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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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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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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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
9쪽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DUMMY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몸이 삽시간에 도륙나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는 목이 베이고, 어떤 아이는 팔, 다리가 전부 잘려나간다. 6살생일 때부터 보이기 시작한 죽음, 그들의 죽음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벨의 표정엔 별로 변화가 없었다. 어차피 벨슈포드 아카데미를 쳐들어갔을 때, 거기에 있는 학생들은 어느 놈 하나 빼놓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에 대한 죄 값이라고 생각하면 못 견딜 것도 없었다. 그가 이셀리아의 옆 자리에 앉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벨의 손을 잡았다.


“기뻐. 옆 자리에 앉아줘서.”

“당연한 걸 뭘. 앞으로 1년간 잘 부탁해.”

“응. 나도 잘 부탁해!”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시선을 주변으로 돌린다. 역시 아이들은 이쪽을 의식하고 있다. 쳐다보지 않는 척 하면서 계속해서 흘끔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이제부터 전부 자신의 발판이 되 주어야 한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그를 위해 몸을 던지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협박? 가문의 힘으로 위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원조? 도움을 받을만한 가문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벨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둘도 없는 친구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가장 모양새가 좋을 테니까. 골똘히 생각에 잠긴 벨을 바라보던 이셀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얼른 반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다들 성격도 좋아 보이고 착한 것 같아.”

“좋아. 남자들과 가까워지는 건 허락할게. 그래도 여자 아이들은 함부로 가까워지면 안 돼!”

“하하. 알았어. 네 허락을 받지 못하면 사귀지 않을게.”

“응!”


환하게 웃는 이셀리아의 모습이 낯설다. 그러고 보니 공주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서부터, 언제나 그녀를 만나면 울고 있거나 화를 내고 있었다. 나 때문에 자기 인생이 엉망이 되었다는 말도 자주 했었지. 실제로 이제 신물이 나 만나고 싶지 않겠다고, 까지 했다. 하지만 공주의 질투는 생각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 결국 자신의 손에 베일 때까지 그녀는 구원받지 못했다.


“벨?”

“응?”

“멍해있기는. 얼른 일어서. 선생님 들어오셨어.”

“아. 모두 차렷!”


벨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라슈벨과 리엔의 동생이자, 6살의 나이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그의 소문은 전교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당연히 그가 오지 않았던 입학식에서 반의 반장으로 선출된 것은 벨 폰 발렌타인이었고. 이셀리아에게서 그 소식을 들은 벨이 자리에서 일어서 경례를 붙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안녕하세요!”

“반갑다. 일단 우리 벨슈포드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여러분은 이미 이곳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끈을 잡은 것이다. 지금은 가늘지만 선생님의 수업을 착실히 들으면 분명 전원 원로원이나 폐하의 곁에 설 수 있겠지. 그러니 수업들 열심히 들어야 한다.”

“예!”

“내 이름은 헨리 폰 스코프. 제국의 황제 폐하의 신변을 지키는 황실 기사단 4번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영광입니다! 선생님!”


황실 기사단 4번.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 들으니 새롭다. 경쟁자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유망한 기사가 되었으나, 본래 성격이 유순하여 스스로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길 희망한 자. 이 일로 왕의 분노를 사 1년을 채우고 기사단에서 쫓겨나는 인물이었다. 그 일 이후 완전히 미쳐서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벨은 무표정한 얼굴로 출석부를 펼치는 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헨리 스코프라. 1년 남았다 이거지. 잘만 잡으면 충분히 쓸 만한 말이 되겠어.’


희생을 강요하는 최상의 단어는 우정도 아닌 복종이다. 지금 교실을 가득 채운 이들에게선 기대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희생을 그를 구해주면 얻을 수 있다. 벨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의 출석을 부르며 하나하나 얼굴을 살피던 헨리도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벨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몸을 흠칫거렸다.


‘무슨 애가 눈빛이 저렇게 강하지?’


보통 저 나이 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새로워 항상 눈이 빛난다. 하지만 벨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우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그것은 이제 막 교편을 잡은 헨리에겐 꽤나 독특한 느낌이었다. 벨. 벨 폰 발렌타인. 헨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고 있었다.


**


첫 날은 단순히 서로의 탐색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대충 아이들에 대한 파악을 끝낸 사내는 이미 조사를 명령해 둔 상태였다. 물론 다시 환생한 사내에 비견할 순 없었지만, 어린 나이의 아이들 중에서도 꽤나 두각을 나타내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자그마한 이 왕국에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인재로는 첫 번째, 왼쪽 창가 앞에 앉은 린델이었다.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고, 항상 창밖만 바라보는 아이었지만 벨은 그에게서 풍겨오는 동류(同類)의 기운을 무시하지 않았다.


정보원에 따르면 린델의 아버지는 벨몬트 후작가의 사람이었는데, 성격이 게으르고 능력은 없는 주제에 야심 하나만큼은 굉장히 컸다. 따라서 린델에게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게 하려, 어려서부터 때리고 짓밟으며 아이를 키워왔던 모양이다. 벨은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빼 몇 번 혀로 핥고는 그의 서류를 한 쪽으로 밀어놓았다.


“대인기피증에 실력우선주의는 당연히 갖고 있겠고. 잘만 플러스 하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살의, 정도인가. 한 마디로 정상은 아닌 셈이군.”


두 번째는 언제나 중앙 뒷자리를 고수하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 멜리아였다. 대대로 용병들을 전국에 뿌려 의뢰를 진행하는 슈나이저 가문의 영애로서, 성이 없는 평민이었지만 가문의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돈만 쥐어준다면 사람을 죽이는 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 관념이 없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멜리아는, 비공식적으로 7살 때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사나운 아이였다. 벨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사진과 린델의 사진을 나란히 두었다.


“재미있어. 정말 재미있다. 반역자 사냥꾼인 그 멜리아와 린델이 지금 나랑 같은 반이란 말이지?”


만약 이 둘을 자신의 파트너로 두면 어떨까. 그럼 후에 반역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자신을 상대로 병력을 일으킬 수 있을까? 되돌아간 시계가 얼마나 삐걱거릴지,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이 둘만 자신의 옆에 붙어준다면 뛰어난 두뇌와 급할 때 쓸 수 있는 힘이 갖춰진다. 어린아이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벨의 군단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는 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또 한 장의 사진을 가져왔다. 넉살좋은 얼굴에 살이 상당히 붙어있는, 터번을 쓴 아이였다.


“멜리아. 린델. 그리고 마지막 퍼즐을 맞춰줄 놈은 역시 뚱보 만군이겠지.”


대상인인 아버지를 둔 만군은 제국 전역에 거래 루트를 뚫고 있어, 여차할 때 보급로를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전력이었다. 이들 셋. 벨은 자신의 과거를 뒤흔들 군단의 멤버로 그들 셋을 택했다. 처음부터 라슈벨과 리엔은 머릿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또한 분명 자신과 같이 그들만의 군단을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은 그들도 똑같이 생각한다. 비록 29살과 15살, 14살의 대결이었지만 형과 누나는 천재라는 걸 벨은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건 어쩌면 벨슈포드 아카데미를 둘러싼 친족간의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기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벨은 몇 발이고 앞서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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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죽음(챕터 完) +1 14.04.25 1,380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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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죽음(9) +2 14.04.14 1,461 28 7쪽
31 죽음(8) +1 14.04.02 1,391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29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0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7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29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6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8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8 53 7쪽
»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0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1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799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39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49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2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2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3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4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2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5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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