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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체포된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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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
작품등록일 :
2019.05.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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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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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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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영원한 잠

DUMMY

- 에필로그 : 영원한 잠 -



사흘 뒤, 2013년 12월 19일.


설화는 임시 감옥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귀왕대 두 명에게 각각 팔을 잡힌 채 밖으로 향했다. 이제는 흑암지옥으로 가야 할 때가 왔다. 가던 중, 무언가를 떠올린 설화는 염라부 발설지옥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염라는 어전에서 그들 일행을 어리둥절한 채 맞이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뭐요?”


“업경을 보게 해주십시오.”


염라는 잠시 굳어졌다. 그리고는 물음을 던졌다.


“이번에는 무슨 연유요?”


“제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그 아이, 그 아이 부모였던 이들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대의 인생이 아니라?”


“제가 끝까지 책임졌어야 할 아이와의 인생이었으니, 제 인생의 나머지 부분이기도 합니다.”


설화는 먹먹한 어조로 말하면서도, 단언했다. 염라는 미간을 모으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서기 700년대에 설화가 인간혼 아란으로서 처음 왔을 때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환생을 명령한 뒤에, 설화는 천여 년 만에 삼신이 되기를 청했었다. 그 때 이후로 시간은 꽤 지나 있었다.


“그대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게 무엇이오?”


“네?”


“아이를 잃고 상심한 부모의 모습이오, 아니면··· 죄 지은 자의 말로요?”


“그저, 제 죄를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그대의 죄?”


염라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가, 다소 씁쓸한 기색을 띠었다. 그리고는 지시를 내렸다.


“업경을 들이라.”


곧이어, 판관들이 거대한 업경을 들여와서 중앙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한민국, 서기 2013년.”


업경의 거울 표면이 번득였다.


“강우현, 그리고··· 윤인진.”


표면에서 구름이 일렁였다. 서서히 내려앉는 듯한 정경이 비추어지다가, 우현이 있는 한 사무실을 클로즈업했다.



우현은 시계를 흘끔 보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 듯했다. 그는 휴대 전화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에 나와서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만 계속 갈 뿐, 받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우현은 전화를 끊은 뒤, 다른 번호로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산부인과로 거는 것이었다.


“혹시 오늘 윤인진 산모, 갔습니까?”


전화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우현은 복도를 걷다가 멈춰섰다.


“알겠습니다.”


우현은 그렇게 대답하고 바로 끊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조퇴 신청을 한 뒤에,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서는 집에 도착했다. 그는 현관에 들어섰다가 멈칫했다. 금속 냄새 어린 비릿한 기운은 물론이고, 여느 때와는 달리 묘하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여보?”


우현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서 불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안방으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안방 침대에는 각종 물건들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 옆 바닥에 인진이 엎어져 있었다. 그녀의 허리부터 발목까지 이르는 바닥 전체는 온통 진한 피로 젖어 있었다.


우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식은땀에 젖어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다가, 땀에 젖은 손으로 휴대 전화를 간신히 꺼내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달려와서 인진을 들것에 싣고 나갔다. 우현도 급히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러나, 그는 인진이 구급차에 실리는 것까지만 보았고, 따라서 타지는 않았다.


업경으로 이를 지켜보던 설화는,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이는 일반적인 남편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명색이 제 아내인데.’


그 때, 우현은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병원에 가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 말을 몇 번 남기고 있었다.


‘보통은 회사에 양해를 더 구하고 옆에 있지 않나?’


이번에는 설화와 염라의 얼굴에 모두, 일말의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우현은 다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서 이곳저곳에 배인 땀을 쓱쓱 닦아내고는, 순식간에 냉철한 표정을 띠었다. 그리고는 안방 침대와 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물건들을 유심히 살폈다.


“계약서?”


우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인진이 장롱을 열고 서랍 밑 비밀 공간에서 꺼내둔 특별 계약서를 집어 들고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분노에 차서 눈빛을 이글거리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계약서를 내려놓은 다음, 신문지 뭉치를 살펴보았다.


