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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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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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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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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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DUMMY

갑작스럽게 등장한 린델의 존재. 동시에 발생한 테러. 그리고 그에 의해 강요당한 선택. 벨은 복잡한 머리를 가로저었다. 형이 죽기까진 아직 1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대체 선택을 하라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폭발한 공주의 마차는 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모든 게 마치 꼬인 실타래처럼 엉켜 벨 앞에 툭 던져졌다. 도무지 대입할 수 없는 모순들이 벨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얽어 놓았다. 얼마간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 벨이 고개를 들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린델이 새하얗게 웃는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뭐가?”

“놀라게 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과거를 뒤집는 걸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나?”

“내가 보기엔 네 행동이 더 이해가 가질 않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자. 그럼 질문. 지금 여기는 누구의 과거지?”

“나, 벨 폰 발렌타인의 과거다.”

“벨 폰 발렌타인의 과거에선 벨이 아카데미로 올라온다는 선택지도, 리엔이 벨과 말을 한다는 선택지도 없었을 텐데? 어째서 그게 벨 폰 발렌타인의 과거가 되는 거지?”

“......설마!”

“눈치 챘어? 과거의 모순을.”


그의 말에 벨은 이를 꽉 깨물었다. 과거의 모순. 그래. 솔직히 인정한다. 자신은 지금 전혀 다른 과거를 만들고 있다. 단순히 원래 있던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허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벨 폰 발렌타인의 머릿속엔 없는 기억이며, 나와서는 안 될 환상이다.


‘모순. 네 과거는 모순되었다.’


한 마디로 지금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새로운 현재, 존재할 수 없는 현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정해진 길대로 따라가면서 과거를 바꾸라니. 그런 건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벨은 갑자기 답답해져 오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린델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오로지 흘러가고 있는 것은 그와 자신의 시간 뿐. 린델은, 아니 린델로 분한 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내게 말한 것은 저주받은 과거의 소멸. 즉 죄를 짓기 전에 자신을 전부 파괴하는 것이었어. 아버지도 죽이고, 어머니도 죽이고, 형도 죽이고, 누나도 죽이고. 모두 저택 안에 나란히 늘어놓은 채 네 목을 찔러 자결하는 행복한 결말-”

“......”

“그럼 죽어야 할 자들도 죽지 않겠지. 그들은 전부 네가 큰 후에 죽었으니까.”

“6살이 되었을 때 내게 환상을 보여줬던 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모순 덩어리라는 걸 말해주기 위함이었나?”

“빙고! 근데 눈치가 없는 건지 계속 하더라고. 시답지 않은 연극을. 그래서 잠깐 짬을 내 찾아왔어. 나는 내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약속을 지켜. 벨 폰 발렌타인. 죽은 자들이 네게 원하는 건 내가 갱생하고 착한 삶을 사는 게 아니야. 그들은 네 죽음을 원해. 그것도 아주 처절한 죽음을.”


벨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녀석이 보여주었던 환상. 그것을 그저 과거로 회귀한 대가라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애초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사람의 목이 떨어지고, 베인 자가 다시 즐겁게 웃는 일이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태어난 벨은 자신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당연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과거랑 똑같이 살육을 저지르겠다면?”

“음. 미안한데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선은 이 정도까지야. 선택은 네 몫이지. 지금 당장 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과거를 계속 이어나가 보던가, 아니면 다시 부인의 몸에 태어나서 네 과거를 따라갈 수도 있겠지. 형이 죽고, 아버지가 미쳐버리는 그 과거 말이야. 벨. 네 진짜 과거. 그 길에서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별로 터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한 마디로 내가 계속 전혀 본 적이 없는 과거를 만들어 나가면 그에 대한 모순이 생겨나게 되고, 오늘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게 된다는 거로군.”

“그래. 음. 어디보자. 지금 이 과거를 이어나가면 앞으로 3년 뒤, 제국의 폭탄 테러에 의해 너희들은 전원 사망하게 되어 있어. 물론 라슈벨은 궁에, 리엔은 본가에 가 있으니 안전하겠지.”


푸하.

벨의 작은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폭탄 테러. 그것도 제국의 상징인 벨슈포드 아카데미에 대한 폭탄 테러. 이 얼마나 모순덩어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벨의 몸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의 눈은 죽기 바로 전 왕을 바라봤던 것처럼 살의에 차 있었고, 전신에선 찌릿찌릿한 기운이 잔뜩 올라왔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악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겠다!”

“뭐라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 빌어먹을 집으로.”

“잘 생각했어. 벨. 카운트는 다시 맞춰질 거야. 그리고 알지? 네가 열다섯이 되던 해 네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걸.”

“......좀 더 명확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뭘?”

“내 반격이 허용되는 범위 말이다.”

“음. 마침 잘 됐네.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꼬았던 다리를 풀어 반대쪽 다리를 올린 악마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벨을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린델의 몸이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지옥에서 보았던 모습으로 변한다. 한 올도 남김없이 올린 머리에, 입고 있는 검은 양복. 광이 나는 구두. 바로 자신을 과거로 밀어낸 악마였다. 그는 옷을 툭툭 털더니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옛날 어르신 얘기 중에 이런 말이 있지. 강물의 흐름을 바꾸려면 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봐. 강물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뚝방을 쌓는다고 물이 그쪽으로 흘러가진 않잖아. 강물은 계속 그 자리에서 묵묵히 흐를 뿐이지.”

“......얼마든지 바꿔도 좋다. 하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엔 서 있어라. 이건가?”

“그래. 넌 환생을 한 게 아니야. 벨. 네 과거로 다시 돌아간 거지. 도가 지나친 과거 만들기는, 결국 네 현생마저 송두리째 부숴버릴 뿐이야. 다시 말하자면 벨 폰 발렌타인의 현재를 스스로 무너트리지 말라는 이야기야.”

“재미있겠는데?”

“아니. 그다지 재미있진 않아. 이 심각할 정도의 제약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아니. 충분히 가능해. 보여주지. 내 가능성을.”

“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던 악마가 새하얗게 웃었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웃음에 벨의 작은 몸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던 악마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굳어있던 아이들의 몸이 전부 조각나 흩어졌다. 벨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바야흐로 시간은 다시 한 번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강물에 흐름을 바꾸려면 물 속에 들어가 돌을 쌓아야 합니다. 몸이 물에 젖지 않고 흐름을 바꿀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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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29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0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7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8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1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2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4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4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6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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