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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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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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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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061

작성
14.02.13 16:1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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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글자
8쪽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DUMMY

“저도, 저도 잘 몰라요. 그저 누님한테 검을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손이 제 멋대로……”

“하지만 넌 방금 내가 네 검을 보면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할 거란 말을 했어. 아주 자신 있게.”

“급했어요. 실제로는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누님을 불러 세우고 싶었어요. 정말이에요. 누님. 흑흑.”

“……”


벨이 다시 울기 시작하자, 리엔은 들고 있던 레이피어를 집어 넣었다. 복잡하다. 물론 그 동안 자신이 관심을 갖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이제 겨우 다섯 살이 된 벨은 분명 검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가 아니었다. 타고난 골격도 그렇고 순발력이 좋은 편도 아니다. 게다가 제 자신도 검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검으로 일어선 가문에서 최초로 학자의 꿈을 꾸고 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애초에 검보다는 책에 더 관심을 많이 가졌을 정도니까. 그런데 대체 자신과 오빠가 없었던 1년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생각지도 못한 검술을 써대질 않나, 그러고선 다시 금방 예전의 순박했던 벨로 되돌아오질 않나. 그녀는 자신의 검을 톡톡 쳐가며 아직도 울고 있는 벨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 반응속도와 검의 궤적은 초심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저 녀석도, 갑자기 손이 제 멋대로 움직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외할아버님의 피가 저 아이에게로 갔다? 나만 받은 게 아니었어?’


리엔은 답답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그녀의 어머니이자 공작의 두 번째 부인인 마릴린은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타고난 여장부였다. 붉은 깃발에 호랑이의 앞발이 새겨진 용병단을 거느리고 있는 아버지, 슈트라우스의 밑에서 자란 그녀의 검 실력은 워낙 변칙적이고 빨라서 공작조차 온 힘을 다해야 간신히 누를 정도로 뛰어났다. 물론 리엔을 낳고 시간이 꽤 지나 벨까지 잉태하면서 손에서 검을 놓게 되었지만, 특유의 승부 근성이 남아있던 그녀는 항상 리엔에게 라슈벨을 뛰어넘는 검사가 될 것을 종용했다. 가문의 피를 이렇게까지 짙게 받은 아이는 없었다고, 리엔은 외가의 진한 피가 새겨진 검귀가 되리라고 말이다. 그 때, 자신이 느꼈던 두근거림을 분명 지금 그녀의 앞에서 울고 있는 벨도 느꼈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잠시 머뭇거린 그녀가 훌쩍이는 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다.”

“……네?”

“내일부터 훈련을 시켜보고, 이틀 안에 내가 놀랄만한 성과를 내면 널 수도로 데려가겠어. 어쩌면 아카데미 조기 입학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본래 입학이 허락된 건 8살부터지만, 6살 때도 8살 정도의 실력이 나온다면 입학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거든.”

“감사합니다! 누님! 절대 실망시킬 일 없을 거예요!”

“말해두는데 반드시 데려간다는 게 아니라 네 실력을 보고 결정한다는 거야. 미리 좋아할 필요 없어.”

“네!”

“녀석도 참.”


다 죽어가던 눈이 빛을 발한다. 절망의 상황에서 생명을 구해줄 동아줄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 모습이 마치, 어렸을 적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딱 이 나이 때였지. 어머니에게 처음 검을 배울 때, 절망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의 안은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변했었다. 무채색의 그림에 붓을 들어 하나하나 색채를 입혀 나가는 것처럼. 그때의 자기 모습 같아서 리엔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 귀여운 아이의 속엔 무채색의 그림이 아닌, 그저 새까맣게 타 버린 잔재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건 알지 못한 채로.


**


이틀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물론 합격을 할 경우에만 데려가겠다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벨은 그녀가 자신을 데려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날, 가볍게 치른 테스트에서 벨이 휘두른 검은 그의 누이를 매료시켰다. 게다가 물보다 진하다는 완벽하게 같은 피를 이어받았으니, 거기에서 오는 동정심도 있었겠지. 검을 휘두르는 도중에도 찢어진 손아귀를 붙잡고 눈물을 떨어트리면 그 무뚝뚝한 여자가 가만히 손수건을 건네주기도 했다. 결국 작은 꼬마 아이의 연기에 완벽하게 속아넘어간 리엔이었다.


