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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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07,740
추천수 :
2,264
글자수 :
123,061

작성
14.02.27 09:05
조회
2,629
추천
53
글자
6쪽

죽음

DUMMY

회귀. 자신이 알고 있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 모두가 앞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혼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행위는 이해받기 어렵다. 때문에 벨은 다시 태어난 순간에도 낙담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할 일이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 주겠다. 강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더럽히면서도 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겠다, 고 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6살이 되었다.

아무래도 벨에게 있어서 세계가 변화하는 시기는 6살 전후인 모양이다. 그는 이번엔 유모에게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처음 회귀했을 땐 어린 시절의 과거가 희미했다면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유모는 왕의 몸에 커피를 엎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폐하!”

“이런 미친년이! 당장 끌어내!”

“으아악!!”


자신의 6번째 생일, 이제는 확연히 기억난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살인. 벨은 무표정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베어 한 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말리는 자들,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가는 유모,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아버지, 내버려두는 왕.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오직 벨만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것은 일어나야만 할 일이었다. 그는 꾸역꾸역 고기를 먹었고, 유모의 마지막을 봐주지 않았다.


“누나! 누나, 먹을 것 좀 사주면 안 돼?”

“......”

“누나아!!”

“저리 꺼져. 경고하는데 함부로 달라붙지 마.”

“리엔! 벨에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제 겨우 6살이라고!”

“으아아앙!!!”

“휴.”


그리고 벨은 철저히 6살로 되돌아갔다. 리엔이 자신의 방에 찾아오는 참사는 그걸로 전부 막아냈다.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 리엔은 이제 두 번 다시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고, 혼자 멋대로 죽고 말 거다. 그래. 그거면 됐다. 벨은 왕에게 받은 모형검을 들고 방 안에서 라슈벨을 기다렸다. 전에 도착한 사람이 리엔이었다면, 이번엔 그녀가 올 일은 없었다. 잠시 뒤, 집사가 공손히 문을 열자 그곳엔 라슈벨과 왕자, 공주가 서 있었다. 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이 사람들은 누구?”

“아까 봤잖아. 공주님하고 왕자님이시다.”

“반가워. 벨. 라슈벨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

“......”


반갑게 인사해주는 공주와는 달리 왕자는 라슈벨의 등 뒤에 숨어 벨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대로 미움 받고 있는 걸까. 벨은 피식 웃으며 공주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역시 예상대로 리엔은 오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이것으로 족한 것이다. 자신의 더러운 과거를 따라가는 걸로, 그래서 그 물에 발을 담근 걸로 만족하자. 공주는 벨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벨은 아이다운 재치로 공주를 몇 번이나 웃음 짓게 만들었다.


“......”


하지만 왕자는 웃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공주와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라슈벨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그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물론 그 정도는 벨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 물건에 대한 라슈벨의 집착은 생각보다 더 강해서, 이미 전생에서 지갑에 든 돈을 다 쓰지 않았다고 발악하는 그의 모습을 본 벨에겐 새로울 게 없는 일이었다.


“벨!!!”


그리고 라슈벨은 드디어 속에 접어 두었던 광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공주가 울음을 터트리고, 깨진 유리조각이 바닥에 뒹굴었다. 라슈벨은 절대 사람을 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의 사물을 전부 박살내 놓고, 자신은 미쳐서 날뛴다. 어린 아이들에게 그 모습은 견디기 힘들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다. 공주와 왕자가 손을 맞잡고 울고 있을 때, 벨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곤 슬쩍 자신의 모형검을 보더니 이내 라슈벨에게 그것을 건넸다. 한참 난리를 치던 그가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벨을 바라보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 나중에 내 검, 진짜 검으로 바꿔줄 수 있어?”

“어? 어. 뭐.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럼 형이 정말로 내게 검을 가져다주고 싶을 때, 언제라도 갖다 줘. 난 어차피 매일 집에 있을 테니까, 여기서 형을 기다릴게.”

“......알았어. 벨. 고맙다.”

“우아앙!!”

“오빠, 오빠! 끝났어. 끝났다고.”

“무서워. 무서워, 이슈탈!”

“괜찮아. 끝났어.”


벨은 왕자를 달래는 공주를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의 라슈벨의 광기는 제어가 안 되는 수준이어서, 두 사람 다 한, 두 번 겪어본 게 아닌 모양이다.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광경이었을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왕자를 달래는 것도 모자라, 그런 라슈벨을 사랑해야 했던 공주의 마음은 확실히 더 힘들었을 거다. 벨은 천천히 왕자에게 걸어가,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바람개비를 건넸다. 꺼이꺼이 울던 왕자가 고개를 들고 벨을 쳐다보자, 그는 라슈벨에게 했던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봐.”

“......바람?”

“응. 바람.”

“후우......”

“와! 돈다!”


순간 팽그르르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쳐다보는 공주도 그리고 왕자도 모두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이것은 유모에게 배웠던 작은 장난감. 자신이 없어 외로울 땐, 이거라도 만들면서 놀라고 알려준 그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래. 벨이 그 우스꽝스러운 실험을 했던 날에, 정원에서 유모가 원래 했던 일은 벨에게 바람개비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개비를 왕자에게 넘겨준 벨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 전생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은 길을 따라가되, 주변인들에게 그를 기억할 만한 장치를 건네 그들의 행동 자체를 변화 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은 행동의 제약이 많은 과거에서 벨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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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4 들보
    작성일
    14.02.27 12:46
    No. 1

    새로운 접근이군요.

    벨 개인으로서는.. 내면으로 깊은 상처를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안타깝네요 ㅠ 벨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북풍광
    작성일
    14.02.27 20:57
    No. 2

    내면은 완전히 갈가리 찢겼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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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죽음(9) +2 14.04.14 1,461 28 7쪽
31 죽음(8) +1 14.04.02 1,391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29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0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6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8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1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2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4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4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6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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