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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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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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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의 시[Episode : 어떤 복수] 05

DUMMY

외눈 깊숙이 처절한 비애와 끔찍한 광기를 감춰둔 저 날 선 눈매의 사내는 정녕 미쳤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강해지는 중이었다.


‘아니지, 그냥 미친 놈이야.’


일전에 코리안 갱스터들과 벌였던 전투에서의 모습은 이렇게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바싹 말라붙을 정도로 강렬하고 잔인했다. 지금 그는 좌우 쌍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좌 단검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장검은 정지한 듯 느리게 움직였다. 전투에 임하기 전에 항상 하는 워밍업이라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흑검이라고 했지?’


일전에 간곡히 부탁해서 살펴봤던 재질 불명의 기병은 신비시대 이전의 것이라고 했지만, 조금 부족해 보였다. 그 시대의 유물이라면 뭔가 굉장한 이능이라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게 무슨 기병이야?’


투박하기만 한 주인을 닮아가는 듯, 아니면 반대로 그가 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가는지는 몰라도 그에게만큼은 썩 잘 어울리는 무기였다. 그에 관해서 도살자가 평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한 몸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해.’


그녀는 좌우 쌍검이 그리는 흑색 궤도를 정신없이 쫓다가 남명진의 옷이 눈에 띄자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칙칙한 인간.’


그는 작년 그 사건 이후로 저놈의 검은색 정장만 고집했다. 심지어 신발에 셔츠, 속옷까지도 항상 검은색이었는데, 외눈을 살짝 덮을 듯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어우러져 그가 품은 어둠을 더할 나위 없이 암울하게 드러내고는 했다.


‘지은 죄가 많아서 상복을 벗을 수가 없다고? 미친놈. 도살자도 그렇고 연수 갔을 때 자료로 봤던 나머지 둘도 정신 나간 인간들이고.. 아, 1조에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조장 옆에서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지.’


일행 중 가장 독특한, 굳이 표현하자면 옴니버스적 정신세계를 가진 주제에 둘을 보며 고개 젓던 그녀는, 공기의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하자 다급히 시선을 옮겼다. 일출의 여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세하게나마 들뜬 목소리가 들려온다.


“학살조.”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집중하자, 다프네가 애써 무시했던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민입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조장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인 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동민은 말을 이어갔다.


“제가 드린 도면과 자료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번 작전지역은 저곳입니다. 10년 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던 연수원을 증축해서 사용하는 곳으로 전체적인 구조는 단순하지요. 지금쯤이면 인원 대부분이 저기에 보이는 숙소 건물에..”


자신이 가리킨 산자락의 허름한 건물로 시선들이 움직이자 그는 본격적으로 브리핑을 시작했고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래서 사전작업을 시행했고 인원의 약 40%인 337명만 잔류 중입니다. 200명 안팎으로 줄여보려고 했지만, 저들은 사회 자체를 거부하는 편이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는 조장에게 다시 살짝 고개를 숙인 뒤에 말을 이어갔다.


“337명 중에서 전투 가능 인원은 52명이고, 주 타깃은 100년도 살지 못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위치는..”


5분 정도 더 이어진 브리핑이 끝나고 그가 한 걸음 물러서자, 특유의 무감정한 눈으로 작전지역을 살피던 조장이 입을 열었다.


“잔류 316, 주력 4, 사냥감 1, 권속 2, 그리고 기파를 풍기는 인간이 한 명 더 있다.”


그의 단정적인 말에 동민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기파라는 단어에 눈을 번뜩인 도살자와 명진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포식자의 존재감을 뇌리에 각인시킨 학살조장은 조원들을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1조.”


목소리에 무게를 싣자 모두가 자세를 바로 한다.


“전투는 계획대로 정오에 시작해서 14시에 완료한다. 다프네.”

“예, 조장님.”


그녀의 눈망울에 긴장과 단호함이 어린다.


“이곳에서 내게 필요한 건 예지자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쓸 만하다와 필요하다의 차이를 보겠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부대와의 컨택은 완료됐고 저 역시 준비된 상태니까. 반드시 증명해 보일게요.”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한 학살조장은, 1년을 4개월로 단축한 재능을 써먹지 못해 투덜거리면서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쉬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기대하지.” 그리곤 바싹 마른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 떨군 동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불안정했지만, 분명히 진화하고 있었기에 이번 실수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의 필요는 어미종이 지닌 잠재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또한 계속해서 저 속도로 변태하면 제법 쓸 만한 비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어쩌면 저 둘보다 더 날카로울지, 누가 알겠는가?


