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스킬 빨로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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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뇨뇽
작품등록일 :
2019.05.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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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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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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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부상 유세

DUMMY

“침몰하는 배?”


조윤찬의 의문스러운 표정. 하지만 의사는 무심하게 성헌을 가리켰다.


“이 상처, 원래라면 한 달은 요양입니다. 체력 스텟이 있으니 절반은 줄어든다고 쳐요. 발라놓은 게 뭔지 몰라도, 좋은 냄새는 납니다만, 거기서 또 절반이라고 칩시다. 그래도 일주일이에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조윤찬이 물었다.


“일주일동안은 거동조차 힘겹다는 말입니다. 일주일동안 부상자를 돌보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난 아니라고 보거든요.”

“아니...”


성헌이 손을 들어 올려 백현선의 말을 막았다. 그리곤 창백한 얼굴로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됐어. 가 봐요. 꿰매준 건 고맙고요.”


성헌은 설득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럴 바엔 그냥 보내주는 게 나았다.


의사는 잠깐 망설이다가 성헌의 상대였던 남자가 쓰던 장검을 집어 들었다.


“치료비는 이걸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잠깐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온 의사의 손에는 손가락 만 한 빨대같은 물건이 두 개 들려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게 뭐냐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스틱형 몰핀입니다. 9등급 물건이라네요. 입에 물고 있으면 됩니다. 원랜 한 일곱 개 정도 있었는데... 어쨌든 한 개 드릴게요. 적어도 죽을 때 고통스럽진 않을 겁니다.”


의사는 쪼그려 앉더니 몰핀 스틱을 성헌의 가슴 포켓에 넣어주곤 확인하듯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곤죽이 된 남자의 시체를 힐긋 보곤 골목 밖으로 나갔다.


“...너희도 떠날 사람은 떠나.”


성헌이 말했다. 마치 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조윤찬은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성헌의 옆에 앉았다.


“....죽을 것 같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지, 뭐.”


백현선도 한 마디 했다.


“어, 어, 어차피 형, 안 죽을 거 알아요.”


권영오도 거들었다.


성헌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가면 섭섭할 뻔 했다.’


물론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제한시간이 끝나고 얼마 뒤. 여느 때처럼 도우미가 나타났다.


“아이고, 많이 다치셨네요.”


능글맞은 말투와 함께,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하지만 너무 순간이라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쭉 빼고 성헌의 옆구리를 살폈다.


‘...어쨌든 살아남았다? 이게 적응자와 예지사안의 조합이란 건가?’


‘적응자’란 가끔 등장하는 부류다. 마치 이날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처음부터 서바이벌에 확 적응해버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고방식부터 성격까지,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 바뀌어버리고, 모든 포커스가 생존에 맞춰진다.

이유는 정확히 밝혀진 게 없었다. 단지 잠재력의 한 종류로 설명될 뿐이다.


그리고 적응자가 예지사안을 가진 경우는 도우미로서도 처음 보는 경우였다. 다른 구역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도우미의 구역에선 성헌이 최초였다.


‘그냥 넘어가기엔 제레브한테 떡값을 너무 많이 받아먹었단 말이지.’


오만한 굴탄의 소검을 후원한 ‘윗선’의 이름은 제레브.

도우미는 가끔 코인을 대가로 윗선들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 부탁은 주로 후원의 탈을 쓴 밀수였다.


윗선들이 점찍은 참가자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물건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후원이다. 그런데 왜 밀수냐면, 원칙적으로 도우미의 개입은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게 룰이었다.


도우미의 '거짓말 금지', 편의점 알바의 '편의점 구역 밖 활동 금지'처럼 세뇌되어 버린 룰 외에는 자의적으로 어길 순 있다.


물론 '집행자'에게 걸리지 않는 선 내에서.


처음부터 중급, 즉 6급에서 4급 물건을 전해준다면, 스테이지 밸런스가 파괴되기 때문에 집행자가 바로 내려온다. 소검같은 이쑤시개를 전해준 것도 이유가 있었다.


서바이벌의 규칙을 수호하는 집행자들에게 걸리면 도우미따위는 즉결심판에, 사형 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도우미는 나름 목숨을 걸고 코인을 버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윗선들이 제시하는 금액이 너무 컸다.


특히 제레브는 이번에 깜짝 놀랄만한 금액을 지불했다.


그래서 성헌의 상처를 보고도 그냥 넘어갔다간, 제레브가 걸고넘어질 수도 있었다.

단순히 소검을 전달하는 일에도 단가가 있는데, 그것의 세 배를 주었으니 당연히 잘 봐달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제기랄, 나도 노력했다는 표시는 필요하겠군.’


어차피 집행자나, 제레브나 도우미 따위는 후 불면 죽는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생각은 길었지만, 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도우미는 곧장 입을 열었다.


“다음 스테이지 설명드리겠습니다.”

“벌써? 좀 쉬었다가 하면 안 돼요?”


백현선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도우미를 쳐다보았다.


“서바이벌의 룰이라서요. 아쉽게도 쉬는 시간 같은 건 제 권한 밖입니다. 그럼 설명 계속하겠습니다. 이번 스테이지 역시 간단합니다.”


이번 스테이지의 테마는 ‘도착’

곳곳에 있는 안전구역을 경유하여 70킬로미터 떨어진 목적지에 도착하면 된다.

안전구역 밖에는 늘 몬스터가 돌아다니며, 안전구역 내에선 전투 금지였다. 말로만 전투금지가 아니라, 다른 참가자에게 상처를 입히면 자신에게도 똑같은 상처가 생기는 식이였다.


