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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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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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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의 시[Episode : 어떤 복수] 04

DUMMY

어찌하지 못함이 원통하나, 죽음이 아닌 삶을 택한 건 자신이라 입가에 쓰디쓴 웃음이 걸릴 때, 여전히 태연자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내가 원망스럽겠지. 하나, 최동민 뒤에 송광극의 후계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송광극이라면 검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전에 먼발치에서 한 번 뵙기는 했는데, 최동민이 서포트하는 게 그분의 제자라는 뜻입니까?

-그래, 이제는 진정이 좀 되느냐? 네 염원이었던 복수가 이루어질 거라는 말도 허언이 아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르신, 검주께서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제자라니 조금 불안합니다. 그쪽은 기백이 넘지 않습니까?


홀로 혈사를 쓴 검주가 직접 나선다면야 숫자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 만은 기껏 초행일 게 분명한 제자라니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하나 이어지는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흑검을 이었다. 또한 혼자도 아니고.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네 아들도 자기 한 몸만 잘 간수해내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게다.

-거기까지 신경을 다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데 어르신, 저기..그자는 누구입니까?

-그자라니?

-제가 이선생 일로 학교에 찾아갔을 때 만났던, 그러니까 동양인이고 나이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키는 180정도 였는데..


그때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하려 들자 넉넉한 목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선한아.

-예, 어르신.

-두 번 다시 그에 대해서 언급지 말고 눈을 씻어라. 당대 흑검주와 함께 한다는 것만 명심하고, 모든 명령은 최동민으로부터 내려온다는 것만 기억해.

-예? 최동민이 명령권자라고요? 아니, 어르신이 아직 건재하신데..

-시대가 변하지 않았다면 내 너를 잊었을 게다. 하나 내가 아닌 그가 너를.. 아니지,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작년에 최동민이 죽인 포인터가 125명, 그에게 복종한 포인터가 143명이다.

-세상에, 진짜 피바람이 불었겠군요. 하지만 그 정도로 어르신을 흔들 수는 없었을 텐데.. 설마 검주가 직접 관여한 겁니까?


다시 너털웃음이 들려오고 어느새 나긋해진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쉽게도 최동민은 허수아비가 아니란다. 여하튼 이제부터 모든 정보는 눈을 중심으로 재편성될 게다.

-알겠습니다. 한데 그 눈이라는 건 또 뭡니까?

-통화가 너무 길어졌구나, 한 번 찾아오너라.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꾸나.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이만 들어가십시오.


4년 전과 다름없는 통화를 끝내고 한숨을 푹 내쉬던 선한은 차에서 언제 내렸는지 자신을 보고 있는 아들을 향해 힘없이 미소를 보내곤 돌아섰다. 어디서부터 들었는지 궁금했지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개 같은 선택.” 이제 자신과 아들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름 평범하게 원하는 대로 굴러갔던 일상이 불과 십여 분만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뒤틀렸는데 혼자서만 병신처럼 모르고 있었으리라. 입술이 바싹 마르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아들에게 손짓했다.


“유야, 오랜만에 아버지랑 한잔할까? 고기도 좀 굽고..”


택시기사가 나섰다는 건 일이 크게 벌어진다는 말이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앞일을 장담치 못하리라. 오늘 기울일 평온한 술 한잔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어쩔 수가..”

“그래, 나도 안다. 한 번 휘말리면 그게 그냥.. 어쩔 수가 없는 거란다. 그러니까 이제 죽어라 내달려 봐야지.”



불과 일주일 뒤, 업계 삼류에 불과했던 맑음이 정·재계로 줄을 뻗은 전국구 업체 공방을 쳤다. 그 전쟁은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참으로 치열하고 너저분하며 잔혹했다. 겨울의 재앙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벌어진 싸움이라 대규모 전쟁으로 확전 될 거라 여겼는데, 근 사흘여 만에 끝났으니 신기한 일이다. 물론, 아직도 여기저기 뒷골목에서 칼부림이 벌어졌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혹시 그 사건 때문일까?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조직, 공방과 긴밀하게 이어져 패밀리를 구성하던 보스들의 머리가 단 하루 만에 모조리 잘렸다. 아직도 뉴스와 신문에 오르내릴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현시점에서 깡패 두목 몇 놈 죽은 게 무슨 대수랴?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오히려 전부 다 죽이라고 입 모아 외치겠지.


어쨌든 이쪽 바닥에서 벌어진, 아직도 치열한 공방과 맑음의 사투는 제법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학살조와 같은 선상에서 언급되지는 않을 거다. 한국의 뒷골목은 레벨이.. 그래도 궁금하다면 뒷골목에 잠시 돌았던 소문을 훑어보자.


전국구 조직들의 수뇌부를 단 하루 만에 쓸어버린 자는.. 듣고 웃지나 마시길, ‘쌍검을 쓰는 외눈의 사신’이란다. 그래, 모든 이가 당신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으로 세를 넓혀 더는 깡패나 건달이라고 볼 수 없었던 모그룹의 회장과 간부들의 목은 백인 남성이 땄다는 거다. 그것도 이번에는 대검 한 자루로 그랬단다. 말 그대로 개판인 곳이 한국이라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쌍검에 대검이라니?


그래, 어차피 소문에 불과하다. 그들이 머무르고 스쳐 간 전장에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으니까. 언제나 부풀려지고 꾸미는 게 말이라는 것을 알 정도만 되어도, 이런 헛소문에 귀 기울이지 않으리라.


그런데 설마 그게 다냐고? 조금 더 흥미진진한 건 없냐고? 사실은 소문이 하나 더 있기는 한데.. 이건 더 어처구니가 없다. 현재 뒷골목에서 제일 잘나가는 패밀리 맑음의 수장이 복수를 위해서 악마와 계약을 했단다.


