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천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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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문
작품등록일 :
2019.05.2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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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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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도사 2

DUMMY

민기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도사에게 다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것이 꿈에서 들은 이야기라는 말도 했다.

그랬더니 도사는 한 손으로 합장을 하며 말했다.


"나무 관세음보살."


민기도 마주 합장을 하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순간 머릿속으로 방금 전 보았던 할머니와의 정사 장면이 떠올라 민기는 마구 머리를 흔들었다.


"일어나. 챙기고 나와."


도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횅하니 사라졌다.

민기는 부랴부랴 옷을 챙기고 가방을 들고 도사를 쫓아갔다.




**



도사가 사는 곳은 정말로 산꼭대기 부근이었다.

그곳까지 올라가는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도중에 열 번은 쉰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체력장 멀리 달리기를 뛴 이후로 이렇게 숨차게 몸을 움직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도사는 할머니에게서 받은 꽤 무거워 보이는 봇짐까지 어깨에 멘 채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큼성큼 올라갔다.


"젊은 놈이 뭐 그리 몸이 약해?"


민기는 숨이 차 대답도 하지 못했다. 건장한 체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체력이 달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민기였다. 그런데 이 영감은.... 정말 뒤에서 보고 있으면 휭휭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마치 얼마 전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본 스파이더맨이 건물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정말로 휭휭 땅을 차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도사님. 멀었나요?"


민기는 이 소리만 백 번은 한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양강 도사의 집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발아래로 백두대간의 위용이 그대로 느껴졌다.

정말이지 그냥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이 들것 같았다.

하지만


"뭐 하고 섰어? 어여 들어와."


안에 들어가 본 작은 움막집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전기도 수도 시설도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건전지로 들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 없었다.


"도사님. 그래도 일기예보 정도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민기가 조심스럽게 얘기하자 도사는 코웃음을 쳤다.


"일기예보? 뭐하러? 그놈들 보다 내가 더 잘 맞추는데."

"아 네...."


그래도 텃밭에는 파, 고추, 오이가 잘 여물어 있었고 창고 안에는 말린 배추 시래기며 버섯이며 칡 같은 먹을 만한 것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특히 집 안에는 책이 아주 많았는데. 대부분 주역이나 불교, 동양 사상 관련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위험하진 않나요? 지리산에 곰이 산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곰이 무서워? 다 내 부하들이야!"

"아 네......."


알면 알수록 조금... 정신이 이상하지 않나? 민기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민기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버지는 왜 내게 이분을 만나보라고 하신 것일까?

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복수를 위해 나를 도울 인물로 아저씨를 꼽은 것인데. 난 모르겠다. 도대체 이분이 내게 어떤 도움을 줄지.'


첫날 밤.

하루종일 온 산을 돌아다니며 나물을 캐거나 산삼밭을 일구는 일에 민기를 부려먹던 도사는 저녁밥을 지어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민기에게 말했다.


"그래서... 자네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도사는 해가 떨어져 어두운데도 불도 켜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그냥 사는 것이었다. 산 짐승들처럼.

그러다 보면 익숙해진다나? 실제로 도사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민기는 어둠 속에서 도사의 목소리만 들리는 방 안에서 갑자기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잡고 있었다.


"글쎄요.... 일단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겠지요."

"왜?"

"네?"

"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데? 그건 아버지 원수지 자네 원수가 아니잖아."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제 원수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아비 원수를 갚다 자네 인생을 다 보낼 셈이야?"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없고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마치 천주교 성당에서 신부님에게 고해성사하듯 그렇게 어둠 속에서 민기는 자신의 속마음을 도사에게 다 털어놓았다.


"어떻게 원수를 갚을 건데?"

"그걸...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네. 솔직히 전... 도사님이 알려주실 거라. 기대했습니다."

"뭐를? 자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방법을 말인가?"

"네."

"그렇지 않아. 난 속세를 너무 오래 떠나 있었어. 아무것도 몰라."

"......."

"난 6개월 후에 죽어."

"네?"


민기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돌아가신 다고요?"

"응."

"어디 아프세요? 그럼 병원을 가셔야죠."

"병원? 쳇! 천명이 다했는데. 억지로 늘려서 뭐 하려고? 나중에 염라대왕한테 찍히기나 하지."

"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럼."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까지 나랑 같이 있던지. 내가 해줄 것은 없어. 하지만 여기 있으면 비우게 되지."

"비운다고요? 뭘 말입니까?"

"자네를. 아버지 죽인 놈을 쳐 죽이고 싶지? 그런 자네의 마음을."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민기는 혼란스러웠다.