“아버님께 말씀 드리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


리엔이 아버지에게 간 사이 벨은 고개를 들어 볕이 들어오는 차창을 바라보았다. 없다고 생각했던 희망이 조금씩 생겨나는 느낌이다. 그래. 그의 인생은 다섯 살을 기점으로 크게 변한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하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짐승 같은 추태와 어머니의 히스테리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벨은 자신의 짐을 싸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 이미 그의 실력이 평균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를 데려갈 준비를 서두르는 중이었다. 잠시 뒤, 예고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리엔이었다. 그녀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벨을 바라보고는 손짓했다.


“따라 나와. 마지막 인사 정도는 드려야지.”

“정말……가는 건가요?”

“어. 허락은 맡았다. 어머니께서 좀 싫어하시긴 했지만.”

“네.”


벨은 리엔을 따라 길게 뻗은 복도를 걸었다. 피어나기 시작한 아름다운 꽃들과 잘 가꿔진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밖에서 보면 너무나 평화롭고, 부러운 집안이었지만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어느 곳보다 지옥에 가까운 곳이었다. 벨이 알고 있는 모두의 미래. 아버지의 짐승 같은 성욕을 감당하지 못한 어머니의 자살, 왕에게 살해당한 라슈벨,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리엔의 반발과 그녀의 죽음. 이 모든 것은 저기 우두커니 서 있는 미친 놈 때문이 분명했다. 만약 그가 어머니를 조금만 더 아껴 주었더라면. 차라리 우리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제 욕구를 풀었더라면. 가족들이 전부 몰살당하지도, 정신이 이상해져 반역을 일으키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벨은 자신의 키 만한 가방을 들고서 곰방대를 뻐끔거리는 아버지를 노려 보았다. 형제들과 어머니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벨이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아버지에 대해선 엄청난 살의를 품고 있었다. 그를 자신의 옆에 세운 리엔이 라슈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 벨이 마지막 인사를 올리겠다고 왔어요.”

“……그래. 검에 관심도 없던 놈이 결국 떠난단 말이지.”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갈 길은 역시 검인 것 같아요.”

“죄송할 게 무에 있겠느냐. 오히려 난 고맙기만 하다. 네 아직 다섯 살이라 경험이 적어 그릇된 선택을 했다고 믿었다. 그래. 언젠가는 다시 가문의 뜻에 따라 검을 들 것이라고 믿고 있었어. 특히 리엔의 곁이라면 믿고 맡길 만 하지.”

“걱정하지 마세요. 잘 돌볼 테니.”

“라슈벨도 잘 챙겨 주어라.”

“예. 어차피 기숙사도 가까우니까, 제가 자주 들여다 볼 게요.”


환하게 웃는 라슈벨의 말에 리엔이 벨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벨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자신을 내려다보며 눈을 찡긋한다. 정에 목마른 것인가. 아니면 자신과 닮은 동질감에 라슈벨에겐 물들이고 싶지 않은 것인가. 어느 쪽이건 벨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 벨은 한 손엔 라슈벨의 두터운 손을, 다른 손엔 리엔의 작지만 거친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앞으로 3년. 형이 죽기까지 3년이 남았다. 그 안에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체 황실에선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움직일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고, 벨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작은 벨을 바라보는 리엔의 눈동자도 예의 불길한 붉은 빛을 띠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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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5 위크
    작성일
    14.02.18 01:13
    No. 1

    차창>>>창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두형
    작성일
    14.03.11 18:31
    No. 2

    주인공은 회귀했으니까 그렇다 치고 10살정도 되는 아이들이.... 무슨 성인이라도 된양.
    너무 글이 어색함. 고등학생만 봐도 어린 티 팍나는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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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1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2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4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4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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