신문지 뭉치 속에서는 오래된 핏자국이 범벅으로 말라붙은 식칼이 나왔다. 업경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설화는 고개를 옆으로 잠시 돌렸다. 그리고는 곁눈질로 다음 상황을 살펴보았다. 업경 속에서, 우현은 식칼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순간, 업경에서는 우현의 기억 속 이미지가 반투명하게 겹쳐 올랐다. 그것은, 경찰관들과 의사가 둘러싼 가운데, 천을 걷어 확인되는 여자 시체의 모습이었다. 시체의 얼굴과 어깨는 그나마 식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체의 가슴과 배, 허벅지는 거의 검붉은 덩어리로 난도질당해 형체가 불분명하게 되어 있었다.


타이어 자국이 여러 번 겹쳐서 팔과 어깨 부분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는 차량 앞부분의 부품과 유리에 찔린 것처럼 파인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다. 그러나, 우현의 시야가 한순간에 확 집중된 곳은 다른 데에 있었다.


죽음의 원인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명치에 비스듬히 남은 상처에 기이한 자국이 엉켜 있었다. 시체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라면 핏물과 살점에 엉겨서 보이지도 않았을 법했지만, 이제는 피가 말라붙은 뒤에 그 주변을 검시하려 어느 정도 걷어내었기에 겨우 드러난 흔적인 듯했다.


명치 주변에 남은 자국들은, 식칼의 칼날 모양 및 칼날에 일정한 간격으로 난 둥근 구멍 일부가 뒤엉킨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식칼로 여러 번 찌르고 난도질한 끝에, 그 위에 차를 여러 번 오가서 타이어 자국으로 교통사고인 척 위장을 하려 했던 듯했다.


우현의 뇌리에서는, 칼날 끄트머리에서 손잡이 사이의 날마다 간격별로 있었던 구멍과, 날 하단 부분의 톱니무늬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칼날을 몇 년이 지나서야 발견한 분노가 눈빛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그 때, 우현의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 진동이 울렸다.


“네.”


“빨리 오셔야겠 - ”


상대가 다급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우현은 상대의 말을 바로 끊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아뇨, 됐습니다.”


“지, 지금 뭐라 했어요? 그게 무슨!”


우현은 더 이상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느덧 그는 근 20년 전의 일을 곱씹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촌 동생이었던 연주를 위해, 눈 뜨고 보기 힘들었던 것들을 직접 카메라로 여러 차례 찍어야 했던 순간들이, 그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듯했다.


새벽에 깨어난 연주가 잔뜩 긴장한 어투로 도움을 청했을 때, 우현은 두말없이 들어주었었다.


“증거가 필요해?”


“그것들 쪽에선 내가 바로 이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 꼭 해 줘.”


“정말 괜찮겠어?”


“오빠라면··· 괜찮아.”


한없이 어렸던 연주는 이를 악물었다가, 그렇게 대답했었다. 결국 우현은 문갑에서 부모들 몰래 카메라와 삼각대를 조용히 꺼내왔었다. 연주는 스스로 카메라 렌즈 앞까지 다가와 옷을 내리고 섰었다. 오히려, 우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었다.


‘조금만 참아줘. 한 번에, 반드시 한 번에 끝내줄게!’


우현은 곁눈질로 연주의 위치를 드문드문 확인하면서, 간신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었다. 그가 잘못 찍으면, 연주가 수치심을 애써 참으며 또 한 번 옷을 걷어야 했을 터였다. 털이 군데군데 잘리고, 커터칼로 그은 상처가 남은 곳을, 이제는 남들에게 드러내야 할 순간이었다.


연주는 내심 수치감과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간신히 옷을 다시 추슬렀었다. 그녀가 그러는 동안, 우현은 어려운 관문을 한 차례 뛰어넘은 심정으로 나머지 증거들 – 찢어진 가방끈, 도시락 주머니, 신발주머니 등등 – 의 사진을 서둘러 찍었었다. 그리고는 카메라의 필름을 서둘러서 고의적으로 소진시켜 빼냈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고등학교 근처 사진관에서 바로 현상했었다. 그는 현상된 사진들 중에서, 연주의 상처 부분이 뚜렷하게 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구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남몰래 흐느꼈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울음을 애써 그쳐야 했었다.


그는 점심시간에 빠져나와 곧바로 채연 중학교로 갔었다. 그리고는 학생들의 이목을 피해 연주에게 현상된 사진들을 전했었다. 그 이후, 선도부인 과학 교사와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뇌리에서는 절대 잊히지 않고 있었다.


