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마리 - 봄에 피고 지는 꽃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13.11.07 00:20
최근연재일 :
2018.07.23 00:16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594
추천수 :
75
글자수 :
200,649

작성
18.07.18 13:22
조회
149
추천
2
글자
15쪽

#20. 조금만 더 천천히, 조금만 더 오래

DUMMY

키르센스 절대력 2133년 7월 5일 밤.

콜로세린 영주의 집에 아빌런이 찾아왔다.


“더워서 왔어. 이 동네가 시원하잖아. 사나흘쯤 쉬었다 가도 돼?”

“네! 잘 오셨어요.”

“엘린츠는?”

“경비대 갔는데, 올 때 다 됐어요.”


아빌런은 레이네가 안고 있는 아기의 손가락을 만지며 웃었고, 아기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아빌런을 보았다.


“너희 딸은 볼 때마다 큰다?”

“얘가 좀 잘 커요.”

“얘는 클수록 귀여워지네. 처음에는 아빠만 닮아서 좀 그랬는데.”

“풉!”

“아가야. 많이 먹고 많이 배우고 잘 커서, 이다음에 꼭 내 아들하고 결혼해라.”


그때였다.


“결혼도 못한 놈이 아들은 무슨.”


엘린츠가 대문을 젖히고 들어오며 말했다.


“여보! 왔어요?”

“응. 괜찮아? 별일 없었고?”

“네.”

“너는 왜 왔냐?”

“시원한 데서 좀 쉬려고.”

“그래. 거실에 들어가 있어. 차 마시자.”


그러자 레이네가 엘린츠의 옷깃을 잡았다.


“차는 내가 끓일게요. 엘레나만 잠깐 맡아 줘요.”

“그래.”


레이네는 아기를 엘린츠에게 넘겨준 후 휠체어를 밀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엘린츠가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자 아빌런이 말했다.


“그냥 네가 밀어 주지.”

“집 안에서는 싫어해.”

“······.”


봄꽃마리가 지기 시작하던 4월 23일. 레이네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각자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딸의 이름을 엘레나로 지었다.

산후 조리를 마친 후 레이네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 헬로드 신드롬의 마수가 발목 윗부분까지 뻗었고, 그전부터 그녀의 발에는 근육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무리하게 걸으려다 넘어져 골절상까지 입었다.


“여보. 휠체어 사 줘요. 그리고 당신 없는 시간에 집안일 도와주실 분 찾아볼게요.”


엘린츠가 고민하던 말을 레이네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집안의 문턱이 모두 사라졌고, 레이네의 그림은 날로 늘어났다.

부부는 빠르게 현실을 인정했고 밝게 웃었으며, 병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레이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엘린츠의 도움 없이 혼자 했고, 엘린츠 역시 도와주지 않았다.

콜로세린 영주의 저택 내부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갔다.

부부의 친구들은 그 분위기를 편안해 했고, 이들의 집에서 이따금 머물곤 했다.


“네가 부재중일 때가 언제지?”

“월요일부터 목요일, 오후 2시 반부터 6시 반까지.”

“그때는 네 아내 혼자 딸을 보는 거야? 집안일은?”

“스토미라는 분이 도와주신다.”

“다행이네. 너는 괜찮냐?”

“괜찮다 뿐이냐? 아주 행복해.”


거짓 한 점 없는 미소.

아빌런은 머쓱하면서도 새삼 아릿했다.

두 남자가 거실에 마주 앉았고, 레이네는 휠체어의 탁자 위에 차를 끓여 들고 왔다.


“고마워. 잘 마실게.”


아빌런이 연꽃잎 차를 머금자 부부도 차를 들기 시작했다.


“클라시오는 잘 지내냐?”

“걔는 요새 연애하느라 바빠. 매일같이 루베르 강을 건너다니더라.”

“와! 잘됐네요.”

“상대가 6대마왕국 사람이야?”

“응. 글로리아라고, 도네프 성에 산다더라.”

