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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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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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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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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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죽음(5)

DUMMY

아들을 지키기 위해, 아니면 남편의 정신을 들게 하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정신병자랑 살고 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부인이 휘두른 손은 정확히 공작의 뺨에 손자국을 남겼고, 공작의 분노는 부인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분노했다. 여자가 남자의 뺨을 후려치다니. 제국에선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을 하는 거죠?”

“내 애를 아버지 된 도리로 훈계하는 것도 잘못인가? 응?”

“아이를 넘어트리고 위에서 짓밟는 게 훈계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요. 나도 당신 정신 차리시라고 경고한 것뿐이에요. 그럼 제 행동도 이해가 쉽게 되시겠군요?”

“......지금 당신이 한 짓을 어르신께 말씀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그럼 저도 상경하겠어요. 어디 같이 가서 당신은 제 일을 고발하고, 저는 당신의 일을 고발해 봐요. 누가 더 잘못했는지 경중을 따져보자고요.”

“내가 한 일이라니?”

“집안에 함부로 여자를 들인 것도 모자라, 초야권이라는 걸 써서 신부를 강제로 취했던 일말이에요. 듣고 나시면 어르신께서 참 좋아 하시겠네요. 아들도 자신의 뒤를 잇는다고 말이에요.”

“그만! 그마안!!”


결국 제 분을 못이긴 공작은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집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값비싼 그림부터 회중시계, 도자기들이 바닥에 사정없이 뒹군다. 걔 중에는 엎어진 벨의 몸 위로 떨어진 것도 있었지만, 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아이의 몸으로 어른의 폭력을 견디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은 말없이 벨을 일으켰다.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가겠어요. 향후 오늘과 같은 일이 또 다시 생겼다간, 그날로 상경해서 당신의 정체를 모두 폭로해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요.”

“젠장! 여자 주제에! 돈을 벌지도 못하는 기생충 주제에!”

“그래요. 함부로 지껄여 봐요. 어차피 우린 이제 끝났으니까.”

“젠장!!”


부인은 그의 대답을 마저 듣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벨은 그녀의 불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많이 놀랐으리라. 형의 발작을 직접 목격한 벨에겐 어쩌면 별로 놀랄 것도 없었지만, 부인에겐 거의 처음 보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역시 당찬 여자답게 대응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벨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정한 눈길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세요? 어머니.”

“내 걱정을 하게 아니라, 네 걱정을 해야지. 많이 맞았니?”

“아니에요. 맞기 시작할 때 바로 들어오셔서 괜찮아요.”

“미안하구나. 설마 저 이가 너를 때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요즘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예민해지셨나봐요.”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 애를......일단 방에 들어가 쉬어라. 내가 믿을만한 집사 둘을 붙여주마.”

“네.”


탁.

방에 돌아온 벨은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문을 잠그고 돌아간 부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 번 사람을 때려본 맛을 안자는 절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특히 아버지처럼 해야 할 짓을 못해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한 자라면, 더더욱 새로운 맛에 몰두할 것이다. 한 마디로 앞으로 벨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일이 묘하게 꼬여 가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을 벗어날 순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여기까지 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순 없다. 물론 다양한 경우의 수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벨로서도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과거는 시궁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당분간은 상황을 좀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의 뒤에 어머니가 버티고 있는 이상, 쉽게 때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불안한 첫 날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공작은 서재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야권이 사라진 이후,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제일 괴로워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공작이었다. 그런 그가 당당히 문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벨은 정원에서 조심스럽게 차를 마셨다. 당장이라도 그가 튀어나오면 방에 돌아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특히 부인이 붙여준 2명의 건장한 집사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벨의 안전을 우선시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놓은 뒤라, 이미 만전의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차를 다 드셨으면 들어가시죠.”

“언제 오실지 걱정입니다.”

“응. 알았어.”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모형검으로 검술 연습을 하는 것도 웃기다. 벨은 고개를 끄덕이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이곳저곳 방을 둘러본 집사들이 문 밖을 지키러 밖으로 나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공작은 생각보다도 더 집요했다. 그들이 둘러볼 때만 기다리고 있던 그가 옷장 안에서 튀어나왔을 때, 벨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하지만 이내 복부에 가해지는 충격 때문에 말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벨의 몸이 기억자로 구부려지자, 자리에서 일어선 공작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피식 웃었다.


“고작 저 따위 집사들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아, 아버지.”

“감히 망할 계집년과 짜고 나를 골탕 먹이다니. 이 가문이 대체 누구의 손으로 이만큼 성장했는지 알고 있나? 응? 벨. 알고 있어?”

“......아버님이요. 아버님 덕분에......으헉.”

“그걸 알고 있는 놈이 감히 그따위 행동을 벌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버지!”

“누가 널 죽인다고 했느냐. 단지 버릇이 나쁜 아이에겐 어느 정도 체벌이 필요한 법이지.”

“욱.”


벨은 공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 개처럼 두드려 맞으면서도 절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라도 진정이 되었을 때, 자신의 눈을 떠올려 죄책감이 들기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공작은 이미 눈이 풀려 있었다. 그는 마치 오르가즘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어린 아들에게 말로 다 못할 폭력을 가했다. 그러면서도 금방 표시가 나는 얼굴은 건드리지 않았다. 보다 더 정교하게, 날선 폭력을 가하는 공작을 보며 벨은 이를 악물었다.


‘참아야 한다.’


어차피 자신만 무너지지 않으면 된다. 아버지는 그를 때리는 것으로 부족한 감정을 충족하고, 어머니는 자신이 막내아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으로 부족한 감정을 충족하고, 그러면 어떻게든 이 고장 난 수레바퀴는 돌아갈 것이라 그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벨을 때리는 공작의 표정은 여전히 어딘가 희열에 가득차 있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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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죽음(챕터 完) +1 14.04.25 1,380 25 12쪽
33 죽음(10) 14.04.23 1,435 22 7쪽
32 죽음(9) +2 14.04.14 1,461 28 7쪽
31 죽음(8) +1 14.04.02 1,391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19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 죽음(5) +2 14.03.12 1,830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1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7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7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9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1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2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0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89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2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3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8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4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5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0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7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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