‘너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일까?’


우현은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한 채, 침대와 바닥에 널브러진 증거물들을 모두 챙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집 밖으로 나와서 차를 타고 경찰서에 도착했다. 업경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설화와 염라는 아연실색한 채 멍하니 있다가, 한참 뒤에 서로의 얼굴만 참담하게 바라보았다.


‘자기 손으로, 자기가 선택했던 아내를··· 그래야 하는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설화는 경찰서에서 정황을 힘겹게 밝히며 증거물들을 꺼내 보이는 우현의 모습을, 업경을 통해 연민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업경 속에서 나타난 시간의 간극은 그리 길지 않았었다.


혼구슬 ‘연주’ 가 인진의 몸에서 의도적으로 빠져나왔던 날은 11월 28일이었고, 우현이 경찰에 정식으로 고발을 접수한 것은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우현은 근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손쓸 틈도 없이 하루 만에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경찰서에서 모든 절차를 마친 뒤에서야, 우현은 자신에게 걸려온 휴대 전화를 받았었다. 그리고는 병원으로 가서 인진과 마주했었다.


“사인해.”


“이게··· 뭐야?”


“보면 알잖아?”


우현은 싸늘하게 반문하며, 가슴께 주머니에서 펜까지 직접 꺼내 인진에게 내밀었었다.


“그 때 기억해? 솔직히 그 애 죽고 나서도 의심스러웠지만 뭣 하나 더 나오지 않기에, 난 당신을 한 번 더 끝까지 믿어보려고 처음 결심한 대로 결혼했던 거야. 근데 당신은 애초에 넌 그럴 가치도 없었어.”


인진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창백하고 기진한 얼굴로 우현이 내미는 펜과 서류를 멍하니 보다가, 독기 품은 시선으로 우현을 쏘아보았다. 그러는 그녀의 눈밑은 검푸르게 죽어있었다.


“결혼했으면 당신은 내 남편이야. 친동생도 아니고 겨우 - ”


“닥쳐.”


“이미 아내인 내가 뭘 했어도, 당신은 일단 끝까지··· 내 편이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내가 유산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럴 수 있어?”


“유산은 유산이고 죄는 죄야. 당신이 뭐라 해도, 난 더 이상 당신 같은 살인자랑 같이 살 생각 없어. 사인해!”


“당신은 유산한 마누라보다 그깟 지난 일 찌꺼기들부터 더 먼저 보였던 거야?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다가 다음날 이렇게 와서는! 어쩜 그렇게 사람이 잔인해?”


“내가 잔인하다고? 당신은 애초에 사람이기나 했어?”


우현은 서류와 펜을 베드 트레이 위에 내려치듯 올려놓았었다. 인진은 곧바로 링거를 꽂지 않은 쪽 손으로 세차게 쳐냈다. 그러다가 어질한 것을 느낀 듯 고개가 앞으로 팍 꺾였었다. 우현은 그런 인진 쪽에 눈길도 전혀 주지 않고, 1인실 저편에 나가떨어진 서류와 펜을 냉담하게 주워들었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우현은 서류와 펜을 챙기고 몸을 꼿꼿하게 펴며, 다시 똑바로 서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는 병실 입구로 표연히 걸어가서, 문고리를 잡고 홱 돌아보며 싸늘하게 덧붙였었다.


“소송으로 가지.”


“진즉에 - ”


인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바닥으로 내리고, 링거를 매단 걸이의 기둥을 잡으며 분노에 찬 어조로 내뱉었었다. 아마도, 유산의 징후가 나타나기 전에 증거를 더 빨리 없앴어야 한다고 곱씹는 듯했다. 우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노려보고는, 콧바람만 피식 뿜은 뒤 냉정하게 돌아섰다.


“이제 와서 엉뚱한 짓 해봐야 소용없을 거야. 정 싸우고 싶으면 몸이나 추스르든가.”