“후후후. 그래서 뜸한 거였네. 우리 언제 상회에 쳐들어가야겠다.”


엘린츠가 너털웃음을 쏟자 레이네도 거들었다.


“여보. 루베르 강 가서 과일도 먹어요.”

“후훗! 좋지. 내가 파인애플로 샐러드 만들어 줄게.”


아빌런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부부는 절친들이 놀러 와도 자기들끼리 얘기하곤 했고, 아빌런은 그게 참 부러웠다.

부부는 현실 속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고, 아빌런의 마음은 열 달 전에 멈춰 있었다.


“으애앵!”


엘레나가 엘린츠에게 얌전히 안겨 있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레이네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얘가 밥 찾는 건 딱 지 아빠라니까? 나 안방 갈게요.”

“응. 조심하고.”


레이네는 엘레나를 받아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녀석이 내 여인 좀 적당히 괴롭히지. 시도 때도 없이 말이야.”

“아기가 배고픈데 그런 걸 따지면서 울겠냐?”

“후후후. 그렇긴 하지.”


그때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고, 엘린츠가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선생님! 저예요.”


샐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서서 눈이 커진 엘린츠에게 보퉁이를 안겼다.


“엘레나 옷이랑 산양유 샀어요.”

“어어, 그래? 고마워.”

“산양유가 아기들 머리에도 좋고 알레르기도 안 나고, 엄마 젖은 아빠도 나눠 먹어야 된다던데.”

“······!”

“저, 사흘쯤 쉬었다 가도 되죠?”


샐리가 거실로 들어가려 하자 엘린츠가 그녀를 붙잡았다.


“저기. 샐리?”

“네.”

“아내가 안방에 있는데, 거기 들어가 있어라.”

“왜요?”

“아빌런이 와 있어서.”

“······.”

“일단 안방에 들어가 있어. 내가 잘 얘기할게.”

“아니에요.”


그런데 아빌런이 자신의 짐을 들고 나왔다.


“엘린츠. 나 갈게.”

“어. 그······.”

“잠깐만요.”


샐리가 나가려던 아빌런을 막아섰다.


“오빠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죠?”

“······없어.”

“나는 있어요.”

“······.”

“잘됐네. 안 그래도 나, 며칠 쉬었다가 오빠 찾아가려고 했는데.”

“하아아.”


아빌런은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뱉었다.

엘린츠는 아빌런이 거짓말을 했음을 알고 있었다.


“갈게. 쉬어. 미안하다.”


아빌런은 샐리 쪽으로 이 말을 하고 곧바로 대문을 나갔다.


“거기 서요!”


샐리가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그를 쫓아 나갔다.

레이네도 마당에 나왔다.


“여보. 아빌런님은 아직이죠?”

“응.”

“······.”

“다 먹였어?”

“아직이요.”

“엘레나 다 먹이고 우리는 차나 마시자.”

“네.”


엘린츠는 대문을 닫고 레이네의 휠체어를 돌려 주었다.


***


빠른 걸음으로 걷는 아빌런을 샐리가 따라잡았다.


“서라고요! 나 오빠한테 할 얘기 있다니까요?”

“하아.”


아빌런은 연못가의 나무 밑에 앉았다.

샐리가 멈춰 서자 아빌런은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내밀었다.


“왜요?”

“숨 돌려.”


샐리는 한동안 물을 마셨고, 아빌런은 말이 없었다.


“학교 여자들이 오빠한테 사귀자고 말했죠? 대여섯 번쯤?”

“······.”

“다 잘랐다면서요? 마음에 담은 여자가 있어서 관심 없다고.”


아빌런은 고개를 돌렸다.


“그 여자, 나죠?”

“······.”

“대답해 봐요.”

“······.”

“대답해 보라고요!”


샐리의 외침에 아빌런은 먼 산을 바라보며 쓰디쓴 미소를 짓다 말했다.


