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t13w
작품등록일 :
2019.05.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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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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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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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장.

DUMMY

쾅!


쇠와 쇠가 부딪혔건만, 터져 나오는 소리는 화탄이 터지는 소리와 같다. 서로의 무기에 무천의 고수 특유의 강기가 둘려 있기 때문이다.

잠시 떨어져 서로를 응시하는 두 고수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객관적인 무위는 비등하다. 그렇다면 전장에서 십수 년을 보낸 공손일량의 경험이 빛을 발할 만도 했지만, 지금까지만 보면 딱히 그러지도 못하다.

전투의 경험은 공손일량쪽이 압도적으로 많다지만, 비슷한 수준의 고수와 싸운 경험만 놓고 보자면, 암천의 공세를 막아냈던 토야도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법이군."


공손일량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천랑(武天狼)이라 하더니,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런 말은 나보다 강한 자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고,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토야가 받아치자 공손일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린놈이, 못 보던 사이에 많이도 컸군."


예전부터 토야를 알고 있었다는 말투다.


"나를 알고 있나?"


공손일량의 말을 이상하게 여긴 토야의 물음에, 공손일량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궁금하란 게 있으면 실력으로 알아내야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입을 놀리지 말던가."


"그럼 재미가 없잖아?"


공손일량이 끝까지 이죽거리자, 토야도 더는 대꾸하기를 포기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일섬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저 자식, 굉장히 재수가 없는데?"


일섬의 입에서 속마음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말하는 거 하나하나가 상대로 하여금 열이 오르게 한다. 아직은 토야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다지만, 저런 게 계속되면 결국 경험이 부족한 토야는 공손일량의 술수에 넘어가게 되어있다.

그것이 일섬의 특기였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넘어간다'는 게 무슨 대단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평소와는 다른 약간의 흥분, 딱 그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것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고수끼리의 대결에서는 그 작은 틈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심리전에 있어서는 대가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섬이 인정할 정도로, 공손일량의 상대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재주는 아주 탁월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일섬으로 하여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이 또 한가지 있었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지금 공손일량이 보이는 태도는, 일섬에게 있어 어딘지 모르게 매우 익숙했다. 자신이 늘 해오던 것이기에?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일섬이 느끼고 있는 것은 동질감이 아닌 익숨함이었다.


'뭘까...?'


공손일량을 보는 일섬의 눈초리가 가늘어 졌다. 역시,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일섬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공손일량과 토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왁-


쾅! 쾅! 쾅!


공중에 떠서 연달아 세 번을 부딪친 둘의 신형이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기운을 끌어올린 토야가 공손일량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림없는 짓!"


공손일량이 검을 세워 토야의 갈퀴를 쳐내고는, 그대로 검을 돌려 토야를 베어 갔다.

허리를 뒤로 제쳐 공손일량의 검을 피한 토야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꾸준히 접근전을 펼치려 하였지만, 번번이 공손일량의 검에 막히고 있다.

일섬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죽거리는 공손일량의 태도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슬슬 조급함이 생겨나려 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토야 스스로도 그러한 심경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침착해야 한다.'


잠시 기운을 다스린 토야의 눈빛이 변했다. 조급함을 가라앉히고, 평소와 같은 냉정함을 유지한다.


"호오,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토야의 기운을 읽어낸 공손일량이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사실 계속해서 웃고는 있지만, 공손일량으로서도 토야를 상대로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백 전의 전사라고는 하지만, 토야는 그런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아니, 순수하게 무인으로서의 세기만 놓고 보면, 미세하게나마 자신보다 위에 있다. 물론 그것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이도 어린놈이 대단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때 토야의 양손으로 기운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갈퀴에 맺혀있던 강기가 한치는 더욱 솟아올랐다. 그만큼 내공소모가 극심해지겠지만, 상대가 거리를 주지 않는다면 그에 맞춰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심산이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상대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공손일량이 이죽거렸지만 토야는 그런 것에 더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섬의 입가로 가는 호선이 그려졌다.


"한끝 차이였는데, 어린놈이 제법이야."


쾅!


토야와 공손일량의 검이 다시 부딪혔다.


