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너무 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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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소리
작품등록일 :
2019.05.21 20:48
최근연재일 :
2019.08.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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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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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자세했다.

DUMMY

전사양성소를 나온 선행은 곧장 서쪽 야산으로 향했다. 얼른 전직하고 다른 마을로 떠나고 싶었다.


‘어쨌든 퀘스트를 깨야 하니까···.’


게임을 시작하기 전, 선행은 자신이 가질 직업에 대해 철호와 논의했다.

다크게이머의 특성 상 솔로잉이 가능해야 하고, 또 유사시에는 협회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철호의 조언. 거기에 선행의 운동신경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직업으로 전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선행은 서쪽 야산에 도착했다. 말이 야산이지 20분이면 다 돌 것 같은, 얕은 언덕이었다.


“저깄다.”


야산에 들어선 지 5분 만에 오크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선행은 얼른 가까운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


“너무 세 보이는데?”


흉악한 인상의 오크는 거대한 곡도에 꽤 그럴싸한 흉갑을 걸치고 있었다. 부족에서 낙오되었다는 설명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스럭.


가까운 곳에서 나뭇잎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지 않은 소리였음에도 오크가 고개를 홱 돌렸다.


크르륵!


눈꼬리를 한껏 들어 올린 오크의 인상은 흉악, 그 자체였다. 놈은 광대까지 치솟은 송곳니를 부들거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 있었다.


‘안 될 것 같은데···.’


선행은 자신의 모습을 한번 훑어보곤, 다시 오크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접속한 지 여섯시간만에, 토끼만 죽어라 잡은 선행의 장비는 대장장이 한스가 준 초보자용 단검뿐이었다. 며칠에 걸쳐 전직레벨 5를 만들고, 그 사이에 장비를 갖추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극히 빈약한 무장이었다.


‘마을로 돌아가자.’


마침내 마음을 정한 선행이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선행의 지근거리에서 재차 나뭇잎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선행과 오크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 곳엔 일반적인 크기의 새하얀 토끼 한마리가 잡초를 뜯어 먹고 있었다.


‘응? 갑자기?’


생뚱맞은 등장에 선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토끼가 그런 선행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 비틀었다.


“쉬잇!”


선행이 다급히 손가락을 들어 입술을 가렸다. 오크가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였다.

되도 않는 짓이었는데 의외로 토끼가 가만히 있었다. 그걸 본 선행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순간, 토끼가 앓는 소리를 내며 덤불 너머로 뛰쳐나갔다.


끼잉!


‘이런.’


낭패한 선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덤불을 바라보고 있던 오크와 눈을 마주쳤다.


크륵?


평화로운 숲속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크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더니, 이내 곡도를 들어올렸다.


크롹!!


괴성과 함께 오크가 선행에게 달려들었다. 눈으로 좇기 힘들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제길!”


선행이 혼신의 힘을 다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당장이라도 몸이 두 동강 날 것 같은 기분에 등골이 서늘했다.


부웅! 퍽!


바람소리와 함께 오크의 곡도가 선행이 서 있던 땅을 파헤쳤다. 검날과 부딪힌 잔돌 몇 개가 선행의 몸을 때렸다.

순식간에 대여섯 바퀴를 구른 선행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오크의 다음 공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크롹!


고개를 들자마자, 머리로 날아드는 곡도가 보였다. 선행은 본능적으로 상체를 비틀어 곡도를 피해냈다.


‘도망은 글렀다.’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선행의 피가 차게 식었다. 운동선수 특유의 집중력이 발동된 것이었다.


깡!


선행의 단검과 오크의 곡도가 부딪혔다. 곧고 짤막한 단검의 검신과 완만하게 휜 곡도의 검날이 강한 마찰음을 토해냈다.

맞대어진 두 자루의 무기 사이로, 오크가 선행을 노려보았다. 일변한 선행의 분위기가 신경 쓰이는 듯, 아까와 달리 신중한 모습이었다.


‘과량의 근육, 오른손에 칼. 급한 성격.’


선행의 시선이 빠르게 오크를 훑었다. 그동안 상대해온 토끼와 달리, 오크는 사람과 동일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과거, 수많은 대련을 겪어본 선행에겐 되려 유리한 조건이었다.

꿈틀. 선행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오크의 완력을 재보기 위함이었다.


크롸악! 부웅!


힘싸움을 하려던 선행의 의도와는 달리 오크가 곡도를 크게 휘둘렀다. 선행은 뒤로 뛰어 공격을 피해냈다.

검을 쓰는 사람의 공격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누군가는 검이라 할 테고, 또 다른 이는 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발. 발이지.’


선행이 보폭을 넓히며 발바닥으로 바닥을 쓸었다. 마른 모래가 마찰하는 느낌이 신발 밑창 너머에서부터 느껴졌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익숙한 발놀림이 있어.’


