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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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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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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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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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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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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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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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DUMMY

“이 사람들 누군지 알아?”

“아니.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누구 일 것 같아?”

“글쎄? 네 경호원 아저씨 아니야?”

“편지에 써놓고 금세 까먹었어? 벨이 물어볼 게 많다고 했던 그 사람들이야.”

“우와. 정말? 이셀리아. 대단해!”

“뭐, 뭘. 이 정도 가지고.”


이셀리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껏 치켜들자, 벨은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좋아하는 상대가 생긴 어린 아이는 무섭다. 어떻게든 자신의 호감을 더 끌고 싶었던 거겠지. 결국 할아버지에게 떼를 써 정보원 두 명을 빼낸 모양이었다. 그는 언제나 위엄 있는 표정으로 원탁의 제일 중간에 앉아있던 룩소르를 떠올렸다. 그 교활한 늙은이가 고작 6살이 된 손녀에게 휘둘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셀리아는 자신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훌륭한 첩보원이기도 했다. 벨이 자신을 칭찬해주니 더욱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셀리아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보원들에게 입을 열었다.


“우리 벨이 궁금해 하는 건 전부 알려주세요. 하나도 남김없이.”

“하, 하지만 아가씨. 룩소르님께서 아시면 분명 펄쩍 뛰실 겁니다.”

“저희들이 모은 정보는 남들에게 함부로 공개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허락을 받았단 말이에요! 당신들은 이제부터 할아버지가 아닌 제게 정보를 가져오기로 되어 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생판 모르는 남에게 공유한단 얘긴 없었습니다.”

“전 이셀리아의 남자친구에요. 그 정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 이 꼬마 도련님. 진짜.”


정보원들은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들어온 벨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처음 이셀리아와 대화를 나눌 때만 해도 어수룩한 게, 딱 그 나이 또래 꼬마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영특한 놈이다. 제가 끼어들 때와 빠져야 할 때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야 이셀리아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크게 좋아하던 룩소르를 볼 낯이 없었다. 이거야 원. 죽 써서 개주는 꼴이지. 하지만 두 볼에 바람을 넣고 자신들을 흘겨보고 있는 주인을 실망시킬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은 일단 웃는 얼굴로 이셀리아를 달래야 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앞으로 저희들이 모은 정보는 전부 이 친구에게 전해주면 되는 거죠?”

“네. 그렇게 해주세요. 어차피 제가 궁금한 게 벨이 궁금한 거고, 벨이 궁금한 게 제가 궁금한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희들은 도련님한테 좀 더 이야기를 듣고 가겠습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괴롭힌다거나 딴 소리를 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이셀리아. 금방 들어갈게.”

“응. 이따 봐. 벨.”


수줍게 볼을 붉힌 그녀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벨을 데리고 아카데미 밖으로 나갔다. 원로원의 정보원은 아무나 맡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고문에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선 가족의 목도 벨 수 있는, 한 마디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이 선택되는 자리다. 그런 두 사람의 입장에선 룩소르나 아가씨를 위한 소중한 정보를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아이에게 내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셈이었다. 벨은 끌려나오는 중에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이 할 행동을 예측했다.


‘뭐. 아이이니까 심하게 해봐야 목을 졸라 기절을 시키는 정도겠지. 다음에 접근하면 진짜로 죽이겠다는 말도 덧붙일 거고. 물론 내가 여섯 살 아이라면 먹히겠지만, 너희들 사람을 잘못 골랐어.’


29세, 환생한 나이까지 합치면 35살이 되는 벨은 이미 그보다 더 극심한 고문까지 버텨내었다. 고작 정보원 따위가 하는 협박에 물러날 리가 없단 말이다. 그 사이,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로 아이를 데려온 정보원들은 벨을 세워둔 채로 노골적인 협박을 시작했다.


“네가 아가씨의 남자친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일 게다. 룩소르님은 이셀리아님을 위해 정보를 모으라고 했지, 네놈을 위해 정보를 모으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거든.”

“하지만 그 이셀리아가 명령한 일이잖아요. 아저씨들은 이셀리아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아직 나이가 어려 사리분별이 곤란한 아가씨의 명령은 언제나 걸러듣게끔 되어 있어. 한 마디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셀리아가 들으면 슬퍼하겠네요.”

“......네놈의 이야기를 쉽게 믿을만한 분이 아니시다. 그리고 나를 대신할 정보원들은 이미 널리고 널렸어. 그런 가벼운 협박으로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래요? 그럼 이번엔 무거운 협박을 해볼까요?”

“......뭐?”

“지금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가문이 어디죠?”

“그거야 발렌타인 가문......설마!”

“당신들이 날 이곳으로 데려온 것. 그리고 내게 협박을 한 것. 무엇보다 이셀리아를 모욕한 것. 전부 라슈벨 형에게 말할 거예요. 그 분이 당신들의 말을 들을 지, 제 말을 들을 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아마 형의 귀에 들어가면 두 사람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계시죠?”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순간 두 사람은 얼른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원로원의 막강 권력을 자랑하는 룩소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발렌타인 가문을 건드렸다는 소문이 돌면 버텨낼 수가 없다. 게다가 룩소르가 지는 태양이라면, 라슈벨은 떠오르는 신성! 국왕의 총애를 받고 있고, 공주의 기사로 임명되기까지 한 그가 이 일을 맡는다는 생각만 해도 두 사람은 절로 오금이 저려 왔다. 이건 단순히 그들의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칫 잘못하다간 정치전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일이었다. 벨은 망연자실해 하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네놈들이 아무리 정보망이 뛰어나도 이제 막 사교계, 즉 아카데미에 데뷔한 내 정보까지 소상히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어차피 이셀리아의 옆에 보내지는 건 다소 중요도가 떨어지는 놈들일 테니까.’


결국 그의 작전이 먹혀든 셈이다. 이제 저들은 이 근방에서 얻는 어떤 수준의 정보라도 자신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벨이 보통의 아이들보다 똑똑하다는 걸 방금 나눈 대화로 충분히 깨달았을 테니까. 벨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주변을 돌면서 형님과 누님에 대한 정보를 모아주도록 하세요. 이셀리아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가 아니라면 당신들도 마음에 걸릴 일이 없겠죠?”

“그거야 문제없습니다만, 왜 하필 두 분의 정보를......?”

“그것까진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정보를 수집해 보고 올리겠습니다.”

“보고를 올리는 시각은 나와 이셀리아가 만나는 때. 종이로 적어서 제게 건네주도록 하세요.”

“네. 도련님.”

“그리고 내 이름은 벨이에요. 벨 발렌타인. 앞으로는 벨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벨은 무릎 꿇은 두 사람을 지나 유유히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이름을 넣어 주인이라 부르게 한 것은 어린 아이다운 과시욕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부르게 함으로써 저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녹아들게 하려는 뜻이었다. 공주를 위해 수백에 달하는 사람을 죽이면서 그가 터득한, 사람을 부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저학년이 머무는 1층, 신발장을 기준으로 왼편에 있는 교실로 향하며 그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전쟁의 깃발이 올랐다.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운명과 그 운명에 치열하게 맞서 싸울 이 벨 발렌타인간의 전쟁이 말이다. 벨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이셀리아에게 마주 웃어준 그의 얼굴엔 금세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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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죽음(9) +2 14.04.14 1,461 2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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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29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0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29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6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8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8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1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2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3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4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6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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