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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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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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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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슈벨 폰 발렌타인

DUMMY

무난한 하루가 시작되고, 무난한 하루가 지나간다. 벨은 다음날부터 해가 뜨기 전 일어나 도시를 달렸다. 그것은 리엔과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제 스스로 필요성을 느낀 탓이기도 했다. 체력이 있어야 뭐든 한다는 속담은 바꿔 말하면 나약한 자는 이 사회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라슈벨도 같이 달리고 싶어 했으나, 그는 아침에 약했다. 일주일 간 깨워보고는 뜻대로 되지 않자 다음부턴 자연스레 혼자 달리게 되었다. 한 바퀴 돌고 들어와서 층계를 오르내리며 훈련. 이후에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면 그렇게나 개운할 수 없었다.


이후 아침을 먹은 뒤, 형을 배웅하고 홀로 도서실에 가 독서를 하거나, 검을 휘두르며 시간을 보낸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이셀리아를 만나고, 늦게 리엔을 만나 연습. 이 스케줄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반복했다. 그간 29살이란 메리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한 벨에게도 이번만큼은 꽤 득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시간을 맞추지 않고, 짜여진 시간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건 확실히 5살 난 아이에겐 무리였을 테니까. 그리고 꼭 1년이 지난 오늘, 6살이 된 벨은 정식으로 벨슈포드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벨. 벨 폰 발렌타인의 입학을 허락한다.”


학장으로부터 직접 임명장을 받은 벨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기본적인 테스트는 전부 S등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을 빼먹지 않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검술에선 기대하지도 않았던 SS등급을 받아 라슈벨도 크게 기뻐했다. 주위에선 앞으로 검술로 라슈벨을 잇는 탁월한 존재가 될 거란 얘기까지 나왔다.


“비록 아직 나이는 6살에 불과하나, 가진바 재능이 특출하고 수업을 따라갈 의지가 강하므로 조기 입학이 허용되었다.”

“영광입니다. 학장님.”

“나야말로 영광일세. 벨 군.”


6살의 벨이 고개를 든다. 또 시작인가. 다정하게 웃는 학장의 얼굴이 머리 끝에서부터 함몰되는 걸 보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무거운 둔기에 맞은 것처럼 살점들이 하나, 둘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사인은 둔기, 죽인 자는 나. 그래. 학장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나는군.’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이자, 학장의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시 눈썹을 찡그리던 벨은 이내 씩 웃으며 고개를 떨어 트렸다. 이 자는 공주에 의해 복권되어 다시 아카데미에 돌아온 자신의 철퇴에 맞아 죽었었다. 불타는 문 앞에서 양 팔을 벌리고 있었더랬지.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침을 뱉고는 끝까지 욕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다. 덕분에 확실히 기억이 나는구나.


‘참으로 대단했던 인생이었다.’


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은 6살이 된 해에 처음으로 시작된 시련 중 하나. 바로 죽은 자의 사인이 선명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죽인 자의 사인만이. 그것은 악마의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는진 잘 모르겠다. 덕분에 지금까지 죽인 모든 이들의 끝을 보고, 그 시체들이 스쳐 지나가는 걸 바라봐야 했다. 거기엔 꽤나 가혹한 일도 있었다고 벨은 생각했다. 기억나는 사람이면 모를까, 기억나지 않는 문지기의 목이 갑자기 가로로 갈려 떨어지는 걸 보면 뭘 하다가도 눈앞이 새하얘지긴 했다. 물론 단 한 순간인데다가 자업자득이었지만. 사실 그 괴로움을 끝없이 맛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벨은 어떤 의미로선 대단한 자였다.


“벨?”


학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년은 환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제가 입학한 게 맞나 놀라워서요.”

“허허. 걱정하지 말거라. 꿈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다. 라슈벨, 우리 아카데미의 수석으로서 동생을 많이 챙겨줘야 할 게다. 분명 뛰어난 인재가 될 게야.”

“예. 학장님.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허허.”

“그럼 벨은 입학식엔 따로 갈 필요가 없나요?”


팔짱을 낀 채 선 리엔의 말에 학장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입학증을 받았으니 그렇긴 하다만 꼭 빠질 필요야 있겠느냐.”

“학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벨을 데리고 부모님께 다녀오고 싶어서요. 1년이 지나도록 저 녀석 소식을 듣지 못해 안달이 나셨거든요.”

“리엔!”