선행이 쓸듯이 걸으며 오크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둘의 간격이 일정한 수준 이하로 줄어들자, 오크가 괴성을 내질렀다.


부웅!


오크가 곡도를 휘둘렀다. 선행은 옆으로 움직여 검을 피해냈다. 시선은 오크의 발에 고정한 채로.


‘앞발.’


선행은 몇 번의 공격을 더 유도하며 오크의 발 움직임을 확인했다. 오크는 매번 공격 직전에 왼발을 반보 정도 앞으로 내딛었다.


‘역시, 단순하네.’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신한 선행이 단검을 꼭 그러쥐었다. 그리곤 재차 오크에게 다가갔다.

사삭. 거리가 좁혀지자, 오크가 앞발을 내밀며 곡도를 들어 올렸다. 선행은 타이밍에 맞춰 오크의 왼쪽으로 돌았다.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토끼를 잡을 때와 똑같았다. 선행은 상대보다 한발 앞선 타이밍에, 상대의 급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일단 옆구리부터···.’


오크의 공격도, 선행 자신의 반격도 모두 예상대로였다. 선행은 차분한 마음으로 텅 빈 오크의 옆구리를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오크가 손목이 크게 뒤틀리기 전까진.


“흡!”


푸욱. 선행이 다급하게 들어 올린 왼쪽 팔뚝 위로, 두툼한 곡도가 꽂혔다. 선행의 접근을 눈치 챈 오크가 팔목 힘만으로 검의 경로를 비튼 것이었다.


“크윽.”


데미지가 상당했다. 굳이 스탯창을 열지 않아도 생명력이 크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뭐가 이렇게···.’


너무 강했다. 레벨 5, 전직을 위해 주는 퀘스트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선행이 딴생각을 하는 중에도, 오크는 공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묵직한 곡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가끔 단검과 부딪혀 내는 금속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발만 보면 될 줄 알았는데···.’


선행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게임을 너무 얕잡아 봤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부웅! 퍽! 깡! 까깡!


힘이 가득 실린 묵직한 공격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기세를 완전히 뺐긴 선행은 되는대로 몸을 움직여가며 간신히 목숨을 이어갔다.


오 분여 후, 드디어 오크의 공격이 멈췄다. 순전히, 곡도를 휘두르는 노동이 힘에 부쳐서였다.


“허억. 허억.”


선행의 호흡도 잔뜩 거칠어져 있었다. 그런 선행을 노려보며, 오크 역시 어깨를 들썩였다.


‘생명력이, 고작···.’


남은 생명력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왼팔 위에 완벽하게 허용한 한 번의 공격의 영향이 컸다.


‘토끼랑은 달라. 안 맞고 싸우는 건 힘들어.’


선행이 생각했다. 반격을 가정하면, 지금까지와 달리 오크의 공격을 모두 피할 수 없을 듯 했다.


‘공격 시점은 아는데, 너무 빨리 피하면 검을 비틀어 버리니까···.’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선행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오크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험···. 해야하나?’


떠오르는 방법이 없진 않았다. 어쨌든 선행은 오크의 자세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안 되면 죽기밖에 더 하겠어?”


어차피 게임 속이었다. 죽어서 레벨이 떨어져도, 내일 다시 도전할 수 있을 터였다.

마음을 다잡은 선행이 자세를 낮추고 검을 중단에 두었다. 선행의 기세가 일변하자, 오크의 걸음도 신중해졌다.

슬금슬금. 선행이 앞뒤로 배치한 발을 반보씩 움직였다. 거리를 재며 상대에게 접근하는 모습이 마치 펜싱 선수 같았다.


크롹!


선행의 몸이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자, 오크가 곡도를 휘둘렀다. 앞발을 비틀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대각베기였다.


‘여기까진 똑같아.’


들쳐 올려진 곡도를 확인하며, 선행이 몸을 움직였다. 허리가 잔뜩 뒤틀리며, 선행의 상체가 왼쪽으로 눕다시피 젖혀졌다.


부웅!


선행의 눈앞으로 오크의 곡도가 스쳐 지나갔다. 검날에 쓸린 앞머리 몇 가닥이 베어져 바람에 흩날렸다.


‘됐다. 지금.’


공격을 피해낸 선행이 허릿심으로 상체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뒤로 빠져있던 오른발을 앞으로 크게 내딛었다.


“하압!”


선행의 단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길게 쭉 뻗은 검끝이 무방비로 노출된 오크의 목덜미를 향했다.

푸욱. 초보자용 단검이 오크의 목을 꿰뚫더니, 이내 딱딱한 무언가에 걸려 멈추었다. 짧은 검신의 삼분의 일이 녹색 피부 안을 파고들어 있었다.

끄룩. 오크의 목에서 피 끓는 소리가 났다. 선행은 자신의 도박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됐···.’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려던 찰나, 오크의 왼손이 움직였다. 꽉 말아 쥔 주먹이 선행의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선행은 본능적으로 단검에 힘을 더했다. 자신의 목을 밀치는 힘에, 오크가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덕분에 오크의 주먹이 선행의 눈앞에서 멈췄다.