인진은 안간힘을 다해 우현을 쫓아가려고 몇 발짝 내딛어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었다. 그녀는 세 발짝 비틀비틀 급하게 다가가다 엎어졌다. 우현은 그런 그녀의 코앞에서 병실 문을 쾅 닫고 나왔었다. 복도를 걸어 병원을 나가는 그에게서는 아무런 표정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경찰에서 인진의 병실로 연락이 갔었다. 인진은 유산 후 충격으로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시늉을 하며, 경찰에 출두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병실 CCTV 기록을 색출하라고 하기도 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추가 수술 들어가려면 체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무슨 수술을 더 한다는 건데! 내 아이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처음에는 소파수술 후 자궁을 최대한 보존하려 했지만, 오실 때부터 이미 너무 손상이 커서 더는 안 됩니다. 이대로 완전히 적출하지 않으면, 이제 환자분 생명도 위험합니다.”


“태아가 처음에는 자궁에서 약간 위쪽에 착상했다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동안 계속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다 나팔관으로 완전히 올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수에 맞게 꽤 커져서는 아예 유착되었었고, 자궁 수축되면서··· 유착되었다가 태아에 여기저기 붙어 떨어져 나온 대량의 조직들과 함께 빠져나왔던 겁니다.”


설화는 업경 속에서 주치의가 인진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제야 혼구슬을 잠재우기 직전에 들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인진이 더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철저하게 부수고 나왔다는 말이었다. 설화는 속으로 몸서리를 치면서도 비애감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았다.


‘인간 의사가 들여다볼 때마다 제자리에 와 있다가, 잠시 동안의 검사만 끝나면 최대한 저 원수의 몸이 상하도록 계획적으로 자리를 틀어잡았고··· 그 다음엔 작정하고 일을 냈었구나.’


일부러 태내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모체였던 인진의 하복부에는 상당한 고통이 가해졌을 게 분명했다. 혼구슬은 태아의 몸이면서도 혼 자체의 힘으로 어둠 속에서 모체를 단번에 파악하고, 철저한 파괴를 강행했던 듯했다. 마치, 고문관들이 채찍과 당근을 반복하며 할당된 죄수를 서서히 폐인으로 만들 듯이.


“정기 검진 할 때마다 봐도, 그런 거 없었잖아!”


“평소에는 통증을 전혀 못 느끼셨습니까?”


“애가 건강해서 세게 차는 줄만 알았다고!”


인진은 밋밋한 배를 쥐고 절규했었다. 그리고는 주변 집기를 집어던지며 한껏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대량 출혈로 제대로 몸 가눌 힘조차 없었던 그녀가 던지는 물건들은, 침대에서 멀리 가지도 못하고 군데군데 힘없이 떨어질 뿐이었다.


설화는 업경을 통해 그 모습을 경멸어린 시선으로 보며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저었다. 비록 200여년 동안 삼신으로서 정진했었지만, 아이를 뜻하지 않게 보낸 인간 어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 또한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보호자분?”


의사는 난감한 듯 보다가 보호자를 찾았었다. 우현은 바로 연락을 받은 뒤, 인진의 절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 수술 동의서에 바로 서명했었다. 인진의 친정에서는 우현을 회유하려고 몇 번 시도했었지만, 오히려 우현은 병실에서 인진과 했던 말들을 철저하게 녹음하여 제출했었다.


결국, 인진은 그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가 수술을 마치고 깨어난 뒤, 정신을 완전히 놓고 말았다. 표면상으로는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수술을 강행한 것에. 그 누구도 우현을 의심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20여년 동안 그녀를 계속 감싸야만 했던 친정 쪽에서도 살인죄까지 드러난 그녀에게는 내심 완전히 질린 듯했다.


우현은 결국 이혼 절차와 형사 고발을 동시에 강행했고, 인진에게 병보석조차 허용될 수 없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업경 속 장면은 거기서 끝이 났다.


“이게 다요.”


그 때, 염라가 낮게 신음했다가, 지극히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는 우현의 한결같이 가차 없는 행동에 매우 놀랐던 눈치였다. 그러나, 인진에 대해서는 지극히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장면을 지켜보았었다. 설화는 염라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로 돌아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혼구슬 ‘연주’ 가 단 하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새삼 명백했다. 그리고, 이제는 업경을 통해 그 결실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생각에, 설화는 새로운 감회를 느꼈다. 이승의 모든 인간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하나, 애초부터 인간의 길을 버린 자에게는 그럴 가치가 전혀 없었던 듯했다.


“이제는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요.”


“네?”


“대별왕 폐하께서 이르신 말씀이 있소. 그대한테는 아직 더 할 말이 있을 거라 하더이다.”


