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막 6장
“이류객잔? 아! 그 쪼그만데?”
강태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손바닥을 탁치며 말했다. 휘랑은 강태산의 말에 이마에 열십자 모양으로 힘줄이 불뚝 솟아 나왔다. 휘랑은 그런 힘줄을 애써 다시 이마 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조그마하던 크던 그건 네놈이 신경 쓸게 아니고.”
“네놈? 어린놈이 오만 하구나.”
강태산은 휘랑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앉아있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덮고 있던 침구가 흘러내린 강태산의 몸을 휘랑이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놈 배보다 만滿하지 않겠지. 무공을 익힌 거 맞아? 어떻게 그렇게 배가 부른 거지? 사실 여자여서 아이라도 가진 건가?”
“푸훕-”
“뭐……뭣이!?”
휘랑을 보고 오만하다고 한 강태산의 말을 받아치는 그의 말에 은학이 얼굴을 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강태산은 열이 받았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슈욱-!
강태산은 휘랑에게 분노의 일갈을 내뱉고 뚱뚱한 발로 열심히 보법을 밟아가며 그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휘랑은 쉽게 피해버렸다. 애초에 강태산의 무위는 휘랑보다 낮았다. 거기다가 현백이 독으로 자리에 앓아눕자 강태산을 막을 사람이 없어졌고, 현백을 제외하고 강태산을 제어 할 인물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무공수련을 게을리 했다.
강태산은 휘랑이 자신의 주먹을 쉽게 피해내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한 수 배운 놈인가 보구나. 하지만 그 정도로 날 이길 생각을 말아라!”
강태산은 소주의 뒷골목을 지배해온 공포의 흑도방의 방주였다. 뒷골목 제일의 자리를 땅따먹기로 따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배운 ‘뇌격권’을 조금씩 부하들에게 가르쳤다. 그렇기에 그는 뒷골목의 왕으로 군림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그는 뒷골목 불량배들의 두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공 수위가 높았다. 아마 일류의 끝자락에 걸쳤으리라. 그 정도면 뒷골목에서 왕으로 군림하기에 차고 넘치는 실력이었다. 거기다가 싸움 경험도 많으니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윤휘랑이었다. 일류의 끝자락에 오른 무위도, 뒷골목 싸움의 경험도, 절정의 무인정도는 혼자서 찜 쪄 먹는 그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꾸엑-!”
자신의 주먹을 피한 휘랑에게 재차 주먹을 내지르려는 강태산의 얼굴에 휘랑은 주먹을 내리꽂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았기 때문에 강태산은 자신의 몸에 맞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강태산의 무게와 휘랑의 공격에 위력이 합쳐져 단단한 참나무로 이루어진 바닥에 강태산의 몸이 반쯤 박혔다. 그는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배가 너무 불러 일어나지를 못했다.
휘랑은 낑낑대는 강태산의 배 위에 발을 올려놓고서 말했다.
“이건 저 부부를 괴롭힌 몫.”
그러면서 강태산의 배를 꾹 밟았다. 그러자 강태산은 배가 아픈지 헉소리와 함께 얼굴을 찡그렸다. 열심히 휘랑의 발을 치우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 버렸다.
휘랑이 그의 배 위에 발을 다시 올리고는 말했다.
“이건 우리 객잔을 모욕한 몫.”
콰직-! 콰직-!
어쩐지 아까와는 소리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착각일까? 강태산을 무자비하게 밟는 휘랑의 모습을 보며 현백과 은학은 쓰게 웃었다.
**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우리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지.”
휘랑이 강태산에게 말했다. 그 말에 강태산은 이를 뿌드득 갈면서 말했다.
“지금 장난치나? 네놈 같은 천둥벌거숭이가 날뛴다고 내 무너질 줄 아느냐?”
강태산의 말에 휘랑은 한숨을 푹쉬었다. 휘랑이 보기에 강태산은 뿌리까지 권위의식에 물든 자였다. 휘랑이 올라오면서 흑도방의 기반이 되는 방원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다. 그가 보기에 더 이상 강태산을 도와줄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처럼 강태산은 아직까지 큰소리를 쳐댔다.