‘그에게 부대급의 정보력을 바라는 건 아직 일러.’


첫 사냥에서 실수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압박감을 느낄 텐데, 굳이 잘못을 들춰서 논할 필요는 없었다.


“최동민.”

“예.”


죄지은 자가 놀라 고개를 들자 그는 명령을 이어갔다.


“포인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도록 준비시키겠습니다.”

“믿겠다.”

“감사합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조장이 조원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동민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동민을 애처로운 눈으로 배웅하던 다프네는, ‘가서 위로라도 해줄까?’ 하고 고민하다가 조장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최동민을 깨끗이 지우고 고개 돌렸다.


“일전에 예고한 대로 부대에 복귀를 알렸다. 현시간 부로 학살1조는 재가동된다.”


도살자의 눈빛에 희열이 어린다. 전장 특유의 역하면서도 매혹적인 향취가 코끝을 간질여 그를 견딜 수 없게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임무는 정식 작전이 아니다. 부대에 사후처리를 바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투시 총기 사용은 금한다. 폭발 관련 작업을 포인터들에게 맡긴 이유도 그 때문임을 명심해라. 우리는 이 전장 위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모두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선임요원을 불렀다.


“도살자.”

“예.”

“이번 임무는 꼬마들을 위한 조촐한 파티다.”

“알겠습니다.”


학살조장은 나머지 둘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부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를 관찰, 분석하고 있다. 지금부터 너희는 학살 1조장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저들에게 증명해라.”

“예.”


입 모아 답한 다프네와 명진은 약속이나 한 듯 조장의 눈치를 살피다가 둘이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보고 있어?’ 하지만 4만 피트 상공에서 스토킹 중인 옵서버[Global Observer]가 보일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나름 열심히 보며, “혹시 저건가?” “아니지 이 바보야, 저기 저거잖아." 하고 투덕거릴 때, 눈살을 찌푸린 도살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병신들이, 집중 안 해?”


놀라 얼굴을 붉힌 둘이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 떨구자, 첫 임무의 긴장감을 생각보다 잘 떨쳐내는 둘의 모습에 만족한 학살조장이 선임요원을 다시 불렀다.


“도살자.”

“예.”

“학살 1조의 증명은?”

“부대 산하 대량살상 지역섬멸 특화대 제1유닛의 증명은 임무 완수율이 100%라는 것입니다.”

“요인은?”

“작전 실패, 방해 요소의 완전제거입니다.”


도살자가 제거에 강세를 주며 꼬마들을 훑자 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리석은 동료가 방해 요소의 영순위라고 몇 번이나 들었던 게 떠오른 것이다. 때마침 이어진 조장의 명령이 주는 무게감이 그들의 심장을 옥죄기 시작한다.


“작전투입 시 최우선 되어야 할 것은 단 하나 임무의 완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승리해야 한다. 내가 내릴 명령이 바로 그것이고, 불복은 사형으로 즉참이다. 지금부터 너희는 완수와 승리, 이 두 가지 단어를 목숨보다 우선시한다.”


명진이 외눈을 번뜩이며 흑검의 검파를 붙잡자, 입술을 깨문 채 심호흡 하던 다프네가 신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다부진 모습을 담은 유리구슬에 피비린내 나는 살기가 아로새겨지는 순간, 굶주린 짐승의 입에서 학살조의 지상명령이 흘러나왔다.


“1조.”

“예.”

“지금부터 아군 이외의 모든 생명을 말살한다.”


죽음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학살자들의 눈빛에 흉포한 살기가 어린다. 이들의 광기가 저 대지를 붉게 물들일 때 사람들은 세상에 악마가 실존하였음을 알고 하늘을 원망하게 되리라.


‘그 어찌 숭고하지 않을까?’


멀리서 그들을 동경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동민은 격렬해진 심장박동만큼이나 곤두서는 살의를 감추려고 어금니를 악문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젠가는..'


그는 걸음을 서두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제부터 남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내야만, 실수를 만회할 수 있으리라. 일단은 메인 게스트의 초대부터 확실히 해야겠지. 지루한 신호음 끝에 들려온 건 기대한 목소리가 아니라 익숙한 기계음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메시지를 남겼다.


-신 대표님, 그동안 잘해주셨습니다. 자제분께 들으셨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연락 드립니다. 일전에 언급하신 대표님의 바람, 오늘 정오에 이루어집니다. 시간에 맞춰서 그곳으로 오십시오. 물론 대표님이 오시지 않아도 일은 진행됩니다. 그리고 아드님은 이미 출발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병아리인데, 직접 나서서 지키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작가의말

곧 피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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