“여전하구나. 답 정해져 있다, 너는 대답이나 해라.”

“······.”

“맞아. 너야. 난 그게 좋았지.”

“그럼······.”

“미안하다.”


예상치 못한 말에 샐리의 눈이 떨렸다.


“뭐가 미안한데요?”

“······.”

“꼭 두 번 물어야 대답해요?”

“그, 네 질문에는 거짓을 말할 수가 없어.”


샐리는 아빌런이 그대라고 말하려다 말았음을 알았다.


“샐리.”

“네.”

“그냥 편하게 생각해도 돼.”

“그러면 오빠가 그렇게 하든가.”

“그렇게 할게. 미안하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고요?”

“나는 여전히 너를 불편하게 하고 있네.”

“······.”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진심이야.”

“알아요.”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게 할게.”


왕립대학에 입학한 후 샐리가 두 번의 만남과 이별을 거치는 동안, 아빌런은 자신에게 접근한 여인 일곱 명을 거절했다.

아빌런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방을 들쳐 멨다.


“갈게. 들어가서 푹 쉬어. 조심하고.”


아빌런이 천천히 샐리에게서 멀어졌다.


“오빠!”


걸음이 느려졌다.


“오빠 힘들죠?”


자리에 멈춰 섰다.


“정 힘들면 나 잡아요.”


몸이 흔들렸다.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 돼요?”


뒤돌아섰다.


“미안해.”

“미안하단 소리만 하지 말고 이리 오라고요!”


아빌런이 샐리에게 돌아왔다.


“한동안 엘린츠가 미웠어.”

“왜요?”

“그대를 너무 일찍 소개시켜 줘서.”

“······.”

“내가 지금쯤 그대를 소개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더 알고 더 잘했을 텐데.”

“됐어요.”

“그대가 하자는 일은 모두 좋은 일이었으니까.”


샐리는 아빌런의 말뜻을 모두 알고 있었다.


“교수님이 나한테 그랬어요. 오빠 한 번만 봐 달라고. 그 말씀 안 하셨으면 이러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샐리가 말한 교수님은 아빌런의 아버지인 아비든 자작이며, 이 말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리라.


“고마워.”

“들어가요.”


샐리가 아빌런의 팔에 팔짱을 끼고 확 잡아당기자 아빌런이 스르르 끌려왔다.

대부분의 결정을 샐리가 하고, 아빌런이 동의하여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

그게 이들이 연인이었을 때 만나던 방식이었고, 이후 샐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이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달칵.


“엇!”

“어머!”


엘린츠와 레이네가 베란다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뭘 어떻게 돼요. 보는 대로지.”

“그럼 당분간 ‘이이이이’ 들을 일 없는 건가?”

“당분간 아니에요, 이제.”


샐리가 아빌런의 팔을 더 꽉 잡아당기자 엘린츠도 미소를 띠었다.


“어서 들어가서 짐 풀고 쉬어.”

“응.”

“손님방은 하나뿐이니까 알아서들 하고.”


아빌런의 눈이 커졌다.

엘린츠는 레이네의 휠체어를 잡았다.


“여보. 우리는 들어가자.”

“네. ······샐리? 너희 차는 알아서 마셔.”

“음식도 내가 할 거다! 샐러드 아주 지겨워 죽겠다고! ······오빠! 나 스튜 잘해요.”

“알아. 맛있잖아. 그런데 나는 스튜 못 하는데.”

“됐어요. 학기 내내 공부만 하드만.”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쉬어.”


엘린츠가 아빌런의 등을 손님방으로 떠밀었다.


“걱정 하나 덜었어요.”

“잘 됐어. 이제 쟤들은 알아서 놀겠네.”

“네.”

“우리도 쉴까?”

“들어가요.”


부부는 안방으로, 아빌런과 샐리는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휴우. 샐리. 나 먼저 씻을게.”

“그래요.”


아빌런은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그의 가슴이 꽉 막혔다.


푸웁 푸웁.