“네 이놈! 내 반드시 네놈을 없애 버릴 것이다!”
“그런 대사는 지금보다 덜 민망한 자세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휘랑은 강태산의 말에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휘랑의 말에 강태산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강태산은 아직까지 휘랑의 발밑에 밟히고 있었다. 휘랑은 그런 자세에서 아직도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강태산이 묘하게 존경스러워 졌다.
휘랑은 강태산의 배에 올려 논 발에 무게를 실으며 말했다.
“네놈이 한 짓에 대해 모두 인정하나?”
“끄어어억! 인정 못한다 이노옴!”
“흐음? 그래?”
강태산의 말에 휘랑은 올려놓은 발에 더욱더 무게를 실었다. 조금만 더하면 내장이 삐져나올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렇게까지 휘랑의 발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올라가자 강태산은 순간 자존심도 뭐고 당황해서 살아야 한다는 일념 밖에 안 생겼다. 순간 본 휘랑의 눈에선 아까와 같이 보여주었던 장난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강태산은 휘랑이라면 정말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큰소리로 외쳐댔다.
“으아아아! 인정한다! 인정해! 내가 그런 것이다!”
그 말에 휘랑은 발을 살짝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 그런 거지?”
휘랑의 물음에 강태산은 숨을 헉헉 거리며 말했다.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저놈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 대답에 휘랑은 다시 물었다.
“왜 하필이면 그렇게 약한 독을 쓴 거지?”
“저놈의 무공이 고강해 강력한 똑같은 것은 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독하다 해도 식용 독은 체내에 흡수되기 전에 충분히 제압 할 터이니 천천히 축적시켜서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
강태산의 말에 휘랑은 턱을 긁적이며 현백을 바라보았다. 휘랑의 시선에 현백이 날카롭고 차분한, 하지만 숨겨진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강태산, 네놈의 목을 쳐 당장 길거리에 내걸고 싶은 심정구나. 그리고 지금 여기 계신 대협이라면 능히 네놈의 목을 쳐내실 수 있으시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러진 않겠다. 금방 이 독을 해독해서 내가 직접 네놈의 목을 치러 돌아오겠다. 그러니까…….”
현백은 한 숨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동안 목 잘 닦고 기다려라.”
현백은 말을 하면서 뒤돌아서서 은학을 데리고 사라졌다. 휘랑은 그런 현백을 보며 한숨을 쉬고는 따라 방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뭐, 앞으로는 착하게 살라고.”
휘랑의 말에 강태산은 분한지 그 커다란 배를 씨근덕거리며 차마 일어나지는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휘랑이 밟았던 부분이 아직까지 아팠기 때문이다. 휘랑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 강태산, 그는 그곳에 누워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어댔다.
“내가 반드시 네놈들을 내 발아래에 기도록 하겠다! 으아아아악!!”
강태산은 분노에 찬 일념으로 온갖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지쳤는지 잠시 숨을 골랐다.
“끄어억…….”
휘랑과 현백이 사라진 방주의 방에서 강태산이 아픈 배를 잡으며 꾸역꾸역 일어났다. 그리고서 가쁜 숨을 쌕쌕 몰아쉬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있었는지 주변에 있는 물건을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으아아아아아악!!!”
이미 침상위에 있던 기녀는 도망치고 없었기에 다행히 그가 던진 눈먼 물건에 누군가가 맞는 불상사는 없었다. 흑도방의 방주를 맡은 이후로 이렇게 처참하게 깨진 일은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자신을 귀찮게 하던 것은 방금전 자신에게 건방진 말을 내뱉고 사라진 현백뿐. 그런 현백 또한 최근에 자신을 귀찮게 굴지 못하게 만들었다. 독을 써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디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주 거리의 뒷골목은 완전히 자신의 세상이었다. 보호세를 명목으로 하는 돈도 무진장 뜯어냈고 그 돈으로 흥청망청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 사라졌던 현백이 웬 정체모를 객잔의 객주란 놈을 데려와 자신에게 이런 치욕을 안겨 주었다. 강태산은 그 사실을 용납 할 수가 없었다.
