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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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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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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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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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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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죽음(4)

DUMMY

개학 첫 주, 여전히 많은 사람의 우상이며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라슈벨의 표정은 어두웠다. 집에 심어둔 심복으로부터 초야권이 실패로 돌아갔고, 새어머니도 멀쩡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고작 6살인 벨이 이 모든 걸 알고 조종했을 리는 없다. 결국 가능한 수라면 리엔이 일에 개입한 건데, 본래 집안일에는 요만큼의 관심도 없는 동생이 그랬다곤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일을 시작한 지 처음으로 벽에 막힌 그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집에 가봐야 하나.”


가서 뭘 할 것인지는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다만 만약 이 일 뒤에 마을 사람들이 있다면, 놈들을 죽여서라도 초야권을 다시 시행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직접 요리를 하고 있다니, 그것도 막아야 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아버지는 죽어야 한다.


자신이 가문의 새로운 수장이 되어 비탄에 잠긴 후계자를 연기하기 위해서라도. 아무런 장애도 없이 가문의 지원을 받아 공주의 기사가 된 자와 온갖 역경을 딛고 공주의 기사가 된 자, 둘 중 누가 왕의 자리에 가까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너무나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빠져나올 명분이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

“여. 힘들어 보이는데 도움 좀 줄까?”

“헉!”


순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얼굴에 깜짝 놀란 라슈벨이 펄쩍 뛰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의상, 신발을 신은 자가 눈앞에 서 있다. 얼핏 보면 그저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괴상한 생물 같기도 하다. 여유로운 표정부터 모조리 쓸어 넘긴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내. 아무리 온갖 경험을 다 해본 라슈벨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멍청한 얼굴을 보며 킥킥거리던 악마는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거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군. 사과하지.”

“다, 당신은 누구야! 대체 어디로 들어온 거지?”

“지금 그런 게 중요한가?”

“당연하다! 나는 문을 열어준 적도 없고, 창문을 열지도 않았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네놈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없지 않느냔 말이다!”

“흠. 그럼 요정 정도로 말을 맞추는 건 어때? 그래. 난 요정이다. 네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한 마음씨 착한 요정 말이야.”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아버지를 죽이고 싶지?”


가볍게 중얼거리는 악마의 말에 라슈벨의 입이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는데. 혹시 말로만 듣던 악마나 마녀 같은 것일까. 점점 더 악마에 대한 의심이 짙어졌지만, 그는 일단 덤덤하게 대답했다.


“미쳤군.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아들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지?”

“음. 확실히 흔하진 않은데 내 눈앞에 있긴 하네.”

“......”

“잘 들어. 만약 아버지를 죽이고 싶거든 일주일 뒤, 집으로 내려가라. 그러면 네게 딱 맞는 상황이 준비되어 있을 거다.”

“대, 대체 너는 누구냐!”

“때가 되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헉!”


순간 라슈벨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음에도, 낯선 사내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찾아봤지만 이미 사라진 자리엔 싸늘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


“검을 가르쳐 주세요.”


벨의 말에 공작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초야권의 실패 이후, 서재에서 살다시피 한 그에겐 모든 것이 귀찮아져 있었다. 검? 대체 그런 걸 언제 잡아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이젠 아내를 속이고 도덕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는 짜릿함도 사라진 마당에 그런 재미없는 짓거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무력한 인형에 지나지 않는 공작에겐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막내아들이란 존재가 굉장히 거추장스러웠다.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벨이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손을 홰홰 저으며 말했다.


“네게 가르쳐 줄 검술도 없을 뿐더러, 가르쳐 줄 이유도 없다. 당장 여기서 나가거라.”

“아버지는 유명한 기사셨잖아요. 저도 배우고 싶단 말이에요.”

“후흐흐. 몇 십 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그냥 방에 돌아가 책이나 읽어.”

“책도 재밌지만 검도 배워보고 싶어요.”

“집사! 대체 저 아이가 왜 저러는 게야.”

“아, 아무래도 폐하께서 모형 검을 직접 하사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책 이외에는 다른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도련님이 관심을 보이는 걸 보면 역시 주인님의 피가 흐르는 게......”

“아버지이......”


철썩. 울면서 공작에게 다가가던 벨의 머리가 반대편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 안 그래도 전의 일 때문에 응어리가 져 있던 공작이 참지 못하고 손을 휘두른 것이다. 그는 바닥에 넘어진 벨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는 집사가 말릴 새도 없이 다시 두, 세 번 뺨을 때렸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있던 벨이 결국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앙!!!”

“젠장.”

“주, 주인님!”

“방문을 닫고 나가라.”

“하지만......!”

“목을 베어버리기 전에 나가.”

“예, 예. 알겠습니다. 그리 하지요.”

“끄윽, 끄윽”


눈에 계속 밟히는 벨을 놔두고 나온 집사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공작은 정말 용서 없이 벨의 뺨을 때렸다. 새로운 쾌감. 그래, 그것은 새로운 쾌감이었다. 살려달라며 다리를 붙잡는 아이를 때리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라니. 공작은 벨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고, 방이 떠나가라 울던 벨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 이것이 이자의 본성이란 말인가.’


배우지 못하고,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었어. 벨은 등 위로 쏟아지는 아버지의 발길질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왜 자신의 과거는 알면 알수록 쓰레기로 가득 찬 걸까. 이것은 집안의 문제인 걸까, 아니면 자신의 문제인 걸까. 그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갔다. 짓밟히면 짓밟힐수록 악이 받친다.


이 불쌍한 공작 놈이 아니라 저 악마 새끼에게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고 말 거라는 강한 각오가 아로새겨진다. 지금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일을 처리해온 벨은 검을 가르쳐달라던 단 한 마디가 몰고 올 광풍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악마의 말이 형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을 줄은 전혀. 잠시 뒤, 집사의 말을 듣고 뛰어 들어온 부인이 공작의 뺨을 후려침으로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작가의말

내일 군신 듀라미스 3권 발간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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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죽음(10) 14.04.23 1,435 22 7쪽
32 죽음(9) +2 14.04.14 1,461 28 7쪽
31 죽음(8) +1 14.04.02 1,391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29 43 7쪽
» 죽음(4) +4 14.03.06 1,931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7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9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1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3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4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5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7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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