설화는 혼구슬의 미래를 들여다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였다가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소청을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시오.”


“대왕께, 그 아이의 다음 생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과인에게요?”


염라는 멈칫했다가 물었다. 설화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재판 때도 이미 아뢴 바 있사오나, 감히 그 아이한테 예정되었던 다음 생을 들여다 본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어미가 될 뻔한 자와의 원한만 아니었더라면, 누가 보아도 아비와 사이좋은 딸이며 생각이 맞는 인연 또한 있을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요?”


“분명 이승 보통의 기준에서라면, 그 아이는 분명 예전과는 달리 무난하고 평탄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 사료되었사옵니다. 허나··· ”


설화는 그 다음 말을 잠시 삼켰다. 간절하게 갈망하는 유일한 사랑이 아닌, 스쳐갔던 낯선 자와의 인연을 강요받았다 느낄 수도 있으리라는 짐작은, 섣불리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설화 자신이 들여다보았던 장면 중에서 우현이 아비가 될 가능성까지는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일은 혼구슬에게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 아이가 정말로 어찌 여겼을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


설화는 그렇게 생각한 뒤에, 다른 말을 꺼냈다.


“모두가 무난하고 평탄하다 보는 인생이라 하여, 이 아이에게도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염라는 설화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묵묵히 자신의 수염만 두어 번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설화는 그런 염라의 반응을 보다가 말했다.


“저는, 인간이길 비록 한 번 포기했었으나··· 선한 인간은 언제나 안전하고 자신이 간절히 원한 복이 있는 곳에 보내지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리 선한 인간에게 위험한 일이 있다면, 그 인간을 보다 안전하게 해줄 수 있는 곳에 보내길 바랍니다.”


그것은, 설화 스스로가 애기삼신으로서 처음 입문할 때, 환생부와 염라부에 했던 말이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전생이었던 통일 신라 시대 이후, 한 번의 전생이 더 있었다는 것은 업경으로 밝혀졌었지만, 한때는 그러한 기억들을 지우고 삼신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설화.”


이윽고, 염라는 설화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네.”


설화는 천천히 일어나서 예를 표했다.


“그대는 과연··· 그 아이를 뼛속부터 잘 알고 공감한 듯 하오.”


염라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설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다시금 감사하는 뜻으로 묵묵히 눈만 내리깔았다. 연이 없는 다른 이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염라는 어쩐 일인지 설화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나, 자신의 일은···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했던 듯 하니.”


염라는 판관들에게 업경을 거두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멀어져 가는 쪽을 보며, 약간의 탄식조가 어린 어조로 나직하게 되뇌었다. 어쩐지 혼잣말인 듯했다.


“염라대왕?”


설화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불러보았다. 염라는 판관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착잡한 시선으로 설화를 돌아보았다. 설화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가 말을 꺼냈다.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아무 것도 아니오.”


염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손짓하며 말했다.


“잘 가시오.”


귀왕대들은 다시 설화의 양 옆으로 다가와서 팔을 하나씩 붙잡았다. 설화는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멍하니 염라대왕을 바라보다가, 그들의 손에 이끌려 어전을 나왔다. 발설지옥 입구를 지나 두 개의 지옥을 더 건넌 뒤, 흑암지옥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암흑이 펼쳐졌다. 설화는 그 암흑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이 영겁의 시간 속, 영원한 잠이 펼쳐지더라도··· 그 안에 든 영혼은 검지 않을 것이다.’


기약 없는 동안, 어둠 속에서 죄를 닦아야 할지라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듯했다. 그런 점은, 스스로 영원한 잠에 들길 바랐던 혼구슬 ‘연주’ 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설화의 머릿속에서는 희미하고도 낯선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뭔가 이상해.’


아주 오래 전, 주변에서 한 소녀에게 기적인 듯한 일이 일어나고 무언가가 달라졌었다. 그러나 설화 이외에는 아무도 소녀의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던 듯했다. 그리고, 설화만이 알아챈 기이한 변화를 보였던 그 소녀는, 그녀만의 소신을 격하게 드러내다가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었다.


‘넌 어디에서 온 누구더냐?’


차마 소녀에게 그런 말을 직접 붙일 수는 없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지금으로선, 그 사람만이 널 지켜줄 수 있을 텐데.’