샐리는 아빌런이 물을 움켜내는 소리에 뭔가 다른 소리가 섞였음을 깨달았다.


“차 마시고 있어요. 금방 나올게요.”

“응.”


아빌런과 샐리는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도 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지만, 샐리는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자요.”

“응.”


샐리가 침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올라가 눕자 아빌런은 불을 모두 끈 후 그녀의 옆에 누웠다.

묘한 공기가 넓은 침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샐리?”

“네.”

“내일 시내 나가자. 반지, 목걸이, 귀걸이는 내가 잘 몰라.”

“그래요.”


이 말의 뜻을 모를 샐리가 아니다.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요.”

“나는 불편해.”


아빌런이 침대 가장자리에 누운 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떨어져.”

“나, 침대에서는 얌전해요.”

“알아. 그런데 여기서는 그러지 마.”

“네?”

“이리 와. 이제 절대 못 멀어져.”

“······!”


아빌런이 샐리를 세게 잡아당기자 샐리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


9월 29일은 엘린츠와 레이네의 작은 기념일이다.

엘린츠가 개인 지도를 마친 후 부부는 엘레나를 맡기고 시내로 나왔다.


“오늘은 샐러드 더즌 말고 다른 거 먹어요.”

“전어 샐러드가 있을 거야. 어때?”

“와! 그 연한 생선도 샐러드가 돼요?”


부부는 ‘이름은 없지만 그들이 인정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이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2층에 위치한 이 식당은 이제 레이네가 혼자 올라갈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먼저 업고 올라가면 돼.”

“그러다가 누가 휠체어 훔쳐 가면 어떡해요.”

“금방 내려오면 되지.”

“안에 종업원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요?”

“으음. 그럴까?”


엘린츠는 레이네를 세워 두고 먼저 식당에 들어갔다.

점주와 점원이 보이지 않았고, 홀 안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만 있었다.

엘린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어. 실례 좀 하겠습니다.”

“예?”


엘린츠는 여자를 보고 놀랐다.

레이네와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게서 칼날처럼 강인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만, 제 아내가 몸이 불편해서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아! 예. 물론입니다.”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엘린츠를 따라 나왔다.

레이네는 자리에 있었다.


“이분이 우리를 도와주신대.”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레이네의 인사에 남자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휠체어를 옮기겠습니다. 아내분 먼저 안으시지요.”

“예.”


엘린츠는 레이네를 번쩍 안아 들었다. 며칠 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 그의 가슴이 약간 아릿했다.

그는 레이네를 안아 들고 홀의 창가 자리에 섰고, 남자는 의자 하나를 빼고 휠체어를 세웠다.


“휠체어 여기 놓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식사 행복하게 하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엘린츠는 레이네를 휠체어에 앉혔고, 남자는 인사를 건넨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저분 진짜 친절하시네요?”

“그러게. 나이도 내 또래 같은데.”

“이쪽으로 앉아요.”


레이네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홀 반대쪽의 연인에게로 갔다.


“저분들은 부부는 아닌가 봐요. 연인이고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왜?”

“그냥, 느낌이 그래요.”


엘린츠는 고개를 끄덕였고, 점원에게 전어 샐러드와 고등어 정식 요리를 주문했다.


“저 여자는 나랑 머리 색깔이 똑같네요?”

“나도 아까 놀랐어.”

“기사 같은데, 되게 강해 보여요. 힘도 마음도.”


저 남자를 사랑하는 눈빛이 가득한데, 참 건강해 보여!


레이네는 여자의 건강함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애피타이저 드십시오.”


레이네는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보고 놀랐다.


“어? 고기를 애피타이저로 줘요?”

“남편분이 고기를 좋아하시니까요.”

“우와! 감사해요.”

“맛있게 드십시오.”


제육볶음이 나오자 엘린츠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쉬이익!


저쪽 테이블의 옆 공간에서 빛이 솟아오르더니 빛으로 만든 도형이 나타났다.


