에서 연이 처음으로 생기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이옵니다. 비록 그 아이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던 이를 아비로 만나게 된다 했어도, 그것 한 가지로는 너무도 부족하옵니다.”


환생부 사람들의 얼굴에 동요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일시적으로 모든 기억 없이 살았던 적도 있사오나, 그것은 근본적인 방안이 절대 아니었음을··· 이미 여기 계신 모두가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네가 그 아이를 지금까지 감싸면서 원하는 건 도대체 무엇이냐?”


대별왕이 물음을 던졌다. 설화는 삼신복 소매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이 무엇을 크게 바란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설화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러다가는 목을 가다듬고 계속 말했다.


“그 아이와 같은 입장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이승에서 직접 원수에 손쓰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였다가, 자기 다음 생을 포기하면서까지 했던 지금의 일. 그 아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래야만 원수 하나만을 처벌하고, 자기에게 은혜로웠던 이들은 전생이나 미래에나 항상 무사할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폐하.”


설화는 대별왕에게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


“그 아이 모든 인생을 안 저로서는, 수백 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지우려 해도 지워질 수도 없는 고통을 안고 지금의 생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그래서··· 멈춰주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가 꼭 그곳에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그 아이의 가치관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준비된 곳에, 준비된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설화는 혼구슬을 봉인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그리하여··· 전 어디에도 인도될 수 없었던 그 아이를,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고 탄생의 힘만을 봉인하여 잠재운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환생관에 인도하여 여전히 책임질 수는 있기에··· 그리하였습니다. 허나, 생사의 법칙을 흔들어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한 것 또한 죄이니, 저에게 어떠한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설화는 말하던 끝에,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숙인 채 판결을 기다렸다. 대별왕이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前) 환생부 중급 삼신 설화를···”


대별왕은 설화를 내려다보며 최종 선언했다.


“흑암지옥에 보내도록 한다.”


수석 삼신과 다른 삼신들, 그리고 판관들은 싹 굳어졌다. 염라는 설화와 대별왕을 각각 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왕들 틈에서, 흑암지옥을 관장하는 오도전륜대왕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자신이 심판해야 할 대상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도전륜대왕은 설화를 보고 멈칫했다.


“인간에 있어, 자식을 둘 길을 인위적으로 막은 죄를 심판하도록 하라.”


대별왕은 오도전륜대왕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도전륜대왕은 설화가 삼신인 것을 확인하고 잠시 의아해했다가, 대별왕의 말을 듣고는 그제야 조금은 납득했다는 기색을 띠며 짧게 목례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오도전륜대왕은 예를 표한 뒤, 아까와는 달리 설화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오히려 설화의 기색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말갛게 있었다. 대별왕은 설화를 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은 없다··· 라.”


대별왕은 설화의 말을 곱씹듯 잠시 뇌까렸다.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정식으로 이 자에게서 삼신의 권한과 모든 권능을 박탈한다!”


설화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러자, 환생부 시녀들이 다가와서 그녀의 삼신복을 훌훌 벗겼다. 설화는 그들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녀의 뒤편에 선 시녀가 목으로 손을 가져가, 마지막으로 환생구슬 목걸이의 끈을 끌러냈다. 이내 그녀에게서는 하얀 홑옷만 남게 되었다.


“사흘 후, 이 자를 흑암지옥으로 인도하라!”


재판은 완전히 끝났다. 대별왕은 판결을 마치고 옥좌에서 일어났다. 염라를 포함한 시왕들과 판관들은 옥좌를 향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설화는 묵묵히 대별왕이 있는 옥좌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대별왕은 설화를 착잡하게 내려다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작가의말

다음에는 에필로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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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삼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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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체포된 삼신] 완결 일정 최종 공지입니다. 19.08.05 85 0 -
공지 [체포된 삼신] 연재 일정 관련 공지입니다. 19.07.17 81 0 -
49 외전 [아스트라이아] 2 - (2) 19.11.18 13 0 13쪽
48 외전 [아스트라이아] 2 - (1) 19.11.18 12 0 14쪽
47 외전 [아스트라이아] 1 - (2) 19.11.12 14 0 12쪽
46 외전 [아스트라이아] 1 - (1) 19.11.12 20 0 14쪽
45 외전 [아스트라이아] - 프롤로그 19.11.06 25 0 13쪽
44 에필로그 : 영원한 잠 19.08.07 72 1 25쪽
» 13. 체포된 삼신 [完] 19.08.07 87 0 48쪽
42 12. 거래는 성사되었다 (2) : 사라진 혼구슬 19.08.06 88 0 39쪽
41 11. 거래는 성사되었다 (1) : 피로 물든 밤 19.08.06 87 0 31쪽
40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4 19.08.05 93 0 27쪽
39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3 19.08.05 99 0 26쪽
38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19.07.30 80 0 19쪽
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94 0 16쪽
36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99 0 22쪽
35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13 0 19쪽
3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3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4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6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4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8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8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4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4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9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8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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