"전 복수를 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자네가 나한테 방법을 모르겠다고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야. 복수심만 가득하면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안 돌아가지. 그러니까 일단 그런 마음을 비우면. 그다음엔 시야가 맑아지고 머리가 돌아가거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자네 아버지는."


갑자기 도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날 살려주셨네. 폭격에 한쪽 팔이 날아가 정신을 잃은 나를 업고 빗발처럼 내리는 총탄을 피해 달리셨어. 자네 그게 어떤 건지 아는가?"


민기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모...모르겠습니다."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게 바로 용기네. 용기고 진정 남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그 정신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이지."


새삼 민기는 숙연해졌다. 그리고

왈칵 뜨거운 어떤 것이 목구멍으로 차올라왔다.

민기는 그런 아버지를 창피해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자네 아버지와 같은 그런 최고의 선을 보여줄 인간이 이 속세에 과연 몇이나 될 것 같은가?"

"......."

"난 오래전 자네 아버지 소식을 듣고 아주 안타까웠어. 저렇게 다른 사람 운전이나 할 분이 아닌데.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내가 왕천근이라는 사람과 그 집안에 대해 알아봤거든."

"......."

"나무 관세음 보살."


도사의 한숨 섞인 염불 소리에 민기는 새삼 산다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자네 아버지를 닮았다면 큰일을 하게 될 거야. 난 믿어 의심치 않네."


민기는 듣기에 거북했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도사는 평소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못해도 썩어 빠진 이 나라 정치판 정도는 바꾸지 않겠어? 안 그런가?"


민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사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어떤 커다란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다.




**



6개월 동안

민기는 도사를 따라다니며 그의 텃밭 가꾸기며 산나물 채집, 땔감 나무 베기 같은 허드렛일을 돕기도 했지만, 도사는 민기에게 수련의 한 방편으로 도술도 연마하도록 했다. 때론 '여기가 소림사인가?' 싶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으로 민기의 몸은 몰라보게 단단하고 강해졌으며 또 상대의 혈을 눌러 제압하는 기술은 도사도 칭찬할 정도로 뛰어나 노루나 멧돼지도 제압할 정도의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민기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좋은 공기에 완벽한 자연식 거기다 산삼 같은 특식까지 섭취한 데다 꾸준한 강도 높은 수련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도사는 어느 날 민기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제 때가 됐구나."


밝게 웃는 모습에 민기는 설마 하고 믿지 않았다.


"도인은 자신의 죽을 때를 아는 법. 난 이제 혼자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할 테니 너도 이제 돌아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도사님!"


도사는 한쪽 팔에 늘 차고 있던 염주를 벗어 민기에게 주었다.


"이게 뭔지 알아?"

"단주(短珠) 아닙니까?"


12개의 대추나무로 꿰어 만든 작은 염주.

민기는 갑자기 도사가 왜 그것을 자신에게 주려는지 의아했다.


"이건 그냥 단주가 아니야."

"그러면요?"

"이걸 차고 악수하면 그 상대방의 미래가 보이지."


그간 도사로부터 믿기 힘든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이것만큼은 민기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도사님 아무리......."


믿지 못하겠다는 민기의 표정에 도사는 말했다.


"그럼 니가 그걸 차고 나와 악수를 해보면 알 거 아니야."


민기는 힐끗 도사의 눈치를 본 다음. 정말로 도사의 단주를 자신의 오른손에 차 보았다.

도사가 자신의 하나 뿐인 팔을 쑤욱 내밀었고 민기는 아무 생각 없이 단주를 찬 오른손으로 도사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도사의 미래가 보였다.

민기가 그것이 도사의 미래라고 느낀 건 활짝 웃는 도사의 옆에 민기 아빠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둘은 너무나 그림 같은, 마치 윈도 xp 바탕화면 같은 들판의 나무 밑에서 껄껄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때 이제 내 말을 믿겠나?"

"도사님!"


민기는 너무나 신비롭고 감동적인 체험에 그만 도사를 끌어안고 눈물을 터뜨렸다.


"어허! 뭐 하는 짓이야?"

"도사님!"


민기는 도사를 끌어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아버지처럼 이제 양강 도사도 보내드려야 한다.


"울 것 없다. 다 순리대로 되어가는 것인데. 울게 뭐가 있어?"

"......."

"그리고 단주는, 앞으로 정치를 하려면 사람 만나는 게 일인 너에게 도움이 되겠지? 나도 입적하신 노스님으로부터 받은 건데. 산속에서 혼자 사는 나에게 참 필요 없는 요물이다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이제 제 주인을 찾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고 좋네."


민기는 바로 그날로 왔던 그대로 들고 온 냅섹을 매고 산을 내려갔다.

하산하는 민기에게 양강 도사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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