“저게 뭐예요?”

“정령 소환진이야. 남자가 정령 소환술사네.”


친절한 남자가 주문을 외우려는데, 강한 여자가 뭐라고 말하며 붙잡아 앉혔다.

그 모습을 본 엘린츠가 말했다.


“저 남자, 마법사 같아.”

“왜요?”

“정령을 소환하려면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돼. 그리고 손에 수정 반지가 있어.”

“그럼 마법사랑 기사 커플이네요?”

“그렇겠네.”


레이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돼지고기를 집어 엘린츠의 앞에 내밀었다.


“아, 해요.”

“아-.”


반대편 테이블의 연인이 두 사람의 얼굴에 걸린 행복한 미소를 보았다.


부부는 식사를 마친 후 시내 번화가로 나왔다.


“올해는 낙엽이 아직이네요?”

“그러게. 꽤 더웠잖아.”

“사랑의 분수까지만 갔다 와요. 빨리 가도 돼요.”

“그럴게.”

“내가 닭꼬치 사 줄까요?”

“고마워.”


부부는 이제 오랫동안 걷지 않는다. 휠체어를 밀며 걷기에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어서다.

이윽고 이들은 사랑의 분수 앞에 도착했다.


“소원 빌어야죠?”

“응.”


두 사람은 분수에 은화를 던져 넣고 소원을 빌었다.


키르센스여!

제가 감히 시간을 막으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나이다.

다만 이 시간을 좀 더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르게 하시옵소서.

아내의 아픔이 조금만 더 천천히 오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함께할 시간을 조금만 더 오래도록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올리는 부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봄꽃마리 - 봄에 피고 지는 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봄꽃마리> 재연재 관련 공지입니다. 18.06.25 497 0 -
공지 출판 관련 공지사항입니다. 16.10.25 261 0 -
24 #24. 에필로그 18.07.23 111 2 7쪽
23 #23. 꽃은 져도 또 핀다 18.07.23 80 2 10쪽
22 #22. 영혼이 머무를 준비 18.07.20 62 2 14쪽
21 #21. 하루를 한 달처럼 18.07.19 116 2 13쪽
» #20. 조금만 더 천천히, 조금만 더 오래 18.07.18 150 2 15쪽
19 #19.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어 행복하다 18.07.17 108 2 17쪽
18 #18. 하나 되어 세상의 끝을 향해 나아가다 18.07.15 141 2 22쪽
17 #17. 상처의 운명을 속사화와 시처럼 살다 18.07.14 109 2 24쪽
16 #16.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아픔 18.07.12 90 2 21쪽
15 #15.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18.07.11 127 2 24쪽
14 #14. 그들만의 거대한 도전 18.07.06 119 2 19쪽
13 #13. 간절한 마음이 끝에 닿은 날 18.07.04 110 2 22쪽
12 #12. 텅 빈 무대에서도 외롭지 않은 이들의 춤 18.07.03 120 2 21쪽
11 #11. 비 오는 밤 18.07.02 114 2 21쪽
10 #10. 세상을 다 갖다가, 속상하다가 18.07.01 162 2 17쪽
9 #9.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 18.06.29 129 2 21쪽
8 #8. 행복을 품은 그림 18.06.28 99 2 19쪽
7 #7. 봄꽃마리 - 봄에 피고 지는 꽃 18.06.27 116 2 20쪽
6 #6. 가로수길에서의 고해(告解) 18.06.26 105 2 19쪽
5 #5. 예쁘고 귀여워서 더 무서운 소녀 18.06.26 139 2 21쪽
4 #4. 페퍼민트 향기에 씻겨 내려가다 18.06.26 110 3 13쪽
3 #3. 감사의 선물 18.06.25 99 3 17쪽
2 #2. 꿈속에서, 그리고 꿈 밖에서 16.05.16 615 3 19쪽
1 #1. 겨울에 피어난 꽃 13.11.10 1,429 24 2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