잠깐, 욕하지는 말고 조금만 더 들어 보길 바란다.


그들은 악마와 계약해서 얻은 힘으로 공방을 쳤는데, 그 대가로 산 재물을 500이나 바쳤단다. 혹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내의 복수를 위해서 계약한 거라는데, 그래도 설마 복수 같은 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죽였으려고.


한데, 그게 사실이라면 왜 뉴스에 나오지 않았을까?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는데, 한 번 들어보겠는가? 어떤 복수를 위해서 선택한 일이 가져온 대가를..


뼈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경기[Economy]가 고통에 요동칠 때마다,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어 사회를 강타했다. 수많은 사람이 절벽 밖으로 내몰려 목숨을 잃었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암흑기에 모두가 소리 없이 절규했다.


‘또 일가족 자살이야? 아주 유행이네, 유행.’


나라 전체를 뒤덮은 공포와 분노를 먹어 치운 혼란이 그 덩치를 한없이 불려가는 지옥 같은 시기였음에도, 초록은 만개하야 어느덧 여름이 왔음을 알렸다. 저기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도 계절에 걸맞은 푸름이 흐드러져, 계절의 얼굴이 곧 산이라는 말이 고주망태의 허튼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한데 저 아름다운 산을 새벽녘부터 오르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으니..그들의 몸에서는 역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산 정상에 위치한 제법 널따란 공터에서 걸음을 멈춘 자들은 모두 한곳을 보며 숨죽여 기다리기 시작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일그러지며 세상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자, 검은색 카고바지에 조금 타이트한 흰색 셔츠를 입은 여인이 보드라운 입술을 열어 감탄을 뱉는다.


“세상에, 그도 저런 표정을 짓네요?”


그녀는 어깨 어림에 살짝 닿은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는데, 투박한 옷차림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음에도 노을과 어우러진 모습이 그저 아름다웠다. 인간이 낳은 게 아니라 신이 조각하면 저런 외모가 나올까?


세상 모든 여인이 그녀와 한 앵글에 서기를 거부하리라.


반면에 남자라면 목숨을 건 승부수를 한 번 띄워 볼 법도 하였건만, 그녀와 같이 산에 온 일행 중 누구도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크고 깊은 에메랄드빛 눈망울에 새하얀 피부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음에도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이조차 없었다.


‘역시, 이 인간들은..’


자신의 말에 맞장구 쳐주는 이 단 한 명도 없자 그녀는 습관처럼 입술을 깨물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나 무슨 생각으로 말을 꺼냈니?’ 지난 3개월간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도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눈 적이 없지 않던가?


그녀는 자신의 학습능력을 되돌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다가, 뒤늦게 목소리가 들려와 맞장구를 쳐주자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한데 바로 눈살을 찌푸렸으니, ‘하필이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고 또 음흉하기까지 한 목소리는 옅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말한 저 표정이란 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엄하지 않습니까? 인간 따위는 가질 수 없는 위엄이지요.”

‘아, 또 시작했어.’


안 들은 만 못하다는 희대의 격언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자 그녀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예, 물론 그러시겠죠, 어련하시겠어요.”


한 방울 눈물까지 흘리는 추태를 보이며 조장을 경외시하는 회색 세미정장의 광신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광신도도, 저런 광신도가 없을 거야.’


저자가 품은 일방적인 광기는 몸서리를 치게 할 정도로 섬뜩한 면이 있었다. 조장의 카리스마에 자신도 매료되긴 했지만, 저 최동민이라는 인간은 선을 일찌감치 넘어선 게 분명했다. 마침 그가 자신을 부르자, 그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쳐다봤다.


“다프네 양, 저는 말입니다, 저분과 함께하는 그대들이 한없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부족한 내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스스로 죽이고 싶을 정도이지요. 한시라도 빨리 그걸 완성해서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녀는 조장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최동민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선을 넘어 광기로 변한 충심이 또 한 번 선을 넘는다면.. 만일 저 어긋남이 도가 지나쳐 변질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광기가 조장에게로 향한다면.. 뭐 딱히 걱정할 일도 아니지. 그가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니까.’


문득 든 생각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기니, 날 선 대검들을 차례차례 뽑아서 햇빛에 비춰보는 반삭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같은 디자인의 카고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내는 큰 키에 걸맞은 근육질의 몸매가 강인한 턱선과 구레나룻, 날카로운 눈매와 어우러져 숨 막히도록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가 적이 아닌 게 다행이야.’


아마도 그와 그녀를 따로 놓고 보면 양성성을 대표하는 외모의 결정판이 되리라. 그딴 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이곳에 없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도살자야말로 진짜 광신도일지 몰라.’


이 터프가이는 조장을 무려 전신이라 여기며 충성을 바쳤다. 하나 최동민과 달리 숭배로 멈추지 않고 신의 세계에 닿으려고 인간임을 의심케 하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데 그 무시무시한 집념에 술까지 더해졌으니..


‘인간 중에는 그가 제일 강하지 않을까? 아마, 맞을 거야.’


경험이 미천하여 소견이 좁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망상이긴 했지만, 허리에서 허벅지로 이어진 가죽띠에 대검을 장착하는 사내의 모습은 오른 손에서 팔 전체로 이어진 핏빛 문신과 어우러져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그가 살의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린 갱이 보스의 위치를 줄줄 불어대던 게 떠오르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러고 보면 혈문이 참 잘 어울린단 말이야.’


이혜리라는 엽인이 두 달에 걸쳐 작업하고 조장이 마무리한 문신의 형태가 중세 바이킹의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할 때,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려와 그녀의 등골을 훑었다.


‘또 하나의 검.’


작가의말

선수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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