“밖에! 밖에 누구 없느냐!?”
강태산이 밖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하인 한명이 목을 움츠리면서 얼굴을 비추었다. 강태산은 그런 하인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지필묵과 종이를 가져와! 지금 당장!”
“예…….예!”
강태산의 명령에 하인은 대답을 하고서 급히 종이와 지필묵등을 챙겨와 강태산에게 건넸다. 강태산은 앉은 자리에서 화선지에다가 뭐라고 적어 내려갔다. 일각정도가 지난 후 강태산은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하인에게 그 서신을 접어 건네며 말했다.
“이 서신을 빨리 야락루 총관에게 전해주고 와!”
“예…….예!
강태산의 명령에 하인은 급하게 서신을 품속에 숨기고서는 방을 나갔다. 강태산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내 반드시 네놈을 망하게 만들겠다!”
강태산은 아까 자신이 휘랑에게 받은 치욕을 생각하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
“제가 건방진 것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의 결정은 대협께서 내리셔야 하는 건데…….”
흑도방이 소유한 건물 밖으로 나오며 현백이 미안한 표정으로 휘랑에게 말했다. 확실히 다른 상황이었다면 휘랑에게 크나큰 모욕이었다. 강태산을 제압 한 것은 휘랑이었는데 현백은 마치 자신이 그랬다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휘랑은 현백의 사과에 괜찮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품속을 뒤적이더니 무언가 그들에게 건넸다.
“이거 받으시죠.”
휘랑이 내민 것은 작은 약재 꾸러미였다. 은학이 그것을 받으며 물었다.
“이게 뭔가요?”
은학의 말에 휘랑이 웃으며 말했다.
“해독제입니다.”
휘랑의 말에 현백과 은학은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설마 그가 직접 해독제까지 준비했을 줄은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휘랑은 그런 두 사람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현백이 말했다.
“저희 부부는 대협꼐 은혜만 입는 듯싶습니다…….”
현백의 말에 휘랑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약재가 비싼 것도 아니니까. 부디 쾌차하십시오.”
휘랑의 말에 현백과 은학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은학이 말했다.
“대협께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학의 말에 휘랑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제가 운영하는 객잔에 오셔서 비싼 요리나 시켜 드세요. 그것도 많이 시켜 드시면 좋겠네요.”
휘랑의 황당한 말에 은학과 현백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풋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다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현백이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거 대협께는 못 당하겠군요……. 예, 다 나으면 꼭 대협께서 운영하시는 객잔에 찾아가겠습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휘랑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는 길을 떠났다. 휘랑은 그 모습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흑도방의 일이 있는지 보름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객잔에 귀찮게 얼쩡거리는 불량배, 파락호들의 모습은 눈에 띠게 줄었다. 대만이 슬슬 심심해져 야민대신에 마당까지 쓸기 시작했을 때, 객잔을 찾은 한 명의 관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감찰사監察士 남영제 라고 소개했다. 그는 뚱뚱한 배에, 자신을 보좌하는 시동을 여럿 데리고 모습을 드러냈는데 깐깐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지키고 있는 강대만에게 물었다.
“여기 주인이 누군가?”
그는 남영제가 관리란 소리에 옛날 일을 생각해 긴장하더니 이내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긴장을 풀고 휘랑에게 그를 안내해 주었다. 그는 그러면서 휘랑을 불러냈다. 강대만의 부름에 휘랑은 가지고 있던 천에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며 물었다.
“이런 곳에 어쩐 일로?”
휘랑의 물음에 남영제는 깐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에 안전성과 위생상태가 불량하다는 신고가 관사에 들어왔다네. 내 그리하여 직접 시찰해보러 나왔네.”
남영제의 말에 휘랑과 그의 곁에 있던 모든 객잔의 식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예?!”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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