끄르륵.


당장 죽을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도, 오크는 땅에 쓰러지지 않았다. 되려 핏발 선 눈으로 선행을 노려보며 오른손에 든 곡도를 다시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선행은 오른발을 앞으로 뻗어 오크의 한쪽 발을 걸고는 손에 든 단검을 강하게 밀쳤다.


쿠웅!


선행과 오크의 몸이 하나로 겹쳐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선행이 잽싸게 몸을 돌리며 오크의 오른팔을 잡아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었다. 그리곤 단검과 함께 오크의 몸을 꾹 눌렀다.


끄륵, 끄륵.


오크는 왼팔을 움직이며 몇 번 버둥거렸다. 그러나 이내 힘을 잃고 바닥에 고개를 뉘였다.


띠링!

[전사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퀘스트 달성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전사양성소 게르를 찾아가세요.]

[강한 상대를 제압하여 경험치가 대량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일반아이템 ‘오크의 낡은 흉갑’을 획득하셨습니다.]

[개인특화 스킬 ‘자세 읽기’를 익혔습니다.]


“자세 읽기?”


선행의 혼잣말과 동시에 눈앞에 스킬창이 떠올랐다.


====================

[자세 읽기]

패시브, 개인특화

상대의 자세를 읽어 다음 동작을 예상합니다. 사용자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발동되며, 예상한 동작이 틀렸을 경우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


개인 특화 스킬. 말 그대로 선행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스킬이었다. 그것도 적의 다음 동작을 예상해주는. 죽을 고비를 넘긴 대가치곤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전사 오크라고?”


어쩐지 강하더라니, 게르의 설명과 달리 선행이 만난 건 낙오된 오크가 아니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 화가 났다.


“두고 보자.”


이를 바득바득 갈며, 선행이 방금 획득한 오크의 낡은 흉갑에 몸을 집어넣었다. 일반 등급임에도 방어력을 13이나 올려주는, 꽤 쓸 만한 아이템이었다.

머리와 팔 두 쪽을 갑옷 속에 밀어 넣는데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선행은 의아한 마음이 들어 머리를 다시 꺼냈다. 그리곤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작은 오크 세 마리를 발견했다.


‘헉! 언제 나타났지?’


갑옷을 입던 동작이 일순간에 멈췄다. 상체의 절반쯤이 갑옷 안에 들어가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망했다···.’


선행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숨어서 입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오크 세 마리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덩치도 방금 선행이 해치운 놈보다 훨씬 더 작았다.


‘얘네는 전사 오크는 아니구나. 덜 공격적이네. 잘하면 도망칠 수 있을 수도···.’


선행은 갑옷을 입다말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시선은 여전히 오크 세 마리를 향한 채로.

툭. 발뒤꿈치에 딱딱한 무엇인가가 걸렸다. 온몸을 감싸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선행이 고개를 돌렸다.

또 다른 오크 네 마리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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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9화 베인 19.08.03 107 3 13쪽
69 68화 기사 19.08.02 120 3 13쪽
68 67화 정화 19.08.01 85 4 12쪽
67 66화 극복 19.07.31 95 4 12쪽
66 65화 변곡점 19.07.30 94 4 12쪽
65 64화 아픔 19.07.23 118 4 13쪽
64 63화 고백 19.07.22 125 4 14쪽
63 62화 그늘 19.07.21 100 3 13쪽
62 61화 제국 기사 검술 +2 19.07.20 130 4 13쪽
61 60화 문전박대 19.07.19 135 4 17쪽
60 59화 수도 19.07.18 111 3 13쪽
59 58화 전멸 19.07.17 107 2 14쪽
58 57화 위험한 전투 19.07.16 126 2 16쪽
57 56화 기본 19.07.14 136 3 14쪽
56 55화 깨달음 19.07.13 130 2 15쪽
55 54화 두번째 데이트 19.07.12 135 2 14쪽
54 53화 선물 19.07.11 138 2 14쪽
53 52화 데이트 19.07.10 129 2 13쪽
52 51화 입금 19.07.09 149 3 14쪽
51 50화 한달의 성과 19.07.08 148 3 13쪽
50 49화 심장 19.07.07 137 3 13쪽
49 48화 실패 19.07.06 190 3 15쪽
48 47화 광란 19.07.05 142 3 14쪽
47 46화 고민 +1 19.07.04 145 3 14쪽
46 45화 부부 19.07.03 143 3 13쪽
45 44화 루크 19.07.02 147 3 13쪽
44 43화 전직 19.07.01 152 3 12쪽
43 42화 벨라 19.06.30 174 4 15쪽
42 41화 스카웃 19.06.29 173 5 14쪽
41 40화 추방 19.06.28 170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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