무엇인지 소녀에 관련되어 알 수 없는 책임을 강요당했고, 설화는 명령에 따라 주인이 내린 독을 그대로 받아 마셨던 듯했었다. 그리고, 독을 마시기 직전, 유서로서 어떤 누군가에게 소녀를 부탁했었다. 오래 지켜보다가 급작스러운 이질감을 드러낸 존재가 그 소녀였다. 짧은 시간 동안, 설화로서는 그런 낯선 면모의 소녀에게도 새로운 연민과 애정을 품었던 듯도 했다.


그 소녀가 누구였는지는 더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기이한 변화를 알기 이전까지는, 설화 스스로도 소녀에게 깊은 유대감을 갖고 애착을 보였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먼저 죽어버렸기에, 마지막 소망이 실현되었을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너무나도 옅었던 감정··· 굳이 더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설화는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고도 불분명한 과거를 몰아내고, 혼구슬을 다시금 떠올렸다. 제노비아의 영혼을 한 채로 클라우디아의 몸을 빌렸던 혼구슬의 두 번째 생애는 애정을 갖고 귀를 기울였었다. 비록 클라우디아의 겉모습을 보고 반했으나, 영혼이 바뀐 줄도 모른 채 클라우디아를 끝까지 사랑하고 구하려 했던 랑탱의 모습이 유달리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그랬다면 조금은 편했겠지만.’


영원한 잠을 선택한 혼구슬은, 아마도 그 자신이 사랑한 백작의 시간과 맞아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을 듯했다.


‘이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그 아이도 언젠가는 반드시··· 제가 원하는 순간에 깨어나기를.’



서기 2015년 12월 29일. 환생관 대기실.


재판을 마치고 인간문을 거쳐 환생이 결정된 혼구슬들이, 각각 조가비에 봉해져 들어왔다. 중급 삼신은 혼구슬이 든 각각의 조가비들을 각각 지역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 보내질 혼이 다섯, 프랑스에 보내질 혼이 셋, 영국에 보내질 혼이 넷이었다.


프랑스에 보내질 혼구슬들 중에서, 두 번째에 있는 조가비 위로 인간의 유체가 올라왔다. 그 어떤 색깔도 섞이지 않은 검푸른 흑발에, 옅푸른 눈동자를 지닌 빼어난 미남이었다. 남자는 바로, 백작이었다.


작가의말

*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9월 2일에 후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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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영원한 잠 19.08.07 71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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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2. 거래는 성사되었다 (2) : 사라진 혼구슬 19.08.06 88 0 39쪽
41 11. 거래는 성사되었다 (1) : 피로 물든 밤 19.08.06 87 0 31쪽
40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4 19.08.05 92 0 27쪽
39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3 19.08.05 98 0 26쪽
38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2 19.07.30 80 0 19쪽
37 10. 무대 위의 밤 (2) : 당신을 찾아서 - 1 19.07.30 94 0 16쪽
36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下) 19.07.18 99 0 22쪽
35 9. 무대 위의 밤 (1) : 내가 기억하는 세상 (上) 19.07.18 113 0 19쪽
34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下) 19.07.13 92 0 21쪽
33 8. 살아있는 이유 (2) : 세 번째 죽음 (上) 19.07.13 104 0 21쪽
32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下) 19.07.10 96 0 12쪽
31 7. 살아있는 이유 (1) : 어둠 속의 목소리 (上) 19.07.10 93 0 17쪽
30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下) 19.07.09 95 0 19쪽
29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2) : 델핀느의 이야기 (上) 19.07.09 88 0 16쪽
28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下) 19.07.06 94 0 14쪽
27 6. 당신이 어떤 이름이라 해도 (1) : 앙투안의 이야기 (上) 19.07.06 84 0 15쪽
26 5. 6월의 열기 (2) 19.07.02 89 0 18쪽
25 5. 6월의 열기 (1) 19.06.27 99 0 21쪽
24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下) 19.06.22 108 0 21쪽
23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2) : 부정한 죽음 (上) 19.06.22 96 0 15쪽
22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下) 19.06.18 134 0 13쪽
21 4. 천 년 전과 천 년 후 (1) : 신녀 아란 (上) 19.06.18 9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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