"큭-"


공손일량이 입에서 거친 신음이 튀어나왔다. 토야의 공격에 담긴 힘이 생각보다 더 강대했던 것이다. 물론 공손일량도 그에 맞춰 힘을 끌어 올릴 여력은 있다. 다만, 공손일량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토야 뿐만이 아니다. 한쪽에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투귀라는 존재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인듯싶었다. 서초원의 지배자라고 하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공손일량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지금부터는 전력으로 부딪힌다.'


결정을 내린 순간 공손일량의 기도가 변했다.


"전력을 다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인정하지. 역시, 월랑의 주인이 될만한 자격이 있는 놈이었어."


공손일량의 입에서 흘러나온 월랑이라는 단어에 토야의 눈빛이 짧게 떨려왔다. 떠보는 것이 아니다. 상대는 분명히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것도 매우 자세히. 하지만 놀란 것은 토야 뿐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 일섬의 눈에도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월랑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것이 토야에게 전해진 것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다.

아무래도 확인해 볼 것이 생겼다.


"야, 둘 다 잠깐 멈춰봐."


일섬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공손일량이 고개를 돌려 일섬의 눈과 마주쳤다.


씨익-


공손일량의 입꼬리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검을 들어 토야를 향해 돌진했다.

완벽한 무시! 헌데,


"피하지 않는다!"


상대가 전력을 다해 달려오자 토야도 피하지 않고 마주 나갔다.

중천(中天)의 고수 둘이, 전력으로 부딪힌다. 이런 상항에서는 누가 와도 멈출 수가 없었다. 설사 극천(極天)의 고수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토야와 공손일량이 일섬의 말을 무시하고는, 강(强) 대 강(强), 전력으로 부딪히려는 순간,


"이 새끼들이!"


성질을 부린 일섬이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


콰앙!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훨씬 더 거대한 폭음이 튀어나왔다.


"대..대협..?"


"뭐, 뭐야!!"


토야와 공손일량의 두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일섬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한 손으로는 토야의 갈퀴를, 다른 손으로는 공손일량의 검을 시리도록 투명한 손으로 잡고 있는 일섬의 표정은 흡사 악귀와 같았다.


"내가 멈추라고 했지."


낮게 으르렁거리는 일섬의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힘빼."


이어지는 일섬의 말에 토야는 물론, 공손일량조차 저도 모르게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제야 두 사람의 무기를 손에서 놓아준 일섬이 잠시 눈을 감고는 기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썅, 겁나 아프네."


일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랬다.

일섬의 분노도, 악귀같이 일그러진 표정도, 두 손이 너무나도 아파서 그랬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중천을 넘어선 고수들이다. 그들의 전력을 홀로 감당했으니,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쓰읍- 너무 따가워. 너희 그거 알지? 손뼉 칠 때, 엄청나게세게 계속 치다가 한번 삐끗하면 짝소리 나면서 엄청 따갑고 얼얼하잖아. 딱 그런 고통이라고."


일섬이 양손을 비비며 고통을 호소했다.

엄천난 신위를 보이고 나오는 행동치고는 경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일섬이 보인 신위는 그들로서는 들어본 적도, 꿈을 꿀 수도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었다. 토야와 공손일량의 벌어진 입은 여전히 다물어 질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양손을 비벼가며 고통을 혜소시킨 일섬이 조금 괜찮아 졌는지 고개를 홱 하고 돌리고는 게슴츠레한 눈이 되어 공손일량을 훑어봤다.


"흡-"


일섬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공손일량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자, 일섬이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너, 누구야?"


다짜고짜 던져진 뜬금없는 질문에 공손일량이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일섬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질문을 수정했다.


"아, 질문이 잘못됐구나. 지금은 니가 누군지 중요한 게 아니지."


그리곤 손을 들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버렸다.


"!!!"


일섬의 얼굴을 확인한 공손일량의 두 눈이, 산 송장을 본 것처럼 경악으로 물들었고, 그 모습에 일섬의 눈빛이 변했다.


"너, 나 알지?"


일섬의 물음에 공손일량의 멈춰줬던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한 단어가 떠올라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대.. 대장ㄱ, 컥!"


어느새 다가온 일섬이 공손일량의 목을 움켜쥐었다.


"역시 넌 날 알고 있네. 그럼 다시 물을게."


일섬의 입가로 서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너, 누구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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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외전- 공손일량의 기억. - 전편 +4 19.10.29 76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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