딱!


도우미는 설명을 마치고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하늘에서 거대한 초록색 빛기둥이 떨어졌다.

빛기둥의 지름은 50미터 정도.


“이 초록색은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멀리서도 보이니 안전구역을 찾기 쉬우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도우미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한 시간은 6일입니다.”


원래는 5일. 하지만 하루 더 추가했다.

이 정도는 도우미 권한 내의 일이었다. 스테이지의 밸런스가 크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지만 하루 정돈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이건, 정말 제레브에게 성의만 보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그렇게 도우미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성헌을 비롯한 네 명은 덩그러니 남겨졌다.


“장례식 치러 줄 건 아니지?”


백현선이 시체 쪽을 가리키며 불쑥 말했다. 직접 쳐다보진 않았다. 그녀로서도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럼 자리 좀 옮기자.”


네 사람은 일단 편의점 근처로 이동했다. 편의점은 아슬아슬하게 안전 구역에 걸쳐있었다.

이미 초록색 영역 밖에는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녔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벌써부터 사냥하는 참가자들도 보였다.


“조심히...”


성헌을 부축하던 권영오는 천천히 그를 바닥에 앉혔다. 그 간단한 동작에도 성헌은 턱 근육이 도드라지도록 이를 꽉 깨물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아프면 어쩌자고.’


이래가지곤 도착은커녕 칼 한 번 제대로 휘두를 수 없었다. 차라리 팔을 다쳤더라면 반대 팔을 쓰면 되겠지만, 옆구리를 다쳐놓으니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었다.


“옆구리를 내주는 게 아니었는데...”


성헌은 후회막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허벅지나 내줄 걸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나 배운 셈 치자. 살아남은 게 어디야.’


성헌이 애써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진통제 있나 물어보고 올게.”


조윤찬이 벌떡 일어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병동이네, 병동.”


백현선은 편의점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부 어딘가 다친 사람들이 패잔병처럼 앉아있었다.

한 10명 정도로 꽤나 많았다. 공통점은 전부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전 스테이지에서 했던 행동에 짓눌렸고, 이번 스테이지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막막하다는 점에선 성헌도 다를 바 없었다.


“다치셨어요?”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성헌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른편엔 옆집 살던 최서영과 아들을 잃어버린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얼굴엔 문질러 닦은 핏자국이 좀 있었고, 옷은 방금 갈아입은 듯 깨끗했다.

둘 다 창을 들었는데, 창날은 깨끗했지만 창대엔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부 사람을 죽인 흔적이었다.


성헌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안전구역에서는 전투금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예, 좀. 어쩌다보니.”

“도와 드릴게요! 아니, 도와드리게 해주세요!”


최서영이 바짝 다가섰다. 성헌은 저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빼다가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전에 도와주셨잖아요. 계속 빚을 갚아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난 도와준 적이 없는데...?’


“네. 그 자식들 말이에요.”


최서영은 외발 삼형제를 언급했다. 편의점 주변에 없는 걸로 봐선 죽은 모양이었다. 사실 데스 매치에서 살아남았다면 더 신기했을 부상이긴 했다.


성헌은 그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뭐, 한 손이 아쉬울 때니까...’


“아저씨를 보고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저렇게 해야 살아남는구나.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 깨달았죠. 제가 여기 서있는 것도 다 아저씨 덕분이에요.”

“다 좋은데, 나 28살인데요?”


성헌이 억울한 표정으로 반문할 때, 조윤찬이 돌아왔다. 그는 최서영을 보고 ‘살아남았구나.’라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최서영은 고개를 까딱했고, 조윤찬은 다시 성헌을 돌아보았다.


“진통제 안 판다네, 중독의 여지가 있다면서. 원래 있던 물건들도 다 사라졌을 거래. 그래서 이거라도...”


조윤찬이 수줍게 내민 건 감기약이었다.


“어쩔 수 없지. 고맙다.”

“일단 휠체어부터 구해야겠어요.”


최서영이 다시 끼어들었다.


“휠체어?”

“네. 아니면 리어카라도. 업고 다닐 순 없잖아요.”

“지, 지, 지게도 있고요.”


권영오가 거들었다. 그에 성헌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고려장이냐?”


잠깐 정적인 감돌았다.


“불안해서 지게 위에 앉아있겠어? 언제 버릴지도 모르는데.”

“지게는 좀 곤란할 것 같네요. 너무 흔들려서.”


최서영이 막타를 날렸다. 늘 그렇듯 권영오의 사망 모션은 음울하고 음침한 분위기였다. 그는 검은 아우라를 한껏 뽐내며 구석으로 짜졌다.

백현선은 피식 웃었고, 조윤찬은 급히 권영오의 곁에 앉았다. 격려가 필요한 때였다.


“아주머니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최서영이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야, 우리 병한이가 간 곳이 근처라... 거기 가봐야 해요.”

“아...”


아주머니는 최서영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고개를 까딱 하더니 안전구역 밖으로 향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들이 죽었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백현선이 권영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린 휠체어나 구하러가자. 저기 정형외과나, 노인복지회관에 가면 있겠지.”


그러자 조윤찬의 격려에도 풀어지지 않던 그의 표정이 단번에 환해졌다.


“아, 아, 알겠어!”


조윤찬은 그런 권영오의 뒷통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요.”


최서영도 따라 붙었다.


조윤찬도 성헌의 곁을 지켰고, 그렇게 세 사람도 안전구역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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