“허허. 됐다. 됐어. 리엔이 말은 거칠게 해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너희들을 아끼는 마음도 뛰어나지 않느냐. 그래. 그런 이유라면 세 명 다 빠져도 좋다. 각 학년의 선생님들에겐 내가 따로 이야기 해두마.”

“역시 학장님이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학장님. 리엔의 교육은 제가 집에 내려가서 확실히 시켜 오겠습니다.”

“적당히 하게. 적당히~”

“우와! 그럼 저 집에 갈 수 있는 거에요?”

“그래. 그래. 갈 수 있단다. 허허. 이럴 때만 보면 완전 어린아이로구먼.”


학장은 기뻐 방방 뛰는 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딘가 어색해. 연기를 하고 있어. 임명장을 받아든 채 학장의 손길에 간지러워 하는 벨을 리엔은 두근거리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집에는 이미 연락을 해둔 상태였다.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니, 집에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가고 싶었다. 사실 전보로 엄마를 그렇게 만든 건 아빠가 아니냐고 적고 싶었다. 하녀들에 대한 무분별한 성욕구 충족, 엄마에 대한 폭력, 폭언, 모욕과 멸시까지.


‘지독해.’


그녀는 이미 집에 심어둔 연락책으로부터 아버지의 온갖 쓰레기 같은 짓을 전부 보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자신들의 집안은 어딘가 뒤틀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리엔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 망할 오빠와 훌륭한 연기자인 동생에게, 사실 우리가 올라선 무대는 굉장히 비참한 상태란다~ 라는 현실을 말이다. 어차피 자신을 포함에 발렌타인 가문의 사람들은 전부 미쳐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리엔의 입가에 지독한 미소가 새겨지는 것을 벨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


집에 다시 돌아간다. 그것도 1년 여만에.

그것이 라슈벨의 마음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무턱대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밝게 웃으며 동생들을 이끈 그는 마차에 오른 이후 창 밖만을 내다보고 있었다. 벨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라슈벨 역시 집 안에 심어둔 자신의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겠지. 진실된 정의감이 넘치는 그였다면 수업을 포기하고서라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내려갔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반쪽 짜리다. 어머니를 구하는 것보단 자신의 성적이 1점 내려가는 게 더 아쉬운 남자. 게다가 누군가를 구한다는 건 반드시 반대편의 적의를 불러온다. 하물며 그 반대편이 아버지인 이상, 라슈벨이 손을 쓸 수 없다는 데 벨은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느낌이 어때? 벨.”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누나인 리엔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그 웃음 속엔 너무나도 많은 칼날이 꽂혀 있어서 벨은 씩 웃고 말았다. 타인을 증오할 때, 그 자를 노려보는 것은 삼류다. 하지만 증오하는 자를 바라보며 살의가 담긴 미소를 건네는 자는 일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짚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누나는 프로였다. 벨의 입가에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미소가 새겨진다.


“기대되요. 엄마, 아빠도 곧 만날 수 있고, 거기있던 친구들도 만날 수 있잖아요!”

“게다가 거긴 도시와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 분명 검을 연습할 장소도 무궁무진할 거야.”

“우와!”

“벨에게 검을 일찍 쥐어줬다니까. 이제 겨우 6살 된 아인데.”

“하지만 오빠도 동의했었잖아. 게다가 저 아이, 오빠의 뒤를 이을 검술의 천재라는 말까지 들었는걸.”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내가 저 나이때는 뭐랄까, 조금 더 순수하게 삶을 즐겼던 기분이 들어. 지금의 벨은 마치 아이가 되어버린 어른 같아.”

“너무해요. 형!”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조금은 어리다는 걸 즐길 나이가 아닐까 싶어서. 벨에게 나쁜 의미로 들렸다면 미안.”

“......흥!”


벨은 짐짓 화가 난 척 고개를 홱 돌렸다. 라슈벨은 예의 그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고, 리엔은 흥미가 다 했는지 창 밖만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달래는 라슈벨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벨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집을 향해, 파멸의 전주곡을 올리기 위해 그 장엄한 발걸음을 막 뗀 상태였다.


작가의말

홍보가 서장 빼고 10화까지였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76 레이빈센트
    작성일
    14.02.26 03:01
    No. 1

    중간에 그녀의 누나인 리엔..
    오타같습니다.
    묘하네요..판타지소설인데..잔혹동화같은 느낌이라..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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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죽음(8) +1 14.04.02 1,391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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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죽음(4) +4 14.03.06 1,931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7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9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2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